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경 번의 번개로 지구 생명체 탄생
생명 성장의 필수무기물 '인' 생성
2021.03.22 09:00 심재율 객원기자
지구에 생물학적 생명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생물학적 생명체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한 두 가지 요소만 가지고는 완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난 16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논문은 10억년 동안 지구에 떨어진 번개가 지구에 생물학적 생명체가 태어나도록 자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일 대학의 지구 및 행성 과학자인 벤자민 헤스(Benjamin Hess)는 “이 연구는 생명체가 어떻게 지구에서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서 생명체가 여전히 형성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초기 지구에 번개가 치는 장면을 그린 상상도초기 지구에 번개가 치는 장면을 그린 상상도 © Lucy Entwisle
제1저자인 벤자민 헤스와 리즈 대학 시절 그의 멘토였던 교수들은 풀구라이트(fulgurite, 섬전암) 샘플을 연구하고 있었다. 풀구라이트는 번개가 땅에 떨어졌을 때 만들어진 돌멩이다. 이들이 연구하던 표본은 2016년 미국 일리노이주 글렌 엘린(Glen Ellyn)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형성돼, 인근 휘튼대학(Wheaton College) 지질학과에 기증됐다.
점토에 번개 치면서 인이 생성된 증거 발견
리즈 대학 연구팀은 글렌 엘린에서 발견된 풀구라이트에서 인이 풍부한 슈라이베르스석(石)(schreibersite)이 대량으로 추출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물학적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인 인은, 생명체의 움직임이나 성장 및 생식에 이르는 모든 생명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초기 지구 표면에 존재하는 인은 물에 녹지 않는 미네랄에 함유되어 있었지만, 슈라이베르스석에 함유된 인은 녹을 수 있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모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유명한 ‘따뜻한 작은 연못’ 개념을 따라 지구상의 생명체가 얕은 수면에서 기원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와 함께 생명체 형성의 중요한 무기물인 인은 운석에 의해서 적은 양의 슈라이베르스석이 지구에 공급됐다는 모델을 따라 설명한다.
그러나 풀구라이트에서 비교적 많은 양의 슈라이베르스석을 발견하면서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설명도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 예일대 박사과정 학생인 헤스는 “번개가 자주 지구를 강타하는데, 이는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에 필요한 인이 운석의 충돌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라고 말했다.
헤스는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운석 충돌이 드물어진 후에도 지구와 유사한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의 형성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덧붙였다.
글렌 엘린에서 발견된 풀구라이트 샘플. ©Benjamin Hess
연구팀은 다양한 분광학적 영상 기법을 사용하여, 점토가 풍부한 특정 토양에 번개가 치면, 풀구라이트 암석 안에서도 슈라이베르스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다시 말해 슈라이베르스석이 반드시 운석에 의해서만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컴퓨터 모델을 통해, 연구원들은 매년 약 10억에서 50억 개의 번개가 초기 지구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지구에서는 매년 5억7천만 번의 번개가 친다.
10억년으로 기간을 늘리면, 무려 100경 가량의 번개가 지구를 강타했을 것이다. 이는 DNA, RNA, 그리고 생물학적 생명체의 여러 생체분자 형성에 도움을 줄 상당한 양의 인을 생성하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연구팀은 약 35억년 전에 떨어진 번개로 지구에 생성된 인의 규모가, 운석 충돌로 인해 지구에 생긴 인을 초과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35억년 전은 최초의 기본적인 생명체가 지구에 출현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다른 행성에서도 유사한 과정 되풀이 될 듯
이것은 지구와 유사한 행성에서 초기 생명체를 발생하는데 필요한 인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운석 충돌과는 독립적인 메커니즘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명체의 출현을 무한정 용이하게 한다고 연구진은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팀은 낙뢰로 만들어진 인이 지구의 가장 오래된 미세 화석 나이인 35억년 전후의 운석에 의한 인의 생성을 능가해,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하는 과정에서 낙뢰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렌 엘린에서 발견된 풀구라이트 샘플 © Benjamin Hess
게다가 번개는 운석 충돌보다 훨씬 덜 파괴적이기 때문에, 생명이 발달하는 섬세한 진화 경로를 방해할 가능성이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에 운석이 폭격처럼 지구에 떨어지는 것은 태양계에서 한 번 일어난 일이다. 행성이 일정한 크기로 커지면서, 운석에 의한 지구 외부에서의 인의 공급은 무시할 수 있게 된다.
리즈 대학에서 벤자민 헤스를 지도한 제이슨 하비(Jason Harvey) 박사는“번개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만약 대기 조건이 번개 발생에 유리하다면, 생명체의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지구 표면으로 전달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심재율 객원기자
저작권자 2021.03.2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