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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진출이 꿈인 일본
* 여행 팁
위치 : 동북아시아 시차 : 0시간차
수도 : 도쿄 언어 : 일본어
인구 : 127,078,679명 (2010), 10위 전체 순위
면적 : 377,915㎢, 62위 전체 순위
기후 : 아한대다우기후, 온대다우기후
종교 : 신도 49%, 불교 45%, 그리스도교
종족 : 몽골족 99%, 기타 1%
정체 : 입헌군주제 의회형태 ; 양원제
국가원수 : 국왕 정부수반 : 총리
일본은 10,11세기경에 영주들의 장원체계가 자리잡아갔다. 장원의 영주이기도 했던 사찰과 신사가 독자적 무력을 기르면서 무사단이 형성되고 분쟁의 무력 해결을 가속화했다.
12세기 말 정권을 잡은 쇼군가(家)의 내부 문제로 분쟁이 일자, 외부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1592년과 1597년 2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공했다. 왜란으로 일본의 학문과 산업이 부흥했고, 왜란 중에 힘을 기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0년 일본을 통일했다.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은 부국강병을 달성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으로써 6년간 미군의 점령 아래 놓였다. 그러다가 일본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수(特需)와 미군의 원조 및 민간자본을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일본은 우리와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면서도 역사적, 정치적 거리감을 지우지 못하는 나라이지만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와는 언제나 경쟁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항상 우리보다는 앞서 가고 있어서 우리는 일본의 현실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로 향한 발걸음의 시작(1980년)
세계여행의 첫발을 떼면서 일본으로 향했다. 도쿄에 도착하니 계절은 1월이었지만 기후는 마치 우리나라 제주도의 겨울 날씨를 연상케 했다. 미리 외어 둔 몇 마디 영어로 입국절차를 마친 뒤 공항리무진을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예약해 둔 숙소에 와서 여장을 푼 후 다음의 항공일정을 확인하고, 처음 밟은 외국 땅, 도쿄 거리로 나갔다. 처음 대하는 도쿄의 거리였지만 우리의 거리와 유사한 점이 많아서 그렇게 생소하지는 않았다. 모두들 바쁘게 오가고, 대하는 사람들마다 친절한 인상을 주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도쿄의 시내탐방 길에 나섰다. 먼저 도쿄타워로 갔다. 프랑스의 에펠탑을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이 거대한 탑에 올라가서 거대 도시 도쿄를 사방으로 둘러보니, 도시가 널따란 분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한 쪽이 바다에 접해 있었다. 타워에서 내려와 관청의 거리를 지나 일본의 신사(神社)문화를 엿볼 수 있는 메이지신궁으로 갔다. 그곳은 일본인들의 영웅인 명치천왕을 모셔 둔 곳으로 여러 가지 일본의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 일본 도쿄 메이지 신궁 ▲ 일본의 신사 모습
다음에는 일본의 불교문화를 살펴 볼 수 있는 센소지(淺草寺)로 갔다. 그곳은 절 입구부터 특별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입구의 길거리는 길 양쪽으로 길게 설치한 독특한 장식 아래 토산품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절의 정문에는 커다란 지등(紙燈)이 문의 절반을 차지하며 걸려 있었다. 절 안에서 행해지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참배의식과 뜰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비둘기 떼들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다시 시내 중심가로 들어 와서, 왕궁의 정원으로 갔다. 정원의 내부는 말쑥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고, 일본의 왕실문화와 아울러 정원문화의 일면도 엿볼 수 있었다. 왕궁의 정원을 살펴 본 후 도쿄의 상업지역을 둘러본 후 도쿄의 북쪽에 있는 우에노공원으로 갔다. 이곳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동시에 문화의 공간이었다. 넓게 잘 꾸며진 공원 안에는 박물관, 도서관, 신사(神社)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에 길이 익숙하지 못해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카운터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께 길을 물었더니, 하시던 일을 멈추고 지하철 입구까지 동행하며 안내해주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까지 하던 그 일이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저녁에는 도쿄의 유명거리 긴자(銀座)로 나가 현란한 네온 불빛 아래서 붐비는 인파에 밀리면서 깊어가는 이국의 밤 정취에 젖어 보았다.
다음 날은 기차를 타고 일본의 제3의 도시 요코하마로 갔다. 요코하마는 도쿄에서 전철로 약 한 시간의 거리에 있었다.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시내를 둘러보고, 바다 쪽의 항만에 접해 있는 야마시타공원으로 갔다. 복잡한 도심의 항만인데 여유 있게 다듬어 놓은 조용한 이 공원을 보고 일본인들의 여유와 알뜰함을 새삼 느꼈다.
호주에서 귀국길에 일본 방문(1993년)
호주에서 일을 마치고 귀국길에 뉴질랜드를 거쳐서 일본으로 왔다. 뉴질랜드에서 일본으로 오는 동안 적도를 넘는 긴 여정이 계속되었고, 계절은 남반구의 늦은 여름에서 북반구의 늦은 겨울로 바뀌었다. 10여 시간후에 도쿄의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겨울 날씨에 대비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2월의 도쿄 날씨는 좀 쌀쌀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도쿄는 두 번째 방문이어서 생소하지는 않았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곧장 시내로 들어가서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 여장을 푸니 마음은 벌써 서울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선 서울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우리의 일본 도착을 전했다. 숙소가 있는 이케부크로 지역은 복잡한 상가 지역이었다. 일본의 대학입시 때여서 숙소를 정하기가 대단히 힘들었는데, 호주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의 도움으로 비즈니스호텔을 가까스로 예약했었다. 워낙 복잡한 지역이어서 친구가 그려 준 약도를 보면서 힘들게 숙소를 찾기는 했지만, 머무르는 동안 외출했다 돌아 올 때마다 몇 번이나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크지 않은 숙소였지만 내부는 아담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외출해서 저녁에 돌아 올 때면 날마다 종류를 바꾸어 가면서 간식 봉지를 웃으면서 건네주던 프론트에 앉아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도쿄 타워에 올라서
도쿄는 1차 방문 때 시내 탐방을 했지만,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도쿄 견학을 시작했다. 도쿄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시내를 돌아 볼 때에는 전철을 이용했다. 시내 지도를 펼쳐 보며 전철을 이용해서 시내의 여러 곳을 들렸다. 먼저 도쿄타워에 올라가서 아이들과 함께 도쿄시내를 한눈으로 내려다보면서 세계적인 도시 도쿄를 조망해보았다.
