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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들에게 약 5만 년 전 지구 기후가 급변하여 대빙하기의 재앙이 닥쳐왔다. 약 5만 년 전~1만 5천 년 전 ‘최후의 빙기’에 북위 약 40도(한반도의 신의주 통과선, 중국의 북경 통과선) 이북의 유라시아 대륙은 동토凍土가 되어, 그 이남의 ‘동굴’ 지대로 피한避寒해 들어간 극소수 구석기인 외에는 동토의 구석기인은 거의 모두 사멸했다. |
북위 40도 이하의 동아시아에서 석회암동굴이 가장 많은 古한반도의 동굴 시대에는 기족 구석기인들과 피한해 온 구석기인들이 합류했다.
북위 약 40도 이남의 古한반도 ‘구석기인’도 동굴 속에서 겨울에는 혹한에 떨면서 굶주림과 질병과 싸우고, 봄, 여름, 가을에는 동굴
근처 강변과 들판에서 어로, 사냥, 채집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과의 생존투쟁을 계속했다.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북중국 지역에서 발견되는 구석기 유적이 구석기인들의 이러한 상태를 알려준다. 이러한 구석기인들은 인류, 인종이었지만 홀로세(Holocene)의 현생인류現生人類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약 1만 2천 년 지구의 기후, 기온이 온난해져서 지금과 비슷한 기후, 기온이 조성된 후, 동굴 주거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구석기인들이 동굴 밖으로 나와 따뜻하게 변화한 지구의 기후, 기온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 시대를 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주로 동굴 주변의 강변과 해안에서 마제석기와 토기를 용구로 제작하여 사용하면서 가족과 씨족과 부족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이며 그들을 ‘신석기인’이라고 부른다.5)
古 한반도 동굴에서 나와 형성된 초기신석기인들은 후에 ‘밝’족이라 불렸는데, 그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식량부족 문제였다. 이에 그들은 바로 농업경작을 시도하여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인구증가로)식량이 부족하자, ‘밝’족 가운데 한반도에 그대로 남은 ‘한’부족 이외에, (전에는 동토였다가 이제는 농경이 가능하게 된)북위 40도선 이북이 지역으로 씨족, 부족 이동이 시작되었다.
古한반도 신석기인의 이동은 한반도에 그대로 정착한 ‘한’족 이외에 세 갈래로 진행되었다. 압록강을 넘어 요동반도와 대요하의 동쪽으로 이동하여 형성된 부족이 ‘예濊’족이었고, 요하 서쪽으로 이동하여 형성된 부족이 ‘맥貊족’이었다. 섬이었던 산동山東이 지형 변화로 대륙과 연륙되고 중국 동해안이 새 간척지로 되자, 산동반도와 새 간척지로 이동한 사람들은 후에 중국에서 말하는 동이東夷족
이 되었다.
古한반도에 그대로 남은 ‘한’족이나, 북위 40도선을 넘어 동북으로 이동하여 형성한 ‘예’족이나, 서북으로 이동하여 형성된 ‘맥’족이나, 산동반도와 중국 동해안 새 간척지로 이동한 ‘동이’족이나, 그 원류는 모두 ‘古한반도 초기신석기인’(후에 ‘밝’, ‘밝달’, ‘발’인으로 호칭)이었다.
신석기시대부터는 인종을 절멸시키는 결정적 자연재해가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와 남만주 지역의 신석기인들은 인종으로서의 ‘한국인’의 직계 조상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한국민족’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민족’이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古한반도 신석기인들이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에 성공하고 청동기 제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 B.C. 30세기~B.C. 24세기에 古한반도에서 동아시아 최고의 고대국가인 고조선 국가가 형성된 시기부터다.
