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 르네상스
면적 31,000㎢, 인구 1천만명의 조그만 나라 벨기에. 하지만 벨기에는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양조장들과 다양한 종류의 맥주들을 갖고 있다. 많은 바에서 다루는 맥주 상표의 가짓수만 해도 수백 종에 달해 벨기에 맥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한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안트워프의 쿨미나토어(Kulminator)만 해도 메뉴에 수록된 맥주의 수가 400개를 넘는다. 이쯤 되면 벨기에 양조업협회(CBB)가 벨기에를 스스로 맥주 천국(BEER Paradise)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싶다.
영국의 CAMRA(Campaign for Real Ale)와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 열풍으로 유럽의 진귀한 맥주들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맥주 스타일의 보고서로서 벨기에 맥주는 연구대상 1호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맥주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르네상스가 잊혀졌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이상으로 했던 것처럼 사라져 가는, 오랜 전통맥주에 현대인들이 다시금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주 르네상스로 불릴 만큼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벨기에 바깥에서 벨기에 맥주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의 다른 전통 맥주들도 만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이다.) 그래도 벨기에 밀맥주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후가든(Hoegaarden)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독일 밀맥주 순례에 이어 이번에는 벨기에 밀맥주를 찾아 떠나본다.
오렌지 맛이 나는 맥주
벨기에 밀맥주에선 오렌지 맛이 난다. 상큼한 신맛과 함께 희미하게 느껴지는 떫은 쓴맛은 신선한 오렌지를 연상시킨다. 오렌지 맛은 벨기에 맥주를 다른 맥주들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독일의 밀맥주에서도 이런 맛은 기대할 수 없다. 같은 신맛이라도 베를리너 바이스(Berliner Weiss)의 강렬하지만 우유같이 부드러운 신맛과는 다르고 남부 바이젠(Weizen)의 특징인 정향(Clove) 맛이 나지 않는다. 맛의 비밀은 오랫동안 사용된 독특한 원료에 숨어있다.
벨기에 밀맥주는 브뤼셀 동쪽 브라방(Brabant) 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곳의 비옥한 토양은 보리, 귀리 그리고 특히 밀이 자라기에 이상적이다. 호프가 널리 사용되기 이전부터 이 지역에선 허브와 향신료를 첨가했는데, 몰트의 맛을 적절히 조정하고 완성된 맥주에 신맛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호프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후에도 향신료의 사용은 활발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 지역이 네덜란드의 일부였을 때 양조업자들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동쪽으로부터 가져온 많은 이국적인 향신료, 허브, 희귀한 과일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아주 신맛의 오렌지로 유명한 큐라카오(Curacao)를 포함한 많은 향신료 섬들을 식민지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방의 밀맥주가 유명해진 것도 코리안더(Coriander) 열매, 큐라카오 오렌지 껍질과 같은 이국적인 원료들의 사용덕분이었다.
향신료, 허브, 과일의 사용은 브라방 지역의 밀맥주뿐만 아니라 오늘날 벨기에 맥주를 여타 유럽의 맥주들과 구별 짓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사실 유럽맥주 제조의 오랜 전통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지금도 쥬니퍼와 소택지의 도금양(Myrtle)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고, 생강과 감초의 사용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볼 수 있다. 호프만을 인정하는 독일에서조차 베를리너 바이스와 같은 일부 스타일에는 과일이나 나무딸기 시럽 또는 선갈퀴 추출액을 허용하고 있다. 호프가 맥주 제조에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향신료와 과일을 첨가하던 고래의 제조방법이 힘을 잃고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벨기에 밀맥주의 고향, 후가든
