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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전철 6호선
수도권 전철6호선은 2000년 8월 7일 개통한 일방철도노선(一方鐵道路線)으로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있는 응암역과 서울특별시 중랑구의 봉화산역을 잇는 수도권 전철의 노선 중 하나이다.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한다. 6호선은 한강을 건너지는 않지만 서울 서북부와 동북부를 연결하고, 도심을 통과하는 모든 노선과 환승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시내 각 지역으로의 접근도를 향상시키고 도심교통수요를 외곽으로 분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6호선의 개통으로 서울 지하철은 거미줄 형태의 방사형 전철망이 완성됨으로써 도심과 부도심이 직접 연결되게 되었다. 노선색은 ●황토색이며, 노선색의 의미는 '행복'이다. 현재 6호선의 뚜렷한 연장 계획은 없으며, 봉화산역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신내차량사업소 부지 내에 수도권 전철 경춘선과 환승할 수 있는 신내역을 신설하여 개통 예정이다.
(부호) ☞ (숫자는 역 번호) (☯ 갈아타는 곳) (★ 부 역명)
(610) 응 암(鷹 岩) 은평구 증산동 199-8번지에 위치한 응암역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봉화산역을 출발해 응암역에 도착한 열차는 행선지를 봉화산행으로 바꿔 응암 순환 구간을 지난다. 환승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산역에서 불광역, 연신내역으로 바로 갈 수 없고 응암역이 섬형 승강장이어서 방향을 바로 바꾸어 탈 수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응암루프 단선상의 역들에서 다른 방향으로 갈 때의 환승역의 역할도 수행한다. 역촌역 방향이 곡선 선로라서 방향을 바로 비교할 수 있다.
☞ 역명유래 응암동 마을 뒷산 자락에 있는 커다란 바위의 모양이 매를 닮아서 매바위굴이라 했으므로 한자로 옮겨 응암동이 된 데에서 명명되었다, 옛날 이 곳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장막을 치고 포수들이 기거하던 곳이 여러 곳 있었으며 궁중에서 나와 사냥터로 삼았던 이곳을 말흘산계(末屹山契)에 응암동 포반동(砲半洞) 일명 포수동(砲手洞), 와산동(臥山洞)이였는데 1914년 4월 3개리를 합하여 은평면 응암리라 하였다,
(611) 역 촌(驛 村) 은평구 서오릉로 61 (노번동 144-69번지)에 위치한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 응암 순환선의 역이다. 역촌역부터 구산역까지는 단선으로 운행하여 다시 응암역으로 돌아 나간다. 역명과 달리 녹번동에 소재하고 있다. 역명은 조선조 신하들이 장거리 여행시 말이 쉬어 갈 수 있는 역(驛) “즉,, 연서역(延曙驛)(연시네)이 있어 역말이라 불리어 젓는데서 연유(緣由)된 것이다,
(612) 불 광(佛 光) (☯ 수도권 전철 3호선) 은평구 대조동 14-1번지에 위치한 불광역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있는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역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의 환승역이다.
☞ 불광동명의 유래는 근처에 바위가 많고 불광사(佛光寺)를 비롯한 여러 절이 많았는데 그중 부처님의 서광(瑞光)이 어린 불광사가 위치함으로 유래되었으며 이곳은 조선왕조 때 한성부 관할구역으로 수리봉 산 밑에는 산돼지가 많이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입은 저서현이라는 고개도 있다,
(613) 독바위 은평구 불광1동 13-33번지에 위치한 독바위역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 응암 순환 전철역이다. 북한산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주로 이 역을 이용한다. 승강장이 있는 선로 옆에 전동차 주박용 유치선이 있으며 비상시를 대비하여 열차 1편성이 항시 대기한다. 인근의 북한산과 관련하여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측에서는 역명 대표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역명을 독바위역에서 북한산역으로 변경, 또는 병기역명으로 "독바위(북한산입구)"와 같이 표기하는 방안을 이미 서울시에 건의하였다.
