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노고단에서 동쪽 천왕봉까지 지리산의 전체적 윤곽을 살피며 종주 산행을 알뜰하게 이루어내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기쁜 일인지 해 본 사람들은 알 일이다.
그 산길의 거리가 약 26km, 대략 5만 보 이상의 발걸음인데 땀방울 아롱지는 한걸음 한걸음이 소중한 체험이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되어 가슴속으로 밀려드니 더 나아가 천왕봉에서 중봉과 써리봉 넘어 치밭목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면 산행의 기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단순한 힘자랑 같은 이 종주 산행을 왜 해마다 계속하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사람은 걸을 수 있는 만큼 存在하는 것>이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자신있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총산의 연례 행사인 지리산 산행이 산행의 진정한 의미에 어느 정도 다가선 산행이기에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산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력과 고생 끝에 보상의 즐거움이 찾아오는 산행이다.
큰 산인 자리산의 연봉들이 품어 안은 깊은 골짜기를 뒤덮어 사랑스럽게 일렁거리는 연초록 푸르름과 붉은 산꽃에 마음을 물들이고 퐁퐁 솟는 시원한 샘물 한 모금 마시며 능선 가득히 불어오는 부드러운 5월의 꽃바람을 흠뻑 쐬는 이 산행의 魔力이 대단하다. 굳센 체력과 건전한 정신을 함양시키는 걷기 哲學의 경지에 어느 사이 들어서는 것이다.
지리산의 거부할 수 없는 이 흡인력이 지리산 봉우리와 골짜기의 원초적 매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능선을 걸을 때마다 追憶과 발자취만 산길에 남기고 오리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지리산의 魅力에 마음을 빼앗기고 온 것 같아 해마다 때가 되면 다시 빼앗긴 마음을 찾으러 떠나야만 하는 산행인가.
純眞한 욕심이겠지만 지리산의 精氣를 제대로 받고 싶고, 꽃바람, 살포시 피어나는 꽃송이, 맑고 고운 새소리, 밝은 햇살, 아침 안개, 천년 바위, 백년 소나무, 아침 이슬처럼 스러져간 사람들의 흔적, 윤기 흐르는 구상나무, 원통한 고사목, 별빛, 달그림자, 먼 산의 그림자를 벗하여 몸과 마음을 더 튼튼히 하고 이 골짜기 저 봉우리에 깃든 갖가지 傳說 같은 事緣에 가슴 아파하며 人間에 대한 이해심을 더 키우고 오장육부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감로수 샘물을 마시며 일편단심으로 능선을 오르내리고 천왕봉을 넘어가는 것인가.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에만 휩싸여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풍광을 제대로 살피고 접하지 못하기 일쑤이지만 아둔한 마음에도 내가 반드시 이 산길을 끝까지 걸을 수있고 걸어야겠다는 의지를 새롭게하고 저 아래의 섬진강 마을들과 이 산길을 잇는 연장선 위에서 얼마나 안타깝고 사랑스럽고도 슬픈 愛憎의 人間事가 펼쳐졌을까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
구십 리 산길을 걸으며, 조망이 시원하게 터지는 능선길을 오르내리며, 노고단과 반야봉, 천왕봉에서 가야 할 봉우리와 지나온 봉우리를 올려다보고 되돌아보면 <아! 저 것이 山이구나>하는 지워지지 않는 산봉우리의 이미지가 가슴에 스미어든다.
중산리 하산길은 고난과 굴곡의 역사를 오히려 극복의 역사로 만들어낸 先人들의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산길이다.
법계사 부처님을 뵙고 이 길을 기쁜 마음으로 내려가는 할머니들의 위태로운 발걸음, 산나물을 뜯는 아주머니들이 몸집보다 큰 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채 가파른 산길을 숙명의 길처럼 힘겹게 내려가는 것을 볼 때 이 터덜거리는 너덜길이 험하다고 불평하는 것은 엄살일 뿐인가.
산행 내내 지리산이 베풀어주는 모든 惠澤을 마음껏 享有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1. 산행 참가 동기 산우
-무박 종주: 김종무 부부
-일박 종주: 남장현 부부, 류창하, 한수복 부부
-뱀사골~반야봉~피아골 종주: 양명륭, 유병식, 최흥식
-둘레길 세 구간 27km: 정인수 부부, 이상 12명
(총 선후배 참가자 107명: 14회~38회)
1. 산행 시간
성삼재 11:30
노고단 12:05(~12:30 점심)
임걸령 13:50
노루목 14:30
반야봉 15:00
삼도봉 15:40
연하천 18:00
벽소령 19:50
②둘째날 산행(벽소령-천왕봉-중산리)
벽소령 05:40
선비샘 06:50(아침~07:20)
세석산장 09:10
연하봉 10:40
장터목 산장 11:10
천왕봉 12:20
법계사 13:30
중산리(순두류) 14:40
3. 산행 落穗
철쭉 피어나는 智異山이 나를 부르니 당연히 응답해야 하는 것처럼 간단한 배낭을 꾸려 성삼재에 도착한 시간이 낮 11시 30분이다.
