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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산문부 응모작 1차 심사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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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명진언 게송을 읋으며
불교가 가난하고 못배운
민중들에게 뿌리 내리게
된 것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께서 나무아미타불만
염송하면 현세의 힘들고
어려운 삶 잘 견뎌내
내세에 좋은 옷 으로
갈아 입을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주어
불교를 접할수 있었다
그러나
불법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다시 우리글로 번역되어
심오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 쉽게 다가설 수 없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무조건 염송하고 절만 많이하면 업장소멸 할 수 있고
니르바나세계로 갈 수 있다고 믿고 신행 생활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론이 뒷바탕이 되지
못한 믿음은 뿌리가 깊지
않아 불자로 자랄 수 없다
불교가 어렵다는 편견을
없애려면 게송을 생활화
할 수 있도록 대중적 리듬으로 친숙하게 스며들게
만들어 반복해 부르다
보면 머리속에 마음에
각인이 되어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바탕을 만들 수
있다
어떤 꽃이든 홀로 피어 나지 못한다
흙 태양 바람 토양 적절한비가 어우러져
지구상에 어엿한 꽃의 이름으로 태어나듯
여러사람의 지혜를 합하여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고
잊혀지지 않는 게송노래
를 창작했다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불러주는 사람이
많을때 그 노래는 생명력을
갖는다
경전구절은 암기하기
어려워도 그 귀한 말씀에
운률을 입혀 노래 만들면
흥얼흥얼 하면서 정신속에 빠고 든다
좋은 게송곡 하나가
혼탁한 사바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 마음을
늘 깨어있게 만든다면
그것이 불후의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파라 프라바틑타야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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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풍丹楓
가을이라 단풍이 산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구나.
수 일전에 설악산 대청봉이 붉그레 해지는 듯하더니..
어느새 집 앞 벚나무 꼭대기까지 다달랐구나.
스잔하고 싸늘한 바람까지 몰고 와서 몸이 움추려지고,
옷깃을 여미게 하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또 가을이 가면 겨울이 되네.
속절없이 또 나이를 먹고, 이 몸도 허물어져 느슨해지는데, 철리인 걸 어쩌리.
어려서는 부모님께 순종해서 일하냐고 세월 보내고,
장성해서는 처자식 울타리 되냐고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일에 묻혀 정신없이 살고..
이제 몸이 무너져 일은커녕 서고 걷기도 버겁다.
처음에는 절망도 되고 우울하기도 했는데, 보왕 삼매경론의 첫 번째 소절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으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처음엔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시간이 가니 이해가 되고 탐심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이것도 이제는 일 그만하고 공부하고 수행하라는 뜻 같기도 하다.
이 세상에 사람 몸 받고 왔으면 공부를 하고 수행해서 주인공이 누군지 참나는 알고 가야지 되잖겠는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법주도서관과 교수사 스님과 도반들과 인연이 돼서 기초는 닦고는 있지만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단계라 더욱 정진하고 정진해서 남은 시간 헛되지 않게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다짐한다.
몸도 다시 튼튼하게 회복해야 공부도 하고 정진하지 건강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제악막작 봉선중행 자정기의 시제불교”라
악한일은 티끌만치도 하지 말고, 착한일은 받들어 행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해서 편안하게 하는 것이 불교이니라.
나 자신을 돌이켜 보니 집안어른이나 아는 사람이나 주위에서 아무개는 복 받을 거야 복 받지 라는 소리는 귀청에 딱지가 앉게 들어 왔는데, 하나부터 열 까지 그랬는지....
그리고 또 아무개는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고,
나는 지나온 날에 대하여 후회도 아쉬움도 없고, 불교를 접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알고 교수사스님을 알게 된 것이 더 없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차근차근 천천히 부처님 공부 마음공부 해보겠다.
늦었지만 덤덤히 묵묵히 앞만 보고 갈 뿐...... 늘 깨어 있고 알아차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갈 뿐.
그 분,
존귀하신 분,
공양 받을 만 한 분,
모든 번뇌로부터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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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붓다의 들녘에서
모든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 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윗 구절은 불교의 대표적 초기경전인 '법구경'을 시작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불교 수행의 요체는 먼저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마음에 대해 알게되면,
마음을 고치거나 닦을 수 있다.
