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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1
9,1-5 본문
하느님의 선택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9,1-5)2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말합니다. 나의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를 증거하듯이3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2그것은 내가 아주 슬퍼하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4 3나 자신은 혈통으로5나의 동족6인 나의 형제들을 위해서 기꺼이 저주받아7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4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8입니다. 그들에게 양자 신분9과 영광10과 계약들11과 율법제정12과 경신례13와 약속들14이 속합니다. 5그들에게 성조들15이 속하고, 그들에게서 인간적 출신에 따라16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양받으소서.17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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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바울로는 하느님의 의로움이 율법을 통해 실현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로마서 3장과 5장과 8장에서 논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계약의 백성이 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율법에 의한 의화를 고집하는데 어떻게 의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바울로는 고심했다. 혹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의화의 원리라는 바울로의 복음 선포는 당연히 유대인들의 반대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복음을 거절하는 유대인들의 구원 문제를 로마서 9-11장에서 논한다. 그들을 선택하신 하느님은 끝까지 자비로우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이용하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질투하게 하심으로써 유대인들을 최종적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2. 바울로는 로마서 9,1-5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9,30 이하에서 명시한 대로 예수 메시아를 거절하는 자기 동족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걱정하면서 슬픔과 고통을 감추지 못한다. 바울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들이 받을 하느님의 심판이라도 대신 받을 용의가 있을 만큼 그들의 운명을 걱정했다. 그가 이렇게 비통에 잠긴 것은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특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일곱 가지 역사적 특혜를 받았다. 그것은 아들 신분과 영광과 계약들과 율법제정과 경신례와 약속들과 성조들이다(9,4-5). 그들에게서 메시아가 나신 것은 여덟번째 특혜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화를 배척하고 첫 일곱 가지 특혜에만 집착했다. 3. 로마 2,15 참조. 4. 직역하면 "내게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5. 직역하면 “육에 따라”. 로마 1,3; 4,1;9,3. 6. 로마 16,7.11.21. 7. "저주받다”라는 말은 성스러운 영역에 접근할 수 없는 금기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레위 27,28; 민수 21,3; 신명 7,26; 여호 6,17;판관 1,17). 이 말은 바울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내린 단죄의 말(1고린 16,22)로서 그리스도의 사랑(로마 8,35-39)을 받지 못하고 하느님의 진노를 받는 것을 뜻한다. 8.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조 야곱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으로서(창세 32,28) 유배 이후 유대인들의 존칭이 되었다(이사65,9.15.22; 집회 17,17). 바울로는 유대인들이 아직 이 존칭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9. 참조: 출애 4,22; 예레 31,9;신명 1,31; 8,5; 14,1 10. "영광”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권능을 띠시고 당신 백성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은 그들을 에집트에서 해방시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출애 15,6.11), 사막을 횡단했을 때(16,10;40,34), 시나이 산 위에서(24,16), 예루살렘 성전에서(1열왕8,11)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11. 하느님은 노아(창세 6,18; 9,9), 아브라함(15,8; 17,2.4.7.9), 이사악(26,3-5; 출애 2,24), 야곱(2,24), 이 세 성조들(6,4-5; 레위26,42), 모세(출애 24,7-8; 집회 44,12.18), 다윗(2사무 23,5)과 계약을 맺으셨다. 12. 출애 20,1-17;신명 5,1-21. 13. 출애 25-31. |
9,6-13 본문
하느님의 약속과 자유로운 선택(9,6-13)18
6 그러나 그것은 마치 하느님의 말씀이 무위로 끝난 것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19이스라엘의 태생이라고 해서 이들이 모두(참된) 이스라엘20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7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21이라고 해서 모두 그의 자녀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사악을 통해서 네 자손이라 불리리라.22 8 즉, 육의 자녀23가 하느님의 자녀24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9 약속의 말씀은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에 내가 다시 오겠고, 사라에게는 한 아들이 있으리라.25 10그뿐 아닙니다. 리브가가 한 남자 곧 우리 아버지 이사악에 의해 자식들을 임신했을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11심지어 그들이 아직 태어나기 전, 선한 것이나 악한 것을 행하기 전, -하느님 선택의 목적이 존속하도록,26 12행위 때문이 아니라 (야곱을) 부르시는 분 때문에27 ㅡ그녀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놈이 작은 놈을 섬기리라.28 13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 대로입니다. 야곱은 내가 사랑했지만 에사오는 내가 미워했다2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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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4. 하느님은 아브라함(창세 12.2; 13,14-17; 15,4; 17,4-8.16.19; 21,12; 22,16-18). 이사악(26,3-5), 야곱(28,13-14). 모세(신명18,18-19)와 다윗(2사무 7,11-16)에게 약속을 하셨다. 15. 성조들은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을 지칭한다. 16. 직역하면 "육에 따라서". 17. 이와 달리 번역할 수도 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하느님은 영원히 찬양받으소서.” 18. 일곱 가지 특혜(로마 9,4-5)를 받은 이스라엘이 신앙에 의한 의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느님 약속의 말씀이 무위로 끝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상정된다(9,6). 바울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 이사악, 이사악과 리브가의 아들 야곱의 경우를 인용한다. 바울로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태생, 아브라함의 자녀와 그의 후손을 구별한다. 구원의 약속을 상속받는 이들은 신체적으로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난 자손(이스마엘)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 사람(이사악)이다. 