도쿄타워에서 내려온 후, 왕궁을 비롯하여 아끼하바라 등 시내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특히 시부야공원의 2월의 화사한 매화꽃은 발길을 한참 동안이나 멈추게 했다. 시내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이번에도 역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친절했다. 길을 물으면 대개는 목적지의 목표물까지 동행해 주었고, 어떤 때에는 목적지까지 직접 동행해 주기도 했다. 국민의식의 수준이 느껴졌다.
도쿄는 복잡한 거대도시인데도 교통의 흐름에는 질서가 있었다. 수없이 많은 차들, 붐비는 도심의 거리, 그러나 시내의 교통은 질서 속에서 정연하게 흐르고 있었다.
▲ 도쿄타워 ▲ 시부야공원 3월 매화꽃
눈 덮인 후지산과 호반의 하꼬네
도쿄 시내 견학을 끝마치고 다음 날에는 일본인들이 성(聖)산으로 숭상하고 있는 후지산으로 행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얼마 동안을 가니 산봉우리를 하얀 눈으로 감춘 거대한 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본인들이 신성시 하고 있는 후지산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 장엄함과 신비감에 빠져들 것 같았다.
▲ 후지산 전경 ▲ 후지산 중턱에서
후지산 아래에 있는 마을들도 이 후지산의 품에 안겨 있는 듯 무척이나 평화롭고 안정되어 보였다 후지산은 철에 따라서 눈이 덮이는 지역이 달라지기 때문에 입산의 범위도 철에 따라서 달랐다. 우리는 버스로 눈이 덮인 자락까지 올라가서 좀 더 가까이서 후지산의 장엄함을 감상했다.
▲ 하코네 온천지대 ▲ 하코네 호반에서
후지산을 내려와서 건너편에 있는 하꼬네로 갔다. 이곳은 후지산이 바라다 보이는 산세가 아름다운 산간지역이었다. 산을 오르는 도중 산허리의 군데군데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어 일본이 화산대의 열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꼬네의 산 중턱에 있는 화산박물관에서는 화산활동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또 솟아오르는 뜨거운 김에다 계란을 삶아서 팔고 있었는데 이것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오니 아름다운 경치의 하꼬네호수에 이르렀다. 화려하게 꾸며진 유람선을 타고 하꼬네호수의 주변 절경을 감상하면서 호수를 가로질러 갔다.
후지산과 하꼬네의 하루 일정은 서산에 지는 해와 함께 끝을 맺고 도쿄로 돌아왔다.
일본의 역사 흔적 오사카, 나라, 토쿄(1993년)
호주에서 귀국한 그해 겨울, 교환교수 시절에 가깝게 지내던 일본 친구들을 만나려, 가족과 함께 일본의 관서 지방으로 떠났다. 한 친구는 오사카 부근 다카스키에 살고, 또 한 친구는 시코쿠의 토쿠시마에 살고 있었다. 호주에 있을 때에 같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만났기 때문에 더욱 가깝게 느껴져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서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이었다.
일본의 관서지방은 일본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고, 일본의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려가는 기쁨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번 여행이 일본의 역사 도시 오사카, 쿄토, 나라(奈良) 등에서 일본역사에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관서(關西)의 중심 오사카
12월의 하순, 차가운 날씨 속에 친구들을 만나려 간다는 약간의 들뜬 마음으로 우리 가족은 일본으로 떠났다. 오사카에 내리니 그곳 날씨는 겨울인데도 그렇게 춥지 않고 서울의 가을 날씨와 비슷했다.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는 나라(奈良), 쿄토(京都)와 함께 일본의 유서 깊은 고도(古都)이며, 오사카는 이 두 도시를 각각 기차로 약 한 시간씩의 거리에 두고 있었다. 오사카는 명치시대 때 일본의 수도였는데 다른 고도(古都)에 비해 도읍을 정한 기간이 길지 않아서 도읍지의 유적은 많지 않았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오사카 성(城)이 도시의 중심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성은 성벽, 연못, 성벽, 성벽으로 겹겹이 둘러 싸여 있었으며 성채는 일본 특유의 건축 양식에 의해서 지어져 있었다. 성안의 연못에는 오리들이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고, 성채의 부근에 조성된 정원은 지나간 날들의 추억을 안고 있는 듯, 겨울비속에서도 푸름을 간직한 채 묵묵히 성채를 지키고 있었다.
오사카의 교통은 오사카 중앙역을 중심으로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오사카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순환 전철은 오사카 중심부를 순환하고 있어서, 오사카의 핵심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이 전철을 타고 중간 중간 내려서 중요한 곳을 돌아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었다.