☞ 역명유래 이 근처의 옛 지명(地名)인 독바위굴의 줄임말로 독바위굴의 바위가 독(항아리)과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과 유달리 바위가 많아 숨기 편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說)이 있다, 다른 하나는 인조반정 당시 일등공신(一等功臣)이었던 원두표(元斗杓) 장군(將軍)이 거사(擧事) 직전까지 숨어 지내던 독바위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614) 연신내 (☯ 수도권 전철 3호선) 은평구 갈현2동 397번지에 위치한
연신내역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있는 서울메트로의 전철역으로, 서울 지하철 3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운행된다. 원래 한자 역명으로 '延新內' 를 병용하였으나, 2001년 5월 1일부터 한자 역명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이 역은 고양, 파주, 양주, 의정부방면으로 가는 수많은 버스노선이 발착하고 있어, 수도권 서북부 교통의 최대 요지로 꼽힌다.
☞ 연신내역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역참이 있었고 연천(延川)이라는 조그만 시내가 흐르고 있는데 이 시내는 불광동에서부터 녹번동과 대조동사이를 따라 역촌동으로 흐르고 있다, 여기에 지금도 불광동 쪽의 상류에 연서시장(延署市場)이 있고 하류 쪽에는 녹번동 대조동등이 동명 대신에 연천에서 유래된 법정동 아닌 연신내로 통하고 있다, 연시내라는 이름은 연천(연서천(延署川)의 뜻이 연천(천은 시내) ⇢ 연신내로 우리말풀이로 변하여 된 것이라고 한다,
(615) 구 산(龜 山) 은평구 구산동 1번지에 위치한 구산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구산동의 유래는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모양이 거북이 현상을 하고 있고 산에 거북 받침의 인조별서유기비(仁祖別墅遺基碑)가 있는 것에서 동 이름이 유래 되었다, 동쪽과 남쪽의 역촌동 북쪽의 갈현동 서쪽의 봉산을 경계로 경기도 고양시와 접해 있다,
지금도 서오릉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산에 거북모양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연은방 지역이었다 1914년 노지동을 합하여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산리라 하였고 1944년 서대문구에 편입되었다, 1950년 구산동으로 바뀌었고, 1979년 은평구 관할이 되었다,
(616) 새 절(新 寺) 은평구 신사2동 337-5번지에 위치한 새절역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전철역이다. 은평구 신사동(新寺洞)에 있어 신사역으로 개통하려 하였으나, 강남구의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新沙驛)과 역명이 중복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신사(新寺)를 고유어로 풀이한 '새절'을 역명으로, 신사(新寺)를 부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산 93번지에 신사공원(新寺公園)이 있다,
(617) 증 산(繒 山) (★ 명지대앞) 은평구 증산동 199-8번지에 위치한 증산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 부역명으로는 인근 서대문구 남가좌동 50-3번지에 1963년에 명지대학을 설립한 명지대앞 부역이다, 명지대학교 인문캠퍼스는 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 증산동명 유래는 북한산 시루봉 아래에 있서 시루메, 증산(甑山)이라 부르던 곳이다, 시루는 물이 새므로 좋지 않다 하여 아름다운 비단이라는 뜻을 빌려서 증산(繒山)이라하였다, 한성부 북부 연희방 지역이었다,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증산리에 속 하였고 1949년 남가좌동 북가좌동과 같이 서대문구에 편입되었다가 1979년 증산동만 은평구 관할로 되었다, 동쪽은 응암동과 서대문구 북가좌동, 서쪽과 남쪽의 수색동 북쪽에 신사동과 접해있다,
(618) 디지털미디어시티역 (☯ 전철 경의선) 은평구 증산동 223-27번지에 위치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있는 전철역으로, 수도권 전철 경의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의 환승역이다. 역명은 인근의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서 유래하였다. 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약자인 DMC에서 따와 DMC역, 디엠시역이라고도 불린다.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대부분의 전동차는 이 역에서 시·종착한다.
※ 역명 변경 이전 역명은 수색역(水色驛)으로, 이는 경의선 수색역과는 이름만 동일할 뿐 700m이상 떨어진 지리적으로 전혀 다른 역인데다가 이 역은 역명과는 달리 실제 위치는 증산동이었다. 더욱이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개통으로 인근의 수색역 또한 전철역이 됨으로서 발생하는 서로간의 역명 중복을 피하기 위해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개통을 앞둔 2009년 5월 8일, 서울특별시 지명위원회에서는 경의선 수색역보다 뒤에 영업을 개시한 지하철 6호선 수색역의 역명을 개명하기로 하였고, 이 역의 이름을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결정하였다. 이에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서울도시철도공사를 우리말 해침꾼으로 선정했다.
