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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 교수 대담
운둔하는 한국의 프레일리 경북대 김민남 교수
대담자 : 김용락(본지 편집인. 시인)
정리 : 1차 정리 김태용(대구경북 시민신문 편집국장), 2차 정리 김용락
때: 2005. 5. 25일 오후 2시
장소 : 경북대 김민남 교수 연구실
1.
- 5월 하순인데도 세칭 ‘대구의 더위’를 실감케 할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다. 올 초 교육에세이 《삶과 공부-공동체와 인간화를 향한 대화》 《삶과 교직-문화와 유용성을 넘어 현장으로》 《삶과 교육-교직과 삶의 방식 변화》 3권을 동시에 펴내 주목을 받았고, 2003년 7월 이래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선임위원으로 활동하다 최근 그만둔 경북대 사대 교육학과 김민남 교수를 만나봤다.
마침 대입내신문제와 고교생 두발 자유화 문제로 고교생들이 서울 광화문과 대구 동성로를 비롯해 전국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는 와중이면서 아울러 일각에서는 교사평가제문제로 교육관계자들 간에 마찰음이 일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교육계의 중견으로 나름의 독특한 교육관을 갖고 있는 김 교수를 만나 교육 현안과 그의 저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앞 서 언급한 김 교수의 노작 교육에세이는 말이 에세이이지 깊이가 있는 교육학 전문 서적이 하다. 권당 400쪽이 넘는 책을 동시에 3권이나 출간했음에도 지역 언론이나 소위 중앙언론이 그냥 지나쳤다. 우리 기자들의 눈 어두움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주요 저서 출간이 이렇게 소홀한 대우를 받은 데는 김 교수의 태도가 전적으로 한 몫을 했다. 도무지 언론 기피증이 있는지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기자들과의 만남을 몇 차례 설득했지만 고사하기에 나도 포기했다. 언론을 기피하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인지, 혹은 그게 고고한 학자의 태도인지에 대해서는 나와 김 교수의 견해가 다른 것 같았다. 엉터리 같은 책을 내 놓고 언론사를 찾아다니는 것도 추태이지만 지나치게 결벽증을 갖는 것도 꼭 칭찬의 대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언론 뿐 아니다. 가령 책이 나오고 나서 제자들이 나서서 출판기념 잔치를 경북대 구내식당에서 조촐하게 했는데 주변에 일절 알리지 않았다. 제자들이 애써 마련한 슬라이드(아마 김 교수 관련인 듯한)도 틀지 못하게 하고, 식장에서 특별한 인사말도 없이 그냥 밥만 먹고 책만 나눠 헤어지는 것이었다. 나도 출판기념화장에 많이 가 봤지만 그렇게 썰렁한 기념회는 처음 봤다. (그러면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는 책을 어떻게 팔아먹나!)
각설하고 김 교수의 이런 점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인 듯했다. 지역에서 신망 받는 이유를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자신이 돋보이는 일에는 나서기 꺼려하면서 대신 힘들고 어려운 일에는 기꺼이 나서는 게 김 교수이다. 지역 시민단체 대표를 몇 개나 맡은 것도 이런 면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이런 김 교수를 《페다고지》를 쓴 브라질 출신의 민중교육자 파울로 프레이리에 비교하곤 한다. 나는 교육학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내가 20대 후반 고교 교사시절에 읽은 프레이리와 김 교수는 삶의 교육, 피압박자를 위한 교육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일치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운둔하는 한국의 프레일리’, 나는 김민남 교수를 그렇게 생각해 왔다.
2.
대담을 하려고 책이 빡빡하게 쌓여있는 좁은 연구실에 가 앉자 쉴 새 없이 문을 두드리거나 전화벨이 울린다. 내용인 즉 여름학기 김 교수가 강의하는 ‘교육사상사’ 수강신청자들이다. 벌써 학생들이 꽉 차서 더 못 받겠다는 데도 수상을 원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굉장한 인기 교수네요. 이렇게 학생이 몰리는 것을 보니?” 하면서 약간 립서비스를 했다. “아입니더” 짧은 김 교수의 답변이었다.