누구라도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할 수 있으며,결국 이것은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마음을 닦고 다스리려면 마음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든 부정적 감정을 없애고 긍정적인 감정을 기르려 부단히 애써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특히 불교 수행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불교를 '마음의 과학'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고 고통을 원하는 이는 없다.
부정적이거나 불쾌한 것들이 내면에 투영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스스로 평소의 마음가짐을 잘 분석해 보면 매우 참을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조율할 필요가 있으며 안정감 있는 마음 상태를 갖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안정된 마음이다.건강한 몸과 마음의 안정은 더욱 행복한 삶과 안정된 미래를 의미한다.
내면의 안정감이나 올바른 마음가짐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친구와 훌륭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 행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을 종교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마음을 닦는 자세나 방법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마음은 색깔도 형상도 없지만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비극적 사건들을 살펴보면 분노,증오,
질시,극단적 탐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과거 경험과 사건을 통하여 일상을 세심하게 살피고 성찰하는 것이 마음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을 개선시키는 불교 수행법은 '연기법'이라 하는 상호의존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원인은 만물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인과법칙에 근거하며 이러한 인과의 이치를 인연 또는 연기라 한다.
불교의 중심적 가르침으로 고통,
즐거움의 원인과 근본적 관계가 있으며 우주만물의 상관관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어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 가르침은 우리의 세계관과 시야를 넓혀주며 생활속에서 친절과 자비의 마음이 커지고 분노와 증오심을 줄이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된다.
불교에서는 고통과 즐거움에는 상응하는 원인이 있다고 한다.직접적
원인은 '카르마
(업)'이다.
카르마란 행위를 의미한다.과거와
오늘과 내일의 모든 행위는 서로 원인이 되어 어떤 형태로든 결과로서 나타난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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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대성의 진정성
연기를 설명할 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이분법적인 존재적,현상적 모습으로 상대적인 접근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연기를 상대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보여지나 이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상대적 개념을 벗어난다는 전제조건하에서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흑과백,생성과 소멸등 이러한 상대적 개념은 중론의 팔불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상대성에 대한 바른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예를 들어 보고자 합니다
존재론 적인 접근에서 상대적 개념은 공존 할 수 없습니다
슬픔과 기쁨,흑과 백등 모든 관념이 상호 배척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러할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기쁨만으로는 기쁠 수 없고,흰색만의 세상 혹은 검정만의 세상에서는 흰색이라거나 검정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성은 알고 보면 상호교류적인 관계로서 배척의관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슬픔이 있기에 기쁜 것이고,흰색이 있기에 검정색이 있는 것입니다
슬프다,기쁘다,흰색이다,검정이다라는 것은 인연에 따라 오고 가는 것으로 , 슬픔,기쁨,백,흑이라는 고정성을 벗어나 가변성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슬픔도 극심한 슬픔 앞에서는 슬픔의 명분이 퇴색하고 흰색도 상대적인 흰색으로 ,이거다 저거다 하는 고정화하려는 습성을 전환해야 합니다
이렇듯 상대적이라는 말에는 가변성이 전제하고 있었음을 간과하는 데서 오류가 생겼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이런 모드로 접근해야 번뇌즉 보리,진속불이가 가능해지리라 사유해 봅니다
번뇌나 보리를 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번뇌가 되기까지의무상성을 받아들임이 보리로 이어집니다
만약 번뇌라는 실체와 보리라는 실체가 각각있다고 보는 것은 존재적 상호배척의 관계로 하나로 만날 수 없습니다
고정적으로 번뇌나 보리를 보려는 습을 버리고 무상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 내야 합니다
오근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현상,일체) 무상적 시각으로 걸러져야 합니다
