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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철저한 구도와 보살정신의 실천
― 『사벽의 대화』 論
장영우
1.
『사벽의 대화』1) 초판 표지에는 [지허스님의 토굴일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 문구는 이 책의 저자와 장르를 알려주는 지표지만, 굳이 그것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초판 해제를 쓴 김광식의 성실하고도 집요한 추적에 의해 상당 부분 새롭게 밝혀진 바대로, [지허知虛]는 이 책 저자의 필명이며 이 책의 장르 또한 순전한 사실적 기록물(documentary)이라기보다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문학적 작품으로 보는 게 옳을 듯하다. 그것은 이 책의 구성이나 표현이 대단히 치밀하고 문학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점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뒤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책의 구성은 자아의 본성本性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열 단계로 나눠 보여주는 [심우도]와 무척 혹사酷似하다. 이와 관련해 이 글 화자의 상대역 이름이 [석우石牛]인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김광식의 추적에 따르면, 석우도 실존인물이라 하지만 허구적 인물이어도 상관없으며 오히려 허구적 인물일 때 이 글의 주제가 보다 뚜렷해진다. 요컨대, 이 책을 지허가 강원도 정암사의 토굴([심적深寂])에서 [석우]를 만나 함께 용맹정진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면, [석우]는 말 그대로 자아의 본성을 뜻하는 [소牛]의 비유적 상관물이라 할 수 있다.
『사벽의 대화』는 단순한 선방일기나 수행기가 아니다. 전체 10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은 심우도의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며, 지허와 석우 등 두 수좌가 주고받은 대화 또한 매우 지적이고 세련된 불교 담론으로 이들의 깨달음의 단계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이 책이 주변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두 수좌의 극한에 가까운 토굴생활의 상세한 재현과 불교적 주제에 대한 논리적 분석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석우의 일상은 참다운 토굴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모범적 사례이다. 그는 왼종일 먹을 것과 땔감을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매고 밤에는 [꿀밤(도토리)]를 다듬으며 간혹 지허와 대화를 나누는 일 외엔 거의 무관심하거나 초월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를테면, 이 책에는 석우가 어느 일정한 시간에 참선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없으며, 그가 육신을 가리기 위해 걸친 것은 옷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나름대로의 규율에 따라 일하고 먹고 잠잔다. 그는 [심적]을 떠나기 전 지허에게 {햇빛 찬란한 낮에 생의 기반羈絆같은 가부좌를 튼 채 선방禪房에서 면벽불面壁佛을 그리는 좌선보다는 도량 주변의 대지 위에서 그림자를 그려 가며 근로하는 행동이 바로 열반에 이르는 빠른 길}이라며 [노동]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행동주의는 참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겉치레 좌선에 빠진 일부의 그릇되거나 안이한 풍토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보아야 할 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올바른 참선이나 수행에 관심을 가진 사부대중 모두에게 지남指南이 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허와 석우 두 인물에 대한 실존적 정보는 해제에 잘 서술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인물은 6·25 이후 출가하였고 대학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의 문화적 교양을 갖춘 인텔리 계층이다. 지허의 법명은 [지혜知慧]로 월정사에서 혜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는 설과 동성 스님 상좌라는 설이 공존하여 어느 것이 올바른 정보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문학에 관심이 많아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여러 차례 응모한 경력이 있다는 전언은 그럴듯한 사실로 여겨진다. 『사면의 대화』에서 산견되는 문학적 표현이나 적확하고 미려한 문장, 그리고 책 전체의 구성 등은 상당한 문학적 수련이나 소양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구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지허가 잠시 사귀던 이화여대생의 죽음 때문에 출가했다거나, 석우가 실존인물로 곡차를 즐겼다는 전언은 말 그대로 소문에 불과할 뿐이며 이 책을 읽는 데 별다른 장애가 되지 못한다. 이 책은 그 장르적 성격과 상관없이 서슬 퍼런 두 수도자의 목숨을 건 수행과정을 평이하고 진솔하며 감동적인 언어로 전달하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2.