또한 이사악과 리브가의 자식들 중에서 에사오가 아니라 야곱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 하느님은 이스마엘과 에사오를 제쳐놓으시고 이사악과 야곱을 출생 이전부터 선택하심으로써 구원의 약속에 있어서 절대주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바울로 시대의 유대인들도 성조들의 경우와 같은 방법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약속은 이렇게 무위로 끝나지 않는다. 19. 로마서 9.6a는 하느님이 복음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로부터 구원의 약속(9,4-5)을 철회하시는가(11,1 참조)라는 질문을 전제한다. 20.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종족의 뜻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로마 9,4.27.31; 10,19.21; 11.2.7.25; 1고린 10,18; 2고린 3, 7.18; 필립 3,5). 로마서 9,5에서는 바울로가 혈연상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는 자들("이스라엘 태생")이라고 해서 모두 다 참된 이스라엘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구원약속은 출신이나 혈연상으로 이 백성에 속하는 자들("이스라엘 태생")에게 무조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로마 9,6)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11,26; 참조: 2,28). 그들이 참된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자녀로서 하느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을 상속받는다. "하느님의 이스라엘”(갈라 6,16)이라는 말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가리킨다. 21. 직역하면 "아브라함의 씨". 아브라함의 자손들로는 이스마엘(창세16,15)과 이사악(21,2) 이외에도 게투라에게서 태어난 여섯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사악만이 하느님의 약속에 따라 태어난 아들이다. 이 약속은 이사악을 통해서만 전달된다(21,12). 이런 뜻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해서 다 하느님의 구원약속을 상속받지 못한다. 22. 칠십인역 창세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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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18 본문
파라오의 완고함을 통해 당신의 자유와 주권을 드러내신 하느님 (9,14-18)31
14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32하느님이 불의하십니까?33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15그분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기는 이는 누구나 다 불쌍히 여기겠고 내가 가엾게 여기는 이는 누구나 다 가엾게 여기겠다.34
16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35 17성경이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내가 너를 일으켜 세웠는데 이는 내가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여주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36
18그러므로 그분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이는 누구 나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이는 누구나 완고하게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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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23. "육의 자녀"라는 말은 혈연에 의한 신체적 후손을 뜻한다. 24. "하느님의 자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로마 8,21). 25. 창세 18,10.14. 26. 로마 11,5-6.28. 27. 리브가가 에사오와 야곱을 쌍둥이로 낳았는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둘째아들 야곱이 이사악을 상속했다. 28. 창세 25,23(칠십인역). 29. "미워했다"라는 말은 하느님이 에사오보다 야곱을 더 사랑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법이다(참조: 창세 29,30-31; 루가 14,26의 "미워하다"를 마태 10,37의 "더 사랑하다”와 비교해 보라). 30. 말라 1,2-3. 하느님이 에사오를 선택하지 않고 야곱을 더 사랑하시어 당신의 구원약속이 지속하게 하신 것은 당신의 절대적 자유에 의거한 것이다. 31. 당신 백성들을 에집트로부터 구원하신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신다면 그분은 정의롭지 못한 분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은 인간적 기준으로 행동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선택과 약속을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창조주 하느님의 자비와 절대적 자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당신의 구원계획을 가로막는 파라오의 완고한 고집(출애 3,10-12,36)을 이용하심으로써 보여주신 당신의 절대주권으로 입증된다. 32. 하느님의 약속과 자유로운 선택이 그러하다면(로마 9,6-13)그분이 불공정하시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33. 직역하면 "불의가 하느님 편에 있습니까?" 34. 출애 33,19(칠십인역).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겨 그분께 불충실했지만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셨다. 그것은 하느님이 자비를 베푸심에 있어서 절대자유를 행사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35.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것은) 원하는 자나 달리는 자에게 (달려있지) 않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36. 출애 9,16(칠십인역). 하느님은 파라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이용하시어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셨다. 그의 고집은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고 그분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도구가 되었다. |
9,19-29 본문
하느님의 자유와 도공의 비유, 하느님의 진노와 자비(9,19-29)37
19 그래서 당신은 내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왜 그분은 아직 꾸짖으시는가? 과연 그분의 뜻을 (도대체) 누가 거역했는가?3820 아, 인간아! 하느님께 말대꾸하는 당신자신은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왜 당신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39라고 말하겠습니까? 21 혹은 도공이 같은 흙덩이를 가지고 어떤 것은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다른 것은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까?40 22하느님은 진노를 보이고 당신의 권능을 알리기를 원하셨지만 파멸을 위해 만들어진 진노의 그릇들41을 큰 인내로써 참으셨다면42(어떻다는 말입니까?) 23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영광을 위해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43을 위해 당신 영광44의 풍부함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24그분이 유대인들 가운데서뿐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부르신 우리를 (위해서) 25과연 그분이 호세아서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겠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 여인을 "사랑받은 여인"이라 부르리라.45 26그리고 그들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리라.46
