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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교회/낮-20180415
나를 보내소서
사6:1-13
나이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여러분도 나이를 이렇게 한 번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달력의 나이. 호적의 나이. 내 나이가 몇 살이냐?
두 번째는 생물학적 나이인데. 이것을 건강의 나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강으로 하면 내가 몇 살 쯤 되겠다. 세 번째는 정신적인 나이. 달력의 나이. 호적의 나이보다 정신적인 나이가 적으면 철이 없다 그러고, 반대로 이면 애늙은이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사회적인 나이. 사회적인 나이. 예를 들어서 누가 군대에 갔다. 그러면 대략 스물 한두 살 정도는 됐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사회적인 나이는 초등학교를 스무살에 들어갔다. 그러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다섯 번째는 자각의 나이.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이. 내 나이가 어느 정도 될 것이다. 달력의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면 젊은 것이고, 많다고 생각하면 늙은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영적인 나이. 모든 나이보다 영적인 나이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철이 들어야 되고, 또 영적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새롭고, 건강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합당한 성도가 꼭 되시를 축원합니다.
성 어거스틴(1396-1430년/Aurelius Augustinus). 우리가 많이 들었던 사람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천사를 마귀로 돌변하게 한 것은 교만이었다. 반면 사람을 천사로 만드는 것은 겸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하면 마귀가 되고, 겸손하면 천사가 될 수 있다.’ 그런 얘깁니다.
종종 보면 평생 동안 신앙생활 잘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가퍅해지고, 교만해 지는. 그런 안타까운 경우도 보게 되고, 평소에 신앙생활 잘 하다가. ‘뭐 은혜 받았다. 성령 받았다. 은사를 받았다. 또 교회에 큰 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 교만해지는. ‘어. 저분이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 종종 놀라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하지 않도록. 겸손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노력을 해야 돼요. 정말 목숨 걸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겸손을 잘 지킬 수 있도록. 겸손해야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화려하고, 잘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겸손한. 그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사야.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고, 죄사함 받고, 은혜 받고 겸손해서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거.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유능하고 대단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너는 아니다. 너는 내 마음에 합당치 않다.’ 하나님이 버리고 포기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처럼 어렵고 힘들고 비극적인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려운 때에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처럼 이 시대에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를 보내소서. 첫 번째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본문 3절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천군천사. 특별히 스랍. 스랍. 그랬습니다. 천사. 불꽃같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리고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그랬습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말과 ‘영광’이라고 하는 말은. 이건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거룩할 수도 없고, 또 우리는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스랍들. 천사가 여섯 날개가 있다고 그랬어요.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또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우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 더럽고 추하기 때문에.
그리고 두 날개로는 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으로 명령하시든지 직접 가서 그 일을 신속하게 잘 감당하겠다. 그래서 하나님 주위에는 천군천사.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보게 되면 저 사람은 얼굴이나 경제면으로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아주 밝고 명랑하고 행복하고 여유가 있고, 또 자신감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알고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기 때문에 점잖케. 흔들리지 않고, 정말로 시온 산처럼 늘 그 자리에서 평생 동안 신앙생활 잘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명불허전. 그러잖아요. 명불허전. 유명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 얘기잖아요.
식당이나. 교회나. 사람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왜 사람들이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가고. 유명한 곳을 찾아갈까? 왜 그럴까?’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세상적인 거. 인간적인 것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자기의 길을 갈 수 있고, 언제든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품위 있게 신앙생활을 잘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볼 때 ‘아. 저 사람은 다르다.’ 그런 느낌을 많이 갖잖아요? ‘저럴 때 저렇게 처신한다는 것은 힘든데. 다르다. 뭔가 다르다.’ 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얘기지만.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 처녀가 시집갈 때는 신랑으로부터 소 한 마리를 받는다고 그러잖아요? 보통 소 한 마리를 받아요.
근데 우리가 생각할 때 뭐 대단하지도 않다라고 생각했는데 한 처녀가 결혼하는데 소 몇 마리를 받았느냐 하면 열 마리를 받았어요. 열 마리.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무슨 복이 있어서 소 열 마리를 받았는가?’
근데 열 마리를 받은 처녀는 그 때부터 달라졌어요. 자신감도 있고, 능력도 있고, 열심도 있고. ‘나는 다르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 생각하더니. 몇 년이 있다 보니까 정말 달라졌어요.