『사벽의 대화』를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일종의 허구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중심서사는 지허―석우의 만남과 헤어짐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사건이 거의 극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이별에는 워낙 극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게 마련이지만, 지허와 석우의 그것은 특별한 의도(주제)를 위해 고안된 문학적 장치(device)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일종의 [법거량法擧揚]으로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성인주의成人主義의 실천이라는 대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정교한 언어와 치밀한 논리로 시종하고 있는 것도 이 글이 직접 체험의 사실적 나열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이 글의 저자가 상당한 문장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이 글의 화자가 [심적]을 찾아가는 장면의 {오를수록 산은 가팔라졌고 냉기는 더했다. 비탈에 쌓인 눈들은 겨우내 토끼새끼 한 마리 굴리지 못해 무료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이 나를 엎어뜨리고 미끄러뜨리고 뒹굴게 하는 것이다.}와 같은 구절은 글쓴이의 문학적 감각과 재능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보기로, 이 책 어느 곳을 들춰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표현들이다.
이 글을 허구로 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서사의 전개가 심우도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근거한다. 잘 아는 대로, 심우도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그린 그림으로, 중국 송나라 곽암廓庵이 처음 그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심우도는 [8목우도牧牛圖], [10목우도], [12목우도] 등 세 가지가 전하는데, 이 가운데 [10목우도]가 가장 널리 알려져 흔히 [십우도十牛圖]라 불리기도 한다. 곽암의 십우도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섰다가 소를 발견하고 잡아끌어 마침내 자아와 소가 하나가 되고, 마지막에는 애초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 각 사찰 벽화에 두루 모사되어 있다. 심우도의 열 단계는 1. 소를 찾아 나서다[尋牛], 2. 자취를 발견하다[見跡] 3. 소를 보다[見牛] 4. 소를 얻다[得牛] 5. 소를 기르다[牧牛] 6. 소를 타고 집에 가다[騎牛歸家] 7.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忘牛存人] 8. 사람과 소를 모두 잊다[人牛俱忘] 9. 근원으로 돌아가다[返本還源] 10. 저자로 가 손을 드리우다[入廛垂手]인데, 『사벽의 대화』 10장이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전개 양상은 매우 유사하며 일부분 대응되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 글의 화자([나] 즉 [지허])가 [심적]에 가 석우를 만나고 마지막에 그곳을 떠나는 과정은 심우도의 처음과 마지막 단계와 거의 일치한다고 보아도 크게 잘못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석우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망을 지닌 존재로 부각된다. 그는 지허의 도반이면서 스승이며, 지허가 찾고자 하는 자아의 본성, 즉 내면의 자아로 심우도의 [소]에 해당하는 다의적 존재인 것이다.
『사벽의 대화』를 눈 맑은 두 수좌의 치열한 용맹정진 수행기가 아니라 허구적 작품으로 본다고 하여 이 책의 의미와 무게가 감퇴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이 비록 허구의 양식이긴 하지만 독자에게 실제 체험담보다 훨씬 큰 감동과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묵직한 부피의 동서양 문학사가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서사 양식은 실제 경험과 허구적 요소를 적절히 융합함으로써 직접 체험의 주관적 오류나 하중에서 벗어나 보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책의 독자가 작중인물들의 지독할 정도로 철저한 토굴생활에 대한 연민이나 두려움을 느끼기에 앞서 약간의 서정적 낭만에 젖어드는 것은 전적으로 이 글의 문학적 성향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삶을 긍정하고 모범으로 삼으려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들의 대화에 깊이 빠져들어 공감하고 비판하는 것도 이 책이 수행기로서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기 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서 지허와 석우 두 수좌가 주고받는 대화도 일반적 토굴생활 또는 선방 풍속과는 판이한 면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알려진 수좌들의 수행은 묵언이거나 일정한 경지에 오른 이들만 알아듣는 선문답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참신한 충격을 준다. 이런 대화 방식도 허구적 양식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보인다.
3.
