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전이 그 크기나 규모 면에서 4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보다 더 큰 신전이나 교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집트 건축가들은 그들의 신전을 자연의 면밀한 관찰을 통해 '자연과의 어울림'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Hieroglyph라 불리는 신성문자도 그들이 흔히 보는 자연을 디자인해서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신 라(Ra)는
알파벳인데 이렇게 보니 처음에는 다 상형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글자 자체가 디자인이었으므로 신전의 기둥에 글을 쓰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장식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장식은...
이집트의 대표적인 식물하면 역시 파피루스 입니다.
건축물에 자연이 스며들면 그 주위 환경과 매우 어울리게 된다는 것을 이집트 건축가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건축가들은 한 건물의 [기둥의 머리(두주:capital)] 두주에 파피루스, 야자수잎, 기타 식물의 잎 모양을
다양하게 연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서양 건축사 1편에서 말씀드렸듯이 건축적 요소, 리듬, 채움과 비움, 등에서 리듬보다는 사물의 기록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아마 사진같이 고대에는 채색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이미 로마에서 금쪽같이 여기던 '보라색 염료'를 클레오파트라는 온 배의 돗에 물을 들일 정도로
물자가 풍족했으므로 신을 위한 집에 '쌩얼'로 돌로만 지었을리 만무 합니다.
보라색 염료를 잘 만들던 사람들 '페니키아인'(Phenikian... 영어로 purple man 쯤 되나 봅니다.)에게서 구입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Hieroglyph)는 한자로 치면 전서에 해당하고, 관리들이 쓰던 신관문자(Hieratic)(해서),
일반 대중이 쓰던 민중문자(Demotic)(간자체), 그 후'콥트어'로 단순화되면서 앗시라아의 쐐기문자,
이들과 장사하던 사람들 페니키아인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페니키아인의 문자는 나중에 알파벳의 엄마가 되시면서 알파벳은 로마체, 아랍어체, 러시아체 알파벳으로 분화됩니다.
앞서 문화살롱110에서 언급했듯이 그리스, 로마를 유럽 문명의 근간으로 여겼던 유럽인은 그들 문화의 조상이 이집트에서
유래되었음을 처음에는 무척 싫어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아 홍수에도 멀쩡했다는 문명의 증거가 속속 발견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나폴레옹 이후 '이집트 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면서 우리는 이렇게 소상히 알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상형문자는 아름답지요. 조각의 시작으로 보이더군요. 아랍문자도 보면 볼수록 유려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