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흡연에 맞서 가열찬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아메리카에서 시가 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나는 통신 판매 카탈로 그에서 밀수품인 아바나 산 시가 애호가들을 위한 아이디어 상품들을 발견하였다.
크기가 시가의 재를 떨기에 딱 알맞은 재떨이부터 갖가지 모양의 시가통 및 쓸모는 벌로 없어도 고 급스런 선물로는 손색이 없는 그 밖의 많은 물건들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무려 수십 가지 나 되었다.
모든 사회적 현상은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개중에는 다른 해석에 앞서 그냥 분명한 메 시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들이 더러 있다(유행이 그런 현상의 전형적인 예이다).
사람들 의 사회적 행동 중에는 어떤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이용하는 상징적인 행동이 있기 때문이 다.
어떤 사회적인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상징적인 행동을 배제하게 되면 남는 것은 실용 성과 관련된 설명뿐이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 시가가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그런 기능
적인 설명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가령 사람들이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치자. 물론 사람들의 흡연 욕구가 여전하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사회가 시가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궐련(일반담배)을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하지 않은 까닭을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궐련을 피우는 사람들은 이제 공공 건물 앞으 보도에 한데 모여서 흡연을 해야 하는 신세 가 되었다.
물론 그렇게 모여 있으면 그들 사이에는 즉각적인 연대감이 형성된다-건물 밖으
로 나가서 담뱃갑을 꺼내면 이내 다른 흡연자가 공모의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를 건네고 라 이터 불을 내민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더러 그들에게 경멸의 눈 길을 보내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이 공공 건물 밖에서 흡연을 하는 한 남에게 해가 될 것 은 전혀 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는 주간에 거리에서 흡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런데 시가를 피우는 사람들의 사정을 전혀 다르다.
그들은 저녁 식사가 끝날 즈음에 또 는 파티 도중에 전리품을 자랑하듯 당당하게 시가를 꺼내어 입에 문다. 그들의 행동에 눈살 을 찌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만일 궐련을 피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주인 공이 시가를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유익하다. 말하자면, 흡연 행위에 대해 아무도 이의
를 제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한 연후에 우리 주인공을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하여 이런 차별이 생긴 것일까? 가증 흔히 내세우는 이유, 즉 시가는 연기를 삼키지 않기 때문에 몸에 덜 해롭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고 뱉어 내는 것은 간접 흡연의 피해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실내 공기를 더욱 심하게 오염시키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먼저 보건 당국에서 국민 건강을 위 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궐련과의 투쟁을 선포했다. 그러자 궐련은 죽음의 상징이 되었고, 그 캠페인은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는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싸구려 술집엔 여전히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대학교수와 은행가와 고소득 샐러리맨들은 담배를 끓었지만(자기집에서는 몰라도 공공 장소에서만큼은), 흑인과 중산층 이하의 여성, 노인, 거지 들은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렇듯이 궐련을 피우는가 피우지 않는가 하는 것은 개인적인 차이를 넘어서서 사회 계층 적인 차이가 되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파의 것이 되어 버린 궐련은 예전에 씹는
담배가 갔던 길을 뒤따라가고 있다. 요즈음엔 담배를 씹는 사람이 없다. 그것이 건강에 나쁘 기 때문이 아니라, 침을 계속 배어야 하고 입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칼라 극장의 특석에서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담배를 씹고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궐련과는 달리 시가에는 프롤레타리아적인 속성이 전혀 없다(냄새가 역겹고 모양은 흉하지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의 맛 좋은 시가 토스카노를 제외하고). 시가는 비싸고 시간과 돈을 요구한다.
서민들은 시가 하면 대개 대기업가나 정치인을 연상한다. 시가를 남에 게 선물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다.
친구에게 궐 련 한 개비를 달라고 하듯이 시가 한 대를 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어 떤 사람이 당신에게 <담배 한 대 주시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군소리 없이 담배 한 개비 를 그에게 내밀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한 갑을 통째로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 렇게 선심을 쓴다고 해서 남들이 당신을 넉넉하고 인심 좋은 사람으로 보아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시가통을 열어 당신에게 아주 비싼 시가 네 대를 선물한다 면, 당신은 마치 자기의 에메랄드 반지를 빼서 남에게 주는 옛날의 어떤 세도가를 보고 있 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이 바로 상류층 사람들이 시가를 피우는 이유이고, 사회가 시가를 관대하 게 용인하는 이유이다. 설령 시가를 피우다가 건강을 해친다 할지라도, 그것은 품격 높은 자 살 행위일 뿐, 가난뱅이들이 궐련을 피우다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 하나를 덧붙이고자 한다.
청교도의 나라, 위생과 보 건의 나라, 수많은 질병과 죽음이 찾아올 것임을 알리는 보건부의 불길한 경고문을 세계에 서 가장 먼저 담뱃갑에 새겨 넣은 나라 미국에서 반흡연 투쟁이 한창 고조되어 있는 이때 에,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