▲ 오사카성 ▲ 오사카성 정원에서
역사의 고도(古都)인 이곳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물결이 밀려 와서 지금은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그 변화의 물결은 오사카만의 일부를 매립하여 초현대식의 거대한 공항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우리는 오사카 공항에서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공항에서 멀지 않은 미노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공항에서 전철을 이용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공원 입구의 전철역에서 공원에 이르는 길가에는 일본 토산품들을 진열해 놓은 가게들이 이어져 있어서 일본의 풍물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 공원의 전망대에 올라가니 이 지방의 겨울 산과 멀리 펼쳐져 있는 오사카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본을 방문할 때면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의 친절은 이번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생소한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저곳 다니면서 곳곳에서 길을 물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너무나도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어느 때에는 버스의 행선지를 물으면 차표까지 대신 끊어주면서 친절하게 안내 해주었다. 경비초소에서 근무하는 할아버지가 몇 마디 알고 있는 영어를 쓰면서 도와주려고 애쓰던 모습이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남국의 정취를 품은 도쿠시마
오사카에서 일본 국내 항공편으로 시코쿠(四國)에 있는 친구를 마나기 위해서 토쿠시마(德島)로 향했다. 비행기로 약 30분 정도 걸렸다. 도쿠시마는 일본 열도의 혼슈(本州)와 큐슈(九州) 사이에 있는 시코쿠섬의 동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다. 기후가 온화했고, 분위기도 조용했다.
도쿠시마 마사시 집에서
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와 반가운 재회를 하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이곳은 길 양쪽의 가로수에서부터 남국의 정취가 느껴졌다. 복잡하지 않은 길, 여유 있게 배열되어 있는 주택들, 열대성의 식물 등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친구 집에 도착한 우리는 따뜻한 환대를 받으면서 그동안 밀렸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토쿠시마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첫 코스로 토쿠시마시(市)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의 정상에 있는 비잔(眉山)공원으로 갔다. 항구도시 토쿠시마와 그 부근 지역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이곳의 산은 겨울철인데도 낙엽수의 잎들이 떨어지지 않고 단풍잎 빛깔을 하고 나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낙엽수의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이곳의 기후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 내려와 다음에는 이 지역의 전통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조그마한 박물관이었지만 흥미로운 전통 물건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대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는 일본의 전통적인 의상들이었다.
박물관을 나온 후, 시코쿠 섬의 북단에 있는 나루또(鳴門)로 향했다. 그곳에는 시코쿠와 혼슈를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가 바다를 가로지르며 놓여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본 잔잔한 바다와 섬들이 어우러진 전경이 방문객들을 매료시켰다. 또 전망대에 설치된 전시관의 한 곳에는 이 지역의 명물인 소용돌이치는 바다의 모형을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 마사시 가족과 함께 ▲ 애기야, 참 예쁘구나
숙소를 친구의 배려로 친구 집에 정했기 때문에 일본의 고유문화에 접할 기회가 많아서 일본에 관한 많은 것들을 체험했다. 일본인들도 우리와 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었지만, 상차림에 있어서는 우리와 다른 점이 많았다. 상을 차릴 때에는 개인별로 음식이 차려졌고, 또 식사를 할 때에는 젓가락만 사용되고 숟가락은 사용하지 않았다. 친구의 세심한 배려로 우리는 짧은 기간에 시코쿠의 많은 곳을 둘러보았고, 또 일본의 문화에도 더욱 가깝게 접해 볼 수 있었다.
도쿠시마를 떠나는 날 아쉬운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뒷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신사(神社)를 찾아갔다. 규모가 상당히 큰 신사였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의 풍습에 관해 살펴보면서 일본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다카스키에 있는 친구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오사카로 향했다.
▲ 나루또 전망대 ▲ 도쿠시마의 신사 앞에서
조용한 역사 도시 나라(奈良)
오사카로 돌아온 우리는 일본의 역사도시 나라(奈良)를 방문하기 위해 나라(奈良)행 기차에 올랐다. 오사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가니 나라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역에서부터 고도(古都)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나라(奈良)는 듣던 그대로 조용하고 조그마한 역사 도시였다. 역에 마련된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안내지도를 보면서 걸어서 시내탐방을 시작했다. 나라(奈良)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역사유적지와 같았다. 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고후쿠지(興福寺)와 도다이지(東大寺)라는 두개의 큰절이 있었는데, 이들 중에서도 특히 도다이지에는 실내에 동으로 만든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이 불상을 보면서 축소지향적이라고만 여겨 왔던 일본인의 국민성에 또 다른 면을 생각해 보았다. 절의 주변거리도 절의 분위기에 맞게 꾸며져 있었고, 공원과 유적지의 거리에는 사슴들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사슴들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먹이를 청했고, 성급한 사슴은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의 가방에다 입을 대고 먹이를 재촉하기도 했다. 자연 속으로 들어 온 느낌이었다.
▲ 나라 도다이지 입구 ▲ 도다이지(東大寺)
고금(古今)이 혼재하는 쿄토
나라(奈良)의 유적을 돌아본 후 우리는 바로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다카스키(高槻)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다카스키로 가는 길은 오사카를 거치는 길과 쿄토를 거치는 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올 때와는 다른 길인 쿄토를 거치는 길을 택했다.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에 다카스키에 도착해서 친구의 가족들과 반갑게 재회를 했다.
