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냄새 나는 누런 베개
어제 순이 할머니가 베개를 두 개나 주어 왔는데 그중 하나는 누런색이 가득 한 베개다. 오랫동안 세탁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김사장은 사지 않으려다 누런색의 베개 사연도 듣고 싶어서 순이 할머니에게 오백 원 주고 샀다.
“너는 왜 이렇게 누렇게 변한거야?”
“나는 철공소에서 일하는 아저씨 베개인데 한 번도 세탁하지 않아서 이렇게 누런 베개가 되었어요.”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인천에 있는 철공소가 철거된다고 하는 바람에 버려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아저씨는 광양으로 이사를 가고.”
“그랬구나.”
“아저씨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점심 먹고 잠시 쉬는 것 빼고는 하루 종일 일만 하며 살았어요.”
“그래?”
“네.”
“철공소에서는 주로 무엇을 만들었지?”
“아저씨는 호미, 쟁기, 삽 등 농부들이 필요로 하는 농기구를 만들었어요.”
“그랬구나.”
“장사도 잘 되었어요. 그런데 나라에서 철거를 하는 바람에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어요.”
“광양에 가서 뭘 한다고?”
“아저씨도 광양에 가서 고물상 한다고 했어요.”
“고물상?”
“네.”
“다행이구나. 서울에서 차리지 않아서. 가뜩이나 고물도 없는데.”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여기 와서 보니 아저씨는 고물상 선수 같아요.”
“그래?”
“네, 벌써 저랑 이야기도 하고. 또 고물상을 보니 잘 정리도 되어 있고.”
“고맙다.”
김사장은 누런 베개에 정이 갔다.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온 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깨끗이 빨아주는 게 좋으니 그냥 누런 모습이 좋으냐?”
“사실 그냥이 좋아요. 그런데 깨끗이 빨게 된다면 저를 산에 가서 태워주면 좋겠어요.”
“태워달라고?”
“네. 저는 이제 쓸모가 없을 거예요. 너무 더럽고 냄새나고 그래요.”
“아니다. 왜 쓸모가 없겠니. 또 누군가에게 너는 아주 훌륭한 베개가 될 수 있을 거야.”
“아니 예요. 저는 벌써 18년이나 되었어요. 주인이 너무 사랑해 주었어요. 이제 베개의 수명도 다 되었어요. 그러니 깨끗이 빨아서 저를 아주 공기 좋은 곳에 데려가 불에 태워주면 정말 좋겠어요.”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생각해 보마.”
“네, 아저씨.”
김사장은 누런 베개가 부러웠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베개가 너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커다란 것을 주는 것도 아니다. 또 많은 돈도 들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관심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진다. 하지만 쉬운 것도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한다.
김사장은 베개를 깨끗이 세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강원도 설악산에 갈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