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20).”
다윗의 일생은 그가 했던 일에 따라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양치기이고, 2단계는 수금 연주자이고, 3단계는 전쟁 용사이고, 4단계는 왕이었다.
하나님께선 그를 왕으로 세우기로 결정하셨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왕은 아니었으며,
양치기와 음악가와 군인을 거쳐서 왕이 되게 하셨다.
내가 꾸었던 첫 꿈은 ‘만화가’였다.
그림을 잘 그리셨던 아버지(기계설계학과)의 영향으로 나는 국민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렸으며 나름대로의 스토리도 창작했다.
어느 덧 중학생이 된 나는 만화 그리는 것 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되기 보단 새로운 음악 자체를 만드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들의 시작이 미약했던 것은 그 꿈의 스케일이 작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꿈이 너무 커서 아무 능력이 없던 나에게 막막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만화가나 작곡가가 되기 위한 아무런 과정이나 절차를 알지 못했다.
혹시 내게 만화가나 작곡가로서의 재능이 충분하다 해도 그것만으론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 알기에
꿈을 꾸면서도 그 꿈을 이루기엔 너무 막막해서 답답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만나서 예수를 믿어 거듭 나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게 되었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드디어 기타를 칠 수 있게 되고, 악보도 그릴 수 있게 되고, 곡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나의 곡들이 널리 퍼지지도 않고, 그 곡들을 통해 찬양사역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께 작곡사역자로 기름 부음 받았다고 믿었으나 당시 내 모습은 단지 기타 치며 작곡을 할 줄 아는 대학생일 뿐이었다.
작곡을 시작한 지 처음 몇 년간은 계속 곡만 쓰면서 하나님께서 그 곡들을 알려주시길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자신이 없던 나일지라도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나서서 행동을 해야 했다.
내가 겨우 용기를 내서 떼었던 첫 발은 대학부 찬양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찬양팀에서 나는 보컬이었고 가끔 찬양팀 기타를 빌려서 기타도 쳤으나,
뭔가 내가 찬양팀에 과연 필요한 존재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나의 포지션은 작곡인데 찬양팀에선 당장 작곡 파트가 별로 필요가 없던 시기였다.
그러던 나는 아버지의 유품 키보드의 드럼 음색으로 ‘건반 드럼’을 연주할 기회가 생겼으며,
1년간 건반으로 드럼 소리를 연주한 뒤 내가 실제 드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저 그랬던 찬양팀 멤버였던 나는 드디어 나만의 포지션, 즉 대학부 최초의 드러머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타 외의 다른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면서, 나의 음악성과 작곡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 늘어나는 것을 체험했고,
나는 그 동안 가장 부담을 느끼고 미뤄 두었던 건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정통 피아노를 바이엘이나 체르니부터 배운 것은 아니었고, 단지 내가 이미 아는 기타 코드들의 구성음을 건반으로
잡을 뿐이었고, 악보의 멜로디 정도 연주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의 건반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1990년대 초중반에 우리 나라에 막 유행하기 시작한 ‘컴퓨터 음악과 MIDI 시대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타로만 작곡할 때보다 훨씬 더 다양한 곡들을 쓰기 시작했다.
허름한 기타와 소박한 곡들로 시작한 나의 작곡과 음악적 재능은 어느 덧 몇 배로 불어나고 있었다.
(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