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 4번째 현암삼거리~분젖지
언 제 : 2011.11.05. 날씨 : 후덥지근한 가을날.
어디로 : 현암삼거리~것대산~상당산성~상당산~이티재~구녀산~분젖지(1번지방도).
누구랑 : 비실이부부일당12명
어저께부터 이번주말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난리법석이더만 진짜로 아침부터 소나기가 쏱아진다.
새벽부터 비오는데 가야하는지를 주절거리는 김새는 소리에 들머리에 가봐야 알지로~~~ ㅎㅎ
지난주일엔 5주째라 건너 뛰고보니 산에 가본지가 까마득해 보인다.
현암삼거리에 도착하고보니 새벽부터 걱정했던 비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햇살이 비치는디 우와~~
낙엽길이 비에 젖어 미끄럽긴 하지만 오늘가야 할 길이 약간은 여유가 있다보니 널럴하여 좋았다네
상당산성에서 동동주한사발 먹고가는 멋이야 없었지만 엿먹으며 넘어본 상당산성길은 시원하였고.
이티재 주막에서 막걸리 드리키며 노닥거렸지만 초정약수탕을 지나친 아쉬움이 남는 한 구간이었다우.
지난 구간엔 컴컴한 밤에데 비가 줄줄 내리다 보니 묵집꼬라지를 보지 못했는디.
현암삼거리에 도착하니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구여
오늘이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가을산행 같으네요.
것대산 가기전의 산소의 묘비와 이색적인 장성이라
현양원이정표
목련공원묘지 지나 현양원으로 넘는 길
산성고개가 보이고 청주시가지도
것대산정상
것대산정상엔 활공연습장.
것대산의 봉화대
이 양반들은 여그가 삼계탕 솥이라던디
봉화대 내력
것대산 바로아래 상봉재
내 한몸으로 12명의 새생명을 이어 줬답니다.
산성고개 이동통로
상당산성의 남안문
상당산성의정문
엿 묵으라이. 뭣이여.산성마을에 삼계탕은 간곳없고.
미호문앞엔 음악 콘서트준비중
상당산성길이 자연산성같지만 아니구여
상당산정상
상당산성에서 동암문을 빠져나와 이티재로
새터마을의 소공장
새터마을의 느티나무 뒷편엔 텅 비었다우
이티재 주막집. 막걸리 몇사발 비우고. 대광아저씨덕분으로~
이티재정상
마지막 가을이라고 놀고 있네
비실이꼬라지가 오늘은 영 말이 아니구만요
가다가 이런날도 있시요
구녀산 오름길의 정자
구녀산성
구녀산정상
분젖지고개넘어 회평저수지
분젖지정상의 정자
회평저수지
지난 북진때엔 분젖지고개 도로가 비포장 임도였었는데 지금은 1번지방도로2차선
분젖지고개 정상에서 오늘 한구간을 접습니다.
오늘은 일찍 마치고 초정약수도 마시고 탄산온천도 하고갈라 했었지만. 헛탕으로 넘어 갑니다
세계3대 탄산온천수도 그 맥을 다하는지 아님 온천관광의 유행이 지나서인지 업소영업중단중이라는 소문땜시로
확인해 보지도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아쉬움으로 남깁니다.
여그서 잠깐 공부좀 하고 가입시더.
상당산성(上黨山城)-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 28-1
이 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석성이다.둘레가 4.2㎞,내부면적이
727,276㎡에 이르고 있으며 전형적인 포곡식 내탁공법의 성이다.
최초의 정확한 축성년대는 알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장군이 쌓았다는 기록,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고
적조에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7,772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중인 선조29년에 수축된 후 숙종 42년에서 45년까지 충청병사 유성추의 감독으
로 대대적인 성벽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후 여러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 군기고, 창고 수구, 장대, 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비변사등록 등에 의하면 효종 2년(1651년)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충남 해미에서 청주로
옮겨지고, 왜구의 침입과 내란 등으로한성의 중간방어 지역으로 청주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가면서 상당산성의
개수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3개소가 있는데,
77년부터 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92년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의 규모와 위치가 확인되었다.동장대에서는 매년 시민의 날에 국운융성, 청주발전, 가정화평을 기원하는 삼원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성돌이 행사가 시작된다.
-참조 : 충북관광허브사이트--
구녀성(九女城)의 유래 소재지: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조정리
구녀성의 축성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석축형태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이곳 산정에 아들 하나와 아홉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가 장사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마침내는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인 즉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 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한양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게 되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하고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
을 불러모아 팥죽을 먹으며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은 부릅튼 다리
를 이끌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딸은 성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게된 동생은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줄 몰랐다. 어머니는 남편의 무덤앞에 아홉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다. 이때 당시 죽은 아홉딸과 부모의 묘는 이 성안에 2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해진다.
구녀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 또는 삼년산성)과 대결하기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의 내부는 성터로서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망이
좋아 서북쪽 미호 평야와 청주의 상당산성이 건너다 보인다.
첫댓글 멋진 사진과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졸지에 매독야그로 달아나불고 없어서 궁금했는데요.
고령서 출발때는 억수 같은 소나기가 오더니만....
산행시작 점에 비가 그치니 아마 천왕산에서 고사를 잘지낸 덕분이곘네요...
고사를 지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구만요,
현암묵집이 왠수이긴 했지만서도
막무가네 달려드는 비실이 산꾼앞에는 하늘도 두발 두손 번쩍들게만든 쾌거를 이룬 멋진 하루였습니다
글고 한시절의 역사공부도 마스터하는 일거 양득의 하루..........
그 역사공부란것이 요즘은 비실이가 게을러져서 할수 없고,
아름다운강산 정선배의 글을 퍼 왔다우.
비실이아자씨 목요일금오산한바리에 쥐약어때여
묵고살기가 바빠서 목요일엔 접을라우.
그래도 가끔씩은 불러 주구랴
역사공부와 자세한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해를 같이가야 하는 운명인데 이젠 빌빌 좀 가자구여.
냅다 내빼지말구요
날씨걱정을 했는데 참으로 좋았겠습니다. 한밤 중에 혼자 상당신성을 넘다가 동암문을 미쳐 보지 못해 동내까지내려갔다 다시 올라 온 기억이 납니다. 2개의 성 공부도 다시하고 잘보고 갑니다
성님~ 상당산성에서 엿치기 해 봤우.
상당산성마을의 삼계탕에 동동주가 아롱거렸지만 아침이라 우짤 도리가 없었임더.
침만 삼키며 넘을려니 영~~ 다리가 꼬여지데요.
역사 공부를 훌륭히 하고 갑니다.
상당산성 역시나 상당합니다. ㅎㅎㅎ...
난테야 어지간하믄 금북은 같이 가믄 어떨꼬 싶네
열심히댕기는모습 억수로아름답내요 늘 즐겁꼬 잼나는산행하소서 언재 행님들보러 함가야할끼대 ```````
뒷총아 9정맥 다시가는 맛도 괜찮은디.
가끔씩 구불러 가보자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