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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4,810m) 동북쪽에 솟아 있는 몽모디(Mont Maudit·4,465m)는 만만치 않은 봉우리다. 무엇보다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몽블랑 뒤 타귈(Mont Blanc du Tacul·4,248m)의 북서면을 지나 몽모디의 북면으로 오르거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경 능선인 쿠프너(Kuffner) 능선을 통해, 그리고 보다 멀리 몽블랑을 넘어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정상부에서는 악천후에 곧바로 노출되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몽모디의 북서 측면은 눈 덮인 육산의 형상이지만 남동 측면은 가파른 화강암봉인 악산의 모습이다. 특히 북서 측면에서 접근할 때, 암반의 광물질로 인해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상부에서 길을 잃는 사례가 많다고도 한다. 하지만 안정된 기후조건과 더불어 고소에 충분히 적응한 다음에 몽모디에 오르면 몽블랑 산군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4,000m 명봉이다.
본격적인 여름 등반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6월 초순이었다. 한동안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몽모디 등반에 나섰다. 동행한 이들은 백승기 선배와 이진기씨였다. 젊은 시절 그토록 동경하던 알프스를 잊지 못해 50대 중반의 나이에 3개월간 휴가를 낸 백 선배와 지난 가을부터 샤모니에 머물고 있는 이진기씨는 몽모디 산행이 처음이었다. 필자는 10년 전 여름에 북서 리지로 정상에 오른바 있다. 물론 종종 에귀 디 미디 쪽에서 몽블랑을 오르면서 몽모디 정상부의 북서 사면을 여러 차례 지나다녔지만 브렌바 콜(Col del la Brenva·4,303m)에서 지척인 정상은 자주 오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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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북동 리지의 설릉을 오르는 일행 뒤로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그랑조라스 너머 저 멀리 발리 산군도 아스라이 보인다. / (아래) 북동 리지 중간중간에는 설릉을 오르내리는 구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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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귀 디 미디 케이블카역 나와 몽모디 북동 리지로
이번에 우리가 오르려는 루트는 북동 리지다. 즉 몽블랑 뒤 타귈 북서면을 올라 몽모디 북면을 두고 왼편인 북동 리지로 정상에 오른 후, 북서 리지로 횡단해 일반 루트인 북면을 내려오는 것이었다.
샤모니에서 느지막이 산행을 시작한 우리는 에귀 디 미디행 케이블카에 올랐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라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3,800m 고도의 전망대에 오르니 구름이 자욱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해서 설릉에 내려선 후, 코스믹 산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드넓은 설원에는 텐트가 서너 동 쳐져 있었다. 곧 여름 성수기가 되면 갖가지 모양과 색상의 텐트가 즐비할 터다. 우리는 산장 아래를 지나 한적한 설원에 텐트를 쳤다. 좀 더 시야가 트인 콜 디 미디(Col du Midi·3,532m) 주변이었다. 광활한 설원 위의 한 점 텐트는 모였다 흩어지는 낮은 구름 아래에서 더욱 작아 보였다. 백승기 선배는 드디어 고향에 왔다며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었다. 학창시절 그렇게나 갈망했던 알프스이건만 현실의 벽 앞에서 알피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던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우리는 텐트 앞 눈밭에 앉아 이진기씨가 가져온 포도주를 마시며 설원에서의 저녁을 맞았다.
해가 기울자 눈이 내렸다. 일기예보에서는 저녁부터 맑을 거라 했는데 싸라기눈이 내렸다. 한 시간 정도 눈이 내린 후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별이 보였다. 다음날 산행에 대한 걱정을 씻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너댓 시간을 뒤척이다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새벽 2시였다. 준비해둔 눈 녹인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하루의 산행을 위해 마른 빵을 텁텁한 입에 넣었다.
캠프를 떠날 채비를 마치자 새벽 3시가 조금 넘었다. 밤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이제 출발이다. 우선 콜 디 미디의 설원을 지났다. 바람이 제법 찼다. 방한모를 눌러쓰고 걷는데, 새로 마련해 신은 등산화가 불편해 고쳐 매었다. 미리 점검하지 않아 추운 곳에서 겪는 불편이다.
이제 몽블랑 뒤 타귈 북서면 아래다. 우리 앞에는 세 팀이 앞서가고 있었다. 모두 코스믹 산장에서 출발한 이들이었다. 스키를 이용해 오르는 그들에 비해 도보로 오르는 우리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어둠을 헤치며 약 두 시간 동안 설사면을 오르고 또 올랐다. 마침내 날이 밝아올 즈음 몽블랑 뒤 타귈 북서면을 올라섰다. 이제 몽모디가 한눈에 들어왔다. 상단부만 살짝 아침 햇살을 받은 북면은 위압적이었다. 우리가 오를 북동 리지를 향해 콜 모디(Col Maudit·4,035m)를 가로질렀다. 4,000m 이상의 고갯마루라 바람이 제법 찼다.