일체에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고,무아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일체라는 것도 일체라고 할 것은 있지 않기에 일체라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모든 것이 공으로 사라지는 것은 단멸이지 ,공성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다만 모든 것이 공으로 사라지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공성으로 사라짐이 단멸론에서 자유롭기위해서는 나툼의 잠재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인연의 오고 감에 사심이 없고 오직 공성으로 함께 할 때 가능해지는 일이라고 사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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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생활속에서 불교
불교집안였던 친정부모님의 영향으로 무의식적으로 불교적 사상이 삶에 뿌리 내려 살고 있었지요
학창시절에
친구 따라 교회에 몇번 따라 가보고 찬송가 독창도
크리스마스 때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가지 않게 된 것은
어렸을적 교육이 머리속에
깊게 자리 잡아 쉽게
다가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절을 다닌게 아니라서 불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였고
부처님의 말씀도 접할
기회가 없어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답니다
막연히 착한일 하면 지옥,
가지 않고 복을 지으면
극락 갈수 있으리라 믿고
살았답니다
그래도 법은 어기지 않았고
쌀 한톨도 허술히 대하지
않았고 봉사 할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하고 살아 왔지요
남편직업 때문에
외국에서 오래 살아
절에 가진 못하고
힘든일있을때
관세음보살칭불 염송만
하며 살다 귀국하게 되니
어느새 제가 이방인이
되어 있었답니다
대중속의 고독이 뼈아프게
스며들어
그간 살아왔던 사고 방식을 하나둘 고치기 시작하며
동국대 안에 있는
정각원을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처음엔 알아듣지 못하는
불교 언어가 낯설고
이해가 힘들었지만
꾸준히 들으니 조금씩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불교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하다보니
막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불교를 겉만 스쳤다는것을
깨닫고 서적도 읽고
불교방송도 듣기 시작했지요 하고싶어했던 합창단에
들어가
법문이 음률에 담긴 찬불가
음성공양을 포교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하다보니 신심이 깊어 지고
유튜브에 올리기 까지
했답니다
불시를 본격적으로 써서
불자 아닌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알리고저 시인에 등단해서
카스 를 하다보니 불자시인과
인연을 맺게 되어
법구경을서로 다른 해석본10권을 택해서
온라인상으로 매일 하루도
안빠지고 한자 한자.정성다해 뜰리지 않게 1년 넘게
사경하면서
게송 말씀이 나오게 되는
배경을 알게 되어
주변사람에게 알려 주었답니다
매주 목요일
법구경게송 삼행시를
2년넘게 쓰고 있어
그 글에 무게를 싣고저
말씀대로 생활하니
절로 수행이 되고 있답니다
불교를 늘 생활화 하려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조용히 감사기도 드리고
저녁에 잘때는
염주 돌리며
관세음보살 칭명하며
하루 잘 살아낸 몸
고맙다 수고 했다 다독이며
하루를 회향 한답니다
불대 다니다보니
불교를 더 잘 알고 싶어져
금강경 독송대회를
나갈 기회가 있어 동참했답니다
무조건 뜻도 모르고 암송했지만 대상을 받으니
그 의미를 알고싶어
이책 저책 읽으며 공부 하니
부처님말씀이 제 생활속으로 스며들어와
언행도 더 신경쓰게 되어
말에 향기가 풍길수 있도록.신중하게 살고 있어
지금 이대로 제가 너무 .좋습니다
불교 모임이,많아
매일 아침 부처님 좋은
말씀 법문을 단톡방에
올려서 공유하고
봉사 할, 일이 있으면
솔선수범해서 먼저 뛰어나가며 즐겁게 최선다해
일 하다보니 제마음도
맑아지고주변이 밝아져서
항상 웃으며 먼저 인사하고
상냥하게 안부 전하고
살고 있지요
될 수 있으면 1회용 컵은
사용하지 않고
전기 물 아꺼쓰고
1시간 정도 거리는 걸어서
다니며, 늘 염주 돌리며
관세음보살 염송하지요
다행히
글 쓰는 재능이 있어.실의에 빠진 지인들에게 진심다한 글을 보내 용기 볻돋아줘
고맙다는 톡 받으면
다 부처님 가피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여
누구를 도울수 있는.마음의 여지를 늘 만들어 놓아
누가 제 도움이 필요 할 때
달려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답니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기분 상하지 않는 화목한
일상을 맞이 할수 있게
노력을 하고
가화만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가정을 잘 꾸려가고
나머지 시간을 봉사하며
이웃과 나누며 살려합니다
미미한 힘이지만
매일 주변인들이 부처님
말씀이 생활속에 스며들도록 노력하고 있답니다
아무리 혼탁한 세상 일지라도 한생각 바로 돌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부처님 말씀 대로 살려고
각자 불자들이 불국정토를 이루려 애를 쓴다면
지금 세상이 극락 이 될
것입니다
극락과 지옥은 일체유심조 입니다
니무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시야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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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석양이 질 때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내게 각인된 삶의 향기는
어떠했는지
세삼 돌아보는 가을이다
어느날 갑자기 날아온
이별 통지서를 받고
하염없이 눈물 흔린들 무슨 소용있으랴
눈부신 햇살속에 흡수된 내 사랑은
아직 그대로인듯
시간은 여전히 변함없이
잘도 흘러만 가는데
자식을 위해
고단한 삶을 감추고 살아온
당신의 강인한 모습은
언제나 희망었고
우리들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삶에 지친 고단한 삶의 여정이
어느순간 멈출수있다는 걸
왜 망각하고 살았가는지
당신을 떠나 보내고서야
멈춰버린 시간앞에서 후회하며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불효를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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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50대 청년의 작은 깨달음
‘내일 모레면 환갑이잖아!’
