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국어 어휘(國語語彙) '절'의 어원(語源)
불교 도입 초기의 사찰을 중국에서는 '○○寺<寺의 발음은 '시'>'라고 일컬었다. 그 '시(寺)'라는 글자는 원래 관청을 뜻하는 글자였다. 이렇게 승려가 머무는 곳을 '시(寺)'라 일컬은 까닭은 한(漢) 나라 때부터 서역 인도의 승려들이 처음 중국을 방문했고, 그들을 머물게 한 곳이 외국 사신(使臣)들을 맞아 기거케 한 '홍로시(鴻盧寺)'였기 때문이다. 이후 승려들이 머무는 곳이 다양화됨에 따라 '관청'인 '시(寺)'와 구별하고자 글자의 음(音)을 '사(寺)'로 바꾸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그 '시(寺)'라는 글자가 관부(官府)의 뜻이었던 것은 다음에서 살필 수 있다.
*'시(寺)'는 관리가 머무는 곳, 관리가 머물러 다스리는 곳이다.(官之所止也官吏治事之處也.)<說文解字>
이 불교가 중국으로 유입되어 정식 공인된 것은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10년인 서기 67년이었다. 중인도(中印度)의 승려인 가섭마(伽葉摩)와 축법란(竺法蘭) 등이 불상과 불경을 흰 말(白馬)에 싣고 낙양(洛陽)으로 들어오자, 임금이 환대하여 성문밖에 정사(精舍)를 지어 머물게 하고 그 이름을 백마사(白馬寺)라 한 것이 중국 사찰의 처음이었다.
그 뒤 중국의 사찰을 가리켜 흔히 원(院) 혹은 사원(寺院)이라 했던 것을 기록들에서 많이 접한다. 주지하듯이 '원'은 주위에 회랑(回廊)이나 담장을 두른 집의 뜻이다. 요사이 우리 국민이 중국을 관광하면서 많이 찾는 곳으로 산동반도(山東半島) 적산촌(赤山村)의 장보고(張寶皐) 유적 관련 사찰을 법화원(法華院)이라 한 예가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법당의 이름들 가운데에서 선림원(禪林院)이나 문수원(文殊院)이라 한 것을 흔하게 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절을 흔히 '사찰'이라 하는데, 이 말은 중국 사람들이 만들어 쓴 것은 아니어서 그런지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에도 나타나지 아니한다. 찰(刹)이란 글자는 '국토, 불국토'를 뜻하는 범어 '크세트라'를 중국 사람들이 음역하여 '채다라(체多羅), 차다라(差多羅), 찰다라(刹多羅), 흘차달라(紇差달羅), 찰마(刹摩)'라 하고, '토전(土田), 국(國), 처(處)'라 한 데서 연원한다. 그러므로 '사찰'은 불사(佛寺)를 뜻하는 초기의 한자어와 인도의 고대어인 '범어' 음역 한자어를 접합하여 '外家집, 驛前앞'이라 한 것과 비슷한 조어법(造語法)으로 우리가 만들어 쓴 술어(術語)로 보인다. 지금 우리는 '사'와 '원'을 모두 불전 법당의 이름으로 쓰고 있으나 대개 '사'를 넓은 의미, '원'을 좁은 의미로 써서 전체의 '절'을 일컬을 때 '사'라 하고, '원'은 '사' 가운데 특정한 기능을 가지고 독립되어 있는 별사(別舍)를 지칭하는 데에서 사용한는 것 같다. 한편으로 산 속에 있는 작은 규모의 절이나 토굴(土窟), 석굴(石窟) 중심으로 지어진 규모의 불전 법당을 '암(庵, 菴), 암자(庵子)'라 하는데, '암'은 본래 둥근 초가집(草圓屋)의 뜻이었던 한자어가 더욱 뜻을 넓혀 '승려들이 부처를 봉안하여 기도하는 작은 집(僧尼奉佛之小舍)'을 가리키게 된 전통을 따름이고, '암자'란 말은 역시 한국 불교 고유의 일컬음이어서 그런지 '중문대사전' 등에 '암묘(庵廟), 암사(庵舍, 庵寺), 암당(庵堂), 암원(庵院)' 등은 나타나도 정작 그 말은 나타나지 아니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 소수림왕 5년(375)에 세운 이불란사(移佛蘭寺)와 초문사(草門寺)로 알려져 있고, 신라의 경우는 고구려 승려이던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경북 일선군(一善郡, 후에 善山郡)에서 포교 활동을 하면서 숨어 살았다는 모례(毛禮)의 초가집<후에 그 자리에 도리사(桃梨寺)가 창건되어 지금까지 전함>을 꼽기도 하나, 공식 최초의 절은 이차돈(異次頓)의 순교 연관으로 알려진 천경림(天鏡林)의 흥륜사(興輪寺)를 든다.
위에서 보았듯이 불전 법당의 우리 고유어는 '절'이다. 일본 사람들은 그 '절'을 '데라, テラ'라 발음하고, 그 말이 파리어(巴梨語) '테라(thera)'에서 온 것이라 하였는데 '절'의 우리 옛말이 '뎔'임을 감안하면 '데라'가 '뎔'이요, '뎔'이 곧 '데라'이니, 그 어원이 '파리어'이든 아니던 간에 일본어 '데라'는 우리말 '뎔'에서 옮겨 간 것이라 해야 맞다.
불전 법당의 고유어 '절'의 어원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느 것이 신빙성이 있는가를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그 몇 가지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절'의 옛말 '뎔'을 '털'과 관련 있는 말로 생각하여, 그 어원이 '아도화상'이 처음 신라 지역에서 포교한 일선군 모례(毛禮)의 집에서 연원한다고 본 것이다. 말하자면 모(毛)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 '털, 터리, 터리기' 등이었으니 '모례'는 아마 요사이 말로 하면 '털이, 털례, 털보'에 비교할 만한 이름이었을 것이고, 그 '털'이 '뎔'로 되고 나중에 '절'로 변하였다는 추측이다.
둘째로는 '절'에 가면 각종 불, 보살을 경배하기 위하여 '절(拜)'을 많이 하므로, 그 집을 '절'이라 일컫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절'이란 말이 고대한자어 저(邸)에서 연원한다고 본 것이다. 한자어 '저'는 제후왕이나 군현의 관리가 천자를 조알(朝謁)할 때의 숙식을 위하여 서울에다 지은 집(諸侯王及諸郡朝宿之館在京師者謂之邸, 說文解字)의 뜻인데, 광운(廣韻)에서 그 글자를 '도례절(都禮切)'이라 한 것에서 보듯이 그 음이 /dior/ 비슷한 것이었으니, 고대 한자어 불타(佛陀)의 음이 '부텨→부쳐→부처'로 된 것처럼 한자어 고음(古音) '디얼, 뎔'이 우리 고대어에 외래어(外來語)로 유입되어 '절'이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