중간쯤 가자 몽블랑 등반을 포기한 두 명의 산악스키어가 돌아오고 있었다. 포기한 사람 치고는 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우리 앞을 스쳐가는 그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우리의 건투를 빌었다.
분설이 바람에 심하게 날리는 콜 모디에서 북동 리지 아래에 이르렀다. 스키 스틱을 접어 넣고 피켈을 집어들었다. 본격적인 등반이다. 앞서 오르던 이진기씨가 작은 베르그슈른트에 빠졌지만 쉽게 빠져나왔다. 이후 등반은 순조롭게, 설사면을 지그재그로 올랐다. 군데군데 암석지대가 있지만 어렵지 않았다.
이윽고 북동 리지에 올라섰다. 날카로운 설릉 너머로 펼쳐진 몽블랑 산군의 동쪽 및 남쪽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 지점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선을 따라 올랐다. 몽블랑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국경 능선은 몽모디 정상을 지나 바로 이 능선을 따라 저 멀리 당뒤 제앙과 그랑조라스까지 이어져 있다.
커니스가 진 설릉에서 주로 프랑스 쪽 사면을 따라 올랐다. 몇몇 군데에선 이탈리아 쪽으로 넘긴 하지만 등반선은 줄곧 북쪽인 프랑스 쪽에서 오른다.
보온병 컵 잡으려다 사람도 추락할 뻔
이제 우리 앞에는 북동 리지의 어깨 부분인 숄더(Pt 4,336m)가 가로막고 있다. 등반은 어렵지 않지만 가파른 바위지대라 바짝 긴장하며 올랐다. 다행히 바위가 바람막이가 되어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홀드를 잡고 올랐다. 왼편 아래로 펼쳐진 브렌바 빙하(Glacier de la Brenva) 쪽의 아찔한 고도감을 즐기며 믹스지대를 올랐다. 이윽고 숄더에 올라섰다. 캠프를 떠난 지 4시간 이상 지났기에 쉬기로 했다.
보온병의 차를 나눠 마시는데, 백 선배가 그만 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추위에 곱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백 선배가 잡으려다가 균형을 잃었지만 용케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컵 때문에 사람까지 떨어질 뻔했다. 북쪽 설사면으로 떨어진 보온병의 컵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아래로 굴러갔다. 아마 보송 빙하 중단의 세락지대로 떨어졌을 것이다.
또다시 등반이다. 숄더 이후부터 바위지대는 없고 설릉이 이어져 있다. 굴곡진 가파른 설릉은 커니스가 심해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연이 빚어 놓은 최상의 아름다움 중 하나다. 커니스가 남쪽인 이탈리아 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북풍이 심한 모양이다. 조심해서 굴곡 진 설릉을 오르내렸다. 몇몇 바람이 심한 안부에서는 분설이 휘날렸다.
이제 정상이 멀지 않았다. 경사도가 낮은 사면에서는 심설을 헤쳐 올랐다. 이제 정상부 바위 지대 아래에 이르렀다. 우회해 북서 리지에 올라야 한다. 60m 로프로 길게 한 피치 끊었다. 도중에 강빙 구간이 한 군데 있어 아이스 스크루를 설치해 자일을 통과시켰다. 이제껏 잘 오르고서 마지막에 실수할 수는 없었다.- 조심해서 오륙십 도 경사의 빙설사면을 오르고 또 올랐다. 이윽고 북서 리지에 올라섰다. 몽블랑이 한눈에 건너다 보이고 그 아래로 돔 뒤 구테(Dome du Gouter·4,304m)와 보송(Bossons) 빙하가 있다. 그 뒤로 짙푸른 알파인 초원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북동 리지를 오르며 지켜본 몽블랑 산군의 침봉과 빙하와는 달리 구릉 진 알파인 초원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후 북서 리지를 따라 어렵지 않게 몽모디 정상에 섰다. 정상에 서기 전, 백승기 선배는 정상 등정보다 급한 일을 보았다. 이제껏 참은 용변을 정상 한참 아래쪽 바위지대에서 해결했다. 보다 안전한 정상부 너른 바위에서 해결하라 했건만 차마 몽모디와 그곳에 오르는 알피니스트들에게 결례를 할 수 없다며 한참 아래쪽에서 조심스럽게 안전벨트까지 벗고 일을 보고서 뒤늦게 정상에 섰다. 캠프를 떠난 지 6시간 만이었다.