▲ 다카스키 친구 히데끼집에서
다카스키는 오사카와 쿄토의 중간 지점에 있는 조용한 도시였다. 이곳은 주로 일본식 주택들로 이루어진 잘 정돈된 주택가였다. 일본인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에 접해 보기 위해서는 잠시 머물러 볼만 한 곳이었다. 다카스키에 있는 친구 집에서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친구 가족과 함께 쿄토의 유적을 둘러보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쿄토(京都)는 일본의 고도(古都)답게 지금도 옛날의 기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거리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시내 곳곳에는 옛날의 자취가 정성스럽게 보존되고 가꾸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교미즈 데라(淸水寺)와 긴가꾸지(金閣寺)였다. 교미즈데라는 규모도 컸지만 건축양식과 보존품들이 다양해서 일본의 특징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또 긴가꾸지는 금색의 건물이 연못 속에서 아래위로 대칭되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쿄토를 돌아보면서 이곳의 유적 보존 상태를 보고, 옛 것을 소중히 하며 보존하려는 일본인들의 국민성을 새삼 느꼈다.
쿄토의 하루 일정은 바쁜 가운데 끝나고 어둡기 전에 다카스키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날은 자동차의 통행 방향이 우리와 반대인 그곳에서 친구의 자동차 한 대를 내가 몰고 따라갔기 때문에 어두운 귀가 길이 좀 걱정되었다. 그래서 어둡기 전에 귀가를 서둘렀다. 친구 집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일본의 전통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쿄토 교미즈테라 ▲ 쿄토 긴가꾸지
다음날 아침 서울로 돌아오는 날에는 친구 가족과 헤어짐이 아쉬워 시내에서 좀 더 오랜 드라이브를 하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귀국길 비행기에서 멀어져가는 오사카와 일본 열도를 내려다보니 국경을 초월한 애틋한 우정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일본 근대화의 관문 가고시마(2005년)
반가운 해후와 환대
초겨울의 기분이 드는 약간 쌀쌀한 11월 중순, 아침의 맑은 햇살을 받으면서 일본의 큐슈 남단에 있는 가고시마로 향했다. 남국으로 향하는 창공의 길은 더없이 청명했다. 가고시마대학의 나까야마학장의 초청으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가는 길이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가슴이 설레어 왔다.
가고시마 공항에서 반가운 해후를 하고 시내로 향했다. 가고시마공항에서 1시간정도를 달려서 대학에 도착하니 관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바로 총장접견실에서 총장을 비롯한 대학관계자들과 인사모임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진심으로 환영해주면서 따뜻한 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 가고시마대학교
가고시마만의 사꾸라지마 화산
사꾸라지마 화산이 눈앞에 펼쳐있는 가고시마만의 정취를 느끼면서 훈훈한 대화에 젖어들었다. 사꾸라지마는 가고시마의 상징이었다. 사꾸라지마가 있기에 가고시마는 화산과 대도시가 공존하는 신비스러움을 안은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사꾸라지마가 건너보이는 해변가 식당에서 국경을 넘어선 우정의 꽃이 만발하게 피어올랐다. 우정의 순수함이 애틋한 정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다시 대학으로 와서 세미나에 대한 준비를 했다. 대학에서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어서 고마웠다. 발표 자료를 점검하면서 세미나 준비를 했다.
저녁에는 교류 모임의 만찬이 베풀어졌다. 만찬장은 화기애애한 만남의 장이 되었다. 밤이 깊어져도 우정의 만남은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계속되었다. 현해탄을 넘나드는 우정의 자리가 되었다.
일본 발전의 근원이 느껴지는 순간들
둘째 날은 세미나가 오후에 있기 때문에 오전에는 가고시마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상고집성관(尙古集成館)으로 갔다. 이곳에는 가고시마의 발전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일본의 고대정치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은 고대에서부터 각 지방이 독립자치의 통치형태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서로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발전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살아남기 위한 발전적인 노력이 근대에 와서도 막부(幕府)를 중심으로 계속 되었다. 이러한 노력이 오늘날에는 각 현(縣)들이 독자적인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서, 이것이 오늘의 일본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알았다.
다음은 가고시마 박물관인 '레이메이칸'으로 갔다. 이곳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섬나라의 특징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의 다양한 문화들을 접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일본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가고시마 역사와 문화탐방을 마치고 오후의 세미나준비를 위해 대학으로 돌아왔다. 교육학부의 회의실에서 일본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면서 오후의 세미나를 준비했다.
세미나의 사회를 진행하면서
세미나의 주제는 ‘교원의 자질향상과 교원양성대학의 역할’이다. 그곳의 사범대학 학장과 공동으로 사회를 진행했다. 축사와 인사에 이어, 발표자들의 소개로 세미나는 시작되었다.
한국의 대학원제도, 교육대학원제도 및 교원연수제도의 발표가 이어졌다. 분위기는 진지했다. 참석자들은 발표내용을 메모해가면서 경청을 했다. 세미나의 분위기는 발표자들의 열띤 발표와 참석자들의 진지한 경청으로 열기가 고조되었다.
▲ 세미나장 ▲ 세미나 만찬장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일본사회의 협동적인 적극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단과대학의 세미나에 대학본부의 거교적인 역할이 돋보이는 가운데, 중앙의 문부성과 지방교육청에서도 책임자들이 직접 참석하여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세미나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일본이 발전하는 저력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세미나 만찬장에서
세미나는 가고시마대학의 교직대학원이 성공적으로 설립되기를 기원하면서 끝났다. 저녁에는 세미나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면서 양국 참석자들의 교류를 위해서 '세미나 교류회'가 성대히 개최되었다.
세미나교류회에는 세미나 개최 관계자들을 비롯해서 일본의 문부성을 대표하는 사람들, 가고시마현 교육장을 비롯한 관계자들, 대학총장을 비롯한 대학 중요보직자들, 지역의 대표적 인사들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세미나의 개최를 축하면서 성공적 결과를 기원했다.