『사벽의 대화』는 지허와 석우 두 수좌가 태백산의 [심적深寂] 토굴에서 근 1년 동안 용맹정진한 수행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는 두 수도승의 토굴생활의 실제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준다. 지허가 처음 찾은 [심적]의 외양은 {원시인의 혈거를 겨우 면했을 뿐}인 방 두 칸과 부엌 한 칸의 흙집이다. 싸리로 만든 방문에만 간신히 종이를 발랐을 뿐 방바닥엔 가마니가 깔려 있고, 부엌엔 함지박 두 개, 바가지 두 개, 쇠발우 한 벌, 소금 함지, 나무 절구통과 숟가락 두 개, 그리고 먹을 것이라곤 꿀밤(도토리) 열 가마와 무 두접뿐인 단출하다 못해 적빈赤貧에 가까운 살림이다. 지허가 방부를 들이던 날 석우가 그에게 대접한 음식도 꿀밤가루와 날무, 소금이 전부였고, 그러한 식생활은 겨우내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다. 주식인 꿀밤가루는 일년내내 거의 변하지 않고 부식이 계절에 따라 산나물이나 버섯 등으로 바뀔 뿐 철저히 자연에서 채취한 식물로 섭생하며, 소금을 제외한 일체의 양념이나 조미료도 섭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허와 석우의 하루 일과는 땔감과 주부식을 얻기 위한 노동으로 바쁘다.
우린 조반이 끝나자 꿀밤 솥에 불을 지펴 놓고는 나무하러 갔다. 생목벌채는 금하고 고사목만 채취하는 게 불문율로 돼 있어서 한낮이 돼서야 겨우 한 짐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꿀밤 솥에 물을 갈고 불을 지펴두고 또 나무하러 갔다. 나뭇길에서 돌아오니 석양이 우리들의 토굴을 황금색으로 물들여 주었다.(pp.70∼71.)
얼핏 보면 두 사람의 일과는 오직 먹고 자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이처럼 먹을 것과 땔 것을 찾아 왼종일 산속을 헤매는 까닭은, 소채류를 재배하지 않고 산에서 자생하는 것만으로 먹거리로 삼으며 죽은 삭정가지만으로 일년의 반이 겨울인 산속 토굴에서 한기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루에 먹는 꿀밤의 양은 고작 발우 두 개 분량이지만, 도토리는 가을에 잠깐 주워 일년을 먹어야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나물과 버섯 등의 부식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산속의 혹한을 견디기 위한 땔감마련으로 종일 헤매야 하는 것이다. 봄이 되어 지허가 채소를 기르자고 하자 석우는 토굴생활의 의미를 {욕망을 완전히 탈피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외면만이라도 해보려고 우리 스스로가 울타리}를 친 것으로 설명하며 {미각味覺은 곧 욕망}임을 설파한다. 여기에서 보듯 지허와 석우의 토굴생활이 처음부터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석우는 지허가 토굴에 온 첫날 지난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묻고, 다음날 지허가 [심적]에서 한철을 나겠다고 하자 지난 가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석우는 [작위作爲/부작위不作爲], [유위有爲/무위無爲], [유루有漏/무루無漏] 등 법률·도교·불교 용어를 섞어가며 지허의 지난 겨울 토굴생활이 {상相이 있는 구도}였고 {한갓 위선에 불과}했음을 냉철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지허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자신과 함께 생활했던 수좌의 얘기를 들려주어 재차 지허의 분발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사벽의 대화』에서 지허와 석우의 관계는 철저히 먼저 깨달은[先覺] 자와 그 뒤를 잇는[後繼] 자, 또는 엄격하고 자애로운 스승과 성실하고 심지 굳은 제자 사이로 설정되어 있다. 실제로 지허의 하루 일과는 석우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땔감 구하기부터 꿀밤까기에 이르기까지 지허는 항상 석우를 따라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한다. [심적]에서 생활한지 일주일되던 날 지허는 낙상하여 이마가 깨지고 볼이 찧어지는 상처를 입는다. 그 광경을 본 석우는 {고행은 자기 학대가 아니라 자기 위주}, 곧 {양생養生이 바로 고행}이라는 독특한 수행관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지허가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다리를 다쳐 돌아오자 [한단지보邯鄲之步]와 [서시지빈西施之嚬]의 중국 고사를 동원해 {자성을 무시하고 인간의 작위에 성명性命을 맡기는 자는 언제나 허위에 사로잡히기 마련}임을 역설한다. 결국 석우는 지허의 행동이 자신의 본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석우의 흉내내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곡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지적한 것이다.