얼굴도 더 예뻐지고, 건강해지고, 외국어도 몇 개씩 하고, ‘나는 다르다.’ 이 생각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가져오고 있는 거에요.
과거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가 오늘 우리의 모습이고, 지금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가 미래에 우리의 모습이 달라지는 겁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고, 하나님 영광 돌리며 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몇 년 있다보면 그렇게 바꿔져 있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르다. 하나님을 못 만난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꼭 알아야 됩니다.
인도의 어떤 불경학자가. 불경을 연구하는 불경학자가 ‘어느 날 이 기독교를 가만 둬서는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기독교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기독교 성경을 연구해 가지고. 점잖은 말로 기독교를. 점잖은 말로 하겠습니다. ‘박살을 내야 되겠다.’ 또 점잖은 말로 하겠습니다. ‘기독교를 끝장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13년 동안을 연구했어요. 그냥 밥 먹고 성경만 13년 동안 연구했어요. 그 불경학자가 13년을 연구한 끝에 그가 한 얘기가 있어요. ‘성경은 희망의 창문이다.’
‘성경은 희망의 창문이다.’ 성경에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성경에. 낙심한 사람. 상처가 있는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위로와 격려가 있고.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살려고 하는 의지가 생기게 되고,
교만했던 사람이 성경을 읽게 되면 겸손해 지고, 미워하던 사람이 성경을 읽게 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고, 게으르고 나태했던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부지런해지고 열심히 있게 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뀌더라.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성경을 읽을 때 거기에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다. 온 인류.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은 희망이다. 그래서 성경은 희망의 창문이다. 그런 아주 엄청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 전 영국 런던의 한 신문편집을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 대학교수, 사업가, 작가 등 안 믿는 사람들 한 백 명을 조사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3년간 밀폐된 공간에, 혼자 있어야 할 공간에 3년 동안 당신이 있게 된다면 당신이 꼭 가지고 갈 3권의 책을 고르라?"
딱 3권을 책만 골라라. 했을 때 그 중에 98%가 첫 번째의 책으로 성경을 선택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인데. 그래서 어떻게 성경을 선택했느냐? 했더니.
그들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나 소외당했을 때 성경이 용기와 위로를 주는 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영의 양식'이며 '생명의 떡'이요 '진리의 보석'입니다.” 그런 얘기를 했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받았고, 또 오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교회에 왔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더 깊이 만나야 됩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서, 또 기도를 통해서, 찬송을 통해서, 또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봉사를 하면서. 다양한 순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배 속에서. 봉사 속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 늘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그래서 ‘하나님 나를 보내소서. 내가 주의 일 감당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과 기쁨으로 주의 일 잘 감당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7절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 세상에 나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만큼 깨끗하고 정직하고, 온전한 사람은 없다. 내가 제일 하나님을 잘 섬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좀 무시하고, 정죄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의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까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경건하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내가 문제였고, 더러운 것은 내가 더러웠어요.
그래서 이사야가 고백하기를 ‘내 입술이 부정합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랬어요. ‘내 입술이 부정하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 그랬습니다.
입술이라고 하는 것은 얼굴이고, 입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몸이고, 입술이라고 하는 것은 삶 전체. 입술이라고 하는 것은 내 인생 전체.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을 ‘입술’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렇게 고백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나만큼 큰 죄인은 없습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라고 했을 때 스랍.
천사 가운데 한 천사가 그의 입에다가 ‘핀 숯’을 갖다 댔습니다. 뻘겋게 단 숯. 뜨거운 시뻘겋게 핀 숯. 그것을 천사가 화젖가락을 가지고 이사야 입에다 갖다 댔습니다.
그러면서 천사가 얘기합니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핀 숯을 입에 대는 순간에 네 악과 죄가 용서받았다. 이제 너는 죄인인 아니다. 너는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런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핀 숯’. 뜨거운 시뻘건 숯. 이 숯이라고 하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온전한 속죄 행위로 인한 죄 사함.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붉은 피.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 보배로운 붉은 피를 상징하는. 모형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네 악과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 스랍. 천사가 선포하게 되었던 겁니다.