신석기시대에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확산 발전된 ‘한’족과, 신석기시대에 대릉하 유역으로 이동하여 형성 발전한 ‘맥’족과, 신석기시대에 요동반도와 송화강 유역에 이동해서 형성되어 발전한 ‘예’족 등 3부족이 古한반도에서 ‘한’족의 주도로 연맹, 결합하여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개국하고 ‘한국원민족(고조선민족)’이 형성된 것이다.6)
고조선은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로서 B.C. 30세기~B.C. 24세기에 건국되었으며, 고고 유물을 접어두고 고문헌 기록만 보아도 B.C. 24세기(B.C. 2333년경)에 건국된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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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은 한반도에서, 그리고 한반도와 만주에서 자생自生하여 형성된 것이지, 카프카스 지방, 바이칼 지방, 알타이 지방, 몽골지방, 시베리아 지방, 고 중국 북부 지방에서 이입, 이동해 들어온 민족이 아니라 도리어 古한반도(및 만주)에서 형성되어 북방과 서방으로 이동, 이입해 들어간 것이었다.7)
한국 원민족은 한반도에서 형성된 후 B.C. 21세기경부터는 만주, 요동, 연해주와 서북방인 요서, 동부 내몽고 지방으로 더욱 급속히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5) 임효재 편저 《한국 신석기문화의 전개》(학연문화사, 2005 참조)
6) 신용하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지식산업사, 2010 참조)
7) 중국 사회과학원이 최근(2002~2006년) 실시한 소위 ‘동북공정’에서 정립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古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주장은 전혀 ‘진실’이 아니고 ‘거짓’이며 ‘허구’이다. 고조선이 건국된 B.C 30세기~24세기에 古중국에서는 아직 고대국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 ‘하夏’나라는 동북공정 추진자들이 최대로 끌어올려도 B.C. 21세기(B.C. 2070년)에 개국되었다고 ‘동북공정’이 스스로 결론짓고 있다.
B.C. 20세기에 고조선은 강대한 고대국가로서 만주 및 중국 난하 유역과 산동반도까지 진출했었는데, 하夏나라는 산동반도에 진출한 고조선 이주민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아직도 소국小國 단계에 있었다. 어떻게 수백 년 먼저 건국하고 강대한 고대국가 고조선이 수백 년 늦게 건국하고 약소한 고 중국 하나라의 지방정권이 될 수 있겠는가. 동북공정의 고조선관은 어불성설이며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
고조선 문명 조감도鳥瞰圖
고조선 국가 형성을 주도한 ‘한’족은 동아시아 최초로 ‘단립벼’ 재배와 경작을 시작한다. 농업 경작은 처음부터 햇빛(태양광선)과 기후, 기온에 크게 좌우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태양숭배가 매우 일찍 형성됐다. |
▲ 고조선의 태양숭배와 신앙
한족의 태양숭배는 고조선 국가와 고조선 문명 형성 후에는 전국과 전체 고조선문명권에 광범위하게 보급, 수용되었다. 고조선문명의 태양숭배는 신석기시대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의 태양 조각에서부터 시작하여 청동기의 태양무늬에 이르기까지 그 증거 유물, 유적을 광범위하게 남기고 있다.
고조선문명의 태양숭배는 태양이 있는 하늘숭배에 연결되어 ‘태양 = 하느님’ 숭배의 사상과 양식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고조선 문명의 사회사》(신용하, 지식산업사, 2018)
한족이 주도하고 한, 맥, 예 3부족이 결합하여 B.C. 30세기∼B.C. 24세기 고조선 국가를 건국한 후 건국시조 단군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건국시조에 대한 숭배는 고대의 정치적 통합 방책으로 전국의 고조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형성, 보급되었다.
개국시조 단군이 서거하자 고조선인들은 단군이 사망하여 하늘로 승천했거나 명산의 산신으로 되었다가 승천한 것으로 설명하였고 그렇게 믿었다. 이에 단군을 자기 민족의 조상임과 동시에 개국시조로 신앙하는 ‘단군숭배’가 형성되었다. 여기서 기존의 태양 = 하느님 숭배와 단군숭배는 구심점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조선에서는 본래 제왕을 ‘한’이라고 호칭했다. 그 초대 제왕은 단군이었으므로, 한족 계열의 고조선문명권 남방에서는 조상신이 된 개국시조 ‘한’(단군)이 승천하여 계신 하늘을 ‘한울’(‘한’의 집, 전당)이라고 사유하여 ‘한울 = 하늘 = 하느님’을 숭배하는 신앙이 되었다.
