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안동장터
박연희
가을걷이가 끝난 초겨울의 장터에는 하늘아래 첫 동네 오지마을에서 붉게 빛나던 홍옥이 열정적이게 곱다. 고추잠자리가 사과 위를 맴 돈다. 깨끗이 말려진 무청 시래기가 하얀 큰 보자기에 올려져있다.
오늘은 안동장날이다. 나의 문화의 날이다. 저번 장날에 만났던 사람들을 또 만나고. 큰 목소리의 투박한 말투로 이야기 하지만, 밖에서 여러 명이 어울려 연주하는 풍물놀이 같이 신나고 정겹다. 안동장터가 아름다운 것은 떨이해 가라고 하시던 할머니들의 정 깊었던 소박함도 있지만, 친환경인 다양한 먹거리 때문이다. 장터에 물건을 내다 파는 사람들은 거의가 칠, 팔십대 할머니들이다. 힘든 농사일에 허리는 조금씩 구부정하며, 머리는 다들 보글이 파마를 하고 알록달록한 패딩 옷을 입었다.
장터의 한쪽에는 안동 특산물인 참마가 네모 상자에 그득 담겨져 있다. 작은 자루에 따로 따로 넣은 건고추, 콩, 팥, 땅콩, 대추 등은 봄부터 겨울이 된 지금까지의 일 년 동안의 할머니들의 수확물이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참마의 수확이 좋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여름에는 아침에 금방 밭에서 뽑아 온 이슬 머금은 싱싱한 야채들을 듬뿍 담아서 준다.
농산물을 주로 파는 장터에서 조금 올라오면 신 시장이 나온다, 골목에 들어서면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난다. 소금을 알맞게 잘 쳐진 안동 간 고등어가 두 마리씩 겹쳐 한손씩 수북이 좌판에 쌓여 있다. 산골인 안동의 제일 좋은 밥반찬이다, 내가 어릴 때도 늘 밥상에 올랐으며 지금도 즐겨 먹는다. 안동국시의 구수한 생콩가루 냄새. 기름방의 고소한 냄새. 제사에 쓰는 돔베기 라고 하는 상어토막, 솥에서 금방 삶은 문어가 통째로 큰 고무통에 담겨져 있다. 안동장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떡집골목에는 하얀 증편을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 간다. 차를 세워놓고 파는 길거리 꽃집. 펑하고 하얀 연기 속에 마술같이 조금밖에 안 되는 곡식으로 한 자루를 만드는 뻥튀기 아저씨. 이 모든 것은 살아있는 일상의 문화이며 안동장터는 문화의 장소이다
재래시장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있었던 옥야식당은 전 좌석이 합석이다. 큰솥을 2개 걸어놓고, 안동 소고기를 푸짐히 넣어 끓이는데 솥에서 팔팔 끓고 있는 국을 보면 저절로 먹고 싶어진다. 인천공항에도, 잠실 몰에도 안동국밥이라고 팔던데, 옥야식당에 가서 좀 배워 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맛이 너무 차이가 난다. 옥야식당 주인은 우리가 서울 이사 올 무렵에는 벌써 연세가 많이 드셨는데, 그래도 식당 한쪽에 나와서 고기를 썰어서 국그릇에 담아주고 있었다.
신 시장에서 둑을 넘으면 구시장이 나오고, 찜닭골목을 지나면 안동에서 가장 번화가이고 차가 다니지 않으며, 떡볶이 등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골목이 나온다. 그 다음에 아주 오래된 문화극장이 있었다.
어릴 때 본 <에밀레종> 이라는 영화는 내가 제일 처음 본 영화이다. 맑은 종소리를 내기 위해 아이를 넣었다는 이야기다, 그날 나는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문화극장 옆에는 ‘문화탕’이라고 대중목욕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졌지만,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이며 안동장날에 나는 거기에 갔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문화극장에서 연극발표도 하였었다. 산골의 작은 안동장터는 그때의 나에게는 아주 넓었다. 그리고 지금도 안동은 넓다. 옥야식당의 안동국밥은 서울 곳곳에 있으니까.
세계 속의 안동음식문화를 위하여, 옥야식당의 할머니가 10년만 젊었어도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티비의 예능프로 ‘윤식당’ 같이 안동국밥을 가지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내가 좋아하는 두바이로 날아 갈 건데.
국밥이 먹고 싶어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 왔건만 할머니는 안계시고 젊은 사람만이 있었다. 세월 흘러 나도 안동을 떠나고, 옥야식당 할머니도 식당을 떠나고, 장터에 농사거리를 팔던 할머니들도 하나 둘 못 나오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안동장터는 잊어지지 않는 내 젊은 날의 문화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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