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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박 지 원
연암 박지원은 벗 이중존(李仲存)이 우리나라 고금의 과체(科體)를 모아 엮어 열 권으로 만들고, 이를 이름하여 소단적치(騷壇赤幟)라 한 책에 서문을 붙였다. ‘소단적치(騷壇赤幟)’란 ‘문단의 붉은 깃발을 논함’이라는 뜻인데 과거(科擧)의 탁월한 문장은 승리한 장수의 깃발과 같다는 뜻이다. 연암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문장론을 개시했다.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글을 잘 하는 자는 병법을 아는 것일까? 글자는 비유컨데 병사이고,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제목이라는 것은 적국이고, 전장(典掌) 고사(故事)는 싸움터의 진지이다. 글자를 묶어 구절이 되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의 대오(隊伍) 행진과 같다. 운(韻)으로 소리를 내고, 사(詞)로 표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군대의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이고, 비유라는 것은 유격의 기병이다. 억양 반복이라는 것은 끝까지 싸워 남김 없이 죽이는 것이고, 제목을 깨뜨리고 나서 다시 묶어주는 것은 성벽을 먼저 기어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음이 있다는 것은 군대를 떨쳐 개선하는 것이다.
대저 장평의 군사가 그 용감하고 비겁함이 지난날과 다름이 없고, 활·창·방패·짧은 창의 예리하고 둔함이 전날과 변함이 없건만, 염파(廉頗)가 거느리면 제압하여 이기기에 족하였고, 조괄(趙括)이 대신하자 스스로를 파묻기에 충분하였다. 그런 까닭에 병법을 잘 하는 자는 버릴만한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는 가릴 만한 글자가 없는 것이다. 진실로 그 장수를 얻는다면 호미·곰방메·가시랭이·창 자루로도 모두 굳세고 사나운 군대가 될 수 있고, 천을 찢어 장대에 매달아도 정채가 문득 새롭다. 진실로 그 이치를 얻는다면 집안사람의 일상 이야기도 오히려 학관(學官)에 나란히 할 수 있고, 어린아이들의 노래나 마을의 상말도 또한 《이아(爾雅)》에 넣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글이 좋지 않은 것은 글자의 잘못이 아니다.
저 글자나 구절의 우아하고 속됨을 평하고, 편(篇)과 장(章)의 높고 낮음을 논하는 자는 모두 합하여 변하는 기미(合變之機)와 제압하여 이기는 저울질(制勝之權)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비유컨데 용감하지도 않은 장수가 마음에 정한 계책도 없이 갑작스레 제목에 임하고 보니, 아마득하기 굳센 성과 같은지라, 눈앞의 붓과 먹은 산 위의 풀과 나무에 먼저 기가 꺾여 버리고, 가슴 속에 외웠던 것들은 벌써 사막 가운데 원숭이와 학이 되고 마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글을 잘하는 자는 그 근심이 항상 혼자서 갈 길을 잃고 헤매거나, 요령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
대저 갈 길이 분명치 않으면 한 글자도 내려쓰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항상 더디고 껄끄러운 것이 병통이 되고, 요령을 얻지 못하면 두루 헤아림을 비록 꼼꼼히 하더라도 오히려 그 성글고 새는 것을 근심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음릉(陰陵)에서 길을 잃자 명마인 추도 나아가지 않고, 굳센 수레로 겹겹이 에워싸도 여섯 마리 노새가 끄는 수레는 이미 달아나 버린 것과 같다. 진실로 능히 말이 간단하더라도 요령만 잡게 되면 마치 눈 오는 밤에 채(蔡) 성을 침입하는 것과 같고, 토막말이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면 세 번 북을 울리고서 관(關)을 빼앗는 것과 같게 된다. 글을 하는 도가 이와 같다면 지극하다 할 것이다.