요즘 셋째 딸이 50대 후반도 아닌 나의 허점이 보일때면 놀려대는 말이다.
처음엔 거부감이 컸지만 익숙해지니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곤란해지면 내가 써먹는 말이 되었다.
유병 장수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다행히 감기약 먹는 것외엔 큰 병없이 하루 세 끼로 버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름 기억력도 괜찮고 운동신경이 있어서 자만할 때도 있었지만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가 자기가 맞다고 우길 때나 달리기 시합을 한 뒤론 꼬리를 내렸다.
그래도 늦둥이가 있어서인지 친구들보다 한 10년은 젊게 사는 것 같아 이또한 감사할 일이다.
2009년 유엔이 선포한 호모헌드레드시대 보고서에 의하면 17세에서 65세까지를 청년으로 분류했다.
아직 청춘이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청년이란다.
알고나니 삶에 다시 활기가 도는 것같다.
100세 시대에 절반을 돌았으니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게 느껴지면서 한편으론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좀 살았다고 경험적 체득을 통한 깨달음들이 있다한들 내세우기가 초라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필수이지만 성숙해지는 것은 선택이다.’라는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자주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머리에 새겨지는 느낌이 있다.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의 고통은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의 주특기다.
지나간 그 시절에는 왜 지혜로운 판단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일들을 적으면 책 한 권으로 부족하다.
이러한 고통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방해하고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행복감과 기쁨들을 빼앗아간다.
우리 인생이 숙명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한때 힘들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겼을 때 아내와 자주 역술원에 들락거렸음을 고백한다.
결론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첫째 딸이 대학입시를 잘 치른 덕에 부질없음을 깨우쳤던게 조금 늦었고 부끄러웠지만 다행으로 생각한다.
다가오는 운명이나 인연을 바꾸기 어렵지만 받아들이는 자세는 나로 인해 좌우됨으로 스스로 결정해서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쁜 일이 항상 나쁘지는 않다’는 것도 늘 경험해왔다.
좋은 의도로 셋째를 대안학교에 보냈지만 여러 연유로 자퇴하게 되어 온 가족이 낙심했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딸과 우리 부부가 서로를 더 알게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아이가 훌쩍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재 전화위복을 실감하고 있다.
난 15년 이상 어깨와 허리의 만성 통증으로 시달려왔는데 치료를 받으면서 관심을 두다 보니 어느새 풍월읊는 서당개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전공외에 통증도 치료하는 업을 행하고 있다.
안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작은 희망이라도 찾으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기울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모든 일이 감사할 따름이다.
얼마남지 않은 청년기를 알차게 보내고싶다.
‘수행은 소나기를 맞아 흠뻑 젖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안개 속을 걸으며 안개에 젖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일상에서 얻는 수많은 깨침들은 아름다운 추억들과 함께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고 고통의 인생 여정을 좀더 지혜롭게 이겨내면서 행복한 삶의 길을 걷도록 안내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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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죽음을 묵도默禱하며
제가 죽음을 처음으로 묵도한 때는, 결혼하여 첫 아이를 출산한 1986년 6월이였습니다. 시조부님은 중풍으로 인하여 한쪽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곤 하셨습니다.
