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인 노사투쟁의 모습,
학문을 도외시하며 파괴 활동에 전념하는 학생들,
정치가의 추한 자기보존, 일반가정의 부조화 등
예를 들면 끝이 없는 혼란의 세상 --.
이것도 모두, 인간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 낸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돈, 경제이다.
사람이 만족을 모르고,
감사의 행위를 부정하며 조화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또 신이라는 이름아래 방황하는 사람들을 협박해서,
벌을 받는다는 등 마음에 족쇄를 채우고, 피를 빨고 있는 위선자들.
인간의 정도를 가르쳐야 할 종교가가,
죽은 자의 지킴이나 장례식의 집행인으로 전락하여,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불이라고 하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승려하고 하는 이름의 장사꾼은 이런 생활을 근행이라고 하며
습관적인 행위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타력신앙으로 일관된 생활이다.
하지만 과연 타력신앙으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가령 천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정말로 가련하다.
곁에서 간호를 하는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다.
발작을 완화시키려고 마취로 발작을 잠시 억누른다,
고통의 일시적인 도피이다..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않는 한,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는 없다.
즉 해결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천식의 원인을 찾아
그 병의 뿌리를 자를 수밖에 없다.
신앙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의 병고(病苦)와 정신적 고뇌로부터 일시적 도피여서는 안된다.
일체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고뇌는 재발하는 것이다.
신의 자애의 빛은 만물에 평등하다.
마치 태양의 열 빛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의 본질과 생활의 본질을 바르게 하지 않고,
타력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다수의 사람들 중에는 타력을 인연으로 해서,
스스로의 성격과 행위를 고쳐 입신양명의 경지에 들어가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불안과 집착이 있으면
고통의 씨는 다시 싹을 틔워 그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종교의 길을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있을 때는,
자기자신에 만족하고 있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가 일상생활에 들어가면,
마음과 행위의 차이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을 터이다.
그것이 특별히 기복신앙의 신흥종교를 믿고 있는
간부들에게만 많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도, 설교하고 있을 때도,
항상 변하지 않는 마음과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부조화라는 것은 이미 정도를 실천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광신자와 맹신자에게는 자기도피가 자기도취의 수준이 되는데,
그것은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 아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앙은 정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54년 12월,
나는 결혼하여 독신생활과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사업에 실패하여 무일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좋은 체험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파트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열쇠 하나로 어디라도 갈 수 있는 홀가분한 몸이었고
이웃 사람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이 무렵부터 내게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시작되어,
예언은 거의 적중하여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좁은 아파트 안에 가득 넘쳐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왜 예언이 적중했는지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것을 믿지는 않았으며 사심도 없었다.
그러나 이십 년 가깝게 내 생활 속에서 신불의 이야기가 빠진 날은 없었으며
그것은 집념처럼 내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생활을 위해 큰 숲에 백 평 남짓한 건물을 짓고
옛날 단골거래처의 협력을 얻어 전기회사를 설립했다.
사업은 순조롭게 성장하여 카나가와와 나가노에 작지만 생산공장도 갖게되었다.
경제력 없이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돈벌이에 전념하였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일상의 사고와 행위는 정도에서 크게 멀어져 버렸다.
그것은 내가 욕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종업원과의 의사소통, 회사 내부의 혼란,
가정도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렇지만 아사쿠사의 빌딩신축은 시작되었고,
사우나탕과 초음파 온천을 비롯한 사업은 착착 진행되어 갔다.
그리고 1968년 7월 3일, 마침내 올 것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