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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버킷리스트 : 우리 산줄기 빠짐없이 훑어보기(사고없이).
▲옥돌봉~주실령 구간의 춘양목 군락.
◐ 프롤로그 ◑
인터넷 검색창에 ‘생달마을’을 치면, 두 곳이 뜹니다.
문경 생달마을과 봉화 생달마을. 오늘 관심사는 후자.
대간의 심장 양백지간, 그 중간의 선달산 아래 마을.
장장 110km를 달리는 내성천의 물뿌리가 있는 곳,
소설 ‘객주’에서 보부상 천봉삼이 종내 정착한 길지.
오늘, 내성기맥 첫걸음, 옥돌봉~문수산을 찍으면서
그 생달을 님인 양 멀찌감치서 굽어 보려고 합니다.
550년 철쭉, 오전약수, 호랑이, 예천바위, 축서사 ....
고구마 줄기처럼 생달에 엮여나오는 거리가 풍성합니다.
◐ 산행 얼개 ◑
▶언제 : 2018년 8월 5일.
▶누구랑 : 대전한겨레산악회 여러분과 함께.
▶어디를 : 도래기재-옥돌봉-주실령-축서사 (약11km, 4시간 40분 소요).
▲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도래기재에 섰습니다.
20여년 전 아찔했던 절개지는 온데 간데 없고, 정돈된 도래기재가 반겨주네요.
▲저 생태통로는 바람과 함께 동물들만 지나가겠지요.
▲하나의 마루금 여행을 시작하기 전,
문패부터 정리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산경표 관장하는 공식기관이 없으니 매번 벌어지는 해프닝.
1.문수냐 내성이냐.
물줄기를 온전히 감싸는 산줄기는 물줄기 이름을 따르고
물줄기를 온전히 감싸지 못하면 대표적 산 이름을 따른다.
2.기맥이냐 지맥이냐.
(팔공기맥 여행 때 언급했듯이) 그 기준을 ‘거리 100km’로 한다.
위 두 기준을 따른다면,
옥돌봉과 회룡포를 잇는 115km 마루금은,
내성천을 온전히 에워싸는 100km 이상 산줄기이니,
논리상 내성기맥이 맞을 것입니다.
다만 인식의 일반성과 이해의 효율성을 감안,
임시방편으로 ‘문수기맥’이란 명칭을 사용하려 합니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까지는,
새 마루금을 시작하는 허니문 구간이라 생각하고
달달한 마음으로 오를 일입니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지금 이 순간은 아주 중요한 대목을 기록 중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이 깃털처럼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한여름의 절정, 잔뜩 긴장하고 마음을 다지고 온 터라,
이 부드러운 바람은 산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됩니다.
▲아는 이름, 모르는 이름 .
모두 기분좋은 냄새가 나는 이름들입니다.
▲오른쪽 아래, 도래기재에서 박달령으로 이어지는 임도 옆 풍경. 양봉시설인가?
▲새로운 마루금 여행을 시작하는 마음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흥분과 낯선 곳으로 간다는 호기심이 함께 서식합니다.
▲갈림길. 잠시 후 다시 만납니다.
▲사람 뿐 아니라 시원한 바람도 함께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계단의 모양새가 뱀이 벗어놓고간 허물처럼 보이네요.
▲첫 문장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듯,
내성기맥 출발점으로 다가가는 과정이 많은 땀을 요구합니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려도, 니체의 말을 위안 삼아서 오릅니다.
'죽이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고통도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무들의 어른, 550년 철쭉을 대면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나이로만 따진다면, 대봉산(계관산) 1000년 철쭉에 비해 청년입니다.
▲카메라가 살짝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빌려왔습니다.
▲녹색의 응원을 받으면서, 옥돌봉 막바지 고비를 넘고 있습니다.
▲옥돌봉.
옛날의 찌릿한 기억이 학익진으로 출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간 종주 때, 날은 저물고 허겁지겁 집을 짓고 곯아 떨어졌는데,
어느 순간, 텐트 밖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오묘한 소리, 쉬익 쉬익....
침낭 안 육체는 얼음이 되고 머리칼은 송곳이 되어 하늘로 치솟았지요.
뚜벅 뚜벅, 점점 멀어지는 소리, 침묵하는 산이여.
그날 이후 범산은 제정신 아닌 채로 대간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나이는 거꾸로 들고, 내공은 제대로 다지는,
멋진 산우님들이 눈 앞에 있습니다. 우리의 거울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더위보다 뜨거운 열정이 우러나고 있습니다.
▲진행방향 우측의 헬기장.
▲아름다운 원추리꽃을 보시려거든, 옥돌봉에 오르면 됩니다..
▲아직까지는 대간 마루금입니다.
▲며느리밥풀꽃.
▲'대간은 마음을 편안히 안아주는 것 같다'는
어느 산우님의 말에 100% 공감을 불러오는 풍경입니다.
▲여기는 내성기맥의 출발점.
▲진격명령을 기다리는 기병대처럼 일렬횡대로 서서,
어떤 영화보다도 더 아름다운 산행을 해보자고, 도원의 결의(?를 다졌다는데....
