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야! 넌 다이어트 전문가가 되어야 해
하늘이 더 높고 푸른 가을날 오후입니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새하얀 긴꼬리가 선명합니다. 학교 텃밭에는 허수아비 아저씨가 한 어깨띠 광고문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참새야! 넌 다이어트 전문가가 되어야 해.’ 유성매직으로 삐뚤빼뚤 써내려간 글씨입니다.
올해 특수학급 아름반, 다온반에서 텃밭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목화 재배, 꽈리 재배, 그 중에서 벼 재배가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텃밭 뒤쪽으로는 목화모종, 꽈리 모종을 심어 울타리를 만들었고 사각 고무통 2개를 준비해 논흙을 채우고 모를 직접 심는 모내기를 했습니다.
물조리개로 흙이 마를까 봐 당번을 정해 열심히 물을 주었습니다.
바로 옆에 자리한 밭고랑은 4학년 학생들의 텃밭입니다. 육아휴직으로 3개월 빈자리에 오신 박선생님께서 학생들과 ‘방울토마토 잘 기르기’라는 식물재배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수만큼 모종을 사다 주셨지요. 그리고 모종 심기 방법을 먼저 시범으로 보여 주셨지요.
“얘들아, 모종을 심을 때는 흙을 충분히 덮어야 튼튼하게 뿌리 내릴 수 있단다.”
아이들이 텃밭을 찾아 식물에다 자기 이름표를 달아두고, 잡풀을 뽑고 아침 일찍 물을 떠다 주며 관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흐뭇해하십니다.
“태경아! 비닐을 깔고 심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거름흙을 많이 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한번 비교 관찰 해 보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 시간씩 일찍 와서 텃밭 관찰에 열심을 내는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봄볕이 뜨거운 오후에 텃밭 뒤 팔각정자 위에서는 아기 참새들이 날기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참새와 아기 참새들이 연달아 날아다녔어요
“포로롱 포로롱, 푸르르륵 퍼더더덕 콕”
그런데 아기 참새 한 마리가 다쳤는지 날지를 못하고 방울토마토 사이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박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볼세라 얼른 남천이 자라는 울타리 속으로 아기 참새를 옮겨 주었습니다. 짹짹거리는 아기 참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 참새가 살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멀리 정자 위에서는 엄마 참새가 애타게 아기 참새를 지켜보며 포로롱 포로롱 날개짓을 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습니다.
“짹짹, 짹짹”
아마 오랫동안 이곳에서 상처가 낫기를 기다렸겠지요.
주말이 지나면 행여나 식물이 말라 죽을까 봐 더 열심히 물도 주고 풀도 뽑고 돌보아 주었더니 열매를 맺은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노랗게 익어갔습니다. 하나씩 따서 간식으로 먹으면서 마치 농부가 된 것처럼 친구들과 식물을 가꾸며 행복한 모습입니다.
한편 아름반 다온반에서는 벼가 잘 자라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개구리밥도 떠 있고 청개구리와 우렁이 몇 마리도 살고 있었는데, 잘 익어서 누렇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던 벼가 갑자기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참새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지 뭐예요. 처음에는 한두 마리씩 왔는데 아마 이곳에서 자라서 떠난 아기 참새가 친구들을 데리고 온 것은 아닐까요?
“휘리릭, 휘리릭~ 포로롱 포로롱”
“짹, 짹, 짹짹, 짹, 콕 투툭.”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몰려와 벼이삭을 쪼아먹고는 마치 단체 외식을 하고 가는 듯했습니다.
어떡하지요? 텃밭에는 유치원 팻말이 붙은 땅콩도 목화꽃도 꽈리꽃도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참새들이 예리하네요 벼이삭만 골라 먹었지 뭐예요.
벼이삭만 그것도 알곡들을 가져갔나 봅니다. 나누어 먹는 것은 이해하는데 쭉정이만 남기다니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름반, 다온반에서는 추수 때 까지 벼이삭 지키기 회의를 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벼이삭을 지키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 선생님, 우리 허수아비를 초청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함께 만들어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5학년 언니의 말에 모두들 아이디어를 내었습니다.
“무섭게 보여야겠지요. 선생님 여름 모자, 경동택배 아저씨의 조끼, 팽수의 크로스 가방, 얼굴에 무서운 눈썹도 그려넣고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깨띠와 양팔에는 친구들이 생각을 모아 써 놓은 광고문을 붙였습니다.
‘참새, 참 교육중!’
‘참새, 저리가!’
‘참새야! 넌 다이어트 전문가가 되어야 해’
어쩌지요? 다이어트라는 말은 엄마들도 언니들도 힘들다 말하면서
“또 실패다!”
라고 하는 말인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성공했을까요?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며 뭔가 생각을 하는 승기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요 며칠 사이에 알곡들이 많아졌어요.
‘과연 참새들이 다이어트는 성공한 것일까요?’
오늘은 벼를 추수하는 날입니다. 아이들이 추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빙그레 웃으시는 한 분이 계시네요. 바로 영희의 휄체어를 밀고 급식도 도와주시는 실무사 선생님이십니다. 며칠 전 쭉정이 벼를 발견한 실무사 선생님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추수할 때 아이들이 알곡이 없으면 실망할 텐데,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가 무릎을 ‘탁~’ 치며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옳지! 그러면 되겠네. 우리 집 벼를 이용해 보자.“
선생님은 자신의 집 논에서 키우던 벼이삭을 뿌리 채 뽑아와서 벼 사이 사이에 감쪽같이 심어놓으셨어요.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 일어난 일이어서 허수아비와 CCTV 카메라로 보시던 당직 선생님만 아시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알곡이 든 벼를 추수해서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참새의 다이어트는 성공했다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교실에는 벼이삭 줄기를 이용한 가을 풍경 장식과 꽈리나무로 만든 대형 목걸이 장식이 환하게 창가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