(619) 월드컵경기장 (★ 城山) 마포구 성산2동 420번지에 위치한 월드컵경기장역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역명은 성산동 549번지에 2002년 6월에 상암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한 경기장에 이름을 따 명명 하였다, ★ 부역으로는 성산동명이다, 월드컵에 대비하여 승강장이 넓게 건설되어 있다.
(620) 마포구청(麻浦區廳) 마포구 성산로 595 (성산동 206-14번지)에 위치한 마포구청역은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인근에 마포구청이 있다. 강서구, 양천구, 부천시 등으로 가는 버스 환승지점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621) 망 원(望 遠) 마포구 망원동 378번지에 위치한 망원역은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2개 출구는 공사지 인근 보도의 건물 부지를 매입한 후 철거하고 새로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망원역명은 조선조에 망원정이 있었던 데에서 동명이 되어 명명된 것이다,
※ 망원정(望遠亭)이란 한강변에 위치한 망원동은 옛날 이곳에 망원정(望遠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이 정자는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 되었으나 양화대교가 놓여 있는 부근 망원동 137번지에 있었다,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님인 효령대군이 양화도의 동쪽에 지은 정자로서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이 없었다, 세종 1425년 5월 이곳 형의 별장에 거동하여 정자에 올라 군사들이 훈련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술자리를 마련하였는데, 마침 농사에 알맞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셔주므로 크게 기뻐한 나머지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 부르게 하였다,
또한 이곳은 성종 때에도 임금의 형인 월산대군이 소유가 되었는데 성종이 이곳에 나와 군사들의 수전(水戰)연습을 구경하다가 산수간에 먼 경치가 잘 바라다 보인다는 뜻에서 정자를 더 크게 짓고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꾸었다가 그 다음에 등극한 연산군은 망원정에 올라 잔치를 배풀다가 정자가 협소하다 하여 철거하고 1 천 명이 올라앉을 만큼 큰 누각을 짓게 하였다,
왕의 숙모인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가 칼로 자기 하문(下門)을 찔러 자살하였는데 이것은 연산군이 박씨를 겁탈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박씨 부인의 친정동생인 박원정은 원통하게 죽은 누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중종반정에 적극 가담했다는 것이다,
(622) 합 정(合 井) (☯ 수도권 전철 2호선) 마포구 합정동 414번지에 위치한 6호선 합정역은 동명에서 딴 이름이며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의 환승역이다. 역 인근에는 양화대교와 절두산순교박물관이 있다. 당산역 방향에 당산철교가 있다. 1997년 당산철교가 부실시공으로 철거, 재시공되는 과정 (회차선로 설치 및 철거)에서 역사가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
☞ 합정동 유래는 조선시대 양화나루 근처의 한강변 마을이다, 지금 양화대교와 당산철교 사이의 서울 외국인 묘지 일대가 바로 조선시대 양화진(楊花津)이 있었던 곳이다, 합정동은 본래 이곳에 조개우물(蛤井)이 있었으므로 합정동(蛤井洞)이라 불렀던 곳인데, 당시의 조개우물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13년 12월 일제의 총독부령에 의하여 행정구역을 바꿀 때 연희면 합정리(合井里)가 되면서 우물을 합했다는 뜻의 이상한 이름이 되고 말았다, 곧 그들의 마음대로 복잡한 글자보다는 쉽고 간편한 글자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의 이름이 된 것이다,
(623) 상 수(上 水) 마포구 상수동 309-10번지에 위치한 상수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상수동이란 강가의 마을 중에서 가장 위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수동과 하수동은 조선 영조 때 기록에 의하면 한성부 서부 서강방(西江坊)(성밖) 수일리계(水溢里契)에 속한 곳이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경성부 축소 정책에 따라 이곳은 서강면 상수일리와 하수일리가 되었으며 1936년 4월 1일 경성부 관할구역의 확장, 변경 때 다시 경성부에 편입되고 이 일대는 상수일정과 하수일정이 된 곳이다, 해방 후 1946년 10월 1일 서울의 왜식 동명 개정 때 상수동과 하수동으로 바뀐 것이다,
(624) 광흥창(廣興倉) 마포구 창전동 145번지에 위치한 광흥창역은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부역명은 서강(西江)이나 용산선 서강역과는 관련이 없다. 조선 시대에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인 "광흥창" 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역명으로 현재 지역명을 사용했다.