브라방 지역의 작은 마을 후가든은 벨기에 밀맥주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후가든에서의 맥주 양조는 대략 600∼ 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400년대 켈트족이 정착했던 지역, 지금의 후가든 마을 자리에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몰트와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1500년대에는 양조업자 길드가 마을에 생기는데, 산지의 밀과 함께 이국적인 원료를 이용한 후가든 맥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국적 원료들은 모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아시아 전역으로부터 가져온 진귀한 향신료와 과일들로 1830년대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기까지 두 나라는 하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800년대에 이르면 후가든은 리에게(Liege)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양조 중심지로 부상한다. 당시 마을엔 30여 개의 양조장이 있었고 모두 밀맥주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30여 개에 이르던 양조장들은 모두 사라진다. 20세기 초 페일 에일과 필스너의 인기는 유럽 각 지역의 전통맥주를 궁지로 몰아 넣었는데, 특히 1950년대는 악몽과도 같은 연대로 기록될 수 있다. 2차 대전으로 유럽이 잿더미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의 중공업의 쇠퇴 등 산업구조의 변화로 그제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지역의 전통맥주들은 고사위기에 몰려야만 했다. 이때를 전기로 영국의 마일드, 독일의 다크 라거 등의 '낡은' 맥주들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는다. 후가든의 밀맥주 역시 1950년대를 피해갈 수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흰 우유대신 '흰 맥주'를 선택한 우유 배달원
후가든의 밀맥주는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한 개인이 역사를 바꾸는 것은 신화나 전기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후가든의 부활이 셀리스의 공이란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마을의 '마지막' 양조장 옆에 살았던 셀리스는 양조장에 나가 일을 도우면서 밀맥주 제조과정을 알게 되고 거기에 깊이 매료된다. 그는 자기 고장의 자랑이었던 밀맥주가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우유 배달원이었지만 그는 흰 우유대신 '흰 맥주'를 선택한다. 아버지의 재정적 후원에 힘입어 문닫은 양조장에서 설비를 구입하고 농가의 건물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를 도울 베테랑 양조 전문가와 함께 후가든 밀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한 건 1966년, 후가든에서 마지막 양조장이 문을 닫은 지 1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셀리스는 자신의 양조장을 데클루이스(De Kluis, 수도원을 뜻하는 말)로 불렸다. 수세기 전 밀맥주 전통을 시작했던 수도원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었다. 양조장 안에는 현재 코터호프(Kouterhof)라는 레스토랑겸 바가 있는데, 역시 수도원처럼 꾸며놓았다. 후가든 밀맥주와 함께 음식을 제공하는 이 곳은 로코코 풍의 교회와 함께 후가든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후가든 맥주와 셀리스의 명성은 차츰 높아졌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면 벨기에의 다른 곳에서도 양조업자들이 밀맥주를 내놓기 시작한다. 벨기에 밀맥주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후가든의 성공이 끼친 영향은 벨기에에 머물지 않았다. 80년대 후반에는 벨기에와 인접한 프랑스 북부지역과 이웃한 네덜란드에서도 벨기에 스타일의 밀맥주가 나오기 시작한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소개되면서 마이크로 양조업자들이 한층 실험적인 밀맥주를 만들어 내는데 기폭제 구실을 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반면 벨기에에선 후가든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셀리스는 양조장을 인터부루(Interbrew)에 넘겨야만 했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특히 재정적인 면에서, 너무나 큰 성공이었던 것이다. 후가든 화이트는 이제 다국적 기업의 거대한 국제 브랜드가 되었다.
피할 수 없는 거대자본의 손길
그러나 셀리스는 벨기에 밀맥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밀맥주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셀리스 화이트(Celis White), 텍사스 오스틴(Austin, Texas)에서였다.
1992년 그의 딸 크리스턴과 함께 벨기에 친구들이 있는 오스틴에 정착한 셀리스는 양조장을 세우고 셀리스 화이트를 내놓는다. 셀리스 화이트(4.8%)는 자신이 벨기에에서 만들었던 후가든을 모델로 한 것으로 역시 코리안더 열매와 큐라카오 오렌지 껍질을 사용했다.