김용락- 우선, 최근 2008학년도 대입 내신등급제와 두발 자유화문제 등과 관련해서 서울 광화문 뿐 아니라 대구 동성로를 비롯, 전국적으로 고등학생들의 촛불시위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김민남- 고등학생 시위에 관한 한 교육단체, 그 중에서도 전교조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알다시피 전교조는 교육당사자들이 앞장서서 참다운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교육운동을 펼쳤잖습니까? 그렇게 해서 지금 그들은 교육당사자로서 실제 교육정책에 관여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교육당사자가 어디 교사뿐입니까? 학생도, 학부모도 바로 교육당사자이지요. 그런데 전교조는 오로지 교사중심의 운동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생, 학부모에 대한 관심이 퇴색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당시 전교조가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당사자로 세우는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난 이번 학생들의 시위가 겉으로는 교육정책 입안자들을 향해 있지만 내심은 전교조를 대상으로 한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보아요. 전교조도 이를 잘 읽어야 할 것입니다.
김용락-그렇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고등학생 촛불 시위에 대해 왜 전교조가 보다 적극적으로 애들 주장에 호응하지 않았는지, 좀 노골적으로 말해 애들을 좀 더 부추기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사실 고등학생도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자기해방의 과제를 표출할 수 있는 연령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이 가요.
그런데 전교조 선생님의 견해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고교생의 자기해방이라는 원론에는 찬성하지만 이번 촛불시위의 선봉에는 특목고와 강남 학생들이 깊이 관계돼 있다는 것이에요. 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시위를 부추기는데 전교조가 공식입장을 내놓기가 곤란했다고 하더라고요.
학생들의 시위도 결국 대입과 연관되는 우리 중등교육의 문제일텐데, 선생님은 우리 중등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아울러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으로 7차 교육과정의 뼈대를 새우는 책임자였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입시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김민남-우리 입시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골라내는, 즉 똑똑한 사람을 골라내는 선발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칙을 그냥 둔 채 선발제도를 바꾼들 무슨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손을 안대는 게 낫습니다. 따라서 이젠 성적이 아닌, ‘능력을 분류하는’, 곧 그 학생의 쓰임새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대학이든, 직장이든 사람을 선발할 땐 학업성취 정도만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쓰임새가 다 다른데 획일적 방식으로 선발하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사람이 갖는 개별적 능력 차는 다양하고, 또 그에 맞게 쓰입니다. 그런데 지금 입시는 단 몇 가지만을 보고 학생을 선발합니다. 소위 엘리트주의이지요. 이건 IQ검사나 다를 바 없어요. 실제 일부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IQ검사도 한다는데, 문제지요. 이래서는 대학교육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고, 사회적 발전이나 국가경쟁력도 없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능력에 따른 분류, 쓰임새에 따른 분류를 할 것인가 대해 초점을 두고 작업을 했습니다.
김용락-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그럼, 능력에 따른 분류의 구체적 방식은 무엇입니까?
김민남- 미리 말하자면, 이 문제는 종합 안을 만들어서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했습니다. 그 뒤 실현, 실천 가능성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지금은 본래 취지가 많이 퇴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류방식으로는 네 가지의 입학시스템을 구상했었지요. 첫 번째는 경로별 입시제입니다. 말하자면 학생 선발 시 해당 고등학교가 학교교육의 목표대로 커리큘럼를 짜고 거기에 맞는 교육을 했느냐가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실업계와 인문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가 진짜 실업교육의 목표대로 학생들을 길러냈다면 그대로 그 교육이 승계가 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반계 역시 대학진학을 했을 때, 진짜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업계를 예로 들자면, 현재 우리나라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그 같은 교육을 하는 학교가 몇이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농어촌학생들에 대한 특별전형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측면에선 이게 바로 농어촌학교를 다 죽이는 짓이지요. 일부 성적우수학생 중심의 교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데, 이는 애초 교육목표에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사회적 약자들도 대학을 갈 수 있는 입학경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과성적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그들의 목표에 맞추어 자기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신별 분류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신’이란 말은 일본식 용어라서 폐지했었습니다. 이 방식은 교사가 책임을 지고 학생을 평가하고, 일종의 학생 이력철인데, 이를 토대로 대학에서 선발하는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결과중심의 선발은 문제입니다. 아울러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듯이 학생도 교사를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사실 수능을 폐지하고, 3차 분류에서 수능을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했었는데, 잘 안됐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대학이 스스로 전공과 특성에 맞는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사정관’제도를 두자는 것입니다. 대학이 지금처럼 단순하게 행정적 절차에 의해서만 학생을 뽑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도 어느 정도의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대신 대학은 분명한 선발기준을 공개해야 합니다. 대학은 교육기관인 만큼 자기학교의 특성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해서는 각 대학만의 선발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김용락-. 최근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두고 고려대 학생들의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물리력 행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대학이 자본 앞에 본격적으로 무릎을 꿇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견해에서부터 다양한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김민남-우선 이 문제와 관련해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나는 민교협은 가만히 있는 게 좋다는 입장입니다.(당시 민교협 소속 교수 1백여 명이 고대학생 처벌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편집자 주). 같은 맥락에서 민노당 조승수 의원에 대한 구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이 역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경우든 편법은 안 된다는 것이지요.