시원한 산바람과 밝은 햇살 아래 5월의 신록이 일렁거리고 화사한 철쭉이 피어나는 1100 고지의 성삼재 산길이 맞아준다.
먼 봉우리가 가깝게 다가오는 밝은 산중이 모습이 보통의 무박 산행으로 컴컴한 새벽 3시경에 보는 성삼재의 풍경과 너무 다르다.
코에 와닿는 산공기의 느낌이 부드럽고 시원하여 시원찮은 몸 상태이지만 일박 산행이더라도 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며 설렘과 기대감 속에 다가올 산행의 모습을 그리며 산길로 들어선다. 아무래도 무박 산행보다는 시간의 여유가 있을 터이니 호남 제일봉인 반야봉(1,732m)도 들르고 느긋하게 산길을 걷기로 한다.
가벼운 산보를 하는 기분으로 구례와 화엄사쪽 전망을 즐기면서 노고단 산장에 금세 이른다.
우선 음수대에서 시원한 물을 보충하고 산장 그늘에서 형님(21회 이관영)과 떡 몇 조각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노고단 돌길을 올라선다. 이 형님께서 산꽃의 접사 사진을 찍으시느라 은근히 바쁘시다.
히말라야 산행을 앞둔 형님들(17회, 12명)께서도 배낭을 크게 매시고 보급품과 취사 장비까지 챙기셔 유유자적 서두르지 않으시고 걸으시는 모습이다. 곧 장도에 오르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산행의 예비훈련 산행이라는데 히말라야도 정말 가고 싶은 곳이다
민중 신앙의 靈地라는 노고단에 세워진 뾰족한 돌탑을 올려다보며 老姑 산신께 마음 속의 입산 신고를 하고 노고단 남쪽 산등성이를 휘감는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북동쪽으로 풍만하고 부드러운 모습의 반야봉이 점점 크게 다가오고 달굴계곡 넘어 남원쪽 서북능선의 바래봉 산줄기들이 지척이다.
주능선 산길에 이제 철쭉이 피어나고 있지만 바래봉쪽 철쭉은 그야말로 황홀하게 만개했을 것이다.
돼지평전에 이르러 구례와 광양의 산줄기들을 바라본다. 왕시루봉이 저 산이고 그 아래 섬진강 건너 호남정맥 제1봉 백운산의 모습은 안개에 감추어져 있는가.
지난 달 호남정맥 백운산 구간을 걸으며 섬진강 너머로 올려다 보았던 이 지리산의 산길을 지금 걷고 있는 감회가 새롭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의 시원한 샘물 맛을 보고 노루목 삼거리에 닿는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1km 떨어진 반야봉 정상을 향해 밋밋하게 이어지는 비탈길을 계속 올라간다.
삼십 분쯤 올라가니 아찔한 지리산의 비경이 일망무제로 아낌 없이 펼쳐지고 있어 이 봉우리가 般若라는 이렇게 좋은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천왕봉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노고단이 발길을 배웅해 주고 있다. 만복대에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것이 상서로운 기운이 전해지는 듯하다.
般若落照가 아니더라도 지혜의 봉우리인 호남 제일봉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중의 장엄하고도 빼어난 풍광이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壯而不秀라는 지리산에 대한 옛사람의 評은 亦壯亦秀로 바뀌어야 하는가. 누군가는 이 봉우리를 지리산의 주봉이라고 한다.
뱀사골 방향의 1500고지에 있는 천하 제일의 수도처라는 묘향대의 묘향암은 가려져 보이지않는데 般若는 諸佛의 어머니라고 누가 말했나.
비탈길을 다시 내려와 전망이 좋은 삼도봉에 닿는다.
삼도봉 아래의 산자락 끝은 섬진강속으로 잠기게 되니 저 아래 유유히 흐르는 蟾津淸流의 희끗한 자취를 찾아본다.
노고단의 모습이 제대로 뾰족하고 동쪽 끝에 다시 나타나는 天王峰의 인싱이 더 영험하게 강렬해지는 느낌이어서 천왕봉이 나를 부른다는 자기 암시를 받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