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년만에 완간된 미학 오디세이 완결편. 미와 예술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새롭게 각인시킨 대표적 작품으로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3권이 기존에 출간된 1,2권과 가장 다른 점은 "미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1,2권에서 주로 근대미학의 틀 위에서 작업을 하며 근대와 탈근대를 가르는 "경계선"까지 나아갔다고 한다면, 3권에서는 경계선을 넘어 본격적인 "탈근대"의 관점에서 최근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벤야민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 등의 사상가들을 등장시켜 탈근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로운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원본과 복제, 복제의 복제인 "시뮬라크르" 등을 설정해 현대 미학을 살피고 있으며, "가상과 현실"이라는 묵직한 문제 의식을 던지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 저자는 "이 책이 쉽게 쓰여졌다고 해서,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데는 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우리 대중 교양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수작으로, 서가의 한 자리를 당당히 빛낼 만한 책임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 진중권
1963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유학에서 귀국한 후 지식인 사회에서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하면서 지식인 담론의 비판 작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그의 인문적, 미학적 사유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식 틀과 벤야민에게서 받은 영감에서 시작되었다. 앞으로 이를 구체화하는 사유와 글쓰기를 계획하고 있는데, 개략적으로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 미학, 윤리학의 근원적 통일을 되살려 새로운 미적 에토스를 만드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미학 오디세이』 『춤추는 죽음』『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시칠리아의 암소』 『폭력과 상스러움』『앙겔루스 노부스』등이 있다.
관련 자료
― 지난 2004년 3월 5일 휴머니스트에서 미학 오디세이 3권의 마지막 원고 검토를 진중권 선생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이 인터뷰 내용은 그때 잠시 시간을 할애하여 진중권 선생과 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강의와 집필, 그리고 각종 글쓰기로 바쁜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지난 2003년 11월에 진행된 인터뷰 내용도 부분적으로 삽입되었음을 밝힙니다.(편집자주)
▶ 10년 만에 “미학 오디세이가 완간되는 순간”입니다. 느낌이 매우 다를 것 같습니다. 혹, 벅차다거나 감격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은지요?
글쎄요. 뭐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일을 ‘싹’ 정리하는 기분이죠. 10년 전, 그때 저는 베를린으로 유학 간 가난한 유학생이었죠.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아빠가 되었으니……. 이 책이 살아 움직이게 한 독자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네요.
▶ 이 책은 지금 읽어도 무척 재밌습니다. 이 글을 쓴 지가 10년 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90년대 초반 이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터인데요. 도대체 이 텍스트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겁니까?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미학 오디세이 3권”은 1, 2권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당시는 사회과학이 밖으로 나온 때였죠. 지금 이야기하는 ‘대중서’들이 처음 선보이기 시작한 시기였을 겁니다. 구상은 92년 정도 시작했죠. 늘 아쉬운 게 하나 있었어요. 이 책이 쉽게 씌어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몇 가지 밝혀야 할 것 같아요. 이 책의 내용은 절대로 쉬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겁니다.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이 글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연구되고 있지 않은 미학 이론들을 담아야 했기에 공부를 꽤 많이 해야 했어요. 많은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왜냐면 기존 학계에서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저 혼자 공부를 해서 얻은 내용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재구성하고 되새김질 했던 것이죠. 그런데 3권은 좀 달랐습니다. 그간 공부해온 것도 있고, 또 유럽에서 벤야민이나 비트겐슈타인 등을 공부하면서 얻은 경험도 있었구요. 3권의 가장 큰 변화는 미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1~2권에서는 주로 근대미학의 틀 위에서 작업을 하며 근대와 탈근대를 가르는 경계선까지만 나아갔지만, 3권에서는 그 선을 넘어 본격적으로 ‘탈근대’의 관점에서 최근의 미학을 다루고 있죠. 아마 3권을 읽어 보면 이 정신적 분위기의 차이가 느껴질 겁니다.
▶ 3권의 경우는 결코 쉽지 않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쉽게 읽히려 했다면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패러다임을 제대로 설정했던 게 전체 내용을 쉽게 이끄는 주요한 요인이었을 겁니다. 가상과 현실의 관계라는 패러다임을 설정한 것이 맞아떨어졌죠. 3권은 원본과 복제, 그리고 복제의 복제인 시뮬라크르 등을 설정해 현대 미학의 세계를 살폈고 끝에서는 ‘다시 가상과 현실’이라는 문제 의식을 던지면서 마무리했습니다.
▶ 피라네시라는 예술가가 등장하는데요. 바로크 시대 인물이 탈근대 미학을 다루는 “미학 오디세이 3권”의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바로크와 낭만주의는 고전주의 미학과 대립 속에서 자라난 대표적인 사조예요. 현대예술이 고전주의 예술이상이 무너진 자리에서 자라났기에, 바로크와 낭만주의는 어떤 면에서 현대예술의 선구라 할 수 있습니다. 피라네시는 바로크 시대에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선취한 작가이기에, 바로크-낭만주의-현대예술로 이어지는 라인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죠.
▶ 보르헤스의 사유가 곳곳에 등장합니다. ‘지은이의 말’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주로 어떤 실마리를 제공했는지요?
보르헤스는 말 못하는 피라네시의 그림을 대신하여 발언하도록 구성했습니다. 보르헤스의 텍스트는 각 장의 내용을 형상적으로 요약하는 ‘미적 엠블렘’입니다. 나는 보르헤스가 피라네시의 작품을 보았거나 최소한 다른 저자들의 글을 통해 그를 잘 안다고 확신합니다. 보르헤스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피라네시의 감옥의 상상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죠. 작가나 사상가는 정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의 이름은 종종 생략하는 버릇이 있는 것 아시죠.
