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았다. 영화는 신선했고, 마치 내가 첫사랑을 하던 스무살 무렵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영화 속에 빠져 있었다. 어렸을 때 느꼈던 설레임마저 느낄 수 있었고, 영화 보는 내내 행복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우리세대의 ?은 날과 일치하고, 그 시절 우리내 삶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내 ?은 시절과 동시대인 19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회상되어 더욱 공감하면서 보았다. 서툴고, 순수했기에 아플 수 밖에 없는 첫사랑의 이야기.. 영화가 끝나도 잔잔한 여운을 남겨 주는 이런 영화를 난 좋아한다.
영화 속에 인상 깊은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승민과 어머니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승민 : 엄마는 이집이 지겹지도 않아? 평생 여기서 살면서 고생만 하고. 엄마 : 어이구... 집이 지겨운게 어딨어. 집은 그냥 집이지..
영화 속의 아름다운 장면들.
납뜩이 안갈 정도로 재밌는 연기를 했던 조정석.
서툴고 어수룩한 것이 꼭 내 어렸을 때 모습을 보는 듯한 승민.
자.. 이제 영화에 나오는 제주도 해안가 서연의 집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이 토지이용계획 확인서를 살펴보는 장면에서 직업적인 관심이 가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래 장면을 보고 영화가 끝난 후 건축학개론에 나온 해안가 집이 어디인지 찾아 보았다. 아래 이미지는 영화 속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다. 지적도에 노란 형광펜으로 2975번지만 표시를 한 이유는 뭘까? 실제 집터는 2976번지인데.. 영화란 이미지를 중시하기에 못 생긴 토지모양을 감추기 위함일까.. 어쨌든 영화 속 이장면 때문에 실제 서연의 집이 있기나 한건지 의심마저했었다. 2975번지만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는 부지다. 그 이유는 밑에 달아 놓았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2976, 2975번지가 건축학개론에 나온 서연의 집 소재지이다. 2976번지가 69평, 2975번지가 49평으로 총 면적은118평이다. 부지의 지목은 모두 대지이다. 등기부등본을 보니 2976번지, 2975번지 2필지 모두 법인 소유다.
그보다 더 문제는 폭이 좁다. 특히 2975 대지는 면적도 작지만 폭이 7m밖에 안된다. 정상적인 건축물을 안히기엔 폭이 좁다. 정원으로 밖에 사용을 못한다. 다행인 것은 2976 대지가 최대 폭이 14.5m 정도 나온다. 좀 좁은 감은 있지만, 공간활용을 잘해서 건축설계를 하면 활용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앞마당이 없고, 측면에 붙은 2975번지를 정원으로 쓰기에 부지 활용도면에서는 떨어진다. 옆마당 보단 앞마당이 넓게 나오는 땅이 부지도 넓어 보이고, 토지 활용도도 좋다.
스케일자로 폭을 확인해 보았다.
대문에서 2975 대지를 바라 본 전경. 폭이 좁아 정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4610 도로와 3058-2 도로에 각각 접해 있다. 지적도상 폭이 10m가 넘는 넓은 해변 도로이다. 2차선 도로로 확장되면 주거지로는 매력이 떨어지는데, 주변 상황을 살펴보니 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다.
도로에서 집터의 높이가 약 1.5~ 2m 정도로 바닷가를 조망하는데 적당하고, 무엇보다 사생활 침해가 덜하다는 것이 좋다. 아파트 1층과 2층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집터는 이렇게 도로보다 조금 높은 게 좋다. 특히 통행이 빈번한 마을 길에 접해 있다면..
서연의 집 돌담이 참 이쁘다.
현장 사진을 다음 로드뷰로 보면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밑에 지적도의 파란색 타원형부분에 2975번지와 2976번지 경계부분이 분명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위에 로드뷰로 본 현황은 굽은 것이 없는 거의 직선이다. 아마도 4610 도로부지 (국유지)를 유상이건, 무상이건 를 점유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2977-1번지 대지도 국유지다.
부지의 형황은 거의 직선이고, 전신주가 있는 부분이 살짝 들어가긴 했다.
서연의집 대문과 접한 바로 옆집인 2973번지 대지는 훨씬 더 과감하게 국유지 도로를 점유해서 쓰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부지에 접해 있는 4610 도로는 면적이 21,514평이나 된다. 위미리를 거미줄 처럼 엮고있다.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이 적용되는 용도지역이 무려 14개나 된다. 흔한 경우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집터는 바다를 조망하기 매우 뛰어난 위치이다. 영구히 조망권 훼손에 대한 염려도 없고, 거실에 앉아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를 조망한다는 건 매우 특별하다.
