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 (論語集注) - 1 - 학이(學而) - ⑨ |
1 |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이 歸厚矣리라 증자가 말하기를, “(부모의) 장례를 신중히 치루고, 선조를 충심으로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고 하였다.
愼終者, 喪盡其禮. 追遠者, 祭盡其誠. 民德歸厚, 謂下民化之, 其德亦歸於厚. 蓋終者, 人之所易忽也, 而能謹之; 遠者, 人之所易忘也, 而能追之: 厚之道也. 故以此自爲, 則己之德厚, 下民化之, 則其德亦歸於厚也.
끝을 삼간다는 것은 상을 당해서 그 예를 다한다는 말이다. 멀리 추모한다는 것은 제사를 지낼 적에 그 정성을 다한다는 말이다. 백성의 덕이 두터운 데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래 백성들이 그에 교화되어, 그 덕 또한 두터움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대개 끝(초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소홀히 하기 쉬운 바이나, 그것을 능히 삼갈 수 있고, 멀리 있는 것은 사람이 잊기 쉬운 바이나, 그것을 능히 쫓아갈(추모) 수 있다는 것이니, 이는 후덕함의 도다. 그러므로 이것을 스스로 하면, 곧 자신의 덕이 두터워지고, 아래 백성들이 그에 감화되면, 그 덕 역시 두터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
2 | 龜山楊氏曰 孟子云 養生不足以當大事 惟送死可以當大事 則大事人子所宜愼也 故三日而殯 凡附於身者 必誠必信 勿之有悔焉耳矣 三月而葬 凡附於棺者 必誠必信 勿之有悔焉耳矣 夫一物不具 皆悔也 雖有悔焉 無及矣 此不可不愼也 春秋祭祀以時思之 所以追遠也 齊之日思其居處 思其笑語 思其志意 思其所樂 思其所嗜 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 則孝子所以盡其心者至矣 以是而帥之 民德其有不歸厚乎
구산양씨가 말하길, “맹자가 이르길, 산 사람을 봉양하는 것은 대사로 삼기에는 부족하고, 오직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것만이 대사로 삼을 수 있다고 하였으니, 대사는 아들 된 자가 마땅히 신중하게 해야 할 바인 것이다. 그러므로 3일이 되어서야 염을 하는 것이니, 무릇 몸(시신)에 붙일 것은 반드시 정성을 다하고 미덥게 하여 후회함이 남도록 해서는 아니 될 따름이다. 3개월이 되어서야 매장을 하는 것이니, 무릇 관에 붙일 것은 반드시 정성을 다하고 미덥게 하여 후회가 남도록 해서는 아니 될 따름이다. 무릇 한 가지 사물이라도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모두 후회할 것이다. 비록 후회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에 미칠 수 없는 것이니, 삼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계절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니, 먼 조상까지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재계하는 날에는 그분이 거처하신 바를 생각하고, 그분이 웃고 말하던 것을 생각하며, 그분의 뜻을 생각하고, 그분이 즐거워한 바를 생각하며, 그분이 즐겨 드시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재계한 지 3일이 되면, 마침내 그가 재계한 바를 알 수 있으니, 효자가 그 마음 다하기를 지극히 하는 까닭이다. 이런 것으로써 이끈다면, 백성의 덕이 어찌(其) 두터움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3 | 朱子曰 謹終追遠 自是天理所當然 人心所不能自已者 自是上之人所當爲 不爲化民而爲之 能如此 則己德厚而民德亦化之而厚矣
주자가 말하길, “상례를 삼가 신중히 하고 제사를 지내 멀리 추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천리가 마땅히 그러한 바이며, 인심이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니, 저절로 윗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이지, 백성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행하지는 않는다. 능히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자기의 덕이 두터우면서도 백성의 덕 역시 그에 교화되어 두터워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
4 | 蘇說 曰 忽略於喪祭 則背死忘生者衆 而俗薄矣
소씨의 설에서 말하길, “초상과 제사에 소홀히 하고 대충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등지고 산 사람을 잊은 자가 많으면서 풍속이 야박해진 탓이다.”라고 하였다. |
5 | 雲峯胡氏曰 古註云 愼終者喪盡其哀 追遠者 祭盡其敬 集註 依伊川說 以禮與誠易之 蓋喪罕有不哀者而未必皆盡禮 祭罕有不敬者而未必皆盡誠 薄俗往往然也 惟民生厚 民德本厚也 歸厚不過復其本然者爾 豈有增益之哉
운봉호씨가 말하길, “옛날 주석에 이르길, 愼終이라는 것은 초상을 치를 적에 그 애통함을 다하는 것이고, 追遠이라는 것은 제사를 지낼 적에 그 공경함을 다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집주에서는 정이천의 학설에 따라 禮와 誠을 가지고 그것(哀와 敬)을 바꾸었다. 이는 대체로 초상을 치를 적에 애통해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반드시 예를 다하는 것은 아니고, 제사를 지낼 적에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반드시 정성을 다하는 것은 아니며, 야박한 풍속에서는 종종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오직 민생이 두터워야 백성의 덕도 본래 두터운 것이다. 두터움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것이 본래 그러한 바에 복귀한다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니, 어찌 더하고 보태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6 | 東陽許氏曰 常人之情 於親之終 悲痛之情切 而戒愼之心 或不及 親遠而祭 恭敬之心勝 而思慕之情或疎 君子存心 則加於此 送終旣盡擗踊哭泣之情 又盡喪死之禮 如禮記殯而附於身者 必誠必信 葬而附於棺者 必誠必信 勿之有悔之類 祭遠者 旣盡孝敬之意 又致追慕之情 如禮記所謂祭死者 如不欲生 霜露旣降有悽愴之心 雨露旣濡有怵惕之心之類 如此則 過於常人 其德爲厚 上之人 旣如此 下民化之 其德亦歸于厚
동양허씨가 말하길, “보통 사람의 정으로 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심에 비통한 정이 절실하지만, 경계하고 삼가 신중히 하는 마음은 간혹 이르지 못하기도 한다. 먼 조상까지 친애하여 제사를 지낼 경우에, 공경하는 마음이 우세하여 사모하는 정은 간혹 소략하게 된다. 군자가 마음을 보전한다면, 여기에 더함이 있으니, 돌아가신 분을 보낼 적에 이미 가슴을 치고 뛰면서 곡하며 우는 정을 다하고 나서, 다시 초상 치르는 예를 다하는 것이다. 마치 예기에서 ‘염습할 적에 그 몸에 붙일 것은 반드시 정성을 다하고 미덥게 하며, 매장할 적에 관에 붙일 것은 반드시 정성을 다하고 미덥게 하여 후회함이 있도록 하지 말라’는 부류와 같은 것이다. 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이미 효경의 뜻을 다하고서 다시 추모의 정을 지극히 하는 것이니, 마치 예기에서 ‘소위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마치 살고 싶지 않은 듯이 하되,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렸으면 처량한 마음이 가지고, 비와 이슬에 이미 젖었으면, 슬픈 마음을 가진다’는 것과 같은 부류다. 이와 같이 한다면,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것이니, 그 덕은 두터워질 것이다. 윗사람이 기왕에 이와 같이 한다면, 아래 백성들은 그에 교화되어, 그들의 덕 또한 두터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7 | 愼終存哀中之敬 追遠動敬中之哀
愼終(초상을 신중하게 치름)은 애통 중의 공경을 보전하는 것이고, 追遠(먼 조상을 추모함)은 공경 중의 애통을 발동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