▶ 보르헤스의 《픽션들》, 《알렙》은 엄청난 상상력이 담긴 책들이죠. 1, 2권의 독자들이 《미학 오디세이 3》을 보면 보르헤스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예! 가능합니다. 아울러 저는 이 책의 서술 과정에서 보르헤스 텍스트의 바탕에 깔린 철학적 배경을 드러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이 작가에 대한 좀더 깊은 독해를 제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를 흔히 ‘탈근대의 선구’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 말의 의미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작업을 하는 가운데, 탈근대 미학의 다양한 논점을 다루는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 그의 텍스트를 인용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죠.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물먹이’는 디오게네스가 등장하는데요. 그가 등장하는 이유는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요.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전체 틀에서 세 사람의 역할을 조망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미학 오디세이 1권과 2권은 전체적으로 합리주의 철학의 틀 위에서 작업했어요. 때문에 합리주의 전통에 우뚝 서 있는 두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으로 미학사를 요약해야 했구요. 하지만 3권은 경우는 탈근대의 관점이라는 바탕이 있기에, 합리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을 위해 ‘디오게’(네스)가 등장한 것이죠. 오랫동안 합리주의적으로 서술되어온 철학사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디오게네스를 화자로 캐스팅했습니다.
▶ 근대의 관점에서 본 철학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기둥 위에 세워져 있지만, 탈근대의 관점에서 본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과 니체의 대립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디오게네스는 2,300년 먼저 태어난 ‘그리스의 니체’라고 할 수 있어요. 때문에 대화편에서는 디오게네스의 형상에 슬쩍 니체를 얹어놓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논쟁을 벌이게 만들었습니다.
▶ 이 시리즈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도 꽤 의미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형식면에서는 3성대위법을 썼습니다. 3개의 구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간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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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형식을 빌려서 국내 저자가 집필된 책은 읽어보질 못한 것 같습니다. 좀더 편하게 말해주신다면?
에셔·마그리트·피라네시, 대화(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서술이라는 세 가지가 각자 따로 가면서 특정 지점에서는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죠. 서로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미학’이라는 주제를 세 개로 나누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기본적인 서술, 이건 문어체이구요.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서는 ‘대화’를 등장시켰는데요. 저는 대화를 통해서 독자가 궁금해 하는 부분을 주요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라고 했는데요. 10년 전 이 책을 처음 집필할 때에는 무엇을 근거로 잡은 겁니까? 선생님이 직접 주변에 모니터를 한 것인가요?
아니요. 그건요. 내가 공부할 때 처음에는 몰랐다가, 시간이 지난 뒤 ‘아하!’하고 이해했던 내용들이 있었어요. 그런 내용들을 ‘대화’ 형식 속에 넣은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은 드러냈습니다.
▶ 쉽게 이해시키려 한 게 아니라, 공부하면서 스스로 체득한 앎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거였군요. 다시 말하면 친구들과의 우정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본문 속에 있는 에셔와 마그리트, 그리고 이번에 새로 소개한 피라네시의 그림들은 어떤 의도로 배치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듯한데요. 그러면 에셔와 마그리트, 피라네시 그림들의 배치도 형식 미학 이론이 있는 건가요?
에셔와 마그리트, 피라네시 그림은 ‘기술적 형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셈인데요.
▶ ‘기술적 형상’이라……?
세계에 대한 기술(그림)이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그림으로, 일종의 상징이나 알레고리처럼 사용한 것이죠. 에셔, 마그리트, 피라네시라는 독특한 화가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본문에서 서술되는 내용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 지금까지도 읽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데,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어떤 요소들이 주효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오랜 시간 독자와 할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와 구성에 있죠. 글쓰기는 우연히 인터넷 시대와 딱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저의 서술 자체가 문어와 구어의 중간 단계였던 것 같고, 아울러서 책 전체가 모자이크적인 구조잖아요. 선형적인(시간의 흐름) 텍스트에다가 공간적인 그림을 배치하고, 텍스트 자체도 상당히 시각적으로 서술했거든요. 텍스트를 봐도 형상이 잡히게끔 말이죠.
▶ 선생님은 미학 오디세이를 시작으로 해서 글쓰기가 시작되었고, 독자와의 소통이 이루어졌잖아요.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꽤 있을 듯한데, 이 책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황지우 선생이 어떤 말을 했다는데 제가 듣질 못했고. 그렇지! 무용에 사용되었다고 한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NOW무용단’이라는 현대무용을 하는 모임이 있는데요. 대본을 쓰고 안무한 손인영 씨라는 분이 《미학 오디세이》를 읽으면서 인터넷이란 코드 안에서 천 년 전의 처용을 부활시키고 싶었다고 했죠. 신라시대 처용 설화와 궁중정재인 처용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국창작무용 ‘아바타 처용’이라는 작품이었는데, 가상과 현실 세계를 융합, 신화 속의 잡귀들과 처용을 디지털 문화의 산물인 아바타와 연결시켰다고…….
▶ 그간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요. 스스로 미학적 삶을 기획하고 있는지요?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요?
저의 미래요.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계속 공부하는 것이고, 전업적인 작가로 나서서 저술하고 싶고, 또 생활의 여유가 더 생긴다면 인문교양서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미학연구서를 쓰고 싶습니다. 대중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만의 놀이도 하고 싶고 등등. 나의 생각들을 계속 밀고나가 사고의 극한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이건 독자들이나 제가 궁금해하는 것인데요. 작가나 저자들은 글을 쓰고 난 뒤, 마지막 탈고 과정을 거치잖아요. 바로 그때 선생님이 최종적으로 하는 마지막 과정은 무엇인가요?
저는 글을 쓸 때 ‘낭독’을 하구요. 마지막으로 정리해 놓고 또 ‘낭독’합니다. 그때 글이 ‘씹히는 곳’을 발견하죠. 소리 내어 읽어나가면 글의 리듬을 느낄 수 있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 글이 시적인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S.
진중권 선생은 자신의 글쓰기와 이진경 선생의 글쓰기를 가끔 비교한다. 이진경 선생의 글쓰기가 산문적 글쓰기라면, 자신의 글쓰기는 시적인 글쓰기라고 말이다.
--- 저자 인터뷰
리뷰
미디어 리뷰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쉽게 이해하기.. - 동아일보 ..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쉽게 이해하기
미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미학 오디세이’ 3부작의 완간편. 1, 2권이 근대의 합리성에 기반을 둔 미학의 세계를 다뤘다면 3권은 합리성에 대한 비판을 날개로 단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을 다루고 있다.
