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나무
■한라산 특산 고산식물…성탄트리 원조
▶세계에서 유일한 이 땅의 특산종
겨울이 오고 있다. 북풍한설이 몰아 칠 때면 지리산 노고단 인걸과 눈 쌓인 한라산에 허연 뼈를 앙상히 드러 내놓고 비바람 속에서도 의연히 서있는 고사목을 연상하게 된다. 선인장이 태양이 작열하는 황량한 사막에서 고달픈 삶을 묵연히 이어 가고 있다면 고사목은 죽어 눈 덮인 산능선을 배경으로 우뚝이 서서 풍진세상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 고사목이 바로 구상나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참 아름다운 나무꾼과 선녀이야기 흰사슴과 나무숲 이 숲이 구상나무 숲일 것이다. 이 나무는 향기가 있고 기품이 있고 신비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상나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땅에서만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늘푸른 독특한 모습의 구상나무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고 우리나라 특산 희귀종이 약 100년 전 유럽으로 건너가 원예종으로 개량돼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용으로 혹은 정원수로 연간 수백억원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니 우리가 무지해서이나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구상나무란 이름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다. 다만 구상나무를 제주도 방언으로 「쿠살남」이라 부르고 있는데 주목하고 있다. 해발 1000m이상에서 살고있는 고산식물인 구상나무가 한라산에서 외국인에게 채집되어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제주도 해안 바위틈에서 서식하는 온몸이 보랏빛 거칠고 두꺼운 껍질 가시가 많이 나 있는 보라성게를 제주 방언으로 「쿠살」이라 하는데 구상나무도 열매는 보랏빛으로 나무껍질이 두껍고 잎은 바늘가시처럼 되어있어 제주에서 「쿠살」에 나무를 뜻하는 「낭」을 붙여「쿠살낭」이라 불렀고 쿠상낭→구상남→구상나무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가 있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 전나무 속에 딸린 늘푸른 큰키나무 침엽수로 높이 20m까지 자란다.
잎은 소나무 잎을 닮았으나 1.8㎝로 짧고 암록색 광택 나는 잎 가운데 또렷한 잎맥이 보이며 그 끝은 두 개로 갈라져 오목하다. 이러한 작은 잎들이 가지를 둘러가며 촘촘히 달리며 잎 뒷면에는 순백색 하얀 줄이 나 있다. 이를 기공조선이라 하는데 이를 통해 잎이 숨을 쉰다. 구상나무의 이 기공조선은 다른 나뭇잎에 비하여 유난히
희고 선명하여 바람이 불때면 은록색 물결을 보는 듯 아름답고 신비롭다.
구상나무에도 꽃이 있으나 꽃잎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다. 길이 1.8㎝의 작은 자주빛 솔방울이 암꽃인데 암꽃은 지난해에 자란 묵은 가지에 위로 하늘을 향해 피어나고 수꽃은 아래로 땅을 보며 피어난다. 꽃피는 시기는 6월경 풍매화로 바람이 꽃가루를 옮겨주어 정받이가 이루어진다. 늦가을과 초겨울사이 열매가 익어 어린아이 손가락하나 크기 길이 6㎝ 지름 3㎝의 방울 열매가 되고 열매조각 실편 사이마다 크기 5㎜ 안팎의 날개가 달린 씨앗이 100여 개가 들어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구상나무열매 빛깔에 따라 기본종 외에 3가지 품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성숙한 열매가 푸른빛이 돌면 푸른 구상, 흑자색이면 검은구상, 붉은 빛이 유난히 강하면 붉은 구상나무라 부른다.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의 나무
구상나무와는 쌍둥이처럼 닮아 구분하기 어려운 나무가 함께 이 땅에 살고 있으니 젓나무와 분비나무다. 구상나무는 방울열매 실편 끝이 모두 뒤로 젖혀지는데 비해 젓나무와 분비나무는 실편이 젖혀지지 않고 젓나무 열매는 구상열매보다 배로 큰 것으로 구별된다.
구상나무 씨앗이 싹을 틔워 10년이 지나면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90여년간 살다가는
대부분 죽는다. 사람의 수명과 비슷하다. 죽어 고사목이 되어 육신의 껍질은 벗어 버린채 흰 뼈만 남아 다시 세월풍파를 100여년간 더 견뎌낸다. 그래서 구상나무는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의 나무”라 일컬어질 만큼 살아서는 일생을 눈비 바람 속에서도 늘 푸른 기운을 간직하고 죽어서도 고고한 기품의 고사목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케 한다. 또한 구상나무의 녹갈색 적갈색 방울열매가 특이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익어 종족을 퍼뜨릴쯤이면 방울열매 낱낱의 실편들이 조각조각 흩날려서 자취를 남기지 않고 열매가 생애를 다하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도 고귀하다.
이 땅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종 구상나무 그래서 국제적 통용학명도 아비스 코리아나 Abies Koreana로 등록되어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
한반도 전역 고산지대에서 이 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특히 한라산에 850만평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무리 지어 자생한다.
구상나무의 한문표기는 제주백회濟州白檜이고 한방에서 생약이름은 구상나무의 방울열매를 박송실朴松實이라 하며 약으로 쓴다. 약성에서 맛을 떫고 약간 매우며 성질은 따뜻하다. 효능은 평간식풍平肝熄風-간을 편안하게 하고 풍을 없앤다. 조경활혈調經活血-여성의 경을 조절하고 피를 살려준다. 그러므로 간양상항肝陽上亢으로 인한 고혈압, 두통, 어지럼증에 쓰이고 부인의 생리불순, 대하증, 자궁출혈에 약용한다. 그 외에 한방학적으로 약성에 관하여 크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구상나무와는 형제 같이 닮은 모습에 하얀 젖같은 물질이 나오는 젓(전)나무에 관하여는 많은 문헌에 약성이 기록되어 있다.
<艸開山房 oldm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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