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베란다 창 너머 불빛이 하나둘 사위어가고 케이블TV에서는 지역광고가 나올 무렵,
뱃속에서 하릴없이 ‘꼬로록’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찾아온 실존적 결단의 순간,
“투 이트 오어 낫 투 이트(To Eat or Not To Eat)!”
잠깐의 번민 뒤, 결국 부엌으로 간다.
보글보글 기포가 오르는 냄비 속으로 120g분의 행복을 뚝 분질러 넣는다.
오늘도 거르지 못한 면식수행(麵食修行).
내일 아침 부어 있을 얼굴은, 내일 아침 몫의 고민으로 족하다.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
중독의 이름은 ~~~ 라면이다.
모두가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라면은 언제나 주린 배와 영혼을 채워주는 안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라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라면 한 가닥의 길이는 보통 65cm, 한 봉지의 총 길이는 49m다.
탄수화물 80g, 단백질 10g, 지방 17g에 한 그릇의 열량은 평균 520 kcal.
영양에 비해 칼로리가 높은 편이다.
얼굴을 붓게 만드는 주범인 소금 함량은 3~3.5g.
스프 쇠고기, 간장, 핵산조미료, 포도당, 마늘, 양파, 고추 등 수십 가지의 재료를 배합해
고압에서 처리한 뒤 진공농축, 건조, 분쇄 과정을 거쳐 베이스를 만들고 조미료와 향신료를 섞는다.
컵라면이 끓지 않는 물에도 잘 익는 것은 밀가루보다 빨리 익는 성분을 가진 전분의 비율이 높다.
감자 전분은 봉지라면에도 섞여있는데 면발을 쫄깃하게 만든다.
그런데 라면이라는 음식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라면의 유래와 관련한 여러 설이 있지만 믿을 만한 이야기는 중국 기원설이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반죽을 얇게 편 다음 칼로 자르는 방법과, 반죽을 양손으로 잡아 늘인 후 절반으로 접고 다시 늘이기를
반복하는 방법이다. (수타 짜장면을 연상하시면 되겠다)
후자의 방법으로 만든 면을 납면(拉麵)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라면이라는 이름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에도(江戶)시대 중기인 18세기에 전래돼 중국국수라는 뜻의 ‘지나(支那) 소바’로 팔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된장으로 맛을 낸 미소라멘, 돼지 뼛국물로 만든 돈코츠(豚骨)라멘 등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1958년, 마침내 면을 쪄서 양념을 입힌 다음 다시 건조시켜 포장한 라면이 등장했다.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이다.
한국에 라면을 들여온 것은 삼양식품의 창립자인 전중윤 회장이다.
1963년 9월15일 삼양식품이 일본의 명성식품으로부터 라면 기계 2대를 도입한 것이다.
당시 라면 한 봉지 값은 10원, 지금도 익숙한 주황색 포장지에 무게는 100g이었다.
처음엔 생소함 탓에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간편한 조리법과 맵싸하게 입에 달라붙는 맛이 곧 대중을 사로
잡았고, 1970년대 초의 이른바 ‘혼분식 장려’ 정책은 라면이 국민음식이 되는 데 날개를 달아줬다.
식사대용으로 인기를 끌게 된 라면은 시장이 급성장해 60년대 후반 연간 매출액이 1500억~1600억원대에
이르게 되고, 72년에는 국내 최초의 용기면인 삼양컵라면도 만들어졌다.
롯데공업에서 롯데라면을 생산한 것은 1965년.
이후 롯데공업은 75년 당시 최고인기 코미디언이었던 '막둥이' 구봉서씨와 '후라이보이' 곽규석씨를 등장
시킨 광고 '형님 먼저 드시오, 아우 먼저 들게나'라는 카피로 유명한 농심라면을 내놓는다.
농심라면의 성공을 계기로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교체하기에 이른다.
본격적인 라이벌 경쟁은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삼양이 출시해 재미를 보지 못했던 용기면을 1981년 농심이 사발면이란 이름으로 출시하게 되는데 '3분이면
조리 끝'이라는 간편성을 무기로 히트를 치게 된다.
이후 농심은 너구리(82년), 안성탕면(83년), 짜파게티(84년) 등을 줄줄이 출시했고, 1986년 국내 라면 업계의
최대 히트작인 신라면을 내놓는다.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점점 상승해 막상막하의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농심의 거센 도전에 맞서 꾸준히 신제품을 개발해 오던 삼양식품이 결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1989년
이른바 '우지 파동' 때문이었다.
우지 파동은 삼양식품이 라면에 비식용 쇠기름을 썼다는 내용의 사건으로 이로 인해 삼양식품 책임자가 구속
되고 삼양식품은 이 사건과 관련, 8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점유율이
10%대로 떨어지고 라면의 판매가 중단됐으며 외환위기까지 겹쳐 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다.
현재 라면 시장은 업체 조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농심이 70%가량을 점유하며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삼양라면(13~14%), 한국 야쿠르트, 오뚜기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