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성지순례는 2박3일의 일정으로 경기도 한강변에 있는 세 곳의 성지와 강원도 가는 길에 있는 풍수원성당을 거쳐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바우골펜션에서 1박을 하고, 둘쨋날은 바우길 4구간인 사천둑방길을 걷기로 했다. 그동안 바우길은 네 번 걸어 봤는데 참 좋은 코스들이었고, 우리가 묵는 숙소도 아주 친절하고 편하며 음식 또한 정갈하고 맛있어 한 번 갔던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곳이다.
마지막 날에는 강릉시에 있는 성지 세 곳, 춘천시에 있는 성지 두 곳, 총 아홉곳의 성지를 순례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고 11분이 참여하였다.
8월 30일(토) 오전 9시에 연희동을 출발, 교대역에서 마태오 신부님 모친과 합류하여 첫 번째 순례지인 구산성지에 도착하니 10시 20분 경이었다. 마침 성지 안내봉사자가 있어 그분으로부터 성지에 관련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어 순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사지구 개발사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는 곳의 한 중심에 있는 구산성지 입구. 아파트 신축과 도로공사 등으로 인해 찾아가는데 조금은 어려움이 있었다.
정문을 통과하니 아름답께 꾸며진 화단 위에 성모 마리아상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 초대신부이셨던 고 길홍균 이냐시오 신부님이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를 알현한 후 서울대 김세중교수에게 의뢰하여 제작하였다고 한다.
구산성지는 김성우(안토니오)聖人외 여덟 분의 고향(故鄕)이고 묘소(墓所)가 있는 곳으로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을 간직하고 있는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성지이다.
이곳 뒷산이 거북 형상을 닮았다 하여 거북 구(龜)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구산 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한강변 미사리 조정 경기장 옆에 위치해 있으며, 카페촌으로도 유명하다.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387 - 10번지에 위치한 구산 성지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하여 박해시대에 많은 순교자가 탄생한 유서 깊은 성지라는 데서 교회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양반의 자제로 유복한 가정과 존경받는 가문에서 태어난 그가 신앙의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830년경. 경주 김씨 계림군파(鷄林群波) 15대 손인 김영춘의 맏아들로 정조 19년(1795년) 구산에서 태어난 그는 만집(萬集), 문집(文集), 두 동생과 함께 세례를 받고, 친척과 이웃을 입교시켜 구산을 지금의 교우 촌으로 만들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유방제 신부로부터 보례를 받고, 한동안 유방제 신부를 모시고, 회장직을 수행하며 온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으며, 1836년 모방(Maubant) 나(羅) 신부가 입국하자 자기 집에 모시고 우리말과 조선의 풍습을 가르치기도 하였다.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곳 구산에서도 그 여파가 밀려와 그는 공소의 회장으로서 사학(天主學)의 괴수로 지목되어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곤장과 치도곤을 맞으며 배교 하라는 재판관의 강요에 아무런 굽힘없이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오.』라는 말로 오늘날 우리의 심금을 찡하게 울리는 그의 굳은 신앙심을 표현한 명언을 남겼다.
성인은 다시 형조 감옥으로 이송되었으나,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안 관장은 결국 1841년 윤 3월9일(4월29일) 그를 교수형에 처하였는데 그 때 그의 나이 47세였으며, 옥에 갇힌 지 2년이 지난 시기였으며, 그의 유해는 후손들에 의하여 비밀리에 거두어져 이곳 구산 성지에모셔졌다고 한다.
성인의 굳은 신앙심은 결국 1925년 7월 25일 로마 교황청의 시복조사를 거쳐 『한국 79위 복자』위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국을 방문하신 교황 바오로2세에 의하여 한국 103위와 함께 성인으로 시성 되셨다.
이곳 구산 성지가 평화의 은혜가 충만한 이유는 성인과 순교를 모신 곳이지만 피 흘림의 순교지는 아니었다는데 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서울에서, 8인의 순교자들은 남한산성에서 순교하신 후에 이곳 구산에 모셔졌다.(출처 : 구산성지홈페이지)
묵주기도의 길. 옥돌로 만든 묵주알이 항아리에 올려져 있다. 묵주알 한알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어 묵주기도기도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구산성지는 서울에 소재한 성지 중 가장 작은 규모의 성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신앙선조들의 삶을 간직하고 있고, 주변 주민들을 위한 쉼터로 힐링공원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알차게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담장 뒤로 보이는 아파트군들. 성지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미사가 11시에 있는데 우리가 도착한 때믄 30여 분의 여유가 있어 성지안내봉사자께서 성지 곳곳을 함께 다니며 자세한 안내를 해주시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동상 앞에서 그분의 생애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 그리고 성인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박해시대에 신앙선조들은 이곳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삶을 영위하였다고 한다. 일부 논이 보존되어 경작되고 있다.
성지 오른쪽부터 시작해 성당 입구까지 십자가의 길이 이어져 있다.
옹기를 구워 내다팔기도 했다는 가마터이다. 보통 옹기가마는 산속이나 오지 등에 있는데, 이곳이 지금은 아파트촌 한 가운데 있어 의아하게 생각도 되겠디만 그 당시에는 그런 환경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에서부터 묵주기도의 길이 시작된다.
성지 안에서 바다다 본 성지 입구
성당으로 붙하는 안당문이다. 안당은 안토니오의 한자어 표기.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과 여덟 분을 모시고 있는 묘역
구산성당 입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잘 지어진 느낌이다.
기와 한 장 봉헌하는데 단 돈 만원. 거기에 지향하는 개인이나 가족의 이름과 기도문을 적는다.
순례를 마치며 11시 미사에 참례하였는데 주임신부님의 유럽여행기는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우리를 즐겁게 하였다.
첫댓글 샤워한기분이였습니다
행복한2박3일 이였어요
애써주신 동채님 마리데레사님 등등 모든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