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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고려대장경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국사 시간에 배운 대로 하면, 고려 때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위력으로 막아보려는 의도로 만든 불교 경전 정도 아닐까요? 이 고려대장경이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다 아실 겁니다. 그리고 이 유물이 해인사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 |
대장경의 문화,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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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는 ‘세계문화유산’이 또 하나 있습니다. 고려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두 채의 장경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해인사에는 세계 유산이 두 개나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장경이 뭐가 대단하다고 세계적인 유산이 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 대장경이란 것은 대관절 무엇이고 그 문화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대장경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 한다면,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대장경 가운데 ‘oldest & best’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오래되었고 동시에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려면 우선 대장경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대장경이란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요소인 경(經)·율(律)·론(論)을 모아놓은 것으로 불교 경전의 종합 세트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이란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것이고 ‘율’은 승려들이 지켜야 할 계율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론’은 학덕이 높은 스님이 경전에 주석을 단 것을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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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과 이를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출처: wikipedia(Lauren Heckler)> |
높은 문화력과 경제력, 그리고 강한 정치력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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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장경을 고려가 만들어서 갖고 있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당시 동아시아의 보편 사상은 불교였는데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는 대장경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고려가 최고의 선진국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장경은 높은 문화력과 경제력, 그리고 강한 정치력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엄청난 문화물(文化物)입니다. 당시에 동아시아에서 이런 거대한 문화물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고려와 중국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이런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으로 치면 핵폭탄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당시에 어떤 나라도 대장경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함부로 넘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같은 불교 국가였던 일본도 당시에 이 대장경을 만들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 |

대장경은 높은 문화력과 경제력, 그리고 강한 정치력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엄청난 문화물(文化物)이었다. <출처: wikipedia(Steve46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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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장경은 어떻게 만들었기에 대단하다고 하는 걸까요? 여기에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아주 간단하게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 대장경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판의 숫자만 해도 팔만 개가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양면을 사용했으니 전체 면수는 16만이 넘지요. 그리고 각 면에는 322자의 글자를 새겼으니 전체 글자는 5천 2백여 만 개라는 엄청난 양이 나옵니다.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무를 베어서 바다의 뻘에 약 3년 동안을 담가놓는 것입니다. 나무란 뒤틀리거나 터질 수 있고 곤충들이 파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가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꺼내어 소금물 통에 넣어 찐 다음 그늘에서 또 오래 동안 말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4년 정도의 세월이 훅 하고 지나갑니다. | |
고려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국책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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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원고 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써야 하는 글자 수가 워낙 많으니 연 인원이 5만 명 정도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종이도 장난이 아니지요. 면수가 16만 이상이지만 파지도 생길 터이니 이에 3배에 해당하는 약 40만~50만 장의 종이가 필요했을 겁니다. 종이는 당시에 매우 귀중한 물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종이 값만 해도 엄청났을 겁니다. 그 다음 여러 명이 글자를 쓰니 글씨체 통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구양순체로 모두 통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명이 썼는데도 글씨가 아주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준비가 끝나고서야 원고를 경판에 붙이고 파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 글자 파고 한 번 절하고 하는 식으로 5천 2백만 번 이상을 했습니다. 하루에 한 사람이 새길 수 있는 글자 수가 보통 40자 내외라 하니 5천 2백만 자의 글자를 새기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했겠습니까?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지요.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판에 옻을 칠했는데 옻이 400kg이나 들어갔다니 엄청난 양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경판이 뒤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네 귀퉁이에 각목을 대고 구리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해야 경판 제작이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외에도 다른 공정이 많아 대장경은 그 제작 기간이 16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업은 아마도 고려 조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국책 사업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거대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이만한 국력을 갖춘 나라가 고려와 중국밖에는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려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강성대국’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선진국이었습니다. 이런 큰 문화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문화선진국이 아니면 어떤 나라가 선진국이겠습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 대장경은 그 뒤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대장경의 모델이 됩니다. 그네들이 대장경을 만들 때 우리 것을 기초로 하고 보충하는 식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 대장경은 뛰어났습니다. | |
대장경이 격은 수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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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은 우리가 소중히 보호해야할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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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장경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마무리로 그 수난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약 750년 전쯤에 만들어진 이 대장경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해야 합니다. 첫 번째 위기는 임진란이었습니다. 왜군이 해인사까지 왔다면 분명 우리 대장경은 불타 없어졌을 겁니다. 그런데 해인사가 하도 오지라 왜군이 그곳까지는 오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일제기입니다. 이때에는 ‘데라우치’라는 이름의 총독이 대장경을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양이 하도 많아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일설에는 대장경의 총량이 4톤 트럭으로 70대 분에 해당한다고 하니 엄청난 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위기는 6.25 때 찾아옵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북한군은 산에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때 절이 은닉처가 되는 경우가 많아 절을 폭격하게 되는데 해인사도 예외는 아니었죠. 일전에 공군 관계자를 만났더니 그때 여러 차례 해인사 폭격 명령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김영환 대령이라는 분 덕에 해인사는 폭격을 면합니다. 이 분이 해인사 폭격을 명받고 출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해인사를 살려낸 것입니다. 김 대령님은 한국과 세계의 문화유산을 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화 영웅을 기리기 위해 적어도 ‘김영환의 날’ 같은 날을 지정해야 합니다. 이 분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의 위대한 유산을 지켰는데 후세들은 전혀 모르고 있으니 이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듯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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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장경 간행 1000년을 맞아 열리는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주행사장 기공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한다. 경상남도는 지난 15일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 943번지 주행사장에서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이하 대장경축전) 주행사장 기공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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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은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이 대장경을 또하나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복원합니다.” 고려대장경연구소와 대구시 등은 2011년 초조대장경 제작 1000주년을 맞아 관광문화사업의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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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의 역사 바로 세우기, 고 김영환 장군 돌아오다. 6·25때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고(故) 김영환 장군(1921~1954)의 추모재(齋)가 1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해인사(주지 선각 스님)에서 봉행된다. 해인사와 공군은 2009년 공군...
- 글∙사진∙그림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