▲'예천바위'를 작명한 분은 예천 출신일 확률이 꽤 높다는 이론이 정설.
▲'속도를 선택하면 풍경이 사라지고 산행의 밀도도 낮아진다'는 이론도 정설.
▲예천바위에 올라 예천 일대를 한번 휘 둘러볼까나.
▲'도원의 결의'는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한 마음으로 기맥 첫 조망을 만끽합니다(선달산 기점, 시계 역방향 순).
▲(예천바위 조망 1).
▲(예천바위 조망 2).
양백지간 선달산 아래에는 생달마을이 있고,
늦은목이재 근처에는 내성천의 발원샘이 있습니다.
▲(예천바위 조망 3).
봉황산 아래에는 부석사가 터를 잡은 지 오래고.
▲(예천바위 조망 4).
육안으로는, 갈곶산 뒤편으로 형제봉과 소백산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예천바위 조망 5).
▲(예천바위 조망 6).
▲(예천바위 조망 7).
반야봉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쌍봉은 문수산.
▲ 산행을 하다보면,
아무 생각없이 푹 빠져 걸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인가 봅니다.
▲꽃이 피어 단 하루밖에 가지 않는다는 원추리. Day lily.
▲동자꽃.
▲옥돌바위.
예천바위에서의 서먹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옥돌바위가 대간에서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방패삼아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머릿속을 물로 씻어낸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습니다.
▲산행경력만 따진다면 베테랑이지만, 열정만 놓고보면 영원한 루키입니다.
▲(옥돌바위 조망 1). 옥돌봉 기점. 시계진행방향 순. 우측 봉우리가 옥돌봉.
▲(옥돌바위 조망 2). 가운데 봉우리는 구룡산.
▲(옥돌바위 조망 3).
▲(옥돌바위 조망 4). 끈적한 눈길로 문수산을 바라봅니다.
▲(옥돌바위 조망 5).
▲(옥돌바위 조망6).
오전리에서 주실령 올라오는 도로는 살아있는 배암.
▲(옥돌바위 조망 7). 물야저수지, 봉황산, 갈곶산.
▲(옥돌바위 조망 8). 갈곶산, 늦은목이, 선달산.
▲처음 만나는 풍경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마치 빈 속에 소주를 털어넣었을 때의 짜릿한 기분이라고 할까?
▲사람 속이 저런 상태면 배배 꼬였다고 하지만,
나무가 저런 상태면 '세월의 무게'를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정표를 만나 잠시 숨을 돌리다보면, 색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산을 타는 게 아니라 산이 우릴 안고 가는, 일종의 코스프레 같은 분위기에 빠지는 경험.
▲산길이 주실령을 향해서 내려가고, 우리는 그 산길의 동선을 따라갑니다.
▲쓰러진 채 산의 일부가 된,
거목들의 시체가 인간의 작음을 일깨웁니다.
▲팔 한쪽이 꺾인 나무가 이야기합니다.
"설마 지금보다 더 나빠지기야 하겠어?"
▲저 돌을 쌓은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내 마음도 간절함을 한 겹 얹어봅니다.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처럼,
산길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리며 내려갑니다.
▲춘양면답게, 춘양목의 아름다움이 판단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춘양목 윗부분 잔가지의 헝클어짐이 누군가를 닮았습니다.
미시시피강을 탐험하는 소설 속 허클베리핀의 머리가 왜 갑자기 생각날까.
정신적인 몸통은 올곧지만, 잔가지 잔머리카락은 어지러운 점이 비슷해서 그럴까.
▲우리가 산길을 걸으면서 무수히 건네는 말들은,
실은 우리가 산에게서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환상적인 춘양목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게이트.
▲산수국.
▲꽃은 식물의 성기라는데,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걸까.
식물의 상대방 이성을 홀리기 전에 사람을 먼저 홀릴 것 같으니 원.
▲춘양목 천국에서 주실령 빠져나오는 게이트는,
산수국 군락이 도맡아서 완벽하게 인테리어를 완결했습니다.
▲(주실령 풍경 1). 주실령은 오늘 산행의 터닝 포인트.
▲(주실령 풍경 2). 고개 서쪽은 오전약수터, 동쪽은 두내약수터.
▲(주실령 풍경 3).
도로 따라 물야면으로 내려가면, 춘향전 이몽룡의 생가 溪西堂이 있다지요.
▲(주실령 풍경 4).
마루턱에 서서, 소백산에서 선달산으로 달려가는 대간을 구경합니다.
▲(주실령 풍경 5).
▲(주실령 풍경 6).
▲(주실령 풍경 7).
▲이제 이 능선에만 올라서면, 한 고비는 넘긴 셈.
▲어떤 것도 더 필요치 않은 행복한 순간.
산길을 걸으면서 현실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홀릭(Holic)이란 말이 참 좋습니다.
내려가면 워크홀릭, 산을 오르면 마운틴홀릭.