☞ 역명유래 조선시대 경기와 3남 지방에서 1년에 쌀 19,000석 대두 18,000석을 거두어들인 세수 창고 광흥창에서 연유된 것이다, 광흥창은 그 당시에는 선박(船舶)들이 상수동의 점검청(點檢廳) 신정동의 공세(貢稅)터를 일명 대창(大倉)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광흥창에는 여러 관리들에게 주는 녹봉미(祿俸米)를 저장하여 두었다 따라서 이 곳 광흥창을 중심으로 많은 관리들의 가솔이 모여 살게 되어 서강 서반(西江, 西班)이란 말도 생기고 취락지로 발달되었다,
(625) 대 흥(大 興) (★ 서강대입구) 마포구 대흥동 267번지에 위치한 대흥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에 있는 역이다. 일부 열차는 이 역에 시·종착한다. 부역명은 서강대앞으로, 인근에 1963년 2월에 마포구 신수동 1번지에 서강대학설립인가를 받은 학교가 있다.
☞ 대흥동의 유래는 인접한 용강동과 함께 한성부 서부 용산방에 속한 곳으로 독, “즉,, 옹기를 구어 파는 곳이었으므로 옹리 또는 독마을이라 불렀던 것이다, 옹리상계(契)는 용강동(일제 때는 동막상리), 옹리하게는 대흥동(일제 때는 동막하리)이 있었다, 대흥동은 답중동(畓中洞), 논우물거리, 불당재, 차돌배기, 큰우물거리, 박석재 등을 통폐합하여 1936년 경성부의 편입되면서 대흥동이 되었다,
(626) 공 덕(孔 德) (☯ 수도권 전철 5호선) 마포구 공덕동 439번지에 위치한 공덕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오거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의 역이자 환승역이다.
☞공덕동의 유래은 1913년 고양군 용강면(龍江面)에 속하였다가 1936년 경성부의 관할구역을 확장하면서 고양군 용강면으로 되어있던 지금의 마포구의 대부분이 다시 경성부 구역으로 되었으며 1944년 구제도를 신설하면서 마포구 공덕동이 되었다, 이곳은 만리재, 아현(阿峴), 대현(大峴) 등의 고갯마루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간 언덕지대이다, 그러므로 큰 언덕이 큰덕로 부르던 것이 한자로 바꾸면서 공덕(孔德)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627) 효창공원(孝昌公園) (★ 용산구청) 용산구 효창동 70번지에 위치한 효창공원역은 백범로와 효창공원 길의 교차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인근에 효창공원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전철역이다. 부역명은 용산구청으로, 인근에 효창공원과 용산구청, 용산선 효창역이 있다. 인근의 효창역(폐선된 역)은 매우 가까우나, 수도권 전철 경의선과의 환승통로 개설은 이루어지지 않을 예정이다.
※ 효창공원은 사적 제330호로 효창동, 청파동2가, 및 구 신공덕동 공덕동에 걸쳐있는 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의 유해를 모시는 곳이다, 원래는 정조(正祖)의 장남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묘원(墓園)이 였다, 당시 이 일 때에는 고양 율목동(高陽 栗木洞)으로 처음에는 효창묘(孝昌墓)였다가 후에 효창원(孝昌園)으로 승격 되었다,
여기에는 또한 정조의 후궁인 의빈성씨(宜嬪成氏) 순조의 후궁 숙의박씨(淑儀朴氏), 순조의 장녀 영온옹주(永溫翁主)의 묘도 있었다, 이 능은 광복 후에 서오능으로 이장하였다, 8, 15후에는 백범(白凡) 김 구(金 九), 이동령(李東寧), 윤봉길(尹奉吉), 이봉창(李奉昌) 백정기(白貞基) 안중근(安重根) 조소앙(趙素昻) 차이석(車利錫)등 독립 운동가들의 묘를 안치 하였다, 1960년 때 는 축구경기장(蹴球競技場)을 만들어 국제간의 경기가 자주 열리고 하였다,
(628) 삼각지(三角地) (☯ 수도권 전철 4호선) 용산구 한강로1가 19번지에 위치한 6호선 삼각지역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4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본래 이 근처에 원형형태의 삼각지 고가도로가 있었으나, 6호선 공사로 인해 지반이 침하될 것을 우려하여 1994년 철거하였다. 역명은 가수 배호의 대표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는 삼각지 고가도로를 소재로 하고 있다. 4호선과 6호선 측 모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있다. 6호선 은평, 마포 지역에서 서울역으로 갈 때 경의선 서울역행이 1시간 배차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지나 삼각지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해서 서울역으로 가야 한다.