지허와 석우의 일상은 [양생養生]을 위한 최소한의 의식주로 한정된다. 그들의 양식은 도토리와 산나물 등이고, 걸친 의복은 {무명과 광목 천 조각들로 이리 기우고 저리 기운 누더기}이며, 신발 또한 {칡으로 얽은 찢어진 고무신}이 전부다. 그들도 처음 [심적]에 들어올 때는 번듯한 가사와 장삼, 속옷을 지니고 있었고 신발도 제 구실을 했으나 주부식과 땔감을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매는 동안 누더기가 된 것이다. 바뀐 것은 그들의 의복만이 아니라 식성마저 변해 오랜만에 황지 시장에 간 지허는 된장국 냄새에 {창자가 뒤집히면서 구역질}을 느낀다. 석우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더덕을 씹으며 견딘다. 석우와 지허의 이런 일상절 삶은 선가의 전통적 토굴생활의 관습을 가장 엄격하게 지킨 사례라 할 만하다. 가령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청정비구 법정法頂은 {단신으로 사는 출가 수행승의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면 자칫 주책을 떨거나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2)고 경계하고 있으며, 신라 고승 원효 또한 {높은 산과 솟은 바위 / 지혜론 이 살 곳이요 / 깊은 산골 푸른 숲은 / 닦는 이의 처소로다. / 나무 열매 풀뿌리로 / 주린 배를 위로하고 / 맑은 샘과 흐르는 물 / 마른 목을 적셔주네}3)라 하여 수행자의 청빈한 삶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토굴생활의 어려움은 아무런 제약이나 간섭 없이 혼자 생활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나태와 타락의 나락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지허가 토굴생활을 하겠다고 산문을 떠날 때 그의 은사가 간절하게 부탁한 것도 바로 그 점이었던 것이다.
{토굴은 사중의 대중생활과 달라 아무런 제약이 없는 곳일세. 그래서 투철한 신심과 발심이 없는 수좌는 타락하기가 십중팔구야. 하지만 무용의 용에 입각하여 무제약의 제약을 자득할 수 있다면 기필코 견성할 걸세. 토굴은 나태심의 온상이어서 해이심이 기적처럼 교묘하게 찾아오는 곳일세.}(p.157)
토굴생활의 어려움은 그것을 체험한 선객들이 한결같이 경계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당대의 선승이었던 효봉(曉峯, 1888∼1966)도 토굴생활은 첫째, 모든 역순경계에 있어서 동정일여動靜一如가 되도록 스스로 공부에 힘을 얻은 득력자인가. 둘째, 오직 결사정신決死精神으로 용맹정진할 발심 납자인가. 셋째, 명안종사明眼宗師나 득력한 도반이 함께 하는가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귀굴鬼窟}에 빠지는 것에 다름 아님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지허가 독거생활의 나태와 타락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석우라는 뛰어난 도반이자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석우를 따라 먹을 것과 땔감을 구하며 인간의 육체적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었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정신적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지허가 [심적深寂] 토굴에서 석우를 만나 인간의 [한계성/가능성]에 대한 강론을 들으며 서서히 그에 동화되어 가는 서사의 전개는 [심우尋牛]에서 [득우得牛]에 이르는 과정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석우는 지허의 토굴생활을 허락하면서 {나를 찾는 동안 양생養生해야 하며 양생하는 동안 수신}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에게 토굴생활은 최소한의 육체적 조건에 응하면서 최대한의 정신적 계발을 도모하는 방법이고, 인간의 육체적 한계성을 정신적 가능성으로 극복하기 위한 최선책이다. 여기서 석우가 말하는 인간의 [한계성]이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먹고 배설해야 하며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근본적 조건을 가리킨다. 이와 함께 [가능성]은 인간은 철저히 인간에서 출발해 인간으로 끝난다는 인식, 다시 말해 인간은 신으로 상승할 수도 없고 동물로 전락할 수도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태도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무신론적 인간주의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인정받는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먹고 배설하며 살다가 죽는다는 실존적 의식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에 있다는 석우의 주장은 사후세계나 신성神聖을 내세우는 현실종교와 근본적으로 변별된다. 실제로 그는 싯다르타와 예수가 완전한 인간을 지향하다가 사후세계나 신성성이란 관념을 창조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으로 규정한다.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싯다르타나 예수는 성인成人을 지향하다가 열반과 하나님을 창조한 오류를 범했던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땅 위에 성인成人의 세계를 세우지 않고 하늘에 신의 세계를 세운 인간들입니다.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별빛이 가득한 저 하늘에 때때로 구름이 비와 눈으로 변하여 흩뿌리다가 그리곤 어디론가 흘러가는 공허한 저 하늘에 그들은 신의 세계를 창조했을 뿐입니다.}(p.171)