'세미나 교류회'에서는 폭넓은 교류시간이 마련되었다. 언어의 상이함에 의한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넘어서서 서로가 감사하는 마음이 따뜻한 정을 담고 오고 갔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서로를 미워했던 과거를 잊을 수는 없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오늘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다시 만나기가 어려운 지역 인사들까지도 우리들을 환대하면서 고마워했다.
가고시마를 떠나오면서
떠나는 날 아침, 학장과 교수들 그리고 관계직원들이 미리 와서 숙소의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쉬운 작별의 순간이었다. 방문기간에 얻은 많은 것들을 마음속에 정리하며 귀국 길에 올랐다. 짧은 방문 기간이었지만 일본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눈을 감으니 일본이 갖는 저력의 근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상호경쟁심의 발전적 화합, 상대방에게 최선의 성의를 다하는 마음, 남의 장점을 배우려는 겸허한 마음 등이 떠올랐다.
일본 큐수 후쿠오카 방문(2009년)
한해의 끝자락에 북큐슈를 향해서
올해는 특별한 해였다. 나에게 크나큰 획이 그어진 해이다. 40년 교육인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해이다. 정년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해이다. 고락을 같이 해온 동료들과 정다운 벗들 그리고 별처럼 반짝이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가슴에 간직한 해이다. 앞으로는 더 보람되게 살아야 할 날들이 남아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다운 친구들과, 믿음의 동료들과,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더불어 보내야 할 값진 시간들이 남아 있다. 평생을 다하도록 배우고, 위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눈을 감으면 별처럼 반짝이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나고 있다. 사랑으로 채워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일본 큐수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가족의 정을 새기면서
사랑으로 가득한 한 해의 끝자락에 북큐슈지방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크리스마스 휴일이 끼어 있는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로 여행기간을 잡았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일러서 새벽에 서둘러서 공항으로 떠났다. 기온은 차가웠지만 가족 간에 스며드는 온기는 포근하기만 했다. 일본 후쿠오카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15분정도 걸렸다. 남쪽으로 왔기 때문에 조금은 덜 추웠다. 공항에서 일본인 버스기사의 환영인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후쿠오카
후쿠오카 투어의 첫 번째 행선지는 커낼시티하카타(Canal City Hakata)쇼핑몰이다. 호텔과 운하로 연결해놓은 쇼핑몰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년 말의 분위기를 북돋았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서로를 챙겨주면서 가족의 정을 마음껏 쌓았다. 후쿠오카타워가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모치'해변으로 갔다. 시내와 해변을 품에 안으며 우뚝 솟은 타워가 후쿠오카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해변에는 바다 위에 세워진 웨딩빌딩이 해변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시내의 식당에서 일본식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의 투어 일정을 시작했다.
오후의 행선지는 아소활화산이 있는 아소지역이다. 후쿠오카를 벗어나서 구릉의 초원이 펼쳐지는 아소지역으로 이동했다. 아소산의 활화산 분화구를 보기 위해 산정을 향해 구불구불 잘 다듬어진 산길을 올라갔다. 일본인들의 치산치수(治山治水)의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조림은 목재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곳곳에 초지를 형성해서 목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또 산간에 중간 중간 방화(防火)공간을 만들어서 산불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소산 정상을 향해 계속 올라가는데 산정으로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안내에 의하면 분화구의 유황 분출량이 많으면 정상 진입이 통제된다고 했다. 우리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안개를 제치면서 부지런히 올라갔다. 산정 휴게소에 이르니 정상은 안개로 쌓여서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산정 휴게소에서 분화구를 보려면 로프웨이를 타고 더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안개가 너무 짙게 끼어서 로프웨이를 운행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정상의 주변만 돌아보고 내려왔다.
‘아소’ 시내로 들어왔다.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조용한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숙소는 8층의 수수한 호텔이었지만, 이곳에서는 큰 호텔인 것 같았다. 일본식 방이 배정 되었다. 다다미 바닥에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낮은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차를 한잔 마시고 모두 ‘유카따’(일본식 까운)를 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는 일본식 밥상이 마련되어있었으며, 일본을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소는 이름 있는 온천지역이어서 온천의 수질이 좋았다. 가족과 함께 ‘아소’의 밤거리를 산책했다. 남쪽이어서 그런지 춥지 않았으며, 호텔로 들어와서 뜰에 마련된 족욕(足浴)대에 우리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서 깊어가는 ‘아소’의 밤을 음미했다. 잠자리는 직원들이 와서 손수 마련해 주었다.
▲ 호텔의 일본식 방 내부 ▲ 아소호텔의 족욕탕
둘째 날은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벳부’로 방향을 잡았다. 북큐슈의 중간쯤에 있는 ‘아소’지역을 벗어나서 동쪽 해안 쪽에 있는 ‘오이따’지역으로 향했다. 벳부는 오이따 지역의 중심지이며 온천 관광도시다. 벳부로 가는 도중 중간 기착지인 '유후인'에 들렸다. '유후인'은 유명한 온천지인데, 특히 도시가 여성다워서 여성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다. 또 온천수량이 일본에서 세 번째로 많다고 했다.
조용한 전통의 거리가 이곳의 분위기를 한껏 띄어주었다. 이곳에는 '긴린꼬'라는 호수가 있는데, 해질녘에 비단잉어가 수면으로 떠오르면 잉어의 비늘이 황금색으로 빛난다고 해서 '긴린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온천수의 김이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긴린꼬'의 모습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왔다.
▲ 유후인에서
'벳부'로 가면서 산간지역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옆에 동백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벳부에 들어가기 전에 ‘벳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주몬지바우’전망대에 올랐다. 엷은 안개로 덮여있는 벳부시가지가 눈 아래로 펼쳐졌다. 날이 맑으면 ‘시코쿠’섬도 보인다고 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를 내려와 또 한 곳을 들렸다. '히가시시야노'폭포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산길을 한동안 걸어서 올라가니 겨울이라 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규모가 큰 폭포였다. 주변에는 열대우림의 숲이 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정겨움이 스며드는 계곡이었다.
