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교장이 평생을 흑인으로 살아오면서 여니 흑인과 마찬가지의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조상의 뿌리를 찾기 위해 DNA 검사를 받아 자기 혈통을 추적했다.
오십 평생 흑인으로 알고 살아온 그의 핏줄에는 뜻밖에 흑인 피가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았다는 DNA분석 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을 접하였다.
미국도 인종차별은 여전한 것이 현실인데 외모로 보아 흑인인 자신이 인도유럽계 57%, 미국원주민 39%, 동아시아계 4%여서 피부 빛이 거무스름했을 뿐이라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나는 인도인인가? 미국인인가? 아시아인인가? 아니면 외모로 보이는 피부색으로 흑인인가?"에 대해 심한 갈등을 느꼈다고 했다.
이 교장의 예로 본다면 혼혈의 역사는 그리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다. 역사 이래 혼혈의 역사는 되풀이 되어 왔으며, 외형적으로 우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그들만이 동족이고,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혼혈인 또는 이방인 취급을 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게 되어있다.
우리도 이 교장처럼 DNA 검사를 받아 본다면 과연 우리가 주장하고 있는 순혈을 유지하고 있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해답만 얻을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조상 중에 흑백 혼혈인이 있다고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미국의 한 족보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 보스턴의 족보학자인 마리오 발데스에 따르면 영국 사상 최장 집권기록을 갖고 있는 조지 3세(재위 1760∼1820)의 부인인 샬럿왕비가 북아프리카 무어인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발데스는 샬럿왕비의 초상화에 나타난 코가 유럽인의 전형적인 코에 비해 매우 넓고 샬럿왕비의 주치의가 쓴 자서전에 ‘그의 얼굴은 영락없는 흑백 혼혈인의 모습’이라는 글이 있는데 관심을 갖고 가계를 추적했다.
그 결과 그가 포르투갈의 알폰소 3세와 무어인 후궁 마달레나 질과의 사이에서 1249년 태어난 사생아의 후손임을 밝혀냈다는 것.
한국은 남아선호 사상으로 극심한 성비 불균형과 결혼의 가치관이 변하면서 결혼을 하지 못하는 남성비율이 높아지면서 궁여지책으로 신붓감을 수입(?)하여 국제결혼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국가도 장려하는 쪽으로 기운 듯하다. 그동안 순혈주의와 민족주의를 주창하던 우리의 사고가 바뀐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내면에 세뇌되어 있는 혼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혼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혼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만든 것은 정치지도자들이며,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계층들에 의해 혼혈이 부정되고 배척되도록 각인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깊어가고 인종 간 결혼에 대한 편견이 옅어지면서 외모만으론 혈통을 종잡기 힘든 ‘다중 혼혈인’이 늘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혼혈’을 배척한다는 명분이 사라졌다. ‘EA(Ethnically Ambiguous · 인종적으로 모호한)세대’의 등장으로 특히 한국인은 가치관의 혼란은 심각할 것이다.
흑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를 둔 골프계의 황제 타이거 우즈는 ‘캐블리네이시언(Cablinasian 코카서스+흑인+인디언+아시아인의 혼혈을 표현)’을 자처했다. 코카서스인(Caucasian), 흑인(Black), 인디언(Indian), 아시아인(Asian)의 혼혈이라며 그가 자랑스럽게 지어낸 표현이다.
배우 키애누 리브스는 하와이원주민, 중국인, 백인의 혼혈이다. 가수 머라이어 케리는 스페인계와 남미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에 흑인 피가 섞였다. 이들에게 혼혈은 흠이기는 커녕 강렬한 매력이다.
흑백 혼혈 여배우 잔 뒤발은 보들레르의 ‘검은 비너스’이자 관능적 시상(詩想)의 원천이었다. 이제 혼혈의 매력은 보들레르 같은 퇴폐적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러 인종의 아름다움이 모자이크된 EA세대 스타들은 전통적 혈통 구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깨우쳐주는 ‘신인류’다.
한국에서도 혼혈 연예인들이 성공하면서 편견이 줄고 있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신문이 꼽은 성공사례 가운데 탤런트 이유진은 얼마 전 단단히 각오한 듯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쏟으며 “한국 어머니와 스페인계 아버지 사이 혼혈”이라고 고백했다. 그녀의 인기는 도리어 크게 솟았다. 최소한 대중문화 쪽에선 우리도 혼혈에게 감았던 한 눈을 마저 뜬 셈이다.
한때 ‘집안 망할 일’이라던 국제결혼도 급증해 10만 쌍 이상이 맺어졌다. 동남아에서 온 근로자들과의 사이에 태어난 ‘코시안(Korean+Asian)’만 2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래도 이들에 대한 차별과 냉대는 옛 ‘튀기(혼혈인을 지칭하는 속어로 쓰고 있지만 사전적 의미는 말과 당나귀의 잡종인 노새를 일컫는 말로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들에 쏟아졌던 것 못지않다.
혼혈인이건 이방인이건 그들이 성공한 사람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타이거 우즈나 탤런트 이유진 등이 일반 평민의 저소득층이었다면, 그리고 혼혈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면 그래도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했을까? 유행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억울하면 출세를 해라…”
이제 혼혈은 더 이상 배척과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혼혈이라는 말도 인권침해의 요소가 많다고 하여 국제가족 즉 IF(International Family)로 불리우리를 희망한다.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인류의 구분은 흑인, 백인, 황인으로 분류하고 한족, 여진족, 몽고족 등 지역적인 분류로 합리화하는 것은 폐쇄적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며, 개방화 세계화 속에서는 이미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는 국가라는 권력집단의 영토싸움이든 서로 다른 이념의 싸움이든,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든 어느 경우든 민족은 구실일 뿐이다. 히틀러도 민족을 내세웠고, 일본도 내선일체라는 해서 식민지배를 합리화 했다.
해방 후에는 우익 쪽이 민족주의 진영이라고 내세웠다. 요즘은 북한이 또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민족주의를 약방의 감초처럼 아무나 사용하는 데는 많은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
이처럼 민족주의는 국가 권력의 구실로 작용되면서 혼혈은 우리와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상대로 만들어 놓았다. 입양아 수출대국의 오명도 씻지 못하는 처지에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혼혈인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나 스스로도 소위 ‘비혼혈’을 주장할 자신이 없는 터에 ‘혼혈’을 배척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모습이 다르더라도 더불어 사는 가치있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숭고한 대승적 지구촌 인류애(人類愛)를 꽃피워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