북방에서는 단군이 승천하여 계신 하늘을 ‘단(조상, 시조신, 단군)이 계신 전당, 굴’ = 단굴이라고 생각하여 ‘단굴숭배’ 신앙이 동일하게 형성되었다. ‘태양 = 하느님[天] = 단군 = 단굴’ 숭배가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어 고조선문명의 신앙의 특징이 된 것이다.
이에 고조선문명권에 속한 후국 부족들과 원민족들은 단군(단굴) 숭배와 ①단군 ②그의 조상 환웅 ③환인(하느님)의 3신을 숭배하는 고조선의 신앙인 삼신교(三神敎 또는 神敎)를 믿음으로써 종교와 신앙의 공동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삼신교三神敎와 단군檀君 신앙
태양숭배를 기반으로 하여 고조선 건국 후 성립된 삼신교와 단군신앙은 환인, 환웅, 단군의 3신을 숭배하는 신앙이다.1)
삼신교와 단군신앙에 의하면,환인은 하느님[上帝]에 해당된다. 환웅은 하느님(환인)의 아들로 하늘궁전에서 태어나 홍익인간弘益人間 하고 재세이화在世理化 하라는 소명을 갖고 지상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신인神人[天王]이다. 단군은 지상에서 환웅의 아들로 태어나서 나라를 세워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원리로 백성을 교화시켜 준 지상의 인간 왕검王儉[天帝]이다.
고조선 사람들은 단군왕검 서거 후 단군의 신령이 산으로 들어갔다가 승천하여 하늘궁전에 올라가서 하늘에 계시다고 믿고 설명하고 생각하였다. 이에 고조선 사람들은 3신을 대표하여 하늘궁전에 승천하여 계신 ‘하느님 단군’을 조상신祖上神으로 숭배하는 종교와 신앙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단군신앙에서는 하느님(환인), 환웅, 단군은 3위 1체의 하나로 통합되어 단군이 곧 하느님이요 하느님이 곧 단군으로 신앙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조선문명권에서는 아예 단(Tan, Dan)을 하느님, 한과 동일한 용어로 사용하였다.2)
삼신교와 단군신앙에 의하면 하느님 단군은 푸른하늘[靑天] 가장 높은 곳 하늘궁전[天宮]에서 지상의 후손들(고조선, 고조선문명권 사람들)과 모든 일간을 굽어 살피시면서 후손들과 모든 인간을 항상 보호하고 도와주며 치유해 주신다.
삼신 뿐 만아니라 삼신의 부인이신 ‘삼신할머니’는 후손의 잉태, 출산, 양육(독립할 때까지), 건강을 점지하고 보살펴 주신다고 삼신교에서 믿었다.
삼신교와 단군신앙의 교화의 원리는 ①홍익인간 ②재세이화 ③‘단군 8조’에 그 특징이 요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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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朴殷植 《韓國痛史》, 《朴殷植全書》(단국대동양학연구소), 상권
2) 고조선문명권에서 ‘한’족 계열은 ‘하느님’을 ‘한’으로 발음하고, ‘맥’족과 ‘예’족 계열은 ‘단’, ‘탄’으로 발음하여 표기하는 경향이 보였다. 몽골과 고대 한족漢族 계열에서도 ‘하늘’을 ‘탄’, ‘단’으로 발음하였다. ‘商’족이 만든 한자 ‘天’도 고대에는 ‘ten', 'tien'이었다.
▲홍익인간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문자 그대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원리원칙이다.