이 세상에 행복한 일이 많이 있지요. 건강해도 행복하고, 자녀들이 잘 돼도 행복하고, 돈을 벌어도 행복하고, 일이 잘 돼도 행복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행복은 ‘죄 사함 받았을 때. 죄 용서 받았을 때.’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행복이고, 영원한 행복인 줄 믿습니다.
동양에 내려오는 이야깁니다. 세 사람이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힘들고 어렵고. 그렇습니다. 근데 한 나그네를 만났는데. 나그네가 여행을 하고 있는 이 세 사람에게 얘기합니다.
“당신들이 한 참을 가다보면 시냇물. 개울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막에 개울가는 얼마나 귀합니까?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개울가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 개울에 수많은 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원하는 만큼 돌을 가지고 가십시오. 되도록 그 돌멩이들을 많이 가지고 가면 좋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다가 보면 그 돌멩이들 때문에 놀라는 일이 있을 것이고, 너무 놀라고 기쁜 일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아주 애석하고 후회되고 안타까운 일이 그 돌로 인해서 있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이 세 사람은. 말을 타고 여행하는 이 세 사람은 그 나그네의 말을 그렇게 깊이 새겨 듣지를 안했습니다. 그저 귀뚱으로만 듣고 말았습니다. 근데 어느 정도 가다보니까 진짜 시내 개울이 나타났어요.
‘야. 이 사막에 시내라니 너무너무 좋다.’ 그래서 얼굴도. 발도. 몸도 씻었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거기에는 자갈들이 많이 있습니다. 돌멩이들이 많이 있어요.
생각이 났습니다. ‘그 돌멩이들을 주워가라.’ 했다. 내 몸 유지하기도 어려운데. 내 몸 끌고 가기도 어려운데 왜 돌멩이를 가지고 가야 되는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돌멩이 몇 개만 가지고 가자.
그래서 몇 개 주워가지고 주머니에 넣고,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그 돌멩이를 꺼내 봤어요. 깜짝 놀랬어요. 그 돌멩이가 뭐가 됐나하면 금은보화가 되었고, 다이아몬드, 루비, 에머랄드, 기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찬란한 영롱한 보석으로 다 바뀌어져 있었어요.
세 사람이 다 주머니에서 꺼내보니까 다 바뀌어져 있었어요.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이 돌멩이가 이런 보석이 되다니. 나에게도 그렇게 꿈꾸게 되던 보석을 내가 갖게 되다니. 야. 이제 내 인생 바뀌었고, 내 팔자 바뀌었다. 행복하다.’ 그러면서 막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환호성을 지르다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었나하면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돌멩이. 개울가에 있는 돌멩이 다 가지고 올걸. 다 가지고 올걸. 힘들고 어려워도.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개울가에 있는 돌멩이 다 가지고 올걸.’ 그러면서 애석하게 생각하고, 후회를 했다. 그런 이야깁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야. 내가 정말 믿기를 잘 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보배로운 피로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리라. 야. 이 믿음이 현실화 됐구나.’
‘내가 수많은 인생길, 여정을 걸어왔는데 이제 여기에 도착했구나. 내 인생 마감하고 천국에 왔구나. 야. 너무 좋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하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애석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내가 기도하고 봉사하고 충성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금 면류관,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황금 면류관, 시들지 않는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이렇게 찬란한 면류관을 다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행복하지만 애석한 마음도 있다 하는 얘깁니다.
사도 바울이 얘기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그랬습니다. 비교가 안 된다는 얘깁니다.
고생할 때는 그것이 전부인 것 같고. 나만 힘들고, 억울하고, 이렇게까지 힘들고 억울한데 내가 교회 다녀야 되고, 봉사해야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이 고난은 장차 받게 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교할 거리가 안 된다. 그런 얘깁니다.
핀 숯. 빨갛게 달아오는 숯. 그 숯이 입에 닿았을 때 악과 죄가 사하여졌다. 앞에 얘기했던 빨갛게 단 숯. 핀 숯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죄 없이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그 핀 숯 자체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죄 사함의 도구일 뿐입니다. 뭐 숯불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게 아네요. 하나님이 사용하셨기 때문에 거기에 능력이 나타나게 된 것이고, 죄 사함의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배로운 피. 그 피를 믿을 때 우리가 죄 사함 받게 되고, 구원과 영생을 얻는 줄 믿습니다. 죄 사함의 감격을 가지고, 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사야처럼 ‘나를 보내소서.’ 고백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당시 세상으로 간다는 얘기는 고생하는 거. 고행 길. 매맞고 능욕 받는 십자가의 길. 그것은 바로 죽음의 길입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는 은혜 받았습니다. 나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은혜 받았습니다. 죄 사함 받았습니다.
