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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노동시의 힘 / 신경림·김남주 |
예심을 거쳐 네편의 시가 본선에 올라왔다. 둘은 짧은 시들이고 둘은 장시들이다. 모두가 본선에 올라올 만한 충분한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욕심을 말한다면 노동자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노래한 시들이 있었으면 하는 점이었다. 또 모두가 '노동시'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 없었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래 살아야지」(외 2편)는 노동자의 삶을 소박하고 꾸밈없이 노래한 점이 호감을 준다. 포장마차 풍경을 빌어 20대, 30대, 40대, 50대 노동자의 모습을 각각 몇 마디로 인상적으로 스케치해 보임으로써 메마르고 내일이 없는 이 땅의 노동현실을 노래한 「포장마차 풍경」은 시로서의 재미도 갖추고 있다. 한데 시들이 너무 평이해서, 지은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고민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준다.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이래서인 것 같다. 「병상에서 1」(외 10편)을 읽으면서 '피로 쓴다.'는 표현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 시들은 그야말로 피로 쓴 시들이다. 이런 경우 전혀 꾸미지 않고 재주도 부리지 않은 점이 미덕이 될 수도 있다. 가령 딸 선영이를 망월동 무덤에 묻어놓고 전국민주화운동 유가협 회원이 되어 열심히 싸우는, 판사한테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호통을 쳤다가 도리어 8개월씩이나 징역을 살고 나온, 그러면서도 만날 때마다 반가워 잡는 두 손 사이로 따스한 정이 흐르는 '남도의 어머니 선영이 어머니'의 모습도 소박하고 꾸밈없는 표현이어서 더 감동적이다. 또 '식모로 살다 가는 것과/시인으로 살다가는 것에/무슨 차이가 있을까?'같은 자신에 대한 회의와 자조 같은 것도 소박한 것이어서 더 무게가 있다. 다듬으면 상당히 좋은 시가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는 시의 앞에서 밝히고 있듯 어느 전자공장의 노조워원장인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다. 이 노동자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다가 학교도 다니고 잘 살게 되리라는 꿈을 안고 따르던 이웃의 목사를 따라 상경한다. 하지만 목사는 '나'를 부려먹기 편한 식모 부엌데기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뒤늦게 안 '나'는 그 집을 뛰쳐나와 구두약공장에 들어간다. 구두약냄새에 시달리며 쉬는 날도 없이 하루에 열넷, 열 다섯 시간씩을 넘게 일하다가 옮겨가는 곳이 전자공장, 여기서도 '나'는 첫날부터 불량이 났다고 욕지거리를 당하고 뺨을 맞는 곤욕을 치른다. 이때 동료들이 편을 들어 주면서 '나'는 생전 처음 친구도 사귀게 되어, 자취방에서 함께 밥도 해먹고 놀러도 다닌다. 그러다가 자취방에서 함께 모여 공부를 시작하고 이것이 마침내 노동현실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노동자의 싸움에 앞장을 서게까지 되고, 결국 '아무도 가라 하지 않는' 이 길을 걸어 지금 푸른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서 있는 것이다. 시의 전개에는 무리가 없다. 이야기가 계속 전개되는 중간에 '나'의 오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7. 그리고 지금 나는)도 단조로운 서술을 깨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비록 실재했던 인술의 이야기이니는 하지만 '나'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과정의 묘사가 약하다.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이 꼭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더 절실하고 긴박한 상황의 설정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표현도 전체적으로 좀 느슨하다. 「노동자와 기계가 만나 눈물 흘릴 때까지」 역시 실제로 있었던 TC전자 노동자들의 위장폐업 철폐투쟁을 그린 것이다. 이 장시의 주인공도 여성 노동자이고 시골 출신이다. 두 편의 장시가 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하지만 「노동자……」는 「누가 나를……」과는 뼈대가 크게 다르다. 「누가 나를……」이 단순구조 1인칭 화법을 채용하고 있는 반면「노동자……」는 중층구조에 3인칭화법을 쓰고 있다. 또 중간중간 삽화도 들어가 있고 등장인물도 많아 이것이 시의 재미를 돋구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령 "매일 같이/집에 가는 꿈아니면 /아침 조회 시간/ 어제 불량을 낸 무전기 네 대를 들고서 /벌 받는 꿈을 꾼다."같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묘사도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면서 시를 생동감 넘치게 만들고 있으며, 얼굴이 아주 예쁘고 항상 긴머리를 묶고 있던, 손마디가 불거져 한여름에도 손을 주머니에 넣고다니던 "언니", 공장을 떠난 지 몇 개월후 김밥을 싸들고 철야 농성장으로 찾아온, 지금은 술집여자가 되어있는 "언니"의 등장도 시를 빛냈다. 그리고 힘도 있다. "떴다 하면 2만 명"과 "노동자와 기계가 만나 눈물 흘릴 때까지"의 마지막 재목에서 이 시가 보여주는 힘은 전문성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성이 너무 드러난다. 또 결말이 너무 뻔하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수월하다. 문학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서 박수치는 단합대회 이상의 것이 되지 않으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진실을 찾는 깊은 눈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