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보이지 않는 갈등과 경계’
눈을 뜨면 무엇이든 접속한다는 것에 길들어진 인간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 접속하는 것들은 인간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 이런 모든 것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원하는 것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가?
접속의 시대에 개개인이 가진 문제는 다양하다. 어떤 문제는 단순하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는 현대 과학이 도저히 풀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는 문제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갈등과 문제는 양보와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없다.
“무슨 냄새일까?”
소라는 부엌에서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부엌으로 달려간 소라는 오븐에서 타고 있는 식빵을 봤다. 벌써 새까맣게 그을린 빵이 되었다.
“엄마! 식빵이 다 탔잖아요.”
“뭐라고?”
요즘 자꾸만 식빵을 태우는 엄마에 대해서 소라는 몹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주에는 식빵을 오븐에 구워놓고 외출을 했다. 백화점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생각이 나서 집으로 전화해 오지랖에게 전원 차단기를 내리라고 명령한 적도 있다. 그래서 냉장고에 음식을 몇 가지 버린 적도 있다.
“엄마가 좀 이상해.”
소라는 엄마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식빵을 태우는 일이 벌어졌는지 출발점을 찾았다.
“맞아. 백화점에서 친구들과 리셋 약을 커피에 타서 나눠먹은 이후인 것 같아.”
언젠가 엄마 친구들은 리셋 약을 하나 구해온 친구를 설득해서 맛을 보기로 하고 커피에 타서 모두 한 모금씩 마셨다고 했다.
“엄마도 리셋 약 효과가 나타난 걸까?”
소라는 몇 달 전부터 식빵을 태우는 엄마를 봤다. 그전에는 식빵을 태운 적이 없었다.
“오지랖. 엄마가 언제부터 식빵을 태우기 시작했지?”
“기다려 보세요.”
오지랖은 CCTV에 찍힌 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3개월 전부터 입니다.”
“맞아. 3개월 전에 엄마가 백화점에서 친구들과 리셋 약을 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고 했지.”
“오지랖. 3개월 전과 지금의 엄마에게서 달라진 게 또 있는지 찾아봐.”
“네.”
오지랖은 열심히 검색했다. 3개월 전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금의 엄마 행동과 비교했다.
“3개월 전과 지금의 엄마에게서 달라진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뭔데?”
“우선 일주일에 두 번 세탁기를 돌리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전에는 세탁기를 돌리고 난 후 베란다에 빨래를 널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 전부터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난 후 한 번도 베란다에 가서 빨래를 넌 적이 없습니다.”
“누가 빨래를 널었다는 거야?”
“아빠가 빨래를 널었습니다.”
“정말?”
“네.”
소라는 오지랖의 데이터를 신뢰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오지랖에게 더 많이 의지하며 산다.
“또 다른 게 뭐가 있어?”
“3개월 전부터 커피를 내리고 한 번도 마신 적이 없습니다.”
“그럼. 누가 그 커피를 마셨지?”
“아빠가 다 식은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렇다면 뭔가 시작은 하는 데 마무리가 안 되는 건가?”
“맞습니다. 엄마는 식빵도 오븐에 넣은 뒤에 꺼내지 않았고, 세탁기에 빨래를 하고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또 커피를 내리고도 마시지 않았고 요리를 부탁하고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3개월 전부터 그렇습니다.”
소라는 엄마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라가 도와줄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리셋 약 성분을 알아봐야겠어. 오지랖. 리셋 약 성분을 알 수 있을까?”
“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소라는 리셋 약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셋 약을 누가 먹었는지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했다. 하지만 리셋 약을 먹은 사람의 정보는 없었다.
“리셋 약에는 기억력을 감퇴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길들어진 것들을 삭제하는 성분도 들어있습니다.”
“길들어진 것들을 삭제한다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엄마가 꾸준히 해왔던 일들이 모두 뇌에서 삭제되었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오 마이 갓!”
