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믿음
이상하게도 세상은 내가 잘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훼방하고 간섭하여 어지럽게 만듭니다. 수많은 이해관계를 만들어 놓아 얽힌 실타래처럼 풀기 어렵게 합니다. 잘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새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푸념합니다. “어휴!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자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제발 제가 하는 일이 잘되도록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주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잔인한 세상은 우리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멋대로 흘러가기만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아무래도 하느님은 내 편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무런 응답이 없으실 수 있습니까?
적잖이 실망한 우리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습니다. 마냥 무턱대고 하느님만 바라보는 것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차라리 그럴 시간이면 뭐라도 하나 더 시도해 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무작정 하느님만을 믿고 기다리기에는 시간도 없고 견딜 힘도 없습니다. 사실 그만한 믿음이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간절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 딱히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은 점점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고 구원을 받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도 점점 사라져갑니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면서 아웅다웅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주저앉아 하느님의 구원은 생각의 저편으로 지워버리고 맙니다. 불현듯 주님이 찾아오셔도 잠시 가슴이 뜨끔할 뿐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지은 죄가 있기도 하려니와 그만한 믿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외치며 주님을 찾는 눈먼 거지의 믿음이 부럽습니다. 아직 우리는 마냥 외치며 주님을 찾기에는 주위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인간적인 창피함이 믿음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인근덕 헨리코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