벳부로 가는 길에 산의 중턱에서 김을 분출하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유노하나‘ 유황온천 지역이었다. 이곳에서는 지붕을 삼각형으로 내린 막사 속에다 유황을 채취하는 시설을 해놓고 유황을 생산하고 있었다. 유황농장의 막사에 들려서 유황채취 현장을 관찰했다.
유황농장의 견학을 마치고 벳부 시내로 내려와서 ‘가마토’ 지옥 순례에 들어갔다. 여섯 개의 코스를 돌면서 특징적인 색깔을 띠고 있는 유황탕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10년이 젊어진다는 유황온천수도 마셨다. 또 건강에 좋다는 유황스팀도 심호흡을 했다. '가마토'지옥순례 코스를 다 돌고 모두들 신발을 벗고 족욕(아시유)을 하고 또 온천에서 익힌 달걀도 시식을 했다. '가마토'지옥 순례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벳부' 해변 산책로를 걸으면서 일본의 겨울 바다를 음미해 보았다.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로이알벳부호텔이었다. ‘벳부’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현대식 건물이지만 방은 일본 전통식 방으로 배정을 받았다. 일본체험의 기회를 또 얻은 셈이었다. 우리 가족은 일본 전통식 방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셋째 날이다.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후쿠오카로 향하면서 ‘벳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메다’ 동네에 들렸다. 전통의 거리에서 일본의 풍물에 접해보고, 된장 만드는 공장에도 들렸다. 다시 산길을 달리고 고개를 넘어 서쪽으로 향했다. 모두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차창으로 조용한 시골 풍경이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 마메다 전통거리 ▲ 신사의 기원을 만든 소
후쿠오카에 와서 후쿠오카의 '교토'라고 하는 학문의 신을 모신 ‘다자이후 텐만구’신사로 갔다. 백제의 왕인박사의 후손인 '스가오라 미치자네'를 모신 신사였다. '스가오라 미치자네'가 학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어서 이곳을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라고 했다. 학문과 덕망이 높았던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정적(政敵)인 '후지와라 도키하라'의 투서 모함에 의해 교토에서 큐슈로 귀양을 오게 되었고, 귀양 온 후 2년 만에 사망했다. 모함이 억울해서 시신을 소달구지에 싣고 교토로 향하던 중 이 지역에 와서 소가 움직이지 않아서 이곳에서 의식을 거행하고 '스가오라 미치자네'를 모셨고 한다. 그리고 그 소가 머문 자리에 소의 동상이 세웠졌다. 이 일이 있은 후 교토에서 매화꽃이 '스가오라 미치자네'를 보려고 이곳에 와서 피었다고 하여 이곳의 매화꽃을 '도비우메' 라고 한다.
신사의 안으로 들어가니 가랑비 속에서 일본식 의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신사 안에 있는 세 개의 다리, 즉 과거의 다리, 현재의 다리, 미래의 다리를 넘어서 신사의 경내로 들어오니 신사의 기원을 만들어 준 황소의 동상이 있었다. 황소를 만져보면 소원을 이루어준다기에 황소의 얼굴을 여러 번 만져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서인지 황소의 얼굴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 있었다.
가랑비속에서 신사의 경내를 돌아보았다. 신사의 부근에는 일본의 특징을 잘 지니고 있는 상점거리가 있었고, 신사 안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 관광을 온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 스가와라 미치자네 신사, 윤정 ▲ 스가와라 미치자네 신사, 윤희
오후에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했다. ‘남장원(南臟院)’이라는 곳이다. 일본이 ‘미얀마’를 도와준 보답으로 미얀마가 보내준 와불상(臥佛像)을 모신 곳이라고 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가랑비가 다시 내렸다. 우산을 쓰고 남장원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 오르니 큰 불상이 누어있었다. 길이가 약 50m는 되는 것 같았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벌써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와불상의 후덕한 모습이 만인에게 자비를 내려주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와불상을 돌아보고 구불구불 길을 돌아 아래로 내려 왔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 무척이나 붐볐다.
밤공기를 가르며 현해탄을 가로질렀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새해의 보람된 날들을 그려보면서 눈을 감았다. 살아온 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지나간 궤적 위에 다가올 새 날들이 뽀얗게 피어올랐다. 앞으로도 나는 삶이 허락할 때까지 ‘배우고 위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추억의 대마도 여행(2012년)
* 여행 팁
위치 : 대한해협의 중간쯤에 위치한 일본의 섬
일본 본토(약 132km거리), 한반도(약 49.5km거리)
인구 : 34,000명 내외
지위 : 행정구역은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이다.
거리상으로는 일본 본토(약 132km)보다 한반도(약 49.5km)에 더 가깝다. 1418년(태종 18) 대마도에 흉년이 들자 왜구들은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명나라 해안으로 향하던 중 조선의 비인(庇仁)·해주(海州) 해안에 침입했다. 이에 1419년 6월 세종은 이종무에게 군사를 내어 왜구를 토벌할 것을 명했다. 이종무는 삼남(三南)의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으로 마산포를 출발하여 대마도로 진격했다. 이 정벌을 통해 왜구의 배 127척을 빼앗아 불사르고 왜구를 소탕하는 전과를 올리고 한 달여 만에 철수했다. 쓰시마섬에 대한 정벌 혹은 토벌은 고려시대 창왕 때와 조선시대 태조 때에도 행해진 바 있다.