인간의 [한계성/가능성]에서 시작된 석우의 사상은 [성인聖人/성인成人]의 구분을 거쳐 [성인주의成人主義]로 향해 나아간다. 그에 따르면 석가나 예수는 인간이지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상理想을 실현하려다 실패하자 하늘이란 비현실적 공간과 신神이란 허구적 존재를 설정하여 인간의 [한계성/가능성]을 부정(초월)했다는 것이다. 석가와 예수를 완전한 인간[成人]이나 신적 존재로 숭앙하는 게 아니라 신이란 개념을 창조해 그 배후에 숨은 특별한 인간[聖人]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석우의 관점은 불교는 물론 기독교적 시각에서 볼 때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석우의 관점에 의하면, 석가나 예수는 인간을 죽음의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신을 희생하였으나 성인成人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반이니 천국이니 하는 관념을 내세웠고, 인간들은 그들이 내세운 영생불사에 매료되어 종교를 만든다. 그런데 불교와 기독교가 원래의 정신에서 벗어나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복적 성격이 강조되는 오늘날 석우의 주장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는 내세의 구원이나 극락왕생을 바라기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해 자신의 본성을 찾고 어려움에 고통 받는 이웃에 따뜻한 관심을 보여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석우가 지향하는 [성인成人]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신격화神格化된 [성인聖人]과 달리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한계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 인격화된 존재로, 하늘(비현실적 세계)이 아닌 땅(현실)에 복지福地를 건설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전의 [성인聖人]이 범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그들이 [성인成人]을 지향하며 개척한 길을 곧바로 가야 한다. 과거의 [성인聖人]이 [성인成人]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시대에 [성인成人]의 소양이 없었거나 바탕이 마련되지 않았고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에서의 삶이 짧았기 때문이지만,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면 언젠가 [성인成人]이 출현할 것이며, 그때의 [성인成人]은 석가나 예수와 같은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될 것이라는 석우의 논리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큰 감동을 준다.
많은 경험이 어른으로 만들 듯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살아오면서 성인成人을 지향하여 노력해 온 인간의 경험에 의한 결정들이 쌓이고 쌓여서야 비로소 성인成人이 세상에 군림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무위無爲한 반복은 하지 않습니다. 경험이라는 인간의 미덕, 즉 성인의 소양을 산출합니다. 현대는 성인을 맞이할 준비가 완료되어 있지 않습니다.(p.175)
석가를 모범으로 삼되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자기만의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하고 실천하겠다는 석우의 신념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殺佛殺祖]]는 선가의 가르침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오늘 이 세상에서 어떠한 참상이 일어나고 있다 해도 오늘은 절대로 어제보다는 불행하지 않}으며, {인간의 창조성은 오늘의 개성에 있지 어제의 개선이니 내일의 개선에 있지 않다}는 언명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지금―여기]에서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석우는 선가에서 대체로 금기로 여기는 분석하여 이해하는 방식[知解]을 통해 불교의 정수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석우와 지허의 대화가 [이심전심] 또는 [교외별전]이란 말로 요약되는 깨우침의 전통적 방식과 매우 이질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석우는 석가도 이르지 못한 [성인成人]의 단계에 자신은 오를 수 있다는 오만을 부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인成人]이 도래할 준비가 마련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고자 한다. 과거의 경험과 그를 토대로 한 현재의 체험은 인간에게 지혜를 선물하고, 자신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노력하는 희생은 창조성으로 발현되어 마침내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석우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공존공생 논리로 나아간다. 그의 자연관은 인간의 필요와 노력에 따라 적절히 자연을 활용하자는 것이어서 생태주의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의 토굴생활이 실증하듯 자연을 파괴하거나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연 활용이므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지허와 석우의 대화는 마침내 [죽음]과 [허무]라고 하는 근원적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지허가 계절의 변화에서 무상을 말하자 석우는 {무상하니 즐거운가? 슬픈가?}고 따져묻고, {다만 허무할 뿐}이라 답하자 연이어 {허무를 증오하느냐? 사랑하느냐?}고 끈질기게 추궁한다. 