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가 돌아왔다
스물여섯 살 어느 화창한 봄날에 훌쩍 먼 나라로 떠나버린 친구
그녀는 이마가 유난히 톡 튀어나와 있어 별명이 짱구다.
우리는 OO 여중 1학년 4반에서 만나 중고등학교 6년을 함께 보냈다.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언제나 시시덕거리며 우스갯 소리도 곧잘 하여 코미디언이나 되라고
퉁박을 주곤 하는 나는, 그와는 반대로 까칠형이었는데도 둘이는 찰떡처럼 가까운 동무 사이가 되었다.
‘행행 거리면서 아프지 말고 잘 살고 있어라!
혹시 내가 국제 거지 됐다는 소문이 들리걸랑 비행기표 좀 보내 주라’며
기약도 없는 이별 앞에서도 장난기 발휘하는 공항 전화에 목이 메어 대답을 못했었다,
'너는 꽃가마 타고 시집가는데 나는 여기저기 수리하러 대장간으로 간다' 던
그날에 작별일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얼마 전 아침나절에 카톡이 왔다.
’일어났냐?'
’그건 왜 물어? 그림에 떡이'
’까칠하기는, 나 지금 평택에 있어'
’뭔 평택? 미국에도 평택 있냐?'
남편이 3년간 한국 근무 나왔다면서 급하게 결정되어 정신없이 오느라 소식을 늦게 전했노라며
여전히 낙천적이다.
그렇게 바랬었는데, 기나긴 40여 년 세월 다 보내고 인생 말년이 되어 하필
희대의 바이러스 펜데믹 시대에 찾아왔느냐며 툴툴대면서도 무척 반가웠다.
샛노란 나팔바지 입고 디스코장 들락거리던 20대에 그녀가 눈에 선하건만
정숙한 어머니, 인자한 할머니 되어 돌아온 내 친구 짱구를 환영한다.
그녀가 대구에 미군기지 근처 아파트로 입주한 지 석 달째 접어드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보내며 성화를 한다.
머리가 아프다, 속이 메슥거린다, 목이 칼칼하다, 암만해도 공기가 나빠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미세먼지가 ’보통‘ 이라는데 창문을 열어도 되느냐?
나쁨으로 뜰 때는 가까운 마트도 나가지 말아야 하나?
이런 곳에서 너희들은 어떻게 살았냐?, 등등.
‘미세먼지 농도를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의 네 단계로 하루 서너 번 정도 예보를 하거든.
초미세먼지(PM2.5) 예보 기준은 좋음 0~15μg/㎥, 보통 16~35μg/㎥, 나쁨 36~75μg/㎥, 매우 나쁨 76μg/㎥
이렇게 나눠서 말야. 나쁨 단계부터는 장시간 실외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으며, 어쩌고 저쩌고... ‘
포털 검색을 해가며 나도 몰랐던 정보를 전문가처럼 설명해 주다 보니 은근히 부아가 올라
사이다에 고춧가루 팍팍 뿌린 한마디를 보내고야 말았다.
‘야! 적응해라, 너 태어난 곳이고 26년간 자라온 나라다. 부모님 건강하게 사시다 90세 넘겨 돌아가셨고
형제들 모두 노령이지만 무탈하잖냐? 통계로 봐도 미국보다 우리가 훨씬 장수하거든
그니까 너무 민감하게 굴지 말라고.
닭 뼈는 일반 쓰레기봉투에, 껍데기는 음식 봉투에 넣어야 해!
자꾸 묻지만 말고 공부해라 공부. 알면 알수록 정드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아무나 쉽게 살 수 있는 곳인 줄 알고 있었니?‘
내 표독에 움찔하여 며칠간 잠잠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문자가 쏟아져 온다.
’집 앞에 바로 싱싱한 채소를 파는 총각네 가게가 있어 좋다.
떡볶이, 김밥, 감자튀김 너무 맛있다.
야, 전화하면 피자가 따끈따끈한 상태로 갖다주더라.
주말마다 카트 끌고 장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는..
플로리다 한적한 동네에서 부모 형제 없이 홀로 가정을 꾸리며 사는라
세상 물정에 어둡고, 게다가 대형 교통사고와 사업 실패, 남편의 암 발생 등으로
겪어온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알고 있는 세상은 집과 교회와 직장뿐이였다고.
그랴~
을매나 외롭고 서럽고 어려웠겠느냐, 속 넓은 엉아가 이해해야징.
근데, 우리나라 무시하지 말라꼬
대~한민국~, 짝! 짝! 짝! 짝! 짝!
소리치기 좋은 박자에 딱 들어맞는 대한민국 말이야.
아시아 북동부에 있는 한반도의 중남부에 위치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예의 바른 백의의 민족, 영원히 영광있으라~꼬 기도나 해주라.
첫댓글 와우 잘 읽었습니다.
간밤에 밤샘을 해서 비몽사몽간인데도
글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군요.
고단하신 잠, 깨워드려 죄송^^ 그리고 감사를 ㅎㅎ
나이들수록 친구가 좋더라고요. 사회 친구하고는 다른 끈끈함이 있어요. 강력본드같은 존재죠.
허물없고 죽처럼 속을 편안하고 그런 친구가 있어서 삶은 재미가 더해지죠. 짱구같은 친구 오래토록 그 우정 꽃피워나가세요.
맛깔스런 글에 폭식하고 갑니다.
맞습니다. 죽처럼 속이 편안하지요~
위장이 약하니 죽을 자주 먹어, 그 느낌 압니다.
그래도 폭식은 삼가하시길 ㅎㅎㅎ
묵은지 같은 친구가 돌아왔군요.
나이를 들수록 옆에는 친구들이 많아야 하는데 복 받으셨네요.
묵은지 같으고 걸죽한 죽 같으고..
우리도 서서히 그런 사이로 발전해 보실까요?
짧은 시간에 익어도 곰 삭으면 그 맛 날겝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