※ 삼각지 유래 옛날 한강, 이태원 서울역 방면으로 도로가 나있어 땅모양이 세모졌다고 하여 삼각지로 불리운 것이다, 이곳은 한강로1가 지역이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둔지방이라 칭해왔다,
(629) 녹사평(綠砂坪) (★발명테마로) 용산구 용산동4가 4번지에 위치한 녹사평역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부역명은 발명테마로 녹사평역사내에 발명테마관이 있다. 녹사평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말까지만 하더라도 이 일대에 잡초가 무성하여 사람이 살지 않았기에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2000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될 때 예전 지명을 살려 녹사평역으로 명명되었다
(630) 이태원(梨泰院) 용산구 이태원동 127번지에 위치한 이태원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이태원동의 내력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임진왜란 때 왜인부대가 용산에 주둔한 뒤 이태원에 있는 운종사(雲鐘寺)에 왜적들은 수도하는 여승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왜군이 퇴각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조정(朝廷)은 운종사 여승들과 같이 왜적의 아이를 낳은 부녀자들을 벌하지 않고 이곳에다 오늘날 보육원과 같은 것을 지어 아이들을 기르게 하였다, 말하자면 태(胎)가 다른 이방인(異邦人)의 집이라는 뜻으로 이태원(異胎院)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항복한 왜구들이 우리나라에 귀화한 뒤 여기에 모여 집단생활을 하였으므로 이곳을 이타인(異他人)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땅이름이 異胎院이 아닌 梨泰院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효종 때 이곳에 배나무를 많이 심으면서 땅이름이 동음이의(同音異意)이란 땅 이름을 낳았고 6, 25동란 이후에는 한동안 양공주들의 거리로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지금은 관광투구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왜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국제적인 소핑타운 이기도 했지만 특히 88 서울 올리픽을 치른 후로는 땅 이름처럼 태(胎), 이(異) 이방인(異邦人)들의 거리로 변모했으니 국제와 탓일까 땅 이름 탓일까
(631) 한강진(漢江鎭) 용산구 한남동 산 33번지에 위치한 한강진역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역명은 조선시대 한강진터(나루터)가 있던 곳에서 유래 하였다, 한강진은 현재 한남대교가 있는 곳으로 옛 부터 수상교통(水上交通)의 길목이었다, 임진왜란 때 제천정(濟川亭)에서 소서행장(小西行長)과 싸운 곳이기도 하다, 특별히 연계되는 시설들이 없어 이용률은 적은 편이다. 인근에 남산1호터널이 설치되어 있다. 일부 막차는 이 역까지만 운행한다.