나의 벗 이중존(李仲存)이 우리나라 고금의 과체(科)를 모아 엮어 열 권으로 만들고, 이를 이름하여 소단적치(騷壇赤幟)라 하였다. 아아! 이것은 모두 승리를 얻은 군대요 백 번 싸워 이긴 나머지이다. 비록 그 체재와 격조가 같지 않고, 좋고 나쁨이 뒤섞여 있지만, 제각기 이길 승산이 있어, 쳐서 이기지 못할 굳센 성이 없고, 그 날카로운 칼끝과 예리한 날은 삼엄하기가 마치 무고(武庫)와 같아, 때를 따라 적을 제압하여 움직임이 군대의 기미에 맞으니, 이를 이어 글 하는 자가 이 방법을 따른다면, 정원(定遠)의 비식(飛食)과 연연산(燕然山)에 공을 적어 새기는 것이 그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방관(房琯)의 수레싸움은 앞사람을 본받았어도 패하고 말았고, 우후(虞)가 부뚜막을 늘인 것은 옛 법을 반대로 하였지만 이겼으니, 합하여 변화하는 저울질이란 것은 때에 달린 것이지 법에 달린 것은 아니다.
연암은 먼저 글쓰기의 정법(定法)을 제시하고 이어서 활법(活法)을 드러내어 두 가지의 적절한 융합이 훌륭한 글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실로 그 이치를 얻는다면 집안사람의 일상 이야기도 오히려 학관(學官)에 나란히 할 수 있고, 어린아이들의 노래나 마을의 상말도 또한 《이아(爾雅)》에 넣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글이 좋지 않은 것은 글자의 잘못이 아니다.’ 이 말은 문장의 드러내고자 하는 뜻을 작가가 통달해 있다면 표현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에 어떤 글자도 문장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사가 사용하는 명검과 강한 방패는 문장의 훌륭한 수사에 비유할 수 있다. 좋은 무기란 싸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연암은 일본의 전설적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가 검의 달인이 되자 목검으로도 진검을 가진 상대를 이기는 경우처럼 문장의 뜻에 통달한 자는 어떤무기도 가리지 않는다는 요지의 뜻을 말한다. ‘어린아이들의 노래나 마을의 상말’이 중국고전의 어휘를 해석한《이아(爾雅)》에 오를 수 있는 경지는 무엇일까. 연암은 문장의 도(道)에 대해 ‘그 이치’를 진실로 얻는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글의 번역이 실감이 나지 않아 읽는데 부드러운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풀이한 글을 다시 올립니다.
소단적치인 한국고전번역원 역
박지원
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요, 비유란 기습 공격하는 기병(騎兵)이요, 억양반복(抑揚反覆)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이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무릇 장평(長平)의 병졸은 그 용맹이 옛적과 다르지 않고 활과 창의 예리함이 전날과 변함이 없었지만, 염파(廉頗)가 거느리면 승리할 수 있고 조괄(趙括)이 거느리면 자멸하기에 족하였다. 그러므로 용병 잘하는 자에게는 버릴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에게는 따로 가려 쓸 글자가 없다. 진실로 좋은 장수를 만나면 호미자루나 창자루를 들어도 굳세고 사나운 병졸이 되고, 헝겊을 찢어 장대 끝에 매달더라도 사뭇 정채(精彩)를 띤 깃발이 된다. 만약 이치에 맞다면, 집에서 늘 쓰는 말도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고 동요나 속담도 《이아(爾雅)》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글이 능숙하지 못한 것은 글자의 탓이 아닌 것이다.
대저 자구(字句)가 우아한지 속된지나 평하고 편장(篇章)의 우열이나 논하는 자들은 모두 변통의 임기응변과 승리의 임시방편을 모르는 자들이다. 비유하자면 용맹스럽지 못한 장수가 마음에 미리 정해 놓은 계책이 없는 것과 같아서, 갑자기 어떤 제목에 부딪치면 우뚝하기가 마치 견고한 성을 마주한 것과 같으니, 눈앞의 붓과 먹이 산 위의 초목을 보고 먼저 기가 질려 버리고 가슴속에 기억하고 외우던 것이 이미 모래 속의 원학(猿鶴)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글 짓는 자는 그 걱정이 항상 스스로 갈 길을 잃고 요령을 얻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무릇 갈 길이 밝지 못하면 한 글자도 하필(下筆)하기가 어려워져서 항상 더디고 깔끄러움을 고민하게 되고, 요령을 얻지 못하면 두루 얽어매기를 아무리 튼튼히 해도 오히려 허술함을 걱정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음릉(陰陵)에서 길을 잃자 명마인 오추마(烏騅馬)가 달리지 못하고, 강거(剛車)가 겹겹이 포위했지만 육라(六騾)가 도망가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실로 한마디 말로 정곡을 찌르기를 눈 오는 밤에 채주(蔡州)에 쳐들어가듯이, 한마디 말로 핵심을 뽑아내기를 세 차례 북을 울려 관문을 빼앗듯이 할 수 있어야 하니, 글을 짓는 방도가 이 정도는 되어야 지극하다 할 것이다.