정상에 선 우리 셋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주변에 펼쳐진 풍광의 즐거움뿐만 아니었다. 백 선배는 첫 4,000m급 등반이었으며 이진기씨에게도 몽모디는 처음이었다. 정상에서 GPS를 펼쳐든 백 선배는 우리의 산행기록을 살펴보면서 정상이 지도상의 높이보다 3.2m 더 높다고 했다. 오랜 기자 생활이 몸에 배어 우러난, 기록의 중요성을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아침에 콜 모디에서의 그 매섭던 바람이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훈풍에 가까웠다. 느긋하게 주변 풍광을 즐겼다. 남서쪽 바로 앞에 웅장하게 솟아 있는 몽블랑과 동벽 아래로 펼쳐진 브렌바 빙하 쪽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동쪽 저 멀리 그랑조라스 너머로 발리 산군의 마터호른과 몬테로자가 아스라이 보였다. 그 왼편으로 베르너 산군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알프스의 한 산정에서 맞이하는 완벽한 등정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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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해뜰 무렵 타귈 북서면을 올라서는 일행 뒤로 에귀 디 미디가 보인다. 2 콜 디 미디의 설원에서 한가한 오후시간을 보내는 일행 뒤로 타귈 북서면이 보인다. 3 북동 리지의 중간지점인 숄더의 바위지대를 오르는 이진기씨 아래로 브렌바 빙하가 내려다보인다.
- 8명 눈사태로 사망한 사면 조심스레 지나
이제 하산할 차례였다. 안전한 하산 후 더 큰 기쁨이 있듯 우리는 조심해서 하산 길에 올랐다. 우선 북서 리지를 따라 설릉을 가로질렀다. 이윽고 믹스 지대의 설사면을 내려섰다. 조심해서 킥스텝을 했다. 자칫 잘못하면 발 아래로 1,000m 이상 추락이다. 보송 빙하 상단의 거대한 크레바스와 세락지대가 아귀처럼 내려다보여 신경이 곤두섰다.
이윽고 몽블랑으로 이어지는 사면에 닿았다. 곧이어 북서 리지가 끝나고 리지에서 몽모디 북면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파른 두 피치의 설사면에서 자일 하강을 했다. 준비해 간 로프가 짧아 필자는 후미에서 클라이밍 다운을 했다. 이후 북면의 설사면을 한손에는 피켈, 한손에는 스키 스틱으로 짚으며 걸어 내렸다. 도중에 몇몇 구간에서는 바짝 긴장했다.
북면을 거의 다 하산할 즈음 세 명의 산악스키어가 무거운 스키를 등에 지고 오르고 있었다. 곧 여름이지만 스키산행이 가능한 시기다. 그들은 몽블랑으로 향한다고 했다. 서로 건투를 빌며 헤어졌다.
이윽고 콜 모디에 내려섰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위험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지루함이 커져 갔다. 콜 모디의 완사면을 오르고 또 올랐다. 몽블랑 뒤 타귈의 어깨 능선을 넘어야 콜 디 미디의 캠프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걷고 또 걸어 눈 언덕을 넘자 에귀 디 미디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내리막길만 남은 셈이다. 마지막 하산길이 어렵지 않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8명이 눈사태로 사망했던 타귈 북서 사면이다. 조심해서 걷고 또 걸어 하산에 약 3시간 걸려 마침내 캠프로 돌아왔다. 새벽에 캠프를 출발해 9시간 이상 걸린 한낮의 꿈 같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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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정보
4,465m 높이의 몽모디는 알프스 4,000m 주요 봉우리 중 열 번째로 비교적 높은 봉우리에 속한다. 초등은 1878년 9월에 WE 데이비슨 일행이 몽블랑 등정 후, 남릉을 통해 올랐다. 오늘날 일반적인 등정은 남동쪽의 가파른 벽 등반이나 몽블랑을 넘는 대신 에귀 디 미디 전망대를 이용, 북서면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몽블랑을 오르며 몽모디 정상부의 북서 사면을 지나는 경우에 정상 등정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몽모디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북면을 사이에 두고 북동 리지로 올라 북서 리지로 하산하는 횡단등반을 권하고 싶다.
등반 후 일반적으로 이용하게 되는 몽모디 북면과 몽블랑 뒤 타귈 북서면을 하산할 때는 한낮의 열기에 녹은 설사면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많은 눈이 내린 후에는 눈사태 위험이 큰 구간이다. 타귈 북서면은 2008년 여름에도 눈사태로 8명이 사망한 곳이다.
산행 전의 숙박은 코스믹 산장(33(0)450541603)을 이용하거나 콜 디 미디의 설원에서 캠핑을 하면 된다. 산장은 2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문을 열며 여름 성수기에는 예약 후 찾는 게 좋다. 조·석식 포함하여 1박에 약 45유로다. 에귀 디 미디 케이블카 왕복 요금은 40유로며, 몽모디 정상 GPS 좌표는 French UTM32 GR 0335050/5079290이다.
/ 글·사진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 www.goalps.com
- 조심해서 오륙십 도 경사의 빙설사면을 오르고 또 올랐다. 이윽고 북서 리지에 올라섰다. 몽블랑이 한눈에 건너다 보이고 그 아래로 돔 뒤 구테(Dome du Gouter·4,304m)와 보송(Bossons) 빙하가 있다. 그 뒤로 짙푸른 알파인 초원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북동 리지를 오르며 지켜본 몽블랑 산군의 침봉과 빙하와는 달리 구릉 진 알파인 초원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