(632) 버티고개 중구 신당동 432번지에 위치한 버티고개역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상당히 깊은 편이며, 승강장은 터널형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역명은 신당동 끝과 약수동사이 이어진 부근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높은 큰 고개 버티고개에서 명명되었다,,
※ 버티고개 유래는 옛날 이 고개는 길이 좁고 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도둑이 많았으므로 모양이 험악하고 마음씨가 곱지 않은 사람을 보면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란 농담을 하였다, 또한 옛날 순락꾼들이 돌면서 번도, 하면서 도둑을 쫓았는데 그 말이 변하여 번티(番峙) 버터 또는 한자로 부어치(扶於峙)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의 의하면 한성부의 진산이 삼각산의 인수봉이 어린 애를 업고 나가는 형국이므로 그 것을 막기 위해 서쪽의 무악에 떡 고개를 두어서 어머니가 떡을 가지고 그 애를 달래서 머무르게 하고 또 남쪽에는 벌아령(伐兒領)을 두어서 아기가 나가면 벌을 주겠다고 하며 그 이이를 못나가도록 막았다는 것으로 그 벌아령이 변하여 버티고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633) 약 수(藥 水) (☯ 수도권 전철 3호선) 중구 신당3동 369번지에 위치한 6호선 약수역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전철역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의 환승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 3호선 역으로 먼저 개업하였고, 6호선 역은 2001년 3월 9일 개통되었다. 역명은 법정동이 아닌 옛 지명인 자연부락에서 유래 된 것이며 약수동은 신당3동 지역에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수가 있어서 유래 된 것이다, 현재의 신당2동은 충현동(忠峴洞)으로 불려 지는데 이곳이 장충동과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또 신당3동은 약수동(藥水洞)으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버티고개에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약수가 있어서 유래된 것이다, 신당4동은 청구동(靑丘洞)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이름은 우리나라의 옛 이름인 청구를 딴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신당5동은 문화동(文化洞)이라고도 부르며, 신당6동은 동화동(東化洞)으로도 불려진다, 아마도 문화동의 동쪽 일대이기 때문에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이나 출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당동에는 충현동, 약수동, 청구동, 동화동, 문화동등 여러 동명들은 법정동명에서 제외 되여도 지하철역 약수역 청구역이 있어 아직도 사용하고 있으며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634) 청 구(靑 丘) (☯ 수도권 전철 5호선) 중구 신당동 294번지에 위치한 6호선 청구역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전철역이다. 역명은 법정동 아닌 신당4동에 옛 지명인 행정동을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지하철 역명을 청구역이라 하였다, 현재의 신당2동은 충현동(忠峴洞)으로 불려 지는데 이곳이 장충동과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또 신당3동은 약수동(藥水洞)으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버티고개에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약수가 있어서 유래된 것이다,
신당4동은 청구동(靑丘洞)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이름은 우리나라의 옛 이름인 청구를 딴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신당5동은 문화동(文化洞)이라고도 부르며, 신당6동은 동화동(東化洞)으로도 불려진다, 아마도 문화동의 동쪽 일대이기 때문에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이나 출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당동에는 충현동, 약수동, 청구동, 동화동, 문화동등 여러 동명들은 법정동명에서 제외 되여도 지하철역 약수역 청구역이 있어 아직도 사용하고 있으며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635) 신 당(新 堂) (☯ 수도권 전철 2호선) 중구 흥인동 1621-1번지에 위치한 신당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있는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전철역으로,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다. 2000년 12월 6호선 개통 당시에는 2-6호선간 환승 통로가 완공되지 못하여 불편을 겪었다가 2001년 3월에 환승 통로가 완공되어 환승할 수 있게 되었다. 6호선 환승역들 중 처음 개통 당시에 불편을 겪은 역은 약수역도 있었다. 이는 시공사의 도산으로 인해 완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신당동의 유래 광희문(光熙門) “즉,, 수구문(水口門)밖이 되어 많은 무당들이 이 일 때에 살았다 수구문은 시구문(屍口門)이라 속칭(俗稱)될 만큼 시체 “즉,, 상여(喪輿)가 많이 나가는 문이었으며 또 이곳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으므로 무당들이 신당(神堂)을 모시고 살았는데 신당(神堂)과 발음(發音)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뀌어 표기한 동명에서 유래
(636) 동묘앞(東廟前) (☯ 수도권 전철 1호선) 종로구 다산로지하 1 (숭인동 313번)에 위치한 동묘앞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서울메트로(서울 지하철 1호선)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서울 지하철 6호선)가 운영하는 전철역이다. 역명은 인근에 동관왕묘가 있는 데서 명명되었다. 1호선의 역은 6호선과의 환승을 위해 개통되었고, 그로 인해 신설동역 이후의 1호선 역번호가 변경되었다. 동대문역에서 시·종착하던 1호선의 일부 서울메트로 소속 차량은 이 역에서 시·종착하고 연결선로를 통해 군자차량기지로 입고된다.