해운대에서 일박을
이번 여행은 큰 딸 윤정이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서 기획했다. 3박 4일의 일정, 서울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하는 것 보다는 하루 전날 출발하여 부산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부산에 내려가서 해운대에서 1박하면서 해운대의 밤바다 정취를 만끽해보았다. 해운대의 밤바다를 걸으니 지나간 추억들이 아름답게 되살아났다. 추억은 아름답다.
▲ 부산 해운대의 야경
대마도를 향해서
날이 밝았다. 해운대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백사장을 걸었다. 호텔을 나와서 해운대와 작별하고 추억어린 광안대교를 지나서 ‘페리’부두로 향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9시에 출발하는 ‘부산 - 대마도’ 페리 ‘Beetle' 호에 몸을 실었다. 1시간 10분 동안 하얀 물결의 꼬리를 이으면서 현해탄을 달린 후에 대마도 북쪽에 위치한 ‘히타카츠’항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어촌의 항구였다. 배에서 내려서 거리로 나오니 한국의 정취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대마도 방문을 환영합니다.‘ 라고 한글로 적은 깃발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정감어린 거리를 좀 더 걸었다. 동네 한 곳을 지날 때 일본의 특징을 나타내는 신사(神社)가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 들려서 일본의 정취를 잠시 느껴보았다. 다시 거리로 나와서 좀 더 걸어가니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을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가을운동회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산위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히타카츠 항을 내려다보니 조용한 어촌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시골의 정취가 깃들어 있는 조용한 시내거리를 더 걸었다. 점심때가 되었다. 식당들이 거리의 정취에 어울리게 조용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렌트카’ 회사 직원과 약속한 곳으로 갔다. 렌트카 회사 직원이 차를 몰고 나와서 우리를 태우고 회사로 갔다. 가족이 경영하는 조그마한 회사였다. 직원이 한국말을 잘해서 한결 편했다.
대마도 탐방
렌트한 차를 타고 우리는 본격적인 대마도 탐방을 시작했다. 스케쥴에 따라 대마도의 남단으로 차를 몰았다. 산림이 울창한 산간 도로를 달렸다. 어느 해변 길에 접어드니 바다에 서있는 신사의 문이 나왔다. ‘와타즈미’신사에 들렸다. 신사의 문이 바다에 2개가 있고, 육지에 3개가 있어 총 5개가 있었다. 이 신사는 해궁으로 바다 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했다.
▲ 히타카쓰 신사에서 ▲ 와타즈미 신사
다시 차를 몰아 ‘에보시다께’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아소’만은 겹겹이 쌓인 산들과 바다의 어우러짐이 대마도의 ‘하롱베이’라고 일컬을 만 했다. 대마도에서 유일하게 360도를 돌면서 동서남북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 에보시다께 전망대 ▲ 전망대에서 본 바다 정경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이즈하라’를 향해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에 ‘수퍼’에 들렀다. 여행 중이라 그런지 허리에 약간의 통증이 있어서 ‘파스’를 사려고 약방을 찾았다. 의사소통은 윤정이가 하기 때문에 불편은 없었는데 이 ‘수퍼’에서 감동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물건을 사면서 일본 돈을 지갑에 넣어서 들고 다니면서 물건 값을 치렀다. 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에 와서 차를 타려고 하는데 그 때 아주머니 한분이 손에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지갑을 들고 우리를 향해서 허겁지겁 뛰어왔다. 물건을 사면서 일본 돈이 들어 있는 지갑을 두고 온 것이었다. 우리를 찾아서 반가웠던지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일본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전해주고 돌아갔다. 친절함과 책임감에 감명을 받았다.
해가 질 무렵 대마도에서의 첫날의 여행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방향을 잡았다. 이즈하라에 있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대아호텔’로 차를 몰았다. 이즈하라는 크지 않은 도시여서 길도 골목길이 많았다. 호텔을 찾는데 골목길로 접어들어서 운전하는 윤정이가 수고를 좀 했다. 대아호텔은 산기슭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바다의 전망이 매우 좋았다. 여장을 풀고 차를 호텔에 두고 걸어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올 때의 그 골목길을 걸어서 시내의 식당가로 내려갔다. 어느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식당에 들어가서 일본식 식사로 일본여행의 분위기를 살렸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 올 때에도 대마도의 정취를 느끼면서 그 골목길을 걸어서 올라 왔다. 대마도에서의 단란한 가족의 밤, 오래 동안 가슴에 새겨질 추억의 밤이 되었다.
상쾌한 아침이다. 아침운동을 위해 호텔주변의 잔디밭 언덕길을 걸었다. 잔디밭 언덕과 호텔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오늘의 일정은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이즈하라부근의 유적지를 둘러본 다음에 대마도 남단의 전망대를 들려서 다시 북쪽의 히타카츠 부근 미우다해수욕장에 있는 ‘미우다펜션’으로 가는 일정이다.
이즈하라 부근에는 유적지, 관광지가 많았다. 대마도 남단부에 있는 대마도 중심 도시 ‘이즈하라’에는 에도시대의 관청의 소재지였다. 먼저 에도시대의 관청이 있었다는 ‘반쇼인’으로 갔다. 이곳에서는 에도시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곳의 산기슭에 있는 많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쓰시마 번주’ 가족묘소가 있었다. 이 묘소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일본의 3대 묘지 중의 한 곳이라고 했다.
이즈하라박물관에 들려서 대마도의 역사를 일별해 보고, 또 현립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도 들렸다. 우리는 잠시 백화점에 들러서 간단한 쇼핑과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차를 타고 주차증을 찾으니 보이지 않아 물건을 산 곳에 가도 없어서 사무실에 이야기하니 바로 주차관리인에게 연락이 되었다.