1권과 2권에서 각각 네덜란드의 현대 판화가 에스헤르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화가 마그리트의 그림세계를 내세웠던 저자가 이번엔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판화가인 피라네시(1720∼1778)를 부각시킨다. 18세기 낭만주의 작가를 포스트모던 미학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끌어낸 낯섦은 시공간을 뛰어넘은 저자의 통찰력에 대한 찬탄으로 바뀐다. 1, 2권에서 만담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적하는, 탈근대의 대변인으로 그리스 신화의 디오게네스를 끌어낸 익살도 즐겁다. 또 베냐민, 하이데거, 푸코, 들뢰즈 등 난해하기로 소문난 사상가들이 현대 미학 속에 녹여냈다.
동아일보 책의 향기 권재현 기자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현대 예술에 영감 준 피라네시.. - 한국일보 ..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스테디셀러인 『미학 오디세이』의 완결편이다. 앞서 나온 두 권이 근대 미학 중심이었다면 3편은 현대예술과 철학을 주로 다뤘다. 이야기는 이탈리아 건축가이며 화가인 피라네시(1720~1778)로 시작한다. 고대 로마의 유적을 담은 그의 동판들은 시적 환상과 묘한 분위기로 가득 차 낭만주의와 현대예술의 탄생을 예고한다.
빅토르 위고,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탈근대의 선구자인 보르헤스가 피라네시의 시각적 상상에 입을 빌려준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 연작의 문학적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대비해 ‘그리스의 니체’라는 디오게네스를 등장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의 글솜씨와 깨끗한 도판, 안정된 편집도 돋보인다. 휴머니스트 1만4,000원.
한국일보 책과세상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미학여행 탈근대에 닻 내리다.. - 한겨레신문..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미학 연구자 진중권(41)씨의 『미학 오디세이 3』이 나왔다. 10년 전 펴낸 『미학 오디세이1, 2』에 이은 이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앞서 나온 두 권이 근대 미학의 관점을 따라 서구 미학의 세계를 살폈다면, 셋째 권은 근대 미학을 전복하고 해체한 탈근대 미학을 살피고 있다.
이 책은 로버트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의 ‘3성 대위법’ 형식을 따르고 있다. 동일한 주제에 대한 3가지 변주로 책을 엮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현대 예술의 불확정적이고 자기모순적인 성격을 암시하는 18세기 이탈리아 판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파라네시의 판화 작품을 앞세우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디오게네스의 ‘대화’를 끼워넣는다. 여기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근대미학의 관점을 지니고 있다면, 지은이의 분신이라 할 디오게네스는 그들의 미학관을 부정하고 희롱하는 탈근대 미학의 관점을 보여준다. 이런 구조 속에 탈근대 미학을 사유한 베냐민·하이데거·아도르노 등의 독일 사상가, 푸코·데리다·들뢰즈·리오타르·보드리야르 등의 프랑스 사상가를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준다.
탈근대 미학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실마리가 잡힌다. ‘존재자’, 곧 사물의 ‘재현’이라는 근대 미학의 이상은 하이데거에 와서, ‘존재’, 곧 모든 존재자 속에 감추어지고 잊혀진 진리, 다시 말해, 사물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경이로운 체험의 바탕을 드러내는, ‘존재의 현시’라는 새로운 미학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이 존재체험의 어떤 절대적이고 유일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하이데거의 생각은 자크 데리다에 의해 ‘해체’되고 ‘최종적 진리’는 붕괴한다. 현대 예술은 이제 진리의 독점권을 포기한 원본 없는 복제물들, 곧 시뮐라크르의 놀이가 된다.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고명섭 기자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똑같은 것은 싫다! 예술은 끝없는 탈주.. - 조선일보 ..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이 혼돈의 시대에 예술은 더 이상 책장 안에 갇혀 있거나 미술관에 걸린 박제품이 아니다. 현실을 뒤집고 비틀었을 때 비로소 진실이 드러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익숙한 것을 거꾸로 던져 놓은 예술이 오히려 진실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가상 이미지가 실제를 대체하고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미지들 속에 숨은 진실의 언어를 찾는 힘은 ‘미학’ 훈련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고대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예술사가 빚어놓은 현란한 대형 벽화 속으로 들어가 마치 오디세우스처럼 떠돌아다녀 보는 것은 어떨까.
『미학 오디세이』가 10년 만에 3편으로 완간됐다. 94년 에셔의 이상야릇한 그림이 상징하는 ‘가상의 세계’를 화두로 ‘아름다움(美)’의 세계로 탐험을 떠났던 미학자 진중권은 구어체와 문어체를 적절히 넘나드는 글쓰기와 독특한 구성을 통해 전문성과 대중성을 아우른 교양서의 한 모범을 보여줬다. 대중적으로 쉽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이 책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를 표제로 삼은 2편까지 무려 50만부(!)가 큰 소리 내지 않고 팔리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1, 2권이 고전에서 시작해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까지 탐험했다면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을 떠나는 3권은 탈근대의 관점을 두루 살핀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체셔 고양이의 웃음과 모네의 ‘수련’, 영화 ‘장미의 이름’ 같은 익숙한 예술 작품들을 통해 예술과 현실의 경계와 인식 문제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미술 애호가’를 위한 그림읽기 입문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우리 눈에 익숙한 그림들과 너무도 친숙한 이야기의 ‘속내를 읽자’고 자극하는 지적 선동일 수도 있다. 정치와 경제 논리가 아닌 미학의 시점으로 볼 때 현실과 가상의 위험한 경계는 그 맨얼굴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이 권유하는 탈근대 미학으로의 항해는 현실 일탈이 아니라 현실 탐사가 된다.
이 책은 어느 부분을 펼쳐 읽든 그곳이 당분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탈근대적’ 구성으로 짜였다. 나는 글 머리를 먼저 읽고 마지막 부분인 ‘미디어의 미학:다시 가상과 현실’을 읽은 뒤 그 중간 부분은 무작위로 펼쳐 읽었다.
‘미디어의 미학’은 사실상 우리 시대 문화 전반의 상황과 배경을 집약하고 있다. ‘존재한다고 사실이 아니다. 일어난다고 사건이 아니다. 사실이 존재하려면 보도가 있어야 하고, 사건이 일어나려면 카메라에 복제되어야 한다. 미디어로 복제되지 않는 한 사실은 존재할 수 없고,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 사실과 사건을 있게 하는 것은 미디어다.’ 이 얼마나 적절한 지적인가. 선형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도대체 내가 지금 책에서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변죽만 울린다 싶으면 어느새 중심이 출몰한다. 중심인가 싶으면 무수한 갈래들로 흩어진다. 버성긴 갈래들의 숫자만 느는가 싶으면 다시 중심이다. 요컨대 이 책과 저자의 글쓰기 자체가 탈근대적 미학의 실천이며, 저자의 ‘너무 하릴없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않은’ 놀이터다. 이에 따라 독자들도 일종의 탈근대적 독서 체험을 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은 내용으로 첨부되는 게 아니라 형식 속에 침전되는 법”이다.