☞ 사당 보물 제142호 동묘는 중국 촉한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에게 제사지내는 묘로서 원래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다. 동묘를 짓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성스러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인데, 명나라의 왕이 직접 액자를 써서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
동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601년에 완성되었다. 현재 건물 안에는 관우의 목조상과 그의 친족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6칸이고 지붕은 T자형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지붕 무게를 받치는 장식은 새의 부리처럼 뻗어 나오는 익공계 양식이다.
(637) 창 신(昌 信) 종로구 지봉길 77 (창신동 20번지)에 위치한 창신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인근에 위치한 한성대학교는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보다 거리상으로 이 역에서 더 가깝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성대학교와 이 역 사이의 고도차가 크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한성대입구역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 창신동은 동문(東門) 밖 첫 동네로서 성곽(城郭)을 끼고 있으며 낙산(駱山)과 성북구 보문동 경계 동망봉(東望峰)을 경계로 하고 숭인동은 동망터널 길 동대문 쪽은 창신동, 신설동쪽은 숭인동으로 하고 있는 동은 일제에 의하여 만들어진 합성지명이다, 창신동은 그전에 한성부 성 밖의 숭신면(崇信面)과 인창면(仁昌面)의 지역으로서 숭신면의 성저동, 정자동, 자지동, 신촌, 당현동, 홍수동, 대정동 일부 및 인창면의 붕어정동, 복차교 일대로서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하여 인창면과 숭신면의 뒷 글자를 따서 창신동이라 하고 숭인동은 첫 자를 따서 숭인동이라고 하였다,
(638) 보 문(普 門) 성북구 보문동1가 127-1번지에 위치한 보문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 보문동은 안암동과 안감천(“즉,, 성북천)을 경계로 하고 있다, 1955년 이전에는 동대문구 신설동 이였는데 안감 천 서쪽지역 일대에 위치한 보문동 3가 168번지에 보문사(普門寺)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신설계 탑동(塔洞)(탑동을 탑골 승방(僧房)이라고도 부른다,) 우선리(隅仙里)로 칭하다가 1914년 4월 1일 경기도 숭인면 신설리로 명명했다, 1955년 4월 18일 동제 실시 때 신설동에서 보문동으로 분리하여 보문 1동은 4, 5, 6, 7가 보문 2동은 1, 2, 3가로 구분하였다,
(639) 안 암(安 岩) (★ 고대병원앞) 고대병원 인근에 성북구 안암동5가 146-48번지에 위치한 안암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부역명은 고대병원앞으로, 인근에 고려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부속 안암병원이 있다. 일부 막차는 이 역까지만 운행한다.
☞ 안암동 유래의 대하여 문헌(文獻)상으로는 기록(記錄)이 남아 전(傳)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 오래 살아온 노인(老人)들의 전하는 말로는 지금 안암동 3가 136의 1호에 있는 대광(大光) 아파트단지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어 20명이 앉아 편하게 쉴 만하여 그 바위 이름을(앉을 바위)라 하였으며 그것을 한자(漢字)로 편안 안 (安)자와 바위 암 (岩)자를 옮겨 쓴 것이 안암이란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640) 고려대(高麗大) (★종암) 성북구 종암로 5 (안암동5가 1-2번지)에 위치한 고려대역은 학교부지에 있는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부역 명은 종암으로, 지역명인 종암동에서 따 병기하였다 역명은 고려대학교 건물에 역사가 있어 학교명을 사용하였으며 고려대학교는 1905년 이용익 선생이 전동(현재의 종로구 수송동)에 설립한 보성전문학교를 1932년김성수가 인수하여 1934년 현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현재의 이른다, 고려대학교는 안암역 고대병원이 있어 한 학교 앞에 지하철역이 두 곳이나 있어 특이한 역이다, 종암은 학교와의 경계이다, 인근에 홍릉수목원이 있다.
(641) 월 곡(月 谷) (★ 동덕여대) 성북구 월곡동길 105 (하월곡동 35-1번지)에 월곡역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전철역이다. 부역명은 동덕여대(同德女大)로 인근에 동덕여자대학교가 있다.