▲ 반쇼인 ▲ ‘야유모도시’자연공원
야유모도시 국립공원
자연이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야유모도시’자연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해서 은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림이 울창한 산길을 달려서 ‘야유모도시’ 공원에 도달했다. 10월이어서 인적이 거의 끊겨 있었다. 입구의 구름다리는 이곳의 정취를 한층 더 북돋아 주었다. 다리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면 계곡 전체가 천연 화강암 골짜기가 되어 있고, 그 골짜기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가슴에 와 닿는 정겨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계곡의 맑은 물에 발을 담구면서 준비해 간 점심을 먹었다. 가족의 정이 풋풋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작은 딸 윤희 가족도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맑은 계곡물을 보니 손주 지호 생각이 많이 났다.
다음 코스는 대마도 남단에 위치한 ‘쓰쓰자키’ 전망대다. 이곳은 대형차는 갈 수 없을 정도로 전망대에 오르는 산길이 좁았다. 그러나 운치가 있는 길이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 암초들, 그리고 뱃길을 인도해주는 하얀 등대가 조화를 이루면서 절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쓰쓰자키 전망대를 내려와서 북섬으로 올라가면서 남섬에 있는 ‘이시야네’ 유적지에 들렸다. 돌지붕 유적지다. 89%가 산간지역인 대마도에서는 식량 자급자족이 어려워서 식량보존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식량창고를 화재나 강풍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 식량보관 창고의 지붕을 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부근에 있는 옛날의 무가(武家)저택들도 둘러보았다.
우리는 다시 대마도 서쪽 해안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대마도의 북섬과 남섬을 연결하는 ‘만제키바시(萬關橋)’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리 위를 걸으면서 좁은 해협으로 통하는 바닷물의 흐름을 내려다보았다. 다리 아래의 해협은 해군함대의 통로로 쓰기 위해서 인공으로 만든 해협이다. 이 다리의 역사적 의미는 인공해협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쓰시마해전의 대승에 기여한 것을 기념해서 만든 다리라고 했다.
▲ 쓰쓰자키 전망대 ▲ 만제키바시
북으로 올라갈 때에는 대마도 서쪽 해안 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산림이 울창한 산길에 접어들면서 대마도 섬 중간을 가로 질러 동쪽 해안 길로 넘어 왔다. 계속 북쪽으로 달렸다. 울창한 숲길의 연속이었다. 예약해둔 숙소가 있는 ‘미우다’ 해수욕장에 도달했을 때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계절이 지난 해수욕장은 인적이 끊어지고 한산했다. 해수욕장 안쪽 산 아래에는 아담한 펜션 몇 동이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예약해둔 숙소 ‘미우다 펜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check in)을 하고 여장을 풀었다. 숙소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이 내린 해수욕장은 고요한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펜션에서 저녁식사를 손수 준비해서 해결하고, 해수욕장 옆에 있는 해수탕사우나에 가서 여독을 풀었다.
대마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운동시간에 눈을 떴다. 여행 중이라도 아침운동 시간은 철저하게 지켰다. 숙소 밖으로 나가니 아직도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다. 숙소주변을 돌아서 바다가로 나갔다. 해변의 공기가 상쾌했다. 인적이 끊긴 해수욕장이지만 각종 시설에서 인파가 스쳐간 흔적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 있는 해수욕장이라고 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가면서 모래 위를 걸으니, 지난날 해수욕장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 대아호텔 ▲ 미우다 펜션
펜션에서 손수 준비한 정겨운 아침식사를 마쳤다. 잠시 머물렀지만 정이 든 펜션을 뒤로 하고, 차를 몰아 대마도 최북단에 있는 한국전망대로 향했다. 날씨가 좋으면 우리나라가 보인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우리나라 쪽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나라 쪽을 향해서 한참동안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국(異國)에서 느껴보는 고국의 정을 가슴에 새겨 보았다.
▲ 한국으로 향한 전망대 ▲ 야생동물 보호지역
다음 행선지는 좀 특별한 곳이다. 일본의 야생동물 보호지역이다. 특히 대마도의 상징적 동물인 ‘야마네꼬(산고양이)’를 보러갔다. 시골길과 산길을 번갈아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국가가 지정한 보호 관리지역이라서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관리인의 안내를 받으면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야마네꼬’ 한 마리가 우리 속 나무위에 외롭게 앉아 있었다. 보호지역을 둘러보고 ‘히타카스’로 돌아왔다.
이제는 귀국길이 남아 있다. ‘히타카츠’로 돌아와서 렌트한 차를 반납하고, 짐은 부두에 있는 사무실에다 맡겼다. 가벼운 차림으로 시내를 거닐면서 조용한 식당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또 수퍼에서 간단한 쇼핑도 했다. 작은 시골동네이어서 과자점에서 만난 주인이 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걷는 우리를 알아보고 차속에서 인사를 했다. 정감이 넘쳐흘렀다.
오후 4시, 페리 출발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어서 히타카츠 항구의 거리를 걸으면서 이번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인간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대마도가 정겹게 마음속으로 다가 왔다. 또 조용하고 아담한 히타카츠 동네가 추억의 장에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이곳 대마도에는 우리와 관련된 역사적 흔적들이 종종 눈에 띄어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었다. 오후 4시부산으로 향하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추억어린 여행이었다. 이번의 대마도 여행은 조용하고 정감이 넘치는 대마도의 분위기와 자연 경치의 정취에 흠뻑 빠지면서 가족의 정을 아로새긴 추억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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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참으로 멋지십니다... 정명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