이 책은 상당 분량을 대화(對話) 형식으로 구성한다. 1, 2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길항 구도였다면 3권은 디오게네스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탈근대의 관점을 상징하는 디오게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말한다.
“현대 예술을 보게. 내용의 독재가 사라지고, 형과 색이 자율을 얻지 않았나?(디)” “무정부의 카오스 상태군요.(아)” “자네 눈에는 질서는 곧 위계질서로 보이나 보지?(디)” “그럼 다른 질서도 있나……?(아)” “게다가 ‘시학’에서 뭐라고 말했나? 전체 줄거리의 진행에 관계없는 삽화들은 빼라고 하지 않았나.(디)” “그래야 짜임새가 생기지요.(아)” “하지만 그게 사회의 구성원리라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인은 배제되어야 한다. ‘반동분자’ 혹은 ‘반국가분자’로…….(디)”
저자는 오래전에 탈근대 미학을 선취한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 등과 상대적으로 최근에 속하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 보드리야르 등을 불러낸다. 하지만 그런 인물을 해설하거나 단순 원용하는 건 저자의 관심 밖이다.
그들은 원본과 복제, 복제의 복제인 시뮬라크르, 가상과 현실 등의 문제를 심리하기 위해 소환된 참고인들이다. 그 심리의 시작은 이렇다. “하늘에서 해를 사라지게 해도 수천 수만의 복제된 해들이 세상을 도처에서 비춘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이름의 세상이다. 누군가 진리의 신, 태양신을 제 것으로 독점해도 그것을 우러를 것 없이 세상은 수없이 복제된 작은 진리들의 빛으로 별일 없이 돌아간다. 우리는 원본 없는 세상 위에 복제된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평소 궁금해하던 것 하나. 오늘날의 예술은 왜 이해하기 어렵게만 느껴지는 걸까? 저자는 “현대 예술이 추하고 추상적이며 고통스러운 까닭은 현대 사회가 추할 대로 추해졌으며, 인간 관계가 추상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현대 예술은 사회를 재현하지 않고도 사회의 고통을 미메시스(모방)한다. 우리가 현대 예술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곧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라는 것이다. 현대 예술은 대중이 공유하는 코드를 일부러 깨고 다양한 형식 실험을 통해 자기만의 코드를 만들어낸다. 왜 굳이 그렇게 하려 드는 걸까?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동일성의 폭력으로부터 자기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상투적 코드 안에 가두려는 문화산업의 추적을 피해 끝없이 탈주하고 혁신하는 게 현대 예술의 숙명이다.
저자는 학문 분야로서의 미학 안에 머무르기보다는 늘 그것의 바깥, 다분히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실천까지 포함하는 ‘존재 미학’을 염두에 둔다. 그 ‘존재 미학’은 저자 자신의 어떤 결의까지도 포함하는 듯하다. ‘관리되는 사회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탈주의 실천이다. 개별자의 고유성을 지우고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사회.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진리는 거기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단독자로 남는 것이다.’
조선일보 Books 표정훈 (출판평론가·조선일보 Books 서평위원) (2004년 3월 20일 토요일)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가.. - 문화일보 .. (2004년 3월 18일 목요일)
짝퉁을 볼 때마다 몇개의 분열된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짝퉁이 나쁜 거냐다. 저작권을 도용했다,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오리지널은 그 무엇이라는 절대적인 원형을 표절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다.
플라톤에 기대 말해보면, 현실의 삶이 이데아의 세계를 복사한 것인데 이 삶 전체가 표절 아니냔 거다. 결국 오리지널이란 것도 말하자면 먼저 특허등록하듯이 먼저 찜했을 뿐인데 값싸고 질 좋은 상품 선택하는 것이 우선인 우리같은 소비자야 짝퉁이면 어떠냐는 거다.
논리는 좀 더 나아갈 수 있다. 함부로 짝퉁을 비판할 순 없다. 거대한 시뮬라시옹(가상·유럽문명에 대한 거대한 허구로서) 그 자체랄 수 있는 미국이 만든, 모든 체제와 방법, 행동과 상품까지 닮으려하는 한국 또한 모든 점에서 시뮬라시옹이며 거대한 짝퉁이니…
적어도 그 짝퉁 자체인 우리로서는 짝퉁을 비난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가상과 현실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잘 들여다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냔 거다. 예술입문서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하는 이 책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면 바로 이런 지점,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통해 현단계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진중권씨는 알려진대로 미학자이자 사회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술가. 책은 부제로 18세기 이탈리아의 판화가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라고 붙이고 있지만, 정작 책에서 피라네시의 미의식과 판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은 ‘시뮬라크르(simulacre)’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저작 『의미의 논리』(한길사)에서 플라톤에 기대어 내놓았던 유명한 개념인 이 시뮬라크르는 현실과 허구, 가상과 현실의 상관관계를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현대철학의 주요개념이 되었다.
책은 이른바 시뮬라크르 해설서라 할 수 있다. 또 시뮬라크르라는 틀로 현실세계를 분석하고 있는 저자의 방식을 따라 현실문화분석서로 읽을 수도 있다. 만약 이 책이 ‘미학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책에서 다채롭게 인용되고 있는 다양한 도판과 미술작품 등이 분석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뮬라크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개념은 왜 의미있는가. 플라톤에 따르면 세상은 ‘원형(이데아)-복제(현실)-복제의 복제(시뮬라크르)’로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현실의 삶 자체가 불완전하게 나눠가진 복제물인데 이것 자체를 다시 불완전하게 복제한 것들이 시뮬라크르다. 우리가 영위하는 대부분의 삶은 ‘복제의 복제, 시뮬라크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영화 ‘매트릭스’. 비슷한 예로 ‘탄핵안 가결’현장을 우리가 TV를 통해 바라본 것도 실제로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TV에 의해 선택된 것만 복제해 보는 것, 그 이면에 있었던 수많은 협상과 결탁과 배신과 반전은 다 지워지고 오로지 우리는 그 ‘아수라장 같은 탄핵안 가결 현장과 이후의 참담해 하는 자들’만을 복제할 수 있었다. 이 ‘TV에 비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저자는 이미 이 책에서 먼저 말하고 있다.