홍익인간의 내용을 분절해 보면, 여기서 ‘인간’은 신분과 성별을 초월하고 종족을 초월한 ‘모든 인간’을 의미한다. 고조선 사회는 최초
의 신분제 사회였으므로 왕족, 귀족, 평민, 천민의 신분 분화와 차별이 발생하였다. 또한 고조선 국가와 고조선 문명권은 여러 부족들과 원민족들로 구성되었다. 홍익인간의 ‘인간’은 신분차별, 남녀차별, 부족 차이를 초월한 ‘모든 인간’을 모두 한 가지 곧 하나로 보아 보편적으로 이롭게 한다는 뜻이었다.
한편 ‘홍익弘益(널리 이롭게 한다)’의 내용은 ‘생활의 모든 부문을 모두 이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고조선 당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재해(가뭄, 홍수, 폭설, 기후변화 등)와 사회 환경(가난, 질병, 전쟁, 폭력, 싸움 등)으로부터 모든 인간을 보호, 부양, 구제, 치유 등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즉 ‘홍익’은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줌을 의미하였다.
▲ 재세이화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문자 그대로 ‘세상世上에 있으면서 이치로 교화한다’는 원리원칙이다.
재세이화의 내용을 분절해 보면, ‘이화理化’는 폭력과 무력과 전쟁과 억압과 갈등과 강제로 교화하지 않고 조화와 화합과 평화와 이치와 교육과 설득으로 교화함을 뜻한다. 재세이화를 때로는 이화세계理化世界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주변 환경인 세계에 조화롭게 적응하면서 이치로 교화한다는 동일한 의미였다.
한편 ‘재세在世’는 환웅에게는 ‘인간세계에 내려가 있으면서’의 뜻이 되지만, 이미 지상에서 출생한 단군에게는 ‘주위 환경인 인간세계’ 즉 ‘국가와 사회’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합쳐보면, 이것은 단군의 정치이념일 경우에는 “모든 백성을 차별 없이 모든 부문에서 이익이 되는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고, 폭력과 강제가 아니라 조화와 설득과 동의로 백성을 교화시킨다”는 원리원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을 삼신교, 단군신앙의 종교이념으로 볼 경우에는 하느님, 단군은 푸른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이익이 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마련해 주시고, 세상을 평화롭게 조화의 이치로 교화시켜주시니” 그의 교화를 따르자는 원리원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군8조
단군의 신앙적 교훈으로 8개 조목이 구전되어 오다가 17세기 이후, 다음과 같은 요지로 채록된 것이 있다.3)
〈단군8조〉
제1조 하느님을 유일신唯一神으로 섬겨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의 조상신祖上神이시다.
제2조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
제3조 어버이에게 효도해야 한다.
제4조 부부, 남녀 사이에 화합해야 한다.
제5조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한다.
제6조 서로 양보하고 빼앗지 말며, 공동으로 노력하고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제7조 사납고 오만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며, 하늘규범을 존중하고 사물을 사랑해야 한다.
제8조 위태로움에 빠진 약자를 돕고 신분이 낮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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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애노인北崖老人 : 《규원사화揆園史話》(17세기), 김교헌金敎獻:《신단민사神壇民史》(1904), 《신단실기神壇實記》(1914), 박은식 : 《단조사고檀祖史攷》(1911,백암박은식전서), 대종교총본사大倧敎總本司 : 《대종교중광육십년사》(1971)
심신교와 단군신앙은 고조선 국가의 국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조선문명권 전체에 전파, 보급되었고, 고조선 고대연방국가 해체 후에는 서변 후국들의 서방행렬의 민족이동에 따라 중앙아시아와 발칸반도 일부에도 이동 전파되었다.