이에 지허가 {증오하지도 사랑할 수도 없고 다만 허무하게 바라볼 뿐}이라 답하자 단호하게 {그건 인간의 모독冒瀆이요, 인생의 반역反逆이요, 자신의 중상重傷}이라 일갈한다. 왜냐하면 무상을 허무하게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 내부의 인간성을 상실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논법에 따르면 허무는 죽음과 죽음에의 과정, 변화와 변화에로의 과정을 보고 느끼는 감정일 뿐 실체가 아니며,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기염오自己厭惡의 기우杞憂와 열등의식의 자학自虐에서 오는 자기공포의 신경질환에 불과한 객체적 사상事象이어서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이 시체라면 묘지는 허무라고 비유하면서 궁극적으로 죽음과 허무는 동일함을 일깨운다.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커다란 공포이며 무서운 적인 까닭은 인간의 완성을 위한 노력과 희생을 방해하고 저해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석우에 따르면 석가나 예수가 [성인聖人]의 반열에 머물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도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 짧은 데서 기인한다. 죽음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므로 그에 저항하거나 대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죽음을 긍정하고 그에 순종하되, 인간의 완성을 위한 노력을 죽는 순간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게 [성인주의成人主義]의 결론인 셈이다.
허무와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을 이해해야 한다는 석우의 논리는 우주 삼라만상은 생성과 소멸을 영원히 반복하므로 생사윤회를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나, 인간에게는 자연법칙을 인식하는 능력과 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는 불멸의 의지가 있으므로 미래의 가능성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실제로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형벌은 죽음이 아니라 [불사不死]라는 그의 논리는 서구의 시지프스 이야기와 유사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죽음을 보고 허무를 생각할 게 아니라 죽음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현재의 가능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날마다 제일 좋은 날]이란 선구禪句의 오의奧義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렇듯 죽음을 인정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 행동은 필연적으로 자기희생을 담보로 한다. 그러한 자기희생이 보살정신의 실천인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결국 석우가 여러 논리와 예증을 거쳐 지허를 깨우쳐주고자 한 핵심은 자비와 보살정신의 실천인 것으로 드러난다.
5.
지허와 석우의 대화가 [무無]에 대한 치밀한 논증으로 귀결되는 것은 이제까지의 대화 주제의 전개로 보아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 타당한 수순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시종일관 지허가 화두를 꺼내면 석우가 집요하게 그 근본까지 파고들어 해답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마지막 대화는 석우가 제야除夜를 보내며 짐짓 감상에 젖은 듯하자 지허가 일체가 무無인데 아쉬워하고 돌아볼 게 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본격적인 문답과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광경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연상시키기도 하거니와, 마지막 문답에선 석우가 일방적으로 무無에 대해 강론을 펼치는 점이 다르다. 석우는 무와 유의 관계를, 한쪽에서 죽음을 맞이한 자의 신음소리가 들릴 때 다른 한쪽에선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비유한다. 요컨대, 이 세상은 현존재가 다른 존재로 모양을 바꾸는 형식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데 그것은 마치 무가 유를 필요로 하고 유가 무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무와 유의 관계는 대립적이 아니라 보완적인데, 무를 이해할 때 비로소 유(존재)를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의 필연성을 인정할 때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의 위대함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나의 완성을 위해 철저히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은 결국 나의 죽음을 긍정하고 그에 순응하는 태도와 그의 실천에 다름 아니다. 일부 기복종교가 비판받아야 하는 까닭도 그것이 내세의 행복이나 구원을 빙자하여 현세를 부정하거나 멸시하기 때문이다.
석우의 사상은 한 마디로 철저한 현실주의·행동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죽음과 허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하며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를 자각해야 하는데, 무의 이해는 지혜로, 무의 사랑은 의지로, 무의 자각은 행동으로 가능하다며 구경적으로 인간의 실천이 가장 중요함을 역설한다.