‘일어난다고 사건이 아니다. 사건이 일어나려면 카메라에 복제되어야 한다. 미디어로 복제되지 않는 한 사실은 존재할 수 없고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 사실과 사건을 있게 하는 것은 미디어다… 이렇게 하나의 사실이 원본의 형태로보다 복제의 형태로 더 중요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는 복제가 현실을 베끼는 게 아니라 거꾸로 현실이 복제를 베끼는 사태가 벌어진다… 한마디로 카메라가 현실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현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연출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책은 10년 동안 스테디셀러가 된 전작 두편과 마찬가지로 저자 특유의 해박한 인용과 유려한 문체, 읽기 쉬운 구성, 무엇보다 당대에 무엇이 의미있고 흥미로운 것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는 저자의 감각에 힘입어 잘 읽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법 방대한 세권으로 구성된 『미학 오디세이』자체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또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미학’이란 말과 상관없이 알기 쉽게 설명한 서양철학해설서란 느낌도 있다. 친절한 강의와 요약, 인용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태도는 이미 알려진 내용을 다시 잘 설명해주는 것으로 임무를 정리한 계몽가같은 느낌도 있다.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다양한 인용과 해설인데, 이것은 다른 한편 이 책의 어디까지가 저자 고유의 사유이고, 어디까지가 인용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역할도 한다. 물론 해설서란 점에서, 이 책 전체는 기왕에 나와 있는 다양한 저작의 재해석이기 쉽다는 느낌도 준다. 이는 책의 부실한 각주와 참고문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그 스스로가 내놓은 시뮬라크르란 주제에 얹어보면 이 책 자체가 서양철학에 대한 긴 시뮬라크르로 보이기도 한다.
문화일보 북리뷰 배문성 기자 (2004년 3월 18일 목요일)
출판사 리뷰
1. 책의 세계에서 ‘미’와 ‘예술’의 세계를 창조한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2, 3” 10년 만에 완간
미학 오디세이 3권이 발간되었다. 1, 2권이 발행된 지 10년 만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2》는 94년 초판이 발행된 뒤 ‘독자와 함께 긴 시간을 여행’해왔다. 그리고 현재에도 그 여행은 세대를 바꿔가며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저자의 창조적인 글쓰기와 사유, 독특한 구성이 독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만의 미학’을 ‘우리들의 미학’으로 끌어올린 《미학 오디세이》. 지식문화계의 사람들, 사회문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긍정적인 평가, 무엇보다 독자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으며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그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이다.
미완의 오디세이로 남아 있던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는 현대 예술과 철학을 여행하는 3권이 발간됨으로 완결되었다. 《미학오디세이 1, 2, 3》는 독자들에게 ‘미’와 ‘예술’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선물한 귀중한 교양서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면서 꾸준하게 대학생과 일반인은 물론 중고생들에게까지 공감을 얻어온 이 책은 근육질의 기계 생산에서 이미지와 컨텐츠의 창조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특징을 통해 문화와 컨텐츠의 관계를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2. 창조적인 글쓰기의 핵심을 드러내다 ―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특징 1
초판이 출간 될 당시는 사회과학 서적이 세상 밖으로 막 나온 때였다. 지금 이야기하는 ‘대중 교양서’들이 처음 선보이기 시작한 시기다. 지식인들에게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미학은 생소한 학문이었고, 상아탑에서도 제대로 된 개론서나 미학사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원전, 번역서, 세미나를 위한 초벌 번역 등 온갖 자료들을 손에 닿는 대로 구해 읽어야 했다. 그러기에 미학 오디세이에 담긴 내용은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니다.
저자는 당시 한국에서 연구되고 있지 않은 미학 이론들을 스스로 섭렵할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공부해 이해해야만 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해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다시 되새김질하여 전체 내용을 서술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 자신의 미학 이론을 재구성한 것일까?
1) 기본 서술 형태:문어체와 구어체의 창조적 결합 → 논문식 글쓰기, 일문법적인 글쓰기, 자상하고 쉬운 글쓰기, 재미있는 글쓰기를 완전히 배격하고 생생하고 독창적인 글쓰기의 개척, 디지털 글쓰기와 유사
2) 논의 핵심 파악:서양미학사를 가상과 현실의 관계로 파악 → 관점과 핵심, 메시지를 제대로 살려내는 글쓰기
3) 이론의 다양함과 풍부함: 미학만이 아니라 예술사의 연구 성과, 심리학, 철학, 정신분석학, 정보이론, 기호학 등등의 제 학문의 방법론 등을 함께 다루면서 지식의 세계를 예술적 창조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매력을 선보임
3. 세 개의 구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간적으로 조화를 이루다 ―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특징 2
이 책의 구성은 3성 대위법이라는 독특한 형식 미학을 도입했다. 이 책이 10년 동안 변함없이 최장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리셀러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그 독특한 구성과 문체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문체를 구어에 가깝게, 도판을 활용해 시각성을 강조한 것, 대화라는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형식적 특성은 디지털 시대의 문화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대위법은 선형적인 글쓰기에 공간성을 부여하는 형식이고, 구어를 닮은 문체 역시 인터넷 글쓰기를 닮았으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혼용해 시각성을 강조하는 것 역시 청각적인 문자 문화에서 시각적인 영상으로 옮아가는 시대의 흐름과 일치한다. 3개의 구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간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 에셔(1권), 마그리트(2권), 피라네시(3권) 꼭지:기술적 형상 방식 도입→ 에셔, 마그리트, 피라네시라는 화가를 알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그림이 텍스트에서 서술되는 내용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2)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1, 2권), 디오게네스(3권) 대화 꼭지:독자들이 궁금해 할 내용을 포인트로 삼다. → 저자가 공부하면서 이해한 부분의 주요 내용들이다.
3) 본문 서술:문어체와 구어체의 중간, 디지털 글쓰기에 가깝다.