셀리스 화이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향은 예상외로 큰 것이었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리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비어 페스티벌(Great American Beer Festival)에서 미국 밀맥주 부문에서 4년 연속 금메달을 수상하고 미국에서 새로 출시된 모든 맥주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1996년 한해 생산량만 40,000 배럴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대 자본은 셀리스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1995년 밀러(Miller)는 그의 자회사를 통해 셀리스 양조장의 대부분의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회사 소유권을 빼앗았다. 현재 셀리스와 그의 딸은 양조장의 일상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
훌륭한 디저트 맥주, 후가든
후가든 화이트는 보리 몰트와 몰트로 만들지 않은 밀이 50:50으로 사용된다. 밀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향신료의 사용과 함께 독일 밀맥주와 벨기에 밀맥주를 구분 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몰트로 만들지 않은 밀은 보디(Body)를 더 강하게 하고 날곡식 같은 맛을 더한다. 호프는 아로마를 위해 이스트 켄트 골딩스(East Kent Goldings), 부드러운 쓴맛을 위해 체코 자쯔(Saaz)를 사용한다. 쓴맛은 약 20 IBU이다. 코리안더 열매와 오렌지 껍질은 갈아서 호프를 넣고 끓이는 과정에 첨가한다. 발효가 끝난 후 한 달 가량 상온 숙성되고 2차 발효를 위해 맥아즙(Sugary Wort)과 이스트가 병입 전에 첨가된다.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서 2∼3개월을 다시 숙성시킨다.
후가든 화이트는 다른 밀맥주와 마찬가지로 한 여름철 갈증해소에도 좋지만 2∼3개월간 잘 숙성된 맥주는 훌륭한 디저트 맥주 구실을 한다. 숙성을 거친 맥주는 호프맛은 약해지고 오렌지 맛은 마데이라(Madeira) 강화와인의 맛을 띠는데, 특히 디저트가 쓴 오렌지나 단 사과 맛을 갖고 있을 때 좋다.
아로마는 오렌지 껍질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매력적인 향신료를 떠올리게 한다. 맛은 상쾌하고 상큼한 신맛을 띠고 오렌지가 풍부하게 느껴진다. 반면 끝맛은 상큼한 신맛과 함께 떫은 쓴맛과 단맛이 희미하게 감지되고 향신료처럼 자극적이면서 깨끗하다. 반면 셀리스 화이트는 후가든과 매우 비슷하지만 보다 부드럽고 과일의 신맛은 더욱 풍부하다. 텍사스 겨울 밀, 벨기에에서 수입한 보리 몰트, 미국산 캐스케이드와 윌라멧 호프를 사용한다.
후가든은 벨기에에선 지역에 따라 비트비르(Witbier)나 비에르 블랑슈(Biere Blanche) 등으로 다르게 불려지는 데, 이는 벨기에가 북부의 플란더른어 사용권과 남부의 프랑스어권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두 영어로는 흰 맥주(White Beer)를 뜻하는 말로 White라는 말은 유럽 어디에서나 밀맥주를 가리킨다. 이렇게 불린 까닭은 아마도 밀맥주가 보리 몰트로만 만들어진 색이 더 짙은 맥주들과 비교했을 때 흰색에 가깝고 2차 발효를 위해 이스트를 걸러내지 않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 때문인 듯 싶다. 독일어로 바이스(Weiss) 역시 흰색을 의미한다. 잔은 프랑스의 파스티스(Pastis, 감초와 아니스 열매로 맛을 낸 프랑스 음료)를 연상시키는 땅딸막하고 각이 진 잔에 마신다. 약간 차게 해서 마시면 좋다.
첫댓글 언제나 좋은글 올리시니 보는 입장에서 고맙네요..
저두요~~~~감사~~~~~~ 알찬 정보를 꽁껄로 먹는군요..^^제가 잴루다 좋아하는게..밸지안 휘트비업니다..^^ 바이젠이랑......
언니.. 그럼 우리가 THAT에서 먹는 그 '호가든 생맥주'가 '후가든 밀맥주' 저거를 말하는거 맞아요?? 그래서 색두 꼭 레몬스카치같고.. 맛도 상큼하고.. 나 그거 만들고 싶은데.. ㅜ.ㅜ.. 좀 찾아보구 공부 좀 해야겠당...
호가든 화이트= 후가든 밀맥주= 벨지언 휘트비어... 맞습니다 맞구요 ^^;; 젤 중요한 세가지를 꼽는다면 정해진 효모와 큐라소 껍질, 커리앤더 씨 랄까.. 효모는 엔젤님께 큐라소는(아주 약간이지만) 저에게 문의해 주세요 여리님~~ ^^*
몰트로 만들지 않은 "밀" 이 무슨 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