▲단군신앙의 성역 소도蘇塗 별읍 설치
조선에서는 천군天君이 삼신교와 단군신앙의 종교의식과 제사를 담당하고, 소도蘇塗를 설치하여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한족漢族의 고문헌에는 ‘진辰과 삼한三韓 지역에서는 국읍國邑에 각각 천신天神에 제사를 주재하는 책임자를 두는데 이를 천군天君이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한(54개국), 진한(12개국)의 각 소국에는 별읍別邑을 두어 소도蘇塗라고 불렀는데,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천신天神을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4)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韓조, 《후한서》, 《진서》 등에는 진국(辰國, 韓)의 소도蘇塗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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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三國志》 卷30, 魏書 東夷傳, 韓條 《後漢書》 卷85, 東夷列傳, 韓條 《晋書》 卷 97, 東夷列傳, 馬韓條
①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國邑에 각각 한 사람씩 세워서 천신天神의 제사祭祀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으니 그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소도)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다른 지역에서)그 지역으로 도망 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아니하므로 도둑질한 자도 (숨기)좋게 하였다.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浮屠와 같으나 행하는 바의 좋고 나쁜 점은 다르다.”5)
② “여러 국읍國邑에는 각각 한 사람이 천신天神의 제사를 주재했는데, (그 사람을)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소도蘇塗를 만들어 거기다가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6)
③국읍國邑에는 각각 한 사람을 세워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를 주재하게 하는데, 그를 천군天君이라고 부른다. 또 별읍別邑을 설치하여 그 이름을 소도蘇塗라고 하는데, 큰 마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단다. 소도蘇塗의 뜻은 서역西域 의 부도浮屠와 흡사하지만 행하는 바의 좋고 나쁜 점은 차이가 있다.”7)
여기서 천신天神은 단신檀神과 동일하며, 단군=하느님을 한문자로 의역한 것이다. 이것은 후국들에서 단군숭배 신앙이 제도화되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
소도蘇塗는 그 내용을 볼 때 ‘큰 나무를 세우고’라고 했으므로 솟대의 한자 음역으로 추정된다.8) 《삼국지》등에서 소도蘇塗를 별읍
의 명칭으로 기록한 것은 솟대[蘇塗]가 있는 별읍別邑, 즉 소도별읍蘇塗別邑의 약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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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三國志》 卷30, 魏書 東夷傳, 韓條
6) 《後漢書》 卷85, 東夷列傳, 韓條
7) 《晋書》 卷 97, 東夷列傳, 馬韓條
8) ①孫晉泰:〈蘇塗考〉,《朝鮮民族文化의 硏究》(을유문화사,1947) ②金貞培:〈蘇塗의 정치사적 의미〉,《歷史學報》제79집(1978), ③金杜珍:〈三韓 別邑社會의 蘇塗 신앙〉,《한국 고대의 국가와 사회》(1985)
고조선 사람들은 개국시조 단군(檀君, 天王)이 별세하자, 승천昇天하여 천신天神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단군신檀君神을 천신天神이요 조상신祖上神으로 생각하고 숭배했으므로 이 때의 천신天神은 단군신檀君神이었고, 고조선 문명권에서 공동으로 숭배한 단군(Tangun, Dangun), 단굴(Tangur, Dangur)이었다고 해석된다. 그들의 종교는 신교神敎, 삼신교三神敎 였다.9)
고조선 후국 진辰, 한韓지역 국읍國邑에서는 후국 군주 아래에 천신天神, 檀君神, Dangun)의 제사를 주재하는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을 두었고, 여러 소국들에는 솟대를 세운 별읍別邑을 두어 천신天神(檀君神)을 제사함과 동시에 천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식을 담당케 했음을 알 수 있다.
소도별읍蘇塗別邑은 신성시되어, 도망자가 이 별읍에 들어가면 다른 소읍小邑들에서 추적할 수 없도록 신성성神聖性이 존중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솟대에 매달은 ‘북’과 ‘방울’은 부여의 ‘영고迎鼓’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북은 강신降神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 도구이므로 소도별읍은 지방 종교성역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소도별읍에서 솟대에 매단 북과 방울 가운데서, 가죽으로 만든 북은 보두 부식되어 없어지고, 각종 청동방울종[銅鐸], 간두령竿頭鈴, 팔주령八珠鈴, 쌍두령雙頭鈴 등은 지급도 출토되고 있다. 이들은 특정의 청동거울과 함께 소도별읍에서 사용되었던 도구들로 판단된다.