4. 《미학 오디세이 3》, 현대 미학의 세계를 담아내다
1994~2004년까지 우리에게 ‘미’와 ‘예술’의 세계상(像)을 눈뜨게 해준 ‘미학 오디세이.’ 그 마지막 종착이자 새로운 항해를 촉발하는 신간 《미학 오디세이 3》는 벤야민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 보드라야르의 개념과 사유, 그것을 작품으로 구현한 현대 미학의 세계‘들’을 피라네시, 디오게네스와 함께 탐험하는 책이다.
이번 최종판에는 탈근대의 미학을 소개하는 세번째 책을 더 한다. 여기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탈근대의 미학을 선취한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 등의 독일 사상가, 그리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료타르 등 최근에 탈근대의 관점에서 새로운 미학을 전개하고 있는 프랑스 사상가들을 소개하게 된다. 이로써 미학 오디세이는 내용적으로도 완결되는 셈이다. 삽입된 대화편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에 디오게네스가 끼어듦으로써 근대적의 합리주의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탈근대의 사유를 상징하게 된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본문 8쪽.
5. 월인천강지곡으로 시작하는 ‘탈근대의 미학’의 오디세이
‘1과 2’에서 ‘3’으로 오는 여행은 10년이나 걸렸다. 긴 오디세이였다. 10년 만에 완간되는 미학 오디세이 3권은 현대 예술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번에 발간된 《미학 오디세이 3》과 《미학 오디세이 1, 2》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2권에서는 주로 근대 미학의 틀 위에서 작업을 하며 근대와 탈근대를 가르는 경계선까지만 나아갔다고 할 수 있던 데 반해, 《미학 오디세이 3》에서는 그 선을 넘어 본격적으로 ‘탈근대’의 관점에서 최근의 미학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미학 오디세이 3》의 ‘글머리에’ 〈월인천강지곡〉에서부터 이 정신적 분위기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 달이 천강에 제 모습을 복제하는 것을 흉내내어, 해도 자기 자신을 천 개의 반달로 증식시킨다. 자, 그럼 이런 가정은 어떨까? 피터팬의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제멋대로 돌아다니듯이 해가 사라져도 그 반달모양으로 복제된 해들이 빛을 잃지 않고 저 홀로 힘으로 살아간다면? 그렇다면 하늘에 해가 있든 없든, 세상은 별 일 없이 잘 돌아갈 게다.
하늘에서 달을 지워도 복제를 복제한 천강의 달빛들이 세상을 은은하게 밝힌다. 하늘에서 해를 사라지게 해도 수천, 수만의 복제된 해들이 세상을 도처에서 비춘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이름의 세상이다. 누군가 진리의 신, 태양신을 제 것으로 독점해도, 그것을 우러를 것 없이 세상은 수없이 복제된 작은 진리들의 빛으로 별 일 없이 돌아간다. 우리는 원본 없는 세상 위에, 복제된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슨 뜻이냐고? 그 얘기로 들어가 보자.
― 글머리에 〈월인천강지곡〉 중에서, 본문 21쪽
6.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 《미학 오디세이 3》의 특징 1
1) 피라네시는 누구인가?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ranesi, 1720~1778)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판화가다. 그는 고대 그리스를 예술의 전범으로 삼던 시절에 고대 로마의 유적들을 동판에 담아 로마 건축의 위대함을 알게 해주었다. 시적 환상과 묘한 분위기로 가득 찬 그의 판화는 낭만주의의 탄생을 예고했고, 나아가 그 시대에 이미 예술적 ‘모던’을 예감하였다. 특히 현실에서는 결코 지어질 수 없는 상상의 건물은 에셔의 작품보다 200여년 앞서는 것으로, 당대는 물론이고 현대의 작가와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 18세기 예술가 파라네시가 어떻게 탈근대 미학과 연결되는 것인가?
바로크와 낭만주의는 고전주의 미학과 대립 속에서 자라난 대표적인 두 가지 사조라 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이 고전주의 예술 이상이 무너진 자리에서 자라났기에, 바로크와 낭만주의는 어떤 면에서 현대 예술의 선구라 할 수 있다. 피라네시는 바로크 시대에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선취한 작가이기에, 바로크 → 낭만주의 → 현대 예술로 이어지는 라인이 자연스레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과 철학은 좀 그 층위가 다르다 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예술에서 모던이었던 것이 철학에서는 포스트모던으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피라네시는 자연스레 탈근대의 미학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왜 하필 감옥이었을까? 왜 하필 감옥의 공상이었을까? 피라네시가 별 이유없이 2차원 평면과 3차원 공간의 차이를 이용해 착시의 유희를 즐기려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 저 그림은 너무 무겁다. 분위기가 에셔의 것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앞으로 다가올 세계의 영상이 그에게 불쑥 나타났던 것일까? 아마도 그는 저 환상이 곧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고 말하려고 한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저 감옥은 환상적으로 실재적이다.
피라네시를 보는 순간, 우리는 저 환상에 감옥에 갇힌 수인이 된다. 수인은 누구나 탈옥을 꿈꾼다. 갑자기 감옥에 갇힌 우리 역시 저 어둡고 음침한 건물을 벗어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저 복잡한 계단을 따라가면 혹시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저 감옥은 간수의 눈과 벽돌의 두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까. 우리를 가두는 것은 건물의 재료가 아니라 구조다. 어떤 구조?
―〈피라네시의 세계 4 ― 탈옥〉 중에서, 본문 158~159쪽.
7. 빅톨 위고,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가 파라네시의 영향을 받았다
피라네시는 에셔나 마그리트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예술가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나 예술가들이 다수 있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19세기에 《아편 중독자의 고백》으로 알려진 영국의 작가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 1785~1859)가 먼저 피라네시에 주목했다. 프랑스에서는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톨 위고의 살롱에 모여든 낭만주의자들 사이에 ‘피라네시 숭배’가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빅톨 위고는 피라네시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명시적인 언급은 없지만 보들레르의 〈파리의 꿈〉에도 피라네시의 영향이 나타난다.
피라네시의 영향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피라네시의 감옥의 현대적 버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작가 마게리트 유스나르도 피라네시에 사로잡힌 사람 중의 하나다.
피라네시의 상상을 문학적으로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람은 역시 보르헤스다. 특히 《바벨의 도서관》, 《죽지 않는 사람들》 등 그의 소설의 환상은 피라네시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피라네시의 영향은 보르헤스를 거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에까지 확장된다.