고려대 문제의 경우, 대학에서는 항의도 하고, 액션도 취하고, 뭐 이런 게 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또 대학 아닙니까. 대학은 굉장히 자유로워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고려대 보직교수들의 행동은 참 우스꽝스런 짓이란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자면, 최근 경북대에 조갑제 씨가 강연하러 왔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가만히 있길래, 내가 수업시간에 한 마디 했다. 운동권 학생들이 조갑제 씨가 강연을 못하도록 방해하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항의한다는 피켓시위 정도는 해야 대학인데 그런 것도 없어요. 그렇다면 그게 뭐 대학입니까
김용락-그렇습니다. 항의도하고 비판도 하는 게 대학의 본령일텐데… 드디어 대구 경북대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학의 보수화를 이끌려는 것인지, 보수인사를 잔뜩 불러오고, 역시 지역정서라는 게 무서운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은 최근《삶과 공부》,《삶과 교직》,《삶과 교육》 등 교육에세이집 3권을 한꺼번에 출간하셨습니다. 말이 에세이지 굉장히 전문적인 내용도 있던데, 평소 교육관은 무엇이고 교육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민남-교육은 무지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혼자서 풀 수 없는 고통이 몇 가지 있는데, 무지의 고통도 그 중의 한 가지이지요. 이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선 사회적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사회가 그런 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지로부터의 해방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책임이고, 응당 사회비용이 지불돼야 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교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다음 경제적 능력이 된다면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데까지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실제 선진국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김용락- 어떤 사람이 바람직한 교직자입니까?
김민남-흔히‘좋은 부모 맡에 좋은 자식 난다’‘그 사람을 잘 파악하면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함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난 이 두 가지 고정관념이 공교육을 파손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일 뿐이지요.
교육은 가르치는 자가 가르치는 기술을 구사해서 배우는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역량을 높여주는 일입니다. 곧, 교육자는 가르치는 기술을 갖춰야 합니다. 이는 일종의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결과만 중시하는 지금의 ‘수업의 전문성’과는 엄격히 구별된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 교사의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은 소수의 학생만 혜택을 누릴 뿐입니다.
내가 말하는 선생님의 전문성이란 그런 게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기획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교육에 대해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목표가 반드시 성적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수의 개념을 배운 학생이 문제풀이에 서툴지만, 수를 통해 세상의 관계를 알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김용락-최근 교사평가제를 둘러싸고 교육계 뿐 아니라 사회적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민남-기본적으로 교사평가제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교육부의 안으로는 곤란합니다. 더불어 교사뿐 아니라 교육부나 시·도 교육청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원적으로 사회는 강자와 약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그렇듯이, 선생과 학생도 그런 관계이지요. 이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교사의 교육행위는 공개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신들도 평가를 받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이 문제는 사실 교육혁신위원 시절에 거론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비난만 실컷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김용락-제가 듣기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선생님으로 듣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교육을 통해 또 다른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성스런 일이면서 또 어떻게 보면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혹시 선생님은 교육자로서 특별히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는지요.