친구 이중존(李仲存)이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고금의 과체(科體)를 모아 10권으로 편집하고 그 이름을 《소단적치(騷壇赤幟)》라 했다. 아! 이는 모두 승리를 얻은 병졸이요, 수백 번의 싸움을 치른 산물이다. 비록 그 격식이 동일하지 않고 정교한 것과 거친 것이 뒤섞여 들어갔지만, 각자 승리할 계책을 지니고 있어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가 있다. 그 예리한 창끝과 칼날이 삼엄하기가 무기고와 같고, 때에 맞춰 적을 제압하는 것이 늘 병법에 맞는다.
앞으로 글을 하는 자들이 이 길을 따라간다면, 정원후(定遠侯)의 비식(飛食)과 연연산(燕然山)에 명(銘)을 새긴 것이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인저, 여기에 있을 것인저! 비록 그렇지만 방관(房琯)의 거전(車戰)은 앞사람의 자취를 본받았으나 실패했고, 우후(虞詡)의 증조(增竈)는 옛법을 역이용하여 승리했으니, 그 변통하는 방편은 역시 때에 있는 것이요, 법에 있지는 아니한 것이다.
붓과 먹이 날카롭고 글자와 글귀가 날고 뛴다. 이야말로 문예계의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이라 하겠다.
세상의 이른바 ‘글제를 고려하여 거기에 꼭 들어맞게 지은 글’이란 것으로 과거(科擧)를 위한 글을 짓게 되면, 동전을 주조하는 데 납이 섞이고 철이 섞여서 겉으로는 마치 정련(精鍊)된 것 같지만, 속을 보면 실은 경박하고 부실한 것과 같다. 진실로 충분히 고려하고 충분히 꼭 들어맞도록 하여 한 글자도 겉도는 말이나 두서없는 말이 없게 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득의한 고문(古文) 중에서도 상승(上乘 상품(上品) )일 것이다.
주제를 결정하여 글을 엮기를 《울료자(尉繚子)》에서 병법을 말할 때나 정불식(程不識)이 군사를 출동할 때처럼 한다면 당연히 공령문(功令文 과체문(科體文) )의 상승이 될 것이다. 편(篇)마다 이와 같다면 어찌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심복하게 하지 않겠는가.
[주-D001]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
인(引)은 문체의 명칭으로 서(序)와 마찬가지이다. 《소단적치》라는 책에 붙인 서문이란 뜻이다. 소단(騷壇)은 원래 문단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문예를 겨루는 과거 시험장을 가리킨다. 적치(赤幟)는 한(漢) 나라의 한신(韓信)이 조(趙) 나라와 싸울 때 계략을 써서 조 나라 성의 깃발을 뽑고 거기에 한 나라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세우게 하여 적의 사기를 꺾어 승리한 고사에서 나온 말로, 전범(典範)이나 영수(領袖)의 비유로 쓰인다. 요컨대 ‘소단적치’란 과거에서 승리를 거둔 명문장들을 모은 책이란 뜻이다.
[주-D002] 억양반복(抑揚反覆) :
문장의 기세를 억제했다가 고조했다가 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는 수법을 말한다.
[주-D003] 파제(破題) :
당송(唐宋) 시대에 과거 답안지의 첫머리에서 시제(試題)의 의미를 먼저 설파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명청(明淸) 시대 팔고문(八股文)에 이르러 고정된 법식이 되었다.
[주-D004]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 :
원문은 ‘不禽二毛也’인데,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22년 조에서 송(宋) 나라 군주는 적이 불리한 처지에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을 의롭지 못하다고 여겨 머뭇거리다가 패전한 뒤에 “군자는 부상자를 거듭 상해하지 않고 반백(半白)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다.〔君子不重傷 不禽二毛〕”고 변명하였다.