구소련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 역시 피라네시에 열광했다. 〈파업〉과 〈전함 포템킨〉의 공간 설정은 의식적으로 피라네시의 감옥의 구조를 영화 속에 실현한 것이다.
8. 말 못하는 피라네시의 그림, 보르헤스가 말하다 ―《미학 오디세이 3》의 특징 2
《미학 오디세이 3》에는 보르헤스의 상상력과 사유가 곳곳에 등장한다. 지은이의 말에서도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진중권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했을까?
보르헤스는 말 못하는 피라네시의 그림을 대신하여 발언한다. 보르헤스의 텍스트는 각각의 장의 내용을 형상적으로 요약하는 ‘미적 엠블렘(상징)’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은 보르헤스가 피라네시의 작품을 보았거나 최소한 다른 저자들의 글을 통해 그를 잘 안다고 확신한다. 보르헤스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피라네시의 감옥의 상상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가 피라네시에 대해 언급을 안 하는 것은 보들레르가 피라네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징후적이다. 작가나 사상가는 정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의 이름은 종종 생략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 텍스트의 바탕에 깔린 철학적 배경을 드러내면, 그것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이 작가에 대한 좀 더 깊은 독해를 제시할 수 있다. 보르헤스를 흔히 ‘탈근대의 선구’라고 하는데, 《미학 오디세이 3》을 읽으면 그 말의 의미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중권은 실제로 집필을 준비하는 가운데, “탈근대 미학의 여러 논점을 다루는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 그의 텍스트를 인용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나 역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10년 전에 새로 쓸 책을 위해 상상의 도서관을 지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이미 그 누군가가 나에 앞서 그 도서관을 지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바벨의 도서관〉의 도서관을 지은 보르헤스. 피라네시의 시각적 상상에 입을 빌려주는 것은 시각을 잃은 이 도서관의 작가다. 그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어쩌면 피라네시의 감옥의 문학적 표현일지도 모른다. 보르헤스를 흔히 ‘탈근대’의 선구자라 부르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탈근대의 사상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 ‘미적 엠블렘’을 제공해 주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 b>9. 그리스의 니체, 디오게네스의 등장 -《미학 오디세이 3》의 특징 3
1, 2권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하여, 진중권 스스로 어렵게 이해한 부분을 ‘대화’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가 궁금해 하는 내용의 포인트’로 삼았다. 신간 《미학 오디세이 3》에서는 ‘그리스의 니체’ 디오게네스가 등장한다. 총 7꼭지의 대화편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가 등장해 ‘탈근대의 관점’이라는 개념에 도달하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디오게네스의 역할은?
《미학 오디세이》 1권과 2권은 전체적으로 합리주의 철학의 틀 위에서 씌어졌다. 때문에 합리주의의 전통에 서 있는 두 철학자,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으로 미학사를 요약해야 했다. 하지만 3권의 바탕을 이루는 탈근대의 관점은 합리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등장한 것이기에, 오랫동안 합리주의적으로 서술되어온 철학사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디오게네스를 화자로 캐스팅해야 했다. 근대의 관점에서 본 철학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기둥 위에 세워져 있지만, 탈근대의 관점에서 본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과 니체의 대립으로 이루어진다. 디오게네스는 2,300년 먼저 태어난 ‘그리스의 니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대화편에서는 디오게네스의 형상에 슬쩍 니체를 얹어놓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논쟁을 벌이게 만들었다.
디오게 : 재미있군. 그럼 우리가 아는 원작과 복제의 관계가 뒤집혀진 건가?
플라톤 : 그렇지. 자네는 중요한 것은 이미 있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의 현시라 했나?
디오게 : 그랬지.
플라톤 : 근데 ‘아직 없는 것의 현시’라는 게 혹시 ‘이미 있는 것의 조작’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디오게 : ……
플라톤 : 그래서 우리는 ‘진리’에 대한 물음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네. 진짜와 가짜, 가상과 실재, 허구와 실재 사이에 엄연히 차이가 있는 한……
디오게 :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도 알겠지만 어디 그 구별이 쉽겠는가?
플라톤 : 어렵다고 포기해야 하나?
디오게 : 그 어려움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극복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플라톤 : 무슨 얘기인가?
디오게 :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기준 자체가 가상적이고, 허구와 실재를 가르는 기준 자체가 허구적이라는 얘길쎄.
플라톤 : 좀더 자세히 말해 보게.
디오게 : 예를 들어 자네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위해 철학과 신화를 구별하려고 했지?
플라톤 : 그랬지.
디오게 : 그럼 그 구별 자체가 신화적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플라톤 : 아니?
디오게 : 생각해 보게. 자네 말에 따르면 저 천상의 이데아가 진정한 실재이고, 이 땅의 현실은 가상에 불과하지 않나.
플라톤 : 그렇지.
디오게 : 그게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자네의 구별법이지. 그런데 그 황당한 얘기를 오늘날 누가 믿겠나? 그런 의미에서 신화와 철학을 가르는 자네의 구별은 또한 얼마나 신화적인가?
플라톤 : ……
디오게 : 원형의 폐허? 주기적으로 불타고 새로 생성되는 사원. 어쩌면 그것이 우주의 모습인지도 모르지.
플라톤 : 동일자의 영겁회귀?
디오게 : 혹시 자신이 꿈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았나?
플라톤 : 철학자는 꿈을 깨우는 사람이지, 꿈을 꾸는 자가 아니라네.
디오게 : 하지만 어차피 자네와 나도 꿈이 아닌가? 우리의 시각적 형상은 라파엘로의 꿈이고, 우리의 만남은 이 책을 쓰는 자의 꿈이 아닌가.
플라톤 : 그렇다면 그 녀석도 또한 그 누군가의 꿈일지 모르지.
디오게 : 그럴 수도 있겠지.
플라톤 : 그럼 내 말이 맞지 않나. 우리가 눈에 보는 현실은 한갓 가상에 불과하다.
디오게 : 그렇게 되나?
플라톤 : 그게 삶이지. 언젠가는 참된 세계에서 깨어나기를 꿈꾸며 사는 것...
디오게 : 하지만 그 세계도 또 다른 꿈일 터. 그냥 거대한 우주의 바퀴를 굴리며 꿈 속에서 함께 놀지 않으려나? 영.원.히....