솟대 끝에는 나무로 만든 새를 부착해 놓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새는 토템으로 존중된 영매조靈媒鳥로서 천신天神(단군)과 인간 사이의 뜻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관습은 삼남三南 지역에서는 일제저항기에도 잔영이 남아 있어서 마을 천군天君을 ‘당골’이라고 불렀는데,10) 최남선이 여기서 유추하여 단군檀君을 무군巫君이라고 해석한 것은 오류였다. 삼남지역의 당골은 진辰, 한韓지역 소도별읍의 단굴신 제사자의 잔영이었을 뿐이라고 해석된다.
손진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솟대문화는 북한 지역은 물론이요, 만주 일대에도 보편적인 문화유형이었다.11) 이로써 보면 소도별읍은 고조선 개국시조 단군의 서거 후 고조선 국가와 후국들, 고조선 문명권 안에서 널리 실시된 제도이며 관행이었다고 추정된다. 또한 이것은 근역강산[한반도]과 만주일대에 존재했던 고조선문명권의 고조선 후국 민족들이 단군(단굴)신앙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고조선, 진국辰國의 소도(솟대)별읍의 성역 특징은 고조선 이주민의 후예인 상(商, 殷)의 지식인들이 갑골문甲骨文 한자를 처음 고안할 때 ‘聖’ 문자의 고안에 적용되었다. 허진웅에 의하면 갑골문의 최초의 ‘聖’자는 나무(솟대) 위에 새[鳥]가 앉은 그림이었다.
고대 동양에서 해가 떠오르는 나라(land of sunrise)의 의미로 사용한 ‘부상국扶桑國’의 ‘桑’도 ‘솟대’를 상형문자(그림문자)로 고안한 것이라고 본다. 이 글자는 나무 위에 세 마리의 새[鳥]를 올려놓은 글자로 진국辰國의 ‘솟대’를 형상화한 것이다.
‘부扶’는 ‘밝음’, ‘불’, ‘부여’의 의미이다. ‘단檀’자도 ‘밝달나무’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 ‘밝달’족을 표시한 것이고, ‘상桑’자도 뽕나무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 동쪽 나라, 즉 ‘솟대나라’를 표시한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부상扶桑이 아침 햇살을 받고 해가 우주를 비추면 소소한 빛은 사해四海를 비추게 된다”13)고 하였다.
부상국扶桑國을 아침 햇살을 맨 먼저 받는 아침의 나라로 기록한 것이었다. 부상국扶桑國는 ‘고조선 진국’을 가리킨 것이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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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朴殷植 《大東古代史論》,《白巖朴殷植全集》제4권, 《韓國痛史》 檀君之神敎,《白巖朴殷植全集》제1권
10) 崔南善 〈檀君及其硏究〉, 《別乾坤》(1928. 5월호)
11) 孫晉泰 〈蘇塗考〉
12) 許進雄 《중국고대사회-文字와 人類學의 透視》(동문선,洪熹번역,1998)
13) 《淮南子》 해외동경海外東經에서 “아래에는 ‘탕곡’이 있고 위에는 부상扶桑이 있다. 열 개의 해가 목욕하는 곳인데, 흑치 북쪽에 있다(下有湯谷(暘谷) 上有扶桑 十日所浴 在黑齒北).”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곽박郭璞이 “부상은 나무이다(扶桑木也)”라고 잘 못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동쪽 나라를 가리킨 것이었다. ‘桑’의 훈은 ‘뽕나무 상’도 있지만 ‘동쪽 상’도 있었다. 《南齊書》 東南夷傳에서는 “동이의 해외에는 갈석碣石[선돌]과 부상扶桑[솟대]이 있다(東夷海外 碣石, 扶桑)”이라고 나라 이름[지역적 특징]으로 해석하였다.