[주-D005] 장평(長平)의 …… 족하였다 :
장평은 전국 시대 때에 조(趙) 나라 군사 40만이 진(秦) 나라 장수 백기(白起)에게 몰살당한 곳이다. 즉 진 나라 백기가 조 나라를 공격하자 조 나라에서는 처음에 명장 염파(廉頗)가 장수로 나와 진 나라를 상대로 승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진 나라의 반간계(反間計)에 속은 조왕(趙王)이 염파를 쫓아내고 싸움에 서투른 조괄(趙括)을 장수로 삼음에 따라, 백기가 이를 이용하여 조 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투항한 40만 군사를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조괄은 조 나라의 장군인 조사(趙奢)의 아들로 병법을 조금 배워서 알게 되자 천하에 자기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늘 자부하고 다녔으므로 아버지 조사로부터 조 나라 군대를 망칠 사람은 틀림없이 조괄일 것이라는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 글은 똑같은 군대라도 장수가 누구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짐을 말한 것이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주-D006] 산 …… 질려 버리고 :
동진(東晉) 때에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공격하였다. 이때 동진의 장수 사석(謝石)과 사현(謝玄) 등이 이를 맞아 싸웠는데, 부견이 성에 올라 동진의 군대를 바라보니 진용(陣容)이 정제되고 군사들이 정예화되어 있었다. 게다가 북쪽으로 팔공산(八公山) 위를 바라보니 초목들이 마치 동진의 군사로 보여 겁을 먹었다고 한다. 《晉書 卷114 苻堅下》
[주-D007] 모래 …… 되어 버린다 :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 “주 나라 목왕(穆王)이 남쪽으로 정벌을 떠났는데 전군이 몰살하여 군자는 원숭이와 학이 되고, 소인은 벌레와 모래가 되었다.” 하였다. 즉 아무것도 기억에 남은 것이 없이 다 잊어버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8] 음릉(陰陵)에서 …… 못하고 :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의 군사에게 쫓겨 음릉에 이르러 그만 길을 잃게 되자 그곳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그리고 배를 몰고 자신을 마중 나온 오강(烏江)의 정장(亭長)에게 타고 다니던 오추마(烏騅馬)를 주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항우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했을 때 지은 시 속에 “시운이 불리하니 오추마도 달리지 않도다.〔時不利兮騅不逝〕”라고 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9] 강거(剛車)가 …… 것 :
한 나라 무제(武帝) 원수(元狩) 4년 대장군 위청(衛靑)이 무강거(武剛車)라는 전차로 진영을 만들고 흉노(匈奴)를 포위하였으나 흉노의 선우(單于)가 여섯 마리의 노새가 끄는 육라(六騾)를 타고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史記 卷111 衛將軍驃騎列傳》
[주-D010] 눈 오는 …… 쳐들어가듯이 :
당 나라 헌종(憲宗) 때에 오원제(吳元濟)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 나라 장수 이소(李愬)가 눈 오는 밤에 방비가 소홀한 틈을 타 반군의 근거지인 채주(蔡州)를 불의에 습격하여 오원제를 사로잡았다. 《舊唐書 卷133 李愬傳》
[주-D011] 세 차례 …… 빼앗듯이 :
춘추 시대 노(魯) 나라 장공(莊公) 10년에 제(齊) 나라가 노 나라를 침범하자 조귀(曹劌)가 장공과 함께 장작(長勺)에서 제 나라 군사와 맞서 싸웠는데, 제 나라에서 북을 세 번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의 힘이 빠진 다음에 제 나라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春秋左氏傳 莊公10年》
[주-D012] 이중존(李仲存) :
중존은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의 자이다.
[주-D013] 과체(科體) :
과거 시험에서 보이던 여러 문체의 글을 이른다. 과문(科文), 공령(功令)이라고도 한다.