10. “미학 오디세이 1, 2, 3”은 대중 교양서의 전범이다 ― 《미학 오디세이 1, 2, 3》 완간의 의의
《미학 오디세이 1, 2》는 10년 전에 씌어진 책이지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리고 이번에 발간된 《미학 오디세이 3》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 완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학 오디세이 3》의 발행과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완간은 대중 교양서 출간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교양서 글쓰기의 혁신적 모델은 물론, 구성과 편집에서도 근본적인 차이와 혁신적 선도의 의미를 지닌다. 이 시리즈 전체의 체제와 구성은 비단 장과 꼭지만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까지 내용과 형식이 연관될 정도로 스케일과 짜임새가 있고, 글과 사진 사이의 관계 역시 놀라울 정도로 결합과 독립, 조화와 개성이 뚜렷하다. 즉 이 책은 ‘내용’과 ‘구성’ 두 까지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전체 구성 부분은 언급했지만, 각 꼭지의 소제목이 하나의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의 책 100선’에 이 책이 손꼽힌 것은 바로 이러한 의의나 가치가 인정되었던 것 같다.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는 그 자체가 미학이자 예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의 독자들이다. 독자들이 미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던가? 90년대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초·중·고·대학이라는 16년 동안 미학이라는 학문을 접해본 적이 있던가? 그러나 1994년부터 지금까지 50만 이상의 독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미학 오디세이》에 열광했고 읽은 이들이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 왔다.
추천평
2004년 3월, 한국의 출판계에서 책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부류는 10년 전보다 다양해졌다. 저자, 평론가, 편집자, 수많은 서평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다양한 매체에 자신의 독서 체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수많은 독자들을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미학 오디세이 1,2,3》에 대한 가치는 완결개정판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 그 어떤 책보다 독자들 스스로가 가장 정확한 가치를 부여해왔다. 94년 초판 발행 이후 2년 동안 《미학 오디세이》라는 전혀 대중적이지 못한 제목에 비추어 볼 때, 광고와 서평 하나 한 번 없이 15만부라는 기록적인 독자동원력을 보여주었고 8년 동안 최소 연간 5만부가 팔려 서점가에서 놀라운 베스트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으며, 중고생에서 대학생, 교사, 교수, 직장인과 남녀 구분없이 ‘있는 지조차 몰랐던 미학의 세계에 빠져 들었고 이 책을 읽고 미학과에 진학했다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인문학의 위기와 출판계의 불황을 이야기하는 오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해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철학과 미학 분야의 책으로는 오늘 우리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되 너무 무거운 느낌을 주지 않는 책, 그리고 요즘 시대의 젊은 학자들이 쓴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권한다”
---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
“창조적인 글쓰기와 현대 미학에 관심이 많다면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1·2권,휴머니스트)부터 잡는 게 무난하겠다. 가상과 현실이라는 키워드로 미학사를 다루고,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을 바탕으로 예술가의 미학, 작품 미학 등을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한다.”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들
지난 12년 동안 400종이 넘는 책을 발간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작가들 중 나는 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김정환과 진중권은 편집자의 눈으로 볼 때 가히 천재적이다. 오로지 출판과 독서의 영역에서 보면 김정환이 자신의 세계에서 천재적 감각을 발휘하는 ‘비운의 천재’이자 ‘고전적인 천재’라면 진중권은 책의 영역에서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를 동시에 즐길 줄 아는, 그래서 목말라 하는 대중들에게 지식과 예술의 세계가 지니는 매력에 빠져들게 할 줄 아는, 소통할 줄 아는 ‘즐거운 천재’이자 ‘현대적인 천재’이다. 《미학 오디세이 1,2,3》는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그 천재성을 발휘하며 경이로운 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 휴머니스트 발행인 김학원
진중권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로, 누구든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피아를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독설을 퍼붓는 인터넷 논객의 얼굴이다. 다른 하나는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로 미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미학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길을 연 미학 연구자의 얼굴이다. 실제 그의 최고 작품은 《미학 오디세이》다.
--- 뉴스위크 한국판 기사 중에서
진중권이라는 유쾌한 미학자 덕분에 앎의 즐거움과 새로움을 발견했다.
― bsj31707
대학면접이나 교수들과의 이야기나 토론에서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 책이다. ― [ㅋㅋㅋㅋ]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멋진 책이다. ― 느림보
미술사와 미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배가시키고 흥미 있게 접근할 있도록 해주는 책. ― choi
--- 인터넷 서점 Yes24의 독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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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
개인적으론 미학자 진중권 보다는 진보 논객 진중권을 더 좋아한다. 40줄이 넘은 나이, 철학자, 서울대 출신, 우리나라의 대표적 논객이란 관념들만으론 그를 이해할 순 없다. 이건 마치 이 책에도 나와 있는 형과 색을 파괴하는 탈근대적인 회화에서 느껴지는 숭고함이라고 할까? 아무튼 어떤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본문 내용 보다는 구성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재치와 능력을 이야기 하고 싶다. 보드리야르, 푸코, 벤야민, 보르헤스,들뢰 등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사상을 미학의 관점에서 풀어쓰고 있다. 미학이란 분야내에서 찰학자들을 이야기 하다보니 철학자들의 생각의 국소적인 부분만 설명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고 있다면 걱정 하지말라. 내가 본 어떤 책보다 재치있고 이해하기 쉽게 그들의 사상을 포괄적인 범위에서 설명해 준다.
책의 구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있다. 예술작품과 내용, 거기에다가 이번 3편에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디오게네스 까지 끌어드려 쉽지 않은 부분을 친절하고 재기발랄하게 설명해준다.
본문을 살포시 이야기 하자면 작가는 현대미술을 료타르의 설명에 근거하여 숭고함을 나타내려 한다고 말해주고, 이외에 또 다른 한 축으로 시뮬라크르(복제의 복제, 원본보다 더 실재 같은 복제)를 말한다. "우리시대에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이 가장 적격일 것이다. 예술의 의미를 초월해 사회 전반에 잠재해 있는 비물질적 에너지도 느낄 수 있을것이다. [2004-04-08]
안녕하세요.
첫댓글 매우 전문적인 책이라 생각됩니다. 존경스럽군요. 이원휘님의 독서 범위와 의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