14) 《梁書》 諸夷傳 扶桑國조에서는 “부상은 漢나라 동쪽 2만여 리에 있다. 그 땅에 부상목이 많아 이름하였다(扶桑在大漢國東二萬餘里 地在中國之東 其土多扶桑木 故以爲名)”고 기록하였다. 부상을 중국 동쪽에 있는 나라 이름으로 보았고 명칭의 유래는 扶桑 나무에서 찾았다. 그러나 桑나무는 있어도 扶桑이란 나무는 본래 없다. 따라서 ‘扶桑’은 합성어임을 알 수 있는데, ‘扶’에서는 발음을 빌리고 ‘桑’에서는 형상을 빌린 것이다. ‘扶’의 발음은 ‘發, 夫餘’와 같고 의미는 ‘양곡暘谷’과 같다. 그리하여 ‘扶桑’은 늘 暘谷(탕곡湯谷)과 연결되어 기록되어 있다. 즉 ‘檀’[밝달조선] 과 ‘辰’(진국)을 항상 연결하여 ‘진단辰檀’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扶桑國’이 바로 ‘辰檀國’이라는 의미이다.
▲삼신과 단군신앙의 상징 삼족오 태양신
고조선 문명권의 공동의 ‘단군(단굴)’ 신앙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의 하나가 ‘일중삼족오日中三足烏(태양 속 세발 까마귀)’라고 통칭하는 ‘삼족오 태양신三足烏 太陽神’이라고 본다. 이것은 하늘의 태양숭배와 까마귀를 천사조天使鳥라고 생각하는 까마귀 토템이 결합된 표현으로서, 태양 속의 삼신三神은 환인桓因(하느님),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상징화 한 것임을 밝힌바 있다.15)
고조선 문명권 지역에서는 고조선 후국민족들의 공동의 신앙으로 단군신앙이 있었고, 고조선이 해체된 이후에도 후국민족들의 후예들은 오랫동안 그 신앙을 간직하여, 삼족오태양신을 상징으로 삼았다.
일중삼족오(태양 속 세발 까마귀)에 대해서는 발해만 연안의 동이족의 삼족오 연구,16) 동북아시아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삼족오 문양 연구,17) 또한 삼족오태양신 문양이 고려, 조선시대까지 내려온 사실 연구가 있다.18) 이러한 연구들은 고조선문명권의 공동의 신앙으로서 단군(단굴)신앙이 보급되어 있었다는 견해(신용하 교수)와 본질적으로 합치한다.
일중삼족오는 태양신 숭배 + 3신(환인, 환웅, 단군) 숭배의 고조선문명권의 신앙이 그 지역과 그 후예들에 의해 형상화된 표현으로 해석된다.19)
고조선 국가 해체 후 서방이동을 감행한 흉노(Huns)족, 마자르(Magyars)족, 아발(Avars, 柔然, 大檀)족, 불가르(Bulgar, 불령지)족,
투르크(정영丁零, 돌궐突厥) 민족은 기독교 또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기 전까지 모두 단굴(단군)을 신앙했으며, 불가리아족도 발칸지역에 정착한 직후까지도 단굴(단군)을 신앙하였다.20)
2019년 5월 2일, 일본국 새 일왕 나루히토(德人)가 즉위했다. 즉위식에서 삼보三寶(곡옥, 청동거울, 칼)를 물려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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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愼鏞廈:〈古朝鮮文明圈의 三足烏太陽 상징과 朝陽袁太子 벽화묘의 三足烏太陽〉, 《韓國學報》제105집
16) 李亨求:〈고구려의 三足烏 신앙에 대하여〉, 《동방학지》제86집
17) 우실하:〈흐름과 교류의 산물 三足烏〉,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소나무, 2007)
18) 허흥식,이형구,손환일,김주미:《삼족오》(학연문화사,2007)
19) 중국 북부지방, 만주, 일본열도 기타 등지의 유적, 유물에서 ‘태양 속 삼족오三足烏’의 도안 유물이 나오는 것은 그 출토지역이 ①고조선문명권이었거나 ②고조선 이주민 또는 그 후예의 거주지였거나 ③고조선의 삼족오 신앙이 전파되었을 경우라고 추정된다.삼족오 태양신 신앙은 고조선문명의 신앙의 결과라고 추정된다. 삼족오 태양신 신앙은 고조선문명의 신앙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