▲눈으로 보는 모든 풍경이 아름답고,
코로 느끼는 모든 냄새가 감미로운,
오늘은 내성기맥 첫 구간을 시음하는 마루금 여행입니다.
▲춘향목은 솔향기보다는 시각적 올곧음이 가장 큰 덕목인 것 같습니다.
▲춘향목의 올곧음 사이로 비치는,
먼 산의 부드러움이 마음에 여유를 챙겨줍니다.
▲예배령.
▲주실령에서 문수산으로 달려가던 마루금이 잠시 땀을 식히는 곳.
▲돌아보면 예배령은 말없이 서 있을 뿐.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모든 사물은 자기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가장 빛나는 법.
사람은 연인 앞에서, 요리사는 주방에서, 이 쓰러진 나무는 이 산길에서.
▲상승 지향의 공감을 불러오는 자연의 야성이 너무 좋습니다.
▲두내약수탕 갈림길은 못 본 척 지나치고.
▲부드러운 그늘사초의 감촉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내려가서 현실과 섞이기 전까지만이라도 이대로 자신을 놓고 있겠습니다.
▲산과 섞이고 더위와 섞이면서, 더 맑은 마음을 키우신 산우님들.
▲크게 외쳐 봅니다.
좋아, 목표했던 곳에 다다랐군. 이제 내려가서 축하하는 일만 남은 거야.
▲내려가는 경사가 급할수록, 올라올 걱정이 커져갑니다.
그래도 마루금 산행이 가르쳐준 학습효과 때문에, 여유가 덤으로 주어졌습니다.
▲산돼지가 좋아할 환경이네요.
▲아름다움은 상상에서 우러나오는 것. 저 나무를 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헛돌이 주의 지점. 직진하면 꽤 먼 거리를 더 걸어야 합니다.
▲축서사의 앉은 품새가 무의미하지 않음을 금세 눈치 챌 수 있네요.
▲오늘의 산행 날머리.
▲(축서사 풍경 1).
▲(축서사 풍경 2).
▲(축서사 풍경 3).
▲(축서사 풍경 4).
아, 절은 여기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사각형 공간 속으로 세상이 들어와 있는 듯하여, 벌써 세상 속으로 내려간 느낌이 듭니다.
▲사각형 창을 떼어놓고 세상을 내려다보니,
경계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넘실대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다음에 올라가야 할 문수산이 괴물 이미지로 덮쳐옵니다.
어떻게 되겠지. 오르다 보면 괴물도 발 아래 수그리는 그림이 그려질 테지.
▲흔쾌히 현실에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산과 절을 떠나 갑니다.
♣♧♣♧♣ ♣♧♣♧♣ ♣♧♣♧♣ ♣♧♣♧♣
◐ 에필로그 ◑
땡볕에 시름하는 밭작물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양동이 가득 물을 채워 들이붓기를 반복하다가
퍼질러 앉아 쨍쨍한 하늘에다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양동이를 발로 뻥 차고 개천에 뛰어들고 말았지요.
무더위에 굴복해 양동이를 뻥 차면 농사는 어떻게 될까.
그래서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이 종종 양동이를 차는 걸까.
‘Kick the Bucket’이 ‘죽다’는 의미로 뿌리를 내리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묶음, Bucket list가 탄생합니다.
얼마 전 아들놈 군 동기가 헬기사고로 산화했습니다.
스무살 청년의 수첩에 적힌 82가지 소망을 읽다가
먹먹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울먹이고 말았습니다.
71 헬기 타보기√, 72 해병대 전역하기(사고없이), 73....
화석처럼, 미완의 꿈으로 굳어버린 72번째 버킷리스트!
괄호 속 ‘사고없이’가 주홍글씨로 아프게 박힙니다.
자식 같아서 건넬 말이 많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 말은 엉뚱하게도 산 자의 버킷리스트로 돌아옵니다.
‘우리 산줄기 빠짐없이 훑어보기 (사고없이)’.
첫댓글 범산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산줄기가 흐르고 흘러 언젠가는 합수점에서 만나듯이,
산행을 하다보니 산과 강물처럼 다시 만났습니다.
비록 날씨는 무더웠지만, 다시 만난 기쁨으로 참 행복했습니다.
같이 하는 산행이 쭈욱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산행영화 잘 보고 갑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산행을 했던 탓인지, 무더운 날씨가 맥을 못추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미끈미끈한 춘양목들은 무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였음이 분명합니다.
무탈하고 기분좋은 산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범산님 산행기를 읽어야 산행이 완성 되는 느낌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산행은,
산과, 그 산을 찾는 사람의 지극한 끌림과, 육체적 수고로움이 합해져서 완성되는 것임을 느낍니다.
산행기는 그 산행이라는 큰 백사장 속의 작은 모래알에 불과할 뿐,
오히려 몇 번의 환승과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먼 길을 달려오는 귀인이 있어서,
산행이 더욱 빛나고 알차게 완성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한 마음 가득합니다.
프롤로그 보고 갸우뚱 했다가
마지막 에필로그 보고 눈물이 핑 도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