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게 묻고 답하다. 사진예술 2015 8월호 LDY
질문: 상업사진을 하면서 개인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평소에 현대사진 및 현대미술이론을 공부하면서 느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리차드 프린스는 1977년부터 신문, 잡지 등의 대중매체의 광고사진이나 다른 사람의 사진작업을 재촬영하고 약간의 변형을 주는 방식으로 작업해 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각종 도서의 초판본, 특정 이미지를 담고 있는 광고, 연예인 홍보용 사진과 서명, 성적 농담, 만평, 다른 작가의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 원화 등을 수집하였고, 그는 이러한 작업 방식을 이론화하기 위해서 재촬영(re-photography)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재촬영 작품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고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패러디와 도용은 어디까지 용인 될 수 있으며, 패러디와 도용의 모호한 경계를 현대미술 혹은 현대사진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용인 될 수 있나요? 그리고 이러한 동시대예술의 지형 속에서 앞으로 한국 사진예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이야기 해주세요.(L D Y)
김영태(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kyt6882@ hanmail.net)
답변: 유용한 질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독창성’, ‘창조성’, ‘유일무이’ 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덕목이 아카데믹한 예술제도에서는 예술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대에 다다이스트이자 초현주의자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레디메이드 ready made’라는 개념으로 기성의 제품인 남자소변기를 예술작품화하면서 예술의 역사가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예술제도에서는 예술가는 신과 같은 존재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또한 예술은 신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무엇인가 고귀하고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술가보다는 결과물인 작품에 더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뒤샹은 결과물보다는 작가의 아이디어, 작업과정, 작가의 관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와 더불어서 예술은 특정한 규칙이나 틀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작가가 규정하기 나름이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예술관을 실현하기 위해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고안한 것입니다. 즉 예술가가 예술이라고 규정하면 작가가 직접 생산하지 않았더라도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예술에 대한 개념을 재규정 했습니다.
이러한 뒤샹의 예술관은 1960년대 개념미술가들에 의해서 그 영향력이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전의 낱말풀이를 이용한 J 코주드의 작업이나 사진으로 작업의 개념을 제시한 에드 루샤의 ‘26개의 주유소 시리즈’입니다. 개념미술이후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페미니즘 작가이자 포스트모더니즘 작기인 신디 셔먼, 바바라 크루거, 세리레빈 등과 같은 작가들은 본격적으로 패러디, 혼성모방, 차용, 도용 등을 표현방식으로 수용하여 남성 중심적인 사회, 모더니즘 예술제도, 자본주의적인 소비문화, 예술의 originality, origin 등을 풍자하고 공격하는 작업을 보여주었습니다. 롤랑바르트가 자신의 저서인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주장한 저자의 죽음과 같은 의미선상에서 이루어진 작업입니다. 이후 동시대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들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리차드 프린스, 제프 쿤스, 매튜바니, 데미안 허스트 등도 이러한 표현방식을 수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차용, 도용, 패러디, 혼성모방 등은 동시대 예술의 일반적인 표현전략 혹은 표현방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러한 개념의 작업은 타인의 작업을 단순히 표절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있습니다. 원작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서 자신의 작업에 이용하는 것은 작업이라기보다는 도덕적으로 비판받아야 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심각해지면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동시대예술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미술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개념화 되고 장르간의 경계도 무너졌습니다. 표현영역도 무한대로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표현방식도 다양성이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되었고 과거처럼 특정한 이즘으로 규정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주류적 경향에 편승하기 보다는 개별 작가의 정체성, 진정성,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 등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개별 작가의 개인적인 세계관이 작가와 작업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사진도 지금보다 좀 더 발전하고 성숙해지려면 표현의 자율성과 개별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술의 역사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간 결과입니다. 또한 그것이 예술의 존재이유이자 예술이 예술로 존재하는 당위성입니다.
동시대 예술제도에서는 매체의 순수성이나 독창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표현의도가 작업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매체는 표현수단 일뿐입니다. 사진도 그러한 표현수단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김영태)
김영태
전시기획, 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현대사진영상학회 전시분과위원장,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그 이후 20여 년 동안 사진가, 전시기획, 사진평론 등 사진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특히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사진과 관련된 문화현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전시기획자로서‘2012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 II 대구현대사진의 여명’,
‘2012 Contemporary Photography Program'을 비롯한 여러 전시를 기획했다.
평론가로서 월간 사진예술, 월간 사진, 포토플러스, 미술세계, 대구문화 등 여러 문화예술 관련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교육자로서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경운대학교에서 현대사진이론, 사진사 등 사진이론 강의를 했다. 그 외에도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아카데미, 포토저널 사진아카데미 등 여러 사진교육 기관에서 강의를 했다.2015년부터 현재까지 힐링포토아카데미를 기획하고 있다.
저서로는 ‘알기 쉬운 예술사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