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주적 교회
시대와 국경과 나이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우주적인 교회인 것입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ex1. 요르단에서 예수님 믿은 사람들의 이야기.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구절에서 함께라는 단어는 동문교회 다니는 성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교회 안다니지만 구원받아야 할 내 식구, 내 이웃, 심지어 우상숭배하고 있는 이방인들까지 “모두 다 함께 포함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들을 영원한 지옥의 땔감으로 사용하시려면 교회를 이렇게 많이 세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더 더 품기를 원하십니다.
ex2. 장애인을 품었더니 크게 성장한 하나비전교회, 영천교회 신태하 목사 이야기
사도바울이 인생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성경에서 가장 위대하고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도 바울도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고, 이미 얻은 것도 없고, 온전히 이룬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삶을 살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러니 내가 부족한데 나보고 성전이다, 교회다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중압감이 엄청날 것입니다.
그래서 22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따라합시다.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완전한,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교회도 완벽한,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교회가 완전한 교회일까요? 1000명이 출석하는 교회도 자기 교회는 작은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럼 대형교회 교인들은 완전히 대만족할까요?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ex3. 수영로교회 다니는 어떤 권사님 이야기(자기 교회 카페에세 한 말이 다음날이 되면 전교회 퍼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완전한 교회를 지향하는 지금 이 순간에는 그저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첫째, 모든 것에 있어서 예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얼마나 고난 속에 있었냐면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습니다. 저도 한번은 기도하면서 흉내를 내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너무 힘들어서 야곱처럼 돌베개도 베고 잘 수 있겠더라구요. 그런데 웬걸 돌베개를 베었더니 머리가 너무 아픈 것입니다. 그냥 자면 잤지 돌베개는 못 베겠더라고요. 집에서 쫓겨나 광야 길을 헤매는 야곱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돌베개를 베고도 아픈 줄 모르고 잠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잠을 자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나타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과 세상이 연결된 환상을 본 것입니다. 아, 여기가 성전이구나. 여기가 교회구나. 그래서 그 자리를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벧엘의 제단이 되어야 합니다. - 하늘과 세상이 연결된 하나님의 집
사사기 마지막 시대 실로에 엘리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습니다. 법궤란 성전을 상징합니다.
한나라는 여인이 아이를 갖지 못해 얼마나 비통해하는지 예배드리러 와서는 울고불고하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뭐라고 합니다. 도대체 예배드리러 왔는데 포도주를 그렇게 마시면 되느냐? 술주정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한나가 말합니다.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심정을 통한 것’ 즉 예배는 하나님과 소통이요, 하나님과 연결된 만남의 광장이라는 것입니다.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주님 안에서 성전이 되어감
예수님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만나 예배하는 곳입니다.
성경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느끼고 맛보고 눈물 흘리고, 먹고 힘을 내는 영의 양식입니다.
예배는 무슨 구경하는 공연자리가 아닙니다. 목사 구경하러 구경꾼하러 교회 오셨습니까? 예수님과 예배를 통하여 소통하는 것입니다.
이제 죽어있는 예배가 아니라 살아있는 예배, 주님과 소통하여 주님을 만나 경험하는 능력의 자리, 변화의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 말씀에 순종해야 교회입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기서 권속이란 오이케이오이라는 희랍어로 가족, 식구라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하나님 되시고, 나는 자녀로서 한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뜻과 자녀의 뜻이 일치가 되면 참으로 화목한 아름다운 가정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계명을 잘 지키려는 자에게는 복이 임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활력은 에네르기아 즉 에너지를 말합니다. 말씀에는 하나님의 힘 즉 하나님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1장 19절 말씀을 봅시다.
그의 힘의 위력이 역사하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에베소서는 서신의 여왕, 서신의 그랜드캐넌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사도바울의 서신 중 가장 중요한 서신중의 하나입니다. 왜 에베소서가 중요하냐면 교회론을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교회란 위력이다. 여기서 위력은 듀나미스 즉 다이너마이트(폭탄)와 같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의 말씀의 위력 즉 말씀의 에너지가 대단하게 폭발(위력)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언제? 말씀에 순종할 때.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동문교회는 교회다운 교회, 진짜 교회, 살아있는 교회로 함께 지어져 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바벨탑 무너지듯 무너져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이 회복되어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우주적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예수님과 함께 진짜 교회로, 생명의 교회로 지어져가는 동문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동문감리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