김민남-나보다 네 살 위인 사촌형이 있는데, 이 형을 마음속으로 존경하면서도 어려워했던, 즉 경원했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사리가 밝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는데, 나도 저렇게 돼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교육적으로 보자면, 미국 하버드대에 가 있을 때, 로렌스 콜버그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이 분을 통해 공부하는 것에 대한 전체적인 감을 갖게 됐습니다. 이 분의 수업방식은, 어떤 분명한 개념체계를 갖고 이슈마다 세미나를 하는 등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데, 바람직한 교육의 장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김용락- 흔히 대구를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도시라고 합니다. 또 불합리한 관행이라든지 고쳐야할 점도 있을 것 같은데, 대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나 개선해야 될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민남-언더그라운드 가수나 판토마임 하는 연극배우 한 명을 못 먹여 살리는 게 대구입니다. 지역사회의 민중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지도자들이 지도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 지역은 지도자가 잘 안 나오고, 지도자를 잘 모시지 않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것하고 보수적 경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제도권 속에서도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보수성이란 말을 씀으로써 지역을 더 망치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보수란 말은 안 쓰는 게 좋겠습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에 ‘인지적 부족함’이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타 지역과 비교하면, ‘단번에 해결하고, 간단히 처리하려는 경향성’이 농후한데, 이는 인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앞선 사람, 리더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로 살펴봐야 합니다.
김용락-아무래도 독자들이 궁금해 할 선생님 신상에 대해 좀 여쭤보겠습니다.
김민남-글로 절대 쓰면 안됩니다.(동시 웃음) 저는 1942년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김해이고, 딸 하나 아들 셋 4남매 중 셋 째입니다. 일곱 살 때 부친이 돌아가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많이 다녔지요. 부산에서도 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다녔는데 학교는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요. 부산에 이모가 살고 있어서 진주에서 그리로 이사를 했지요. 어머님은 평생 본인이 모셨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지나치게 자기주장이 없어서 남하고나 자식들하고 갈등이나 다툼이 없었던 분이에요. 평생 큰소리 한 번 치지 않으셨어요. 이 때문에 제가 어머니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못됐었구나 후회돼요. 우리 어머니는 학교를 많이 다녀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교양이 있는 분이셨어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지금도 너무 커요.
김용락-선생님은 경북대 출신으로 현재 경북대에서 교편을 잡고 계십니다. 부산에서 고교를 다녔는데 왜 경북대에 진학을 하셨는지요?
김민남-앞 서 언급한 사촌형 김수업 씨(경북대 사대 국어과 출신으로 전 경상대 교수를 거쳐 대구가톨릭대 총장 역임한 국어학자-편집자 주)가 당시 경북대에 다니고 있었던 게 계기가 됐지요.
김용락-언제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하셨는지요?
김민남-1970년 3월 대구교육대에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반 뒤, 그러니까 72년 유신 때 경북대로 발령을 받아 모교로 오게 된 것이지요. 이제 교직경력 35년 째입니다.
김용락-사범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중등학교에 발령을 받는데 선생님은 곧바로 대학으로 가셨는데 특별히 학자가된 계기가 있습니까?
김민남-대학 졸업 후 교사 발령이 부산으로 났는데, 발령 사실을 모른 채 교육청에서 주는 임명장에 신상기록을 하러가지 않아서 결국 발령이 늦어지게 됐습니다. 이후 군에서 제대한 과 친구가 부산으로 발령이 났는데, 교육청에서 그 친구에게 나에게 발령 취소장을 받아오면 대신 발령을 내주겠다고 해, 그 친구가 나에게 찾아왔기에 고민을 많이 했지요. 취소장을 쓰면 교직이 날아가는 판인데 쓰자니 그렇고 친구를 앞에 두고 거절하기도 그렇고 고민하다가 취소장을 써주었지요. 그래서 중고등학교를 어쩔 수 없이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공부를 했고 교대에 발령이 나게 됐지요.
김용락-날씨도 더운데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보유-김 교수는 자신의 이력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으로 비칠 만한 것에 대해서는 한사코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참고로 김 교수의 이력은 1969년 2월 경북대 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도미해서 1981년 브리검영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잇따라 하버드대학에서 포스트 닥 과정을 마쳤다. 대구참여연대 대표, (사)청소년 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이사장, (사)문화공동체 새벗 이사장을 지냈고, 2003년 7월 이래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선임위원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