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못믿겠다" 초등학생들도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찾는다. ⓒ미디어다음
ㅅ 초등학교 3학년 김모(9, 서울 송파구 오륜동)군은 오늘도 글짓기 학원에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책을 읽고 질문에 답하는 시험에서 만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군이 다니는 ㅊ 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정독하는 습관을 기르게 하기 위해 책 내용을 꼼꼼히 읽게 한다. 책 내용을 묻는 시험에서 한 문제라도 틀리면 학원에 남아 다시 한 번 책을 읽어야 한다.
김군의 어머니 이희영(42)씨는 “아이의 독서량이 적고 글쓰기와 맞춤법이 부족해 한 달에 12만원을 내고 글짓기 학원에 보내고 있다”며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긴 하지만 학원은 정교하게 짜여진 독서 목록을 통해 독서와 글쓰기를 종합적으로 가르치고 있어 더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글쓰기는 학교에서 글짓기반 활동만으로 충분히 배울 수 있었는데 요즘 학교에서는 글짓기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글쓰기 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저하되고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처럼 해결책을 공교육에서 찾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에 의존해 글쓰기를 배운다. 일부 학원에서는 입시 경향에 따라 '점수따기'용 커리쿨럼을 운영해 내실 있는 글쓰기 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글쓰기 배우러 학원 간다
2일 밤 서울 대치동 ㅈ 학원. 이 학원 원장 이모(33)씨가 ‘예비 고3’ 5명에게 ‘일본의 독도 영유권 논쟁’이라는 주제로 논술을 지도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문제는 너희들에게 정답을 제시하라고 낸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얼마나 자기 논리를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하냐, 이걸 보는 거야.”
이 학원 학생들은 학원에서 제작한 주요 대학 논술 기출 문제집을 주교재로 쓰며 수시로 제시되는 주제로 논술 연습을 한다. 수업 내용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문제 유형별로 대처하는 요령 위주로 구성된다. 가끔은 자기가 쓴 글을 놓고 토론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 학원의 강의 계획표를 보면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사, 철학, 문학, 한국사, 현대소설 등 모든 분야를 학습하고 있었다. 중문과 대학원생이 가르치는 한자 고사성어 수업도 병행한다.
이원장은 “우리 학원에만 원생이 200여 명에 달한다”라며 “당초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만 받으려고 했었지만 중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들까지 작문이나 논술 수업을 받을 수 없겠냐는 문의가 많아 추가로 강좌를 개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ㅎ고 2학년 정모(17)군은 “학교에서는 이런 수업 받을 기회가 전혀 없다. 중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께서 따로 신경을 써준 덕분에 글쓰기 연습을 좀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ㄱ고 2학년 이모(17)군은 “논술 실력이 갑자기 향상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학원 수업이라도 받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문장력은 학교 교육 기간에 충실하게 배양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이미 사회에 진출한 성인을 대상으로 이 능력을 높이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호주,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 잡는다
외국과 비교하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국의 경우 글쓰기 능력을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공교육내에서 글쓰기는 매주 중요한 과목으로 평가돼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별도의 정책(The National Literacy Strategy)을 수립, 시행하고 있을 정도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운’ 글쓰기가 창의력에 도움을 준다는 입장이었던 호주 공립초등학교는 3년 전부터 일기, 에세이, 논설문 등 글의 유형에 맞는 글쓰기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지도교사들이 학생들의 글을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꼼꼼히 점검해 지적해 준다. 글쓰기의 기초는 초등학교 때부터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것이 호주의 교육 방침이다. 공교육 차원에서 효율적인 글쓰기 교육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어 사실상 방치상태에 있는 우리와 큰 대조를 보인다.
서울교대 원진숙 교수(국어교육)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간 국어나 작문을 배우는 것을 감안할 때 글쓰기 능력이 저되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작문 교육이 대개 글쓰기에 대한 피상적인 이론이나 지식만을 가르쳐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인제 전 실장은 “대학입학에 논술이나 심층면접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학교 교육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필요가 없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 사교육 시장만 번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단기간에 반복 훈련을 받아 도식적인 글만 쓰게 하는 사교육은 글쓰기 실력 향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입학 시험에 논술 고사를 도입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대학생들이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공교육 내에서 체계적인 글쓰기 시스템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어와 작문 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 미국에서도 1980년대 literacy의 하락으로 클린턴이 국가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교사평가제 운운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literacy향상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여기엔 사회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돈의 흐름을 아는 실무자 등이 참여해서 짜야 하는데 여기엔 많은 시간과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상당기간동안의 리서치 뿐만이 아니라. 장관이 바뀌면, 뭘 초반기에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지, 꼭 이런 식이다. 어느 한 정권에서 '초'를 잡으면 계속 일관성있게 연구성과를 쌓아 나간 다음 그것을 기초로 프로그램을 짜야한다. 우리교육이 언제부터 망가졌나? 얼마 전에 망가진 것이 아니다.
글쓰기교육은 '표현의 문제'와 연관되어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 교사평가제가 아니라, 교사 재교육 프로그램이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초중고의 교사 뿐이랴?
* 우리나라 학원가는, 100%는 아니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많이 가르치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령, 학교와 학원을 '절합'시킬 수는 없을까?
* 우리나라 관료들은 확실히, 타자 입장에서 문제를 풀 줄 모른다.
* 교육프로그램은, 교육학자들과 관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 기존의 유명무실한 학술원 폐지하고, 정말 깊이있는 '국가고등교육아카데미'를 만들어, 지금 이것이 있다면 그것도 폐지하고, 대통령 산하에 두고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