[주-D014] 정원후(定遠侯)의 비식(飛食) :
정원후는 후한의 장수 반초(班超)의 봉호(封號)이다. 반초가 일개 서생으로 지내고 있을 때 답답한 마음에 어떤 관상쟁이를 찾아갔는데 그가 하는 말이 “제비의 턱에 호랑이의 목을 지니고 있으니 멀리 날아가서 고기를 먹을 것이다. 이는 만리후(萬里侯)의 관상이다.〔燕頷虎頸 飛而食肉 此萬里侯相也〕”라고 하였다. 그 후 반초는 장수가 되어 서역(西域)의 흉노(匈奴)를 정벌하여 정원후에 봉해지고 그가 서역에 있던 31년 동안에 서역의 50여 개국이 모두 한 나라에 복속하였다. 이 말은 반초가 멀리 서역에까지 이름을 날리듯 문장의 명성이 멀리 퍼진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後漢書 卷77 班超列傳》
[주-D015] 연연산(燕然山)에 …… 것 :
후한 때의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군사를 이끌고 북벌에 나서 남흉노와 연합하여 계락산(稽落山)에서 북흉노를 대파하고는 연연산에 올라가 공적비를 세우고 반고(班固)로 하여금 봉연연산명(封燕然山銘)을 짓게 하였다. 이 말은 두헌이 비석을 세워 공적을 후세에 남기듯이 문장의 명성이 오래도록 남겨지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後漢書 卷53 竇憲列傳》
[주-D016] 방관(房琯)의 거전(車戰) :
방관(697~763)은 당 나라 때의 장수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현종(玄宗)이 물러나고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방관에게 각군을 모아 장안(長安)을 수복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장안으로 진격하다 함양(咸陽)에서 적을 만났다. 방관이 직접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춘추 시대의 거전법(車戰法)을 흉내내어 소가 끄는 수레 2000승(乘)과 보병으로 진을 쳐서 적과 대치하니, 적들이 바람을 이용하여 소리를 지르고 불을 놓아 공격하여 방관의 군이 대패하였다. 《資治通鑑 卷219 唐紀》
[주-D017] 우후(虞詡)의 증조(增竈) :
후한(後漢) 때의 장수 우후가 옛날 손빈(孫臏)의 전법과 반대로 취사하는 아궁이의 수를 늘려 병력이 증강되는 것처럼 위장한 고사를 말한다. 손빈(孫臏)이 제(齊) 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위(魏) 나라의 장수 방연(龐涓)과 싸우게 되자 첫날에는 취사하는 아궁이를 10만 개 만들었다가 이튿날엔 5만 개로 줄이고 또 그 이튿날엔 3만 개로 줄여 군사들이 겁먹고 도망친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에 방연이 방심하고 보병을 버려둔 채 기병만으로 추격을 하다 마릉(馬陵)에서 손빈의 복병을 만나자 자결하였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우후는, 북방의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 병력의 열세로 인해 몰리게 되자 구원병이 온다는 거짓 소문을 내고는 아궁이의 수를 매일 늘려 구원병이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에 어떤 이가 묻기를, “손빈은 아궁이의 수를 줄였다는데 그대는 늘리고 있으니, 무슨 까닭이오?” 하자, “손빈은 허약한 척하느라고 아궁이 수를 줄인 것이고 나는 반대로 강하게 보이려고 아궁이 수를 늘린 것이니, 이는 형세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다. 《後漢書 卷88 虞詡列傳》
[주-D018] 염파(廉頗)와 이목(李牧) :
모두 전국 시대 조(趙) 나라 최고의 명장이다.
[주-D019] 속을 …… 같다 :
원문은 ‘內實有參恕處’인데 의미가 분명치 않다. 《하풍죽로당집》에는 “속을 보면 실은 경박하고 부실하다.〔內實浮浪〕”고 되어 있다.
[주-D020] 이야말로 …… 것이다 :
원문은 ‘便是得意古文之上乘’인데 문장이 다소 어색하다. 《하풍죽로당집》에는 “이야말로 득의한 고문일 것이다.〔便是得意之古文〕”라고만 되어 있다.
[주-D021] 《울료자(尉繚子)》에서 …… 때 :
울료자는 전국 시대의 병법자인 울료(尉繚)가 지은 병서로 거기에서 그는 본말(本末)을 분명히 하고 빈주(賓主)를 구분하고 상벌(賞罰)을 명확히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D022] 정불식(程不識)이 …… 때 :
정불식은 전한 때의 명장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였다. 문제(文帝) 때에 이광(李廣)과 함께 변방의 태수로서 흉노를 공격하러 출동할 때에 이광과는 달리 군대를 엄중하고도 분명하게 통솔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109 李廣列傳》
첫댓글 찬찬히 음미해 보니 깊은 뜻을 줍니다. '科擧의 탁월한 문장은 승리한 장수의 깃발과 같다.' 참 멋진 표현입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읽으시는 데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읽기 쉽게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한 글을 다시 올려 놓았습니다. 그 글에는 주석까지 있어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문장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문장의 드러내고자 하는 뜻을 작가가 통달해 있다면 표현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한숨이 나옵니다;;
시간을 내서 천천히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표현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림의 고수들이 모인 울 문학회 선생님들을 생각해봅니다. 얕은 저로선 댓글 달기도 벅찹니다.^^; 숙독하겠습니다.
어렵게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