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9> 제1편 제3장 육자진언의 공덕 ③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실행론」 제1편 제3장 제5절 ‘육자진언과 본심’은 불교 수행의 전문주의를 먼저 역설한 후, “현시대는 워낙 본심이 없는 시대이므로 본심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면 본심이 크게 일어나고, 이 본심이 일어난 연후에 각각 취하는 바를 쫓으면 성취가 빠르다(실행론 1-3-5)”고 설하여, 전문주의 수행 중에서도 육자진언 염송 수행이 말법시대에는 가장 효과적인 수행이라고 확신적으로 말씀한다.
이후 심인불교의 취지를 밝혔는데, 이 내용은 제2회에서 이미 인용한 바 있다. 다만 이 내용에서도 “육자본심을 염송하여 육행을 기반으로 각자 직무에 충실하면 복이 되고(실행론 1-3-5)”라 하여, 육자진언 염송을 육행불공으로 이해하는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회당대종사의 전문주의(專門主義)와 이원사상(二元思想)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대종사께서는 이원사상에서 ‘이원방법(二元方法)’을 말씀하셨는데, 전문주의는 바로 이 이원방법을 지칭한다. “현세를 교화하기 위해 이원방법을 세워서, 일원(一元)에 병든 것을 바르게 하는 새 불교(실행론 서문 제5단락, 제3회 참조)”를 지향하신 것이다. 일원을 전제적 통솔(統率)로, 이원을 민주적 전문(專門)으로 보신 안목은 대단한 설득력을 얻는다. 문명이 피안에 이를수록 전제적 통솔이 자리잡을 곳은 없어진다.
‘일원통솔(一元統率)’이 아닌 ‘이원전문(二元專門)’의 시대가 문명시대이기에, 문명시대의 불교는 전문주의로 현세를 교화해야 하는 것이다. 문명시대는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시대이고 전문시대이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다원이 전개되는 시대일수록 일원으로 회귀할 수도 없지만, 다원 중에서 이원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지혜로운 것이 된다. 다원은 단순한 전문일 뿐이지만, 이원은 전문의 전문이 되는 것이다.
‘전문의 전문’을 ‘자주(自主)’라고 칭할 수 있다. 단순한 전문은 자주로 정립되기 어렵다. 이원이 자주가 되는 ‘이원자주(二元自主)’는 ‘전문(專門)의 극치’를 일차적으로 의미한다. 나아가 자주의 입장에서 이원을 융섭(融攝)하려는 ‘포월(包越)의 관용’이 이원자주의 이차적 의미가 된다. 더 나아가 이원을 회통(會通)하여 ‘중도(中道)의 합일’을 이루는 것이 이원자주의 궁극적 의미가 된다.
합일은 결코 통솔이 아니다. 나와 너가 자기개성(自己個性)을 유지하면서 나와 너가 상호반영(相互反影)하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의 만다라이다. 정체(政體, system of government)로 말하면 민주(民主)와 공화(共和)의 아름다움이다. 만일 다원이 이원으로, 이원이 자주로 융섭포월되지 않고 회통중도되지 않는다면 만물은 단지 섬들로 외로이 살아갈 뿐이다. 섬과 섬이 배편으로 나아가 다리로 연결되는 연기(緣起)의 발현은 이원자주의 이상적 모습이다.
제6절 ‘육자진언과 육바라밀’은 제2절에 이어 계속되는 교설인데, 제7회에서 일차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특별히 서술하고자 하는 바는 「마니칸붐」 및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聖觀自在求修六字禪定)」과의 관계이다. 육자진언의 공덕을 설한 「대승장엄보왕경」을 티베트에서 교학적으로 발전시킨 논서가 마니칸붐이다. 티베트 통일 토번국 초대 군주로서 성군(聖君)인 손첸 감포(재위 617~650)의 법설이 결집된 논서이므로, 그 성립시기는 7세기라 할 것이다. 당나라 문성공주와의 인연으로도 회자되는 손첸 감포는 티베트문자와 티베트불교의 확립자로서 마니칸붐의 실질적인 논주(論主)가 된다.
대승장엄보왕경의 논서 성격을 띠는 마니칸붐은 육자진언 선정법을 다양하게 논하였는데, 그 핵심은 종자설(種字說)이다. 이는 육자진언 각 글자가 진여(眞如, 실상)를 현현하는 종자(種子)와 같은 자(字)라는 설이다. 대승장엄보왕경에는 종자설이 나타나지 않지만, ‘옴+마니+반메+훔’의 각 자가 지닌 의미가 하나하나 심대하므로 종자설이 개진되는 것은 자연스런 교학적 발전양상이라 하겠다.
고려 후기 내습한 몽고와 함께 마니칸붐이 고려에 전해졌다고 학계는 본다. 몽고는 티베트불교 권역이다. 마니칸붐을 발췌하고 편집한 다수의 찬술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는데, 용성선사의 육자진언 저작들이 대표적이며, 회당대종사의 육자진언 선정법은 이들을 실제 체험증득하여 재정립한 것이다.
마니칸붐 성립 이후에 그 종자설에 따라 육자진언 수행법을 논한 다수의 논서 중 대표적인 것은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이다. 이 논서는 원나라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마니칸붐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육자를 자신의 몸에 포자(布字)하는 육자진언 관상법이 특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용성선사와 회당대종사께서 마니칸붐과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의 두 논서를 직접적으로 열람하셨는지, 두 논서의 교설과는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하는 구체적인 검토는 이 글에서 행해지는 않는다. 다만 ‘육자’라는 의미자(意味字) 하나하나를 진여의 종자로 인식하고 수용하여 교설을 전개한 전통은, 육자선정의 묘득을 체험증득한 양 대인(大人)에게 공히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