※ 경춘선 월곡역이 였은나 1971년 폐쇠된 역명을 지하철 6호선 개통하면서 행정동인 월곡의 이름을 따 월곡역이라 하였다,
☞ 월곡동 동명의 유래는 두가지로 전해온다. 하나는 하월곡3·4동의 산지형이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월곡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고, 다른 하나는 조선 후기 미아삼거리에 신근솔이라는 솔밭이 많아 풍치가 수려했기 때문에 당시 이곳에 주막이 밀집하여 있었다. 지방에서 소를 몰고 서울로 들어올 때에는 신근솔에서 숙박을 하고 소를 매어 놓았다가 장위동 노병 도살장에서 소를 매도한 다음 돌아갔는데 소장사들이 달밤에 도착하여 잔월(殘月) 아침에 흥정했기 때문에 월곡이라는 동명이 생겼다고 한다. 1894년 갑오개혁시 한성부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곡동은 한성부 동서 인창방(성외) 동소문계의 상월곡리와 하월곡리로 개편
(642) 상월곡(上月谷)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성북구 화랑로 159 )상월곡동 26-1번지)에 위치한 상월곡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전철역이다. 부역명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韓國科學技術硏究院)으로, 인근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있다.
☞ 상월곡동은 동쪽 화랑로 양쪽에 위치한 상월곡동은 천장산의 모습이 마치 반달과 같다하여 그 산에 연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이라고 부르는데서 연유되었다, 이 중 높은 지대에 위치한 지역을 웃다릿골(상월곡동) 아래지역을 아랫다릿골(하월곡동)이라 불렀다, 1911년 4월 1일(경기도령 제3호)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상월곡리로 하고, 이어서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1호)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월곡리로 하였다, 1949년 8월 13일 법정동인 상월곡동으로 개칭했다,
(643) 돌곶이(石 串) 성북구 화랑로 245 (석관2동 349-8번지)에 위치한 돌곶이역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이 역은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해 있어서 역을 지을 때 '석관동'(石串洞)의 한글풀이인 돌곶이를 역이름으로 정했다. 화랑로(花郞路)를 끼고 있는 마을 남쪽의 천장산 지맥(支脈)이 검정돌을 꽂아 놓은 “즉,,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꽂이에 꿰어 놓은 것 같아 돌 곶이 마을이 되었다는 설과 이곳 지형이 곶이로 되었으므로 돌 곶이라 하였다는 설(說)이 있는데 돌 곶이 이름을 한자로 표기해서 석관동(石串洞)이라 붙인 것이다,
(644) 석 계(石 溪) (☯ 수도군 전철 1호선) 노원구 월계동 254-4번지에 위치한 6호선 석계역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전철역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운행된다. 역명은 성북구 석관동의 석(石) 자와 노원구 월계동의 계(溪) 자를 합쳐 석계(石溪)로 명명되었다.
(645) 태릉입구(泰陵入口) (☯ 수도권 전철 7호선) 노원구 공릉2동 680번지에 위치한 태릉입구역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역으로, 서울 지하철 6호선과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운행된다. 인근에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의 태릉이 있어 명명되었다, 그 북쪽에는 조선 명종과 원순왕후의 능침인 강릉이 있어 이곳을 태강릉(泰康陵) 이라고도 한다, 1998년 6호선 환승통로 공사를 하던 중, 집중 호우로 인근 중랑천이 범람하면서 이 역이 직접적으로 침수피해를 입어 7호선 전 구간의 운행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최근들어 혼잡시간대의 편의를 위해 태릉입구역 출발 열차도 몇 편 신설되었다.
(646) 화랑대(花郞臺) (★ 서울여대입구) 노원구 고릉동 284-5번지에 위치한 화랑대역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전철역이다. 역명은 인근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인 "화랑대라는 이름을 따서 정했으며 부역명은 서울여대입구로, 인근에 육군사관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가 있다. 이 역에서 약 800m 거리에 한국철도공사 경춘선의 철도역인 화랑대역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져 있어 이름만 동일할 뿐, 별다른 관계가 없다.
(647) 봉화산(烽火山) 중랑구 신내2동 643-3번지에 위치한 봉화산역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역이다. 현재 6호선의 종점으로 인근 신내차량사업소로 견학을 가는 경우 이 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20분 가량 가야 한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섬식역들 중에서 승강장 벽면이 타일로 되어있는 유일한 역이다. ※ 역명은 1963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된 봉화산이라는 이름에서 봉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으며 이곳은 북쪽의 한이산으로 부터 목면산(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지난 1994년 1울 1일 봉수대를 복원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