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1~20말씀에서3~9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 들었다. 예수님이 바닷가에서 가르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장13절에서도 바닷가에서 가르치신 적이 있었고, 3장7절에도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피하셨다가 산으로 올라가신 내용이 언급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갈릴리 호수를 말한다. 이번에도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어느 배에 올라 약간 떨어져 가르쳐야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것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의 권위가 선포되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권위와 영향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모여든 이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가르치셨는데 여러 가지의 비유였다. 그 첫 비유가 씨 뿌리는 자 비유이다. 비유의 시작은 '들으라'는 촉구로 시작된다. 비유를 설명하는 마태나 누가에게는 없는 독특한 표현이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가르침의 방법과 내용이 다르므로 정신을 차리고 올바르게 들어 마음에 새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씨 뿌리는 자가 밭에 씨를 뿌리는데, 길가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에 떨어졌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지만 뿌리가 약함으로 해가 돋은 후에 말라버렸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을 하지 못하게 했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무성하게 결실하는데, 삼십 배, 육십 배, 백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같은 씨였지만 떨어진 땅에 따라 결과가 달랐던 것이다. 비유로 가르치시고 마지막에 역시 들을 쉬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신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지식으로만 알아 오해하지 않으려면 주의 집중해서 가르침을 받고 이해하고 믿으라는 가르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지적인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알며 순종하는 믿음으로 결실을 맺기를 원한다. 비유로 가르침을 마치고 무리들이 돌아간 뒤, 끝까지 남은 한 사람과 열두 제자는 비유들에 대하여 질문을 한다. 왜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유들로 가르치셨고, 가르치신 비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답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라고 하시며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한다고 하신다. 지식으로 알기는 아는데 믿고 순종하지 못하는 마음이 강퍅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사람들에게[외인] 하늘나라의 비밀을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기에 비유로 하신다는 말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비밀로 하여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비밀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를 바로 알고 믿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바른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으며 가르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주가 되어 다스림을 받도록 말이다. 이제 13절부터 20절까지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하신 내용이다. 씨는 말씀이요,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자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인 것이다. 씨가 떨어진 땅은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1] 길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다(15). 자기의 경험과 상식, 지식으로 굳어진 이미 선입관과 습관으로 완악해진 마음이다. 말씀을 듣긴 들어나 자기 것으로 적용하지 하거나 소화하지 못하여 즉시 사단에게 빼앗기는 경우이다. 말씀을 배우고 들어도 반응이 없는 경우다. 종교적인 행위로만 끝난다. [2]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뿌리가 없어 말씀으로 인한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나게 되면 넘어지는 자이다(17). 신앙의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신앙의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신앙이 아닌게 아니다.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다. 즉각적으로 반응도 한다. 그러나 축복관만 있다. 교회생활(신앙생활)의 즐거운 면만 가지고 있다. 생명력 있는 말씀이 없다. 그래서 환란이나 박해로 넘어진다. 환란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강하게 짓누르는 고통'이다. 박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한 바로처럼 '뒤에서 바삭 추격하는 위협'이다. 결국 말씀을 듣긴 듣는데 깊은 뿌리가 없음으로 신앙의 문제로 외부로부터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을 때 쉽게 넘어지는 경우다. 신앙은 고난을 당할 때 알 수 있다고 한다. 고난, 환란, 박해, 시험, 결코 유쾌한 단어는 아니지만 이것들이 신앙을 단련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난을 준비하는 지혜로 평상시에 말씀을 깊이 배우고 경험하여 말씀의 능력을 확신해야 한다. [3]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긴 들어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여러 욕심이 들어와 말씀의 능력을 막아버림으로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다(18~19). 말씀의 능력도 안다. 신앙의 깊이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염려, 제물의 유혹,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등, 항상 가시 같은 존재가 있다. 어느 단계까지는 잘 견디고 신앙이 성장되는 것 같은데, 어느 한 문제로 인해 내리막을 걷거나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다. 마가는 3가지 경우를 이야기한다. ①세상의 염려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다.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영역들이다. ② 재물의 유혹이다. 돈이면 다라는 사상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이다. 돈이 신이 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③ 기타욕심으로 총칭되는 모든 것들이다. 씨인 말씀이 자라서 결실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이다. 인간의 정욕, 시기, 질투, 미움감정, 지나친 갈망과 욕망, 세상의 쾌락들이다. 신앙의 경륜이나 스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말씀으로 깨어 있어서 평안하고 잘될 때, 오히려 내일을 준비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한다. [4]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받고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자라고 한다(20). 마음에 말씀이 잘 심어져 결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어려움(환란과 박해)과 내적인 갈등과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굳어진 마음을 말씀을 들음으로 부드럽게 해야 한다. 말씀을 들음으로 결실을 맺는 것은 일회성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풍성한 결실을 위하여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내도록 말씀을 신뢰하자. 주일이다. 말씀을 준비하며 전하는 말씀을 잘 듣고 배우는데 한마음이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음으로 열매를 맺는 종의 삶의 살도록 은혜로 인도해주세요. 아멘
1. 공동체 : 주일예배 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2. 열방 : 한국 누가회(OMF)를 통한 의료사회의 복음화와 사랑의 진료를 통한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하소서.
3. 나라와 민족 : 한국의 교회에 복음이 선포되며 회개가 있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4. 이웃 : 김종진 집사님의 인테리어업이 성장, 박계자 집사님의 일식집, 이영미 집사님 산본 이마트의 커피전문점 가게, 신재욱 집사님의 사진관 등이 잘되는 새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