27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관해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아들들의 수효가 바다의 모래와 같다면 (그들 중의 ) 남은 이가 구원받으리라. 28주께서 말씀을 땅 위에 엄정하게 그리고 신속히 실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47
29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같이,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한 자손을 남겨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었을 것이고 고모라와 같은 꼴이 되었으리라.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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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37. 하느님이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이용하신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진노를 내리시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바울로는 절대적 자유를 행사하시면서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도공의 비유를 이용했다. 흙덩이가 도공에게 제작 결과를 두고서 항의할 수 없듯이 피조물인 사람도 창조주 하느님께 불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이용하시어 새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두고서 유대인들은 아무런 항변을 할 수 없다. 하느님은 그리스도께 회개하지 않는 "진노의 그릇들”인 유대인들을 참아주시는 동안 회개하는 "자비의 그릇들”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현존 속에 사는 특혜를 베푸신다. 하느님이 이방인들의 선택과 구원받을 이러한 "남은 이"에 관해 이미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러한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행위에 대해 불평할 수 없다. 38. 하느님이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의 고집을 이용하신다면 왜 그를 나무라시는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그러나 아무도 약속의 상속인을 선택하심에 있어서 절대적 자유를 행사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39. 이사 29 16(칠십인역 ). 40. 예레 18,3-6; 참조 이사 29,16; 45,9; 64,7;애가4,2;지혜 15,7. 41. 예레 50.25. "진노의 그릇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결정적 심판을 받을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다. 42. 하느님은 세말의 심판에서 당신의 진노를 입증하기 위해 참으신다(로마 3,25-26). 하느님의 인내(9,22)는 2,4의 경우와는 달리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기 위함이 아니라 세말의 결정적 단죄를 뜻한다. 43. "자비의 그릇들"(로마 9,23)은 세말의 영광을 받도록 예정된 이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로서(9,24) 복음을 통해 약속의 상속인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44. 로마 3,23.29. 45. 참조: 칠십인역 호세 2,25(히브리어 호세 2.23; 1,9. 호세아의 이 예언은 북왕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림으로써 계약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그분의 사랑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46, 칠십인역 호세 2,1(히브리어 호세 2,23; 1.10). 바울로는 이 예언을 하느님이 이방인들을 부르신 것에 적용했다. 하느님은 당신을 찾지 않은 이방인들(로마 10,20; 이사 65,1; 9,30)을 복음으로 부르시어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을 부여하신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그분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그분의 자녀가 된다. 47. 직역하면 "주께서 법령을 성취하시고 갑자기 끝내시면서 땅에서 실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이사야 10,23을 28,22b와 혼합해서 로마서 9,28에 적었다. 이사야는 아시리아 유배에서 면제된 이들을 "남은 이"라고 명명했는데, 바울로는 그의 예언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했다. "남은 이"(로마 9,27)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당신 구원의 약속을 실현하신다. 48. 이사 1, 9(칠십인역).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남은 이들"을 남겨주셔서 당신의 구원 약속을 상속받게 하지 않으셨다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멸당한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창세 19,24-25)에 처해졌을 것이다. |
9,30-33 본문
이스라엘은 의로움에 이르지 못하다(9,30-33)49
30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의로움을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들이 의로움. (즉) 신앙을 토대로 한 의로움을 획득했습니다.5031 그러나 의로움의 율법51을 추구한 이스라엘은 율법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32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을 토대로 해서가 아니라 마치 행위를 토대로 하여 (의로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여기고서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52 33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 대로입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걸림돌과 쓰러뜨리는 바위를 놓는다. 그리고 그를 믿는 이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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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49.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의로움의 토대인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율법 준행에 의한 의로움을 고집하여 그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뜻으로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셨다. 그들과는 반대로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로움에 다다랐다. 50. 로마 3,22; 10,6.20; 갈라 2, 16; 3,24; 필립 3,9. 51. "의로움의 율법"이라는 말은 율법을 통해 의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9,32). 52. 직역하면 "그들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로 뛰어갔습니다”. 걸림돌은 그리스도가 율법이 추구하는 의로움을 실현하시어 율법의 목적이시라(로마 10,4)는 복음을 가리킨다. 이 복음이 율법 준행에 의거한 의화를 추구한 유대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한다. 53. 바울로는 칠십인역 이사야 28,16과 8,14를 혼합해서 로마서 9,33에 인용했다 이사야 28,16에서는 야훼께서 시온 산 위에 놓으신 돌은 모퉁잇돌로서 구원을 상징한다. 8,14에서는 하느님이 당신께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걸림돌이시다. 그리스도는 신앙에 의거한 의로움을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을 상징하는 모퉁잇돌이시지만 율법에 의한 의로움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 즉 장애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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