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없는 여행
소정 하선옥
물 속에서 버텨온 세월이 얼마였을까? 그래도 봄 오면 잎 피워서 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가을이면 고운 단풍으로 많은 사람 마음에 설램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했고 또 저렇게 잎 다 떨구고 나면 온몸으로 고즈녁함과 사색에 젖게 해주네. 이제 쉼 으로 돌아가서 얼음어는 차디찬 동절을 어이 견딜꼬 날풀려 잎볼때까지.
마음 맞는 친구들 다섯과 훌쩍 떠나온 목적지 없는 일박 여행. 남자 셋 여자 둘.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마음이 가르키는 곳으로 떠나온 곳이 '주산지' 였네.
고즈녁함에 반했고, 햇빛에 반사된 윤슬에 반했고, 찍어논 사진에 반사된 산이 호수가 되고 호수가 산이된 모습에 반해서 묶혀있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 버리고 왔네.
우리네 인생살이가 말처럼 그리쉽던가? 부딪히며 넘어지며 생채기 나며 살았던 인생 아니였던가? 나도 이렇게 견디며 살고 있다고 말없이 물속에 잠겨 서있는 주산지 고목은 온몸으로 보여주네.
돌아서는 걸음이 가벼워진것은 무거운 마음을 거기다 두고 왔나보다.
웃고 떠들며 내려오는 우리는 칠십이 아니고 십팔세 소년 소녀 들이였네. 그날 하루 만큼은.
거제에서 출발해서 청송 주산지를 거쳐 울진으로 그리고 방파제를 빼곡히 채운 갈매기떼와의 대화. 투박한 경상도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듣는 네비게이션에게 사람말을 못알아 듣는다고 툭툭 나무라가며 찾아간 죽변에서의 멋진 풍광의 숙소. 동해 바다의 수평선과 철석 거리는 파도 소리에 주산지를 돌아내려오면서 사 온 사과 막걸리 네 병은 우리들의 밤을 즐겁게 해주고. 풍광에 반해서 커텐을 내리지 않고 잠들었다가 새벽 여명부터 일출까지 누워서 보는 호사로움까지. 느지막히 출발해서 다시 거제로 향하는 길. 울진 성류굴, 장사해수욕장의 학도병들이 6.25 때 조국을 위해 희생했던 문산호에 탑승도 해보고 경주 주상절리를 돌아서 집으로.
옛 어른들 하시는 말씀속에 "바퀴를 두드리면 복판이 울린다고" 북을 두고 비유한 말씀이지만 빙둘러서 하는 말들에 상처를 받고 우리 역시도 그렇게 나자신도 못느끼면서도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세상아니든가.
우리 스스로에게 위로가 필요해서 떠나온 여행이였지만 1박2일이면 충분했었다. 멀리는 못가고 돌아왔지만 막힌 가슴도 뻥 뚫렸고 우리는 아직도 청춘이였고 멋짐이 폭발 했었었다. 우리들 생각이겠지만...
잘난척 있는척 아는척 하지않는 우리들. 양보 할줄알고 서로를 존중해 줄줄아는 우리들. 목적지 없이 베낭하나씩 걸머지고 떠나왔어도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네. 주산지의 고목이 멋지듯이.
다음 여행도 목적지 없이 차시동 걸고 어디로 갈까? 로 시작하자고 그럴려면 다들 건강하자고 약속들을 했었네.
사람 사는 일이 별거 없더라. 그냥 하루쯤 다 내려놓고 실없이 웃고 떠들며 사는 것도 비워내는 것이더라. 비워내고 비워내도 차오르겠지만...
2023년 11월 22일 소정.
첫댓글
'남편보다 자식보다 먼저 만난 사이, 낡아갈수록 손때 묻어 빛나는 보물 같은 존재, 이별 없는 사랑이다.'
다섯 친구와의 여행기, 저의 수필 '친구의 맛'이 떠오르는 글입니다.ㅎ
맛난 식사를하고 난 듯, 포만감을 안고 갑니다.
아, 주산지... 물을 땅인양 딛고 서 있던 나무가 눈에 삼삼했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