이제는 나의 남은 생애. 내가 몇 년을 더 살지. 몇 달을 더 살지 알 수 없지만 나의 남은 생애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 가장 기쁘고, 가치 있고. 영원한 축복의 생애인 줄 믿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나의 남은 생애를 주님을 위해서 드리겠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죽는다할지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는다할지라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쓰임을 받는 거. 그것은 가장 거룩한 낭비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나를 써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를 써 주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가 그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명자는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내 생명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드리겠다.’ 사명을 위해서. 우리 대부분은 생명을 위해서 삽니다. 생명을 위해서 다 버립니다. 사명도 버리고, 교회도 버리고, 다 버려요.
그러나 정말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사명을 위해서 내 생명을 하나님 위해서 드립니다. 바로 이사야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프랑크 포트의 갑부 상인인 "로스차일드"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미국에 회사를 차릴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 자기 회사를 차려서 한 사람에게 그 회사를 맡겨야 되겠다.
로스차일드라고 하는 사람은 대단한 부자입니다. 내가 이 회사로 미국을 정복할 것이다. 돈 많이 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자기 회사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 가운데 세 명을 뽑았어요. 유능한 사람. ‘누구를 보낼까?’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을 사장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놓고 면접을 합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 얘기합니다. “내가 당신을 미국에 보내고 싶다. 언제 가겠느냐? 당신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언제 미국으로 떠나겠느냐?”
첫 번째 사람이 얘기합니다. “한 열흘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열흘 후에는 내가 모든 것 다 정리하고 떠나겠습니다.”
두 번째 사람을 면접했습니다. “언제 미국으로 떠나겠느냐?” “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삼 일만 시간을 주시면 모든 것 정리하고 미국으로 가서 일을 잘 하겠습니다.”
세 번째 사람을 불렀습니다. “정리할 시간은 얼마면 되겠느냐?” 그 사람이 얘기합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이 귀한 일. 나에게 맡겨 주신다면 지금. 바로. 당장 가서 그 일 잘 하겠습니다. 사장님. 원하는 만큼 그 일 잘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면접 봤는데 누가 갔을 것 같습니까? 예. 세 번째 사람. 지금, 바로, 즉시 가겠습니다. 그 사람을 사장이 미국에 사장으로 보냈고, 그 사람이 가서 사업을 잘 해서 큰 부자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줄리어서 메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즉시 출발하는 겁니다. 바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머뭇머뭇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뭇머뭇하다보면 순수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머뭇머뭇하다보면 사람들이 개입을 합니다. 머뭇머뭇하다보면 사탄이 개입을 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흐려버립니다. 그래서 못가는 경우가 있고, 온전해지지 못하는. 그런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은 즉각적으로 순종했어요.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그 일을 아멘으로 순종하는 거.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아들을 바치라.’ 누가 아들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백 세에 얻은 아들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즉시 드렸어요. 아브라함의 순종. 나아만의 순종. 그리고 수많은 성도들.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100미터 달리는 사람이 0.00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수고합니까? 하나님 일 하는데 우리는 조금도 지체하지 말아야 됩니다. 기도하고, 섬기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에 지체하지 말고,
우리가 즉각적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순종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복을 주셨다하는 그 은혜를 반드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기초단체장 선거가 있습니다. 서로 나를 뽑아달라고 열심히 섬기고 일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뽑아주면 갑질이나 하고, 부정과 비리는 전부 다 저지르고, 그러고도 당당하게 관례라 그러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작 힘들고 어려운 일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험한 세상, 힘든 세상 누가 하나님 일을 하겠느냐? 복음 전하겠느냐? 신청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세상 일. 국회의원, 도지사. 대통령.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하나님 일.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하나님 만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야 됩니다. 누구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핀 숯.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피. 그 피를 믿는 사람만이 죄 사함의 감격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보내소서.’ 이 어려운 때에 이사야처럼 존귀하게 쓰임받는 제2의, 제 3의 이사야. 복음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은혜와 축복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고, 마음에 결단을 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실 때 이사야처럼 ‘나를 보내소서.’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고,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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