투철한 행동은 끝까지 진보적이며 향상적입니다. 투철한 행동은 끝까지 인간의 연대성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인간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無는 일 개인이 자각할 수 없습니다. 인류 전체가 동시에 자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pp.209∼210)
무의 자각이 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인류 전체에 의해 가능하다는 논리는 과거 성인聖人들의 희생과 노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실천하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낙관적 전망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마치 이천오백년 전 석가의 가르침이 오늘날 수천만의 신도를 확보한 사례에서 실증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근거는 현실낙토의 완성이 얼마나 지난하며 오랜 세월을 요구하는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우는 {인류의 영원성을 확신하고 충실히 행동해야 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어떤 기연機緣에 의해 출가했으며 토굴생활의 권태와 나태에서 어떻게 해방되었는가를 간단히 고백한 뒤 하산하겠다고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이며, 선방에 앉아 좌선하는 것보다 도량 주변에서 노동하는 것이 보다 빨리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그는 토굴생활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굳힐 수 있었고, 그것을 확신하자 긴 휴식을 끝낸 뒤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속세로 내려가 자신의 깨달음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것이다.
석우가 떠난 지 달포만에 지허도 [심적]에서의 토굴생활을 마감한다. 그것은 지허가 [심적]에 온지 꼭 일 년째 되는 날이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음력인지 양력인지 밝히지 않아 다소의 혼란을 준다. 그러나 계묘년(1963년) 2월 16일을 경칩이 지난 며칠 후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경칩이 대체로 양력 3월 5일 전후의 절기라 한다면 여기서의 2월 16일은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 맞다. 만 1년의 토굴생활을 마치고 하산하던 지허는 뜻밖에 석우가 화전민 노부부와 함께 있는 것에 놀란다. 토굴을 나선 석우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이 {인생의 낙조같은 육십대 노부부의 기한에 시달리는 슬프고 외로운 그림자}였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얼마간 머물기로 했다는 석우에게 지허는 [대어대해론大魚大海論]을 들어 의아해하지만, 정작 석우는 {눈에 보이는 커다란 선은 다투어 행하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선은 다투어 외면}하는 인간의 위선과 명리욕을 지적하며 {어떠한 고苦가 오더라도 고의 끝에 달고 오는 것이 선善이라면 저는 끝까지 용기로워지면서 바보처럼 묵묵히 감내}하겠다고 다짐한다. 석우의 철저한 행동주의에 감복한 지허는 하산을 포기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 더 쉬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석우는 지허의 때이른 하산을 예견하고 화전민 집에 머물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깨우쳐주려 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점에서 석우는 지허에게 가장 엄격하며 자애로운 스승으로, 옛 이야기로 전해오는 관음보살의 화신인지 모를 일이다.
『사벽의 대화』는 지허와 석우 두 수좌의 철저한 토굴생활에 대한 상세한 보고이면서 두 사람이 도달한 깨달음에 대한 논증의 기록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글은 지허의 벽관 수행의 허구적 기록으로 볼 수 있다. 벽을 바라보며 자신을 찾는[壁觀] 독특한 수행법은 달마 이후 선문禪門의 중요한 전통이 되어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신심명信心銘』에서 {(거울 속에) 비친 것을 좇으면 실체를 잃는다[隨照失宗]}고 하여 외부 현상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려는 방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대들 스스로 돌이켜 볼 것[爾自返照看]}4)을 강조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거울은 사물의 외관을 좌우가 다르게 비추어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하거나 온갖 인간사의 갈등과 번뇌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벽은 아무것도 비추는 것이 없으므로 오히려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벽]은 육체의 눈이 아닌 [내면의 눈]이 되며 석우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지허의 내면의 자아(본성)가 된다. 즉, [사벽의 대화]는 결국 지허가 토굴생활을 하며 참구한 내면의 성찰 혹은 자기본성과의 대화를 뜻한다. 이 책이 오늘날 독자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선방 수좌의 일상생활을 진솔하면서도 일반적 논리로 풀어 설명했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선방에서의 깨달음의 인증認證은 이른바 [선문답]을 통해 이루어지는 법이어서 일반인이 이해하거나 접근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그런데 『사벽의 대화』는 불교에서의 중요한 화두인 [죽음·허무] 등의 참뜻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이해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언어는 진리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言語道斷],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언어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새삼 절감하는 것이다.
- 장영우 본지 편집 주간. 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첫댓글 지허 스님의 책으로, '선방일기'가 있습니다. '선방일기'는, 2000년 여시아문에서 출간했습니다,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