거실에 바다를 조망할 때 현무암으로 쌓은 서연의 집 돌담 상단이 살짝 보이는 것이 운치를 더한다.
항공 사진으로 보면 정남향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조망 뿐만 아니라 일조권도 좋다. 다만, 좋은 바다 경치를 본다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다.
우선 바다에 면하고 있어, 집이 습할 수가 있다.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가 않다. 특히 여름철에는 습기로 인해 화장실등에 곰팡이가 많이 생길 수 있다. 바닷가라 시원할 것 같은데, 여름철에 습한 바닷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 오면 더 무덥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 보다 더 걱정 되는 것이 최근에 발생하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천재이다. 잦은 태풍과 거대한 해일로 인한 침수, 일본에 발생한 쓰나미 같은 재앙이 몰려온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내가 너무 초를 친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본 집터의 입지적 조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지적했을 뿐이다. 주변에 집들이 있고, 제법 큰 마을을 형성한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사람이 살아 왔던 곳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모르겠지만, 기상이변이 심해지면서 앞으론 사람이 더욱 살기 힘든 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북상하는 태풍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위치이다. 태풍이 발생할 때마다 가슴을 조이며 재난 방송을 시청할 확율이 높다.
우수운 이야기를 하나 해주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아는 지인이 바닷가 땅을 샀는데, 어느날 자기가 산 땅을 보러 갔다가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다는 거다. 땅을 계약 할 때는 썰물 때였고, 매입 후 다시 가 보았을 때는 만조였던거다. 코메디 같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강가, 바닷가, 냇가, 계곡접한 땅등 물가 땅은 잘 살펴봐야 한다.
요즘 시끄러운 제주해군기지와는 거리가 약 19Km 떨어져 있어, 본 주택과는 관계가 없을 것 같다.
집터에 대한 이야기 후 주택에 관한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실제 영화 속 집은 사람이 거주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집이 아닌, 영화를 촬영하기 위한 세트였다. 한마디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다. 더군다나 영화 촬영 후 방치 하고 있었고, 촬영 세트를 만들기 위한 각종 자재를 쓰레기 처럼 집 뒤에 쌓아 놓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촬영지를 찾아갔던 사람들에게 위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아직 순진한 건지.. 왠지 속은 것 같은 마음마저 들었다. 직접 촬영지를 찾아갔던 사람들도 번듯한 서연의집이 있을거란 환상을 갖고 갔다가 실망을 한것 같다. 건축폐기물 같은 쓰레기가 쌓여 있는 사진은 여기에 안 올릴려고 한다. 그것마저 올리면 정말..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 속 잔잔한 감동마저 잃고 싶진 않다.
다행인 것은 기존의 세트는 철거를 하고, 영화 속 같은 집으로 건물을 신축해서 갤러리 겸 카페로 오픈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고 한다. 제주도 여행을 간다면 한번쯤 들려서 영화 속 서연의 집에서 보았던 그 바다를 바라 보며 차 한잔 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어제 2012년 사랑받은 한국영화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조사에서 '건축학개론'이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화 속 배경 중에 제주도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승민과 서연 서로의 손이 스칠듯 하면서 걸었던 철길의 배경이 양평군 지평면 일신2리에 소재한 구둔역이다. 중앙선 복선화 사업으로 현재는 열차를 운행하지 않는 폐역이지만,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296호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다.
건축학개론의 OST "기억의 습작"은 전람회 시절 김동률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내가 군대 제대한 1994년 봄에 발매 된 곡이다. 노래 제목도 그렇지만, 잔잔한 선율이 잔잔한 여운을 남겨 주는 영화와 잘 어울린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작성자 : 오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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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평 동서남북 토지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오순석
첫댓글 ㅋㅋ 신세계님이 작성한 글인줄 알고 대박이다 했더니 글 아래 작성자가 따로 있네요^^ 여하튼 저도 시대적 공감대로 즐겁게 본 영화구요... 이렇게 좋은 글 자주 올려주세요!!
오월 아침에 좋은글에 감동받고 영화장면도 떠올려보고 냉정한 현실세계???? ㅋㅋ
고루 다 갖춘 내용에 감사..^^
우리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근데 전 왜 남주인공 게스티철자 틀린 장면이 떠오르는지..ㅋㅋ 암튼 전문적인 분석글 잘 보았습니다~~~
분석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마지막에 대박이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