소라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분명히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이걸 아빠도 알고 있을까?”
소라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안녕!”
오랜만에 이모부와 화상 통화를 했다.
“요즘. 스티커는 잘 모으고 있어요?”
“아니. 요즘은 그냥 접속만 하고 있어. 앱을 개발해서 모든 스티커를 올렸더니 많은 매니아들이 접속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그것에 대한 답장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
“재밌어요?”
“따분하지는 않아. 최근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
“그들이 뭐라고 해요?”
“스티커를 사겠다는 친구도 있고, 또 자기가 모은 스티커와 교환하자는 친구도 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아직은 팔거나 교환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
“왜요?”
“내가 원하는 플랫폼을 완성한 다음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비록 술병에 붙어있던 스티커지만 나름대로 예술성이 있는 작품도 많아.”
“맞아요. 정말 멋진 스티커도 있잖아요.”
“그래.”
“스티커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술병과 함께한 다양한 스티커를 보는 것도 재미있겠어요.”
“그렇지. 접속의 시대에 한 부분일 수도 있지.”
소라는 시간 내서 이모부가 만든 플랫폼에 접속할 생각이다.
식물원에 간 아빠를 돌아왔다. 요즘 아빠는 동네에 있는 식물원에서 나무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베란다와 서재에 나무를 몇 그루 심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 요즘 엄마가 이상하지 않아요?”
소라는 엄마에 대해서 물었다.
“늙어가고 있으니 당연한 것들이라고 생각해야지.
“아빠 늙어가는 것과 다른 이상한 것은 없어요?”
“많지. 아빠에게 관심 없는 것이나 커피를 타서 서재로 가져다주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서재로 커피를 갖다 주지 않는다고요?”
“그래. 커피는 내려만 놓고 말도 하지 않아서 다 식은 커피를 요즘 마시고 있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3개월 전부터 그랬지 아마도.”
소라는 아빠와 오랫동안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빠도 엄마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 엄마가 친구들과 백화점에서 리셋 약을 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고 했어요.”
“정말?”
“네. 몰랐어요?”
“말하지 않으니까 모르지.”
아빠는 엄마가 리셋 약을 탄 커피를 마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지금 엄마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서 리셋 약으로 원인을 돌리지는 않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
“나도 그래.”
“난 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무슨 문제?”
“아이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어?”
“호호호! 아이도 없으면서 무슨 아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엄마 친구 중에 한 분은 결혼은 했지만 자녀가 없다. 그런데 리셋 약을 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로 자꾸만 아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라엄마. 넌 어때?”
“난 잘 모르겠는데 분명히 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무슨 일?”
“모르겠어. 그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엄마 친구들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일상의 문제들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소라는 딸랑이 리셋병원 개원식에 접속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딸랑이 리셋병원은 가상공간에서 오픈 한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접속했다. 리셋병원의 일상을 모두 영상으로 보여줬다. 원장실에는 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오늘 예약한 손님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삐뽀삐뽀!’
리셋병원에 응급차가 들어왔다.
“선생님. 응급환자입니다.”
“무슨 환자인가요?”
“엄마가 리셋 약을 넣은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는 가요?
“엄마는 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뇌가 리셋 되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리셋을 복원해주는 약은 없습니다.”
“뭐라고요?”
“아직 리셋 복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리셋병원은 이곳밖에 없잖아요?”
“여기는 부분리셋이나 전체리셋을 해주는 병원이지 복원시켜주는 곳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시 복원할 수 없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리셋을 원하는 환자들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엄마는 병원에 입원 한 뒤 잠이 들었다. 호기심에 리셋 약을 먹은 엄마가 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니 걱정이다. 두 딸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좋았지만 엄마가 잠에서 깨어난 뒤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이라 심장이 뛰었다.
“이 뉴스가 트윗과 리트윗이 되면 큰일이다.”
리셋 약을 산 사람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될 수도 있다. 소라는 갑자기 리셋 약을 산 사람들이 걱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