그런 시조부님께서 염소 풀 먹이러 나가셨다가 염소를 묶는 염소 줄에 걸려 넘어지면서 1년 6개월 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로 시부모님이 눕고 앉혀 공양을 떠 먹여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 내셨습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쉽지 않고 본인은 물론
주위 가족들이 많은 고생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번째는 제 직장의 소장님 모친이셨는데, 소장님 자택이 사무실과 같이 연결되어 있어 수시로 할머니를 뵙고, 신경통으로 고생하신 할머니를 위하여 한달에 한 번씩 약을 사다 드리곤 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1996년 10월경에 돌아가셨는데 근 20년동안 신경통약을 드시고 그 신경통으로 인하여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어느 날 소장님께 할머니가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임종하신 할머니를 뵈니,
‘아∼
죽음은 저렇게 편안한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남을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 90세를 넘긴 노쇠한 몸으로 시간 날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사경하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49일 동안 매일 출근하면서 할머니를 모신 절에 가서 삼배를 올렸으며, 49재가 끝나는 날 할머니께서 꿈에 하얀 소복을 입고 ‘이제 나는 간다’며 계단을 오르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며, 할머니는 신경통으로 인하여 걷지를 못하고
집안에서 늘 기다시피 하며 생활을 하셨습니다.
셋 번째는 제가 약혼하던 1983년에 가을에 마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치면서 1999년 6월에 임종하실 때까지 거동을 못하신 시조모님입니다. 시조모님은 근 16년 동안 거동을 못하신 관계로 제 시부모님께서 대소변을 받아 내셨습니다.
시조모님은 어느 때인가부터 치매가 와서 ‘방안의 천장에서 순경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등 헛소리를 하셨는데 이러한 시조모님의 병수발을 제 시부모님은 불평 한마디 없이 하셨습니다. 이러한 시부모님의 헌신적인 조모님에 대한 효도로 인하여 효부상을 3곳에서 받기도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제 꿈에 양지바른 언덕으로 이사하신 후 3일만에 돌아가셨는데, ‘이사를 하면 집에서 집으로 해야지 왜 양지바른 언덕으로 하셨을까?’ 하는 순간 돌아가신 것입니다.
시조모님의 장시간에 걸친 치매로 인하여 그 때 치매의 무서움을
알게 된 시기이기도 하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많이
후회되는 일이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바나나를 많이 사 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장 컷습니다.
네 번째는 곱디 곱게 살다 가신 시부님입니다. 아버님은 순박한 시골의 어르신으로서 늘 매사에 성실하게 감사함을 간직하고 자식들의 능력을 존중하고 아끼신 분입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3년 전에 새로 집을 지으셨는데 집을 새로 지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는지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2002년 11월경 뇌경색으로 쓰러진 10일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신 날 제 꿈속에 노란 새 양은 냄비에 꽃게의 몸통과 다리등을 떼어 가지런히 놓아 ‘오늘 아버님이 임종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결에 어렴풋이 들어 새벽에 일어나 병원에 가니 아버님은 제가 병원 가는 도중에 임종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께서는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시어 여러 가지 링게르를
맞고 계셨기 때문에 꽃게를 아버님으로 보고, 꽃게의 다리는 링게르 줄로 보아 아버님의 임종을 짐작하였습니다.
아버님 임종 후 아버님 입관식에서 제가 아버님께 드린 마지막 인사 ‘아버님, 이 생의 곱디 고운 모습, 다음 생에서도 그렇게 사세요’라는 인사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돌아가신 제 모친입니다. 모친은 일찍이 홀로 되셔 어린 3남매를 강인한 모성으로, 아비 없는 자식 소리 듣지 않게 하신다고 저희 3남매를 엄하게 키우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올해 95세로서 요양병원에 4년 6개월 동안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셨으며, 임종하기 10일 전부터 주변을 정리하고, 주머니 속에 있던 약간의 돈을 손주들에게 나누어 주고, 병실에서 자신에게 따뜻한 물을 떠다 주신 할머니께도 약간의 용돈을 드리고, 임종하기 전까지 나무아미타불 기도를 올리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없이 되뇌이며 임종하셨습니다.
저는 위와 같이 제 모친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죽음을 묵도하며, ‘깊은 슬픔과 아픔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저의 허물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가꾸기 위하여 헌신과 희생으로서 한 조각 구름 되어 오셨다가 한 조각 구름 되어 가신 제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영가님과 유주 무주 고혼 영가님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