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의 시간 / 정택진
짙은 어둠이 덮고 있는 바다의 여기저기에 떠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 꺼물거리면서도 끝내 눈을 안 감고 간신하게 눈을 끔뻑대는 불빛들은, 멀리에서 보면 물마루에 일직선으로 날라리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불빛들은 마치 어느 한 지점을 향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행렬처럼 그려졌다. 살아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자신이 발 디딘 곳보다 더 높은 어딘가를 향할 것이기에, 그 불빛들도 섬들이 놓여 있는 쪽에 꼬리를 두고, 저 태평양 어디로 머리를 두고 있으리라.
기계를 일으켜 선창을 출발해 바다를 향할 때부터, 길게 걸친 대나무를 이용해 바다에 그물을 빠치면서도, 등불을 띄우고 바다 위를 물 따라 흐르면서도, 사람들은 모두 ‘마이구리(만선)’을 꿈꾸지만, 그것은 참말로 말 그대로의 꿈이었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것’만이 ‘꿈’일 수 있었다. 바다는 바다의 질서대로 흘렀고, 고기는 또 그 바다의 흐름에 따라 그들의 길을 따라 헤엄쳤다.
고기들은 매년 한 뼘도 벗어나지 않고 정확하게 자신들의 행로를 헤엄치는 듯했다. 선장들은 그 길목을 찾으려 했지만, 그들은 결코 바다가 될 수 없었고,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나 어미의 뒤를 따르며 그 길의 걸음마를 배우는 새끼삼치인 ‘고시’의 꽁무니도 따를 수 없는 것이었다.
어탐기는 우주선에나 달려 있을 현실에서, 모든 것은 선장의 경험과 직감에 좌우되었다. 그것이 운에 의한 것이든, 자신만의 경험에 의한 것이든, 삼치들의 여로를 정확히 기억하는 선장은 결국 고기와의 숨바꼭질에서 이길 수 있었고, ‘마이구리’의 깃발을 펄럭이며 보무도 당당하게 물양장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자꾸 품에서 빠져나가려는 바다를 병아리처럼 품에 품느라 밤이 지칠 즈음부터 시작했던 그물뽑기는, 갓밝이와 어둠이 밀고당기다 시나브로 날이 희슥해질 때쯤, 그물 한쪽 끝에 달린 붉은 깃발이 배에 올라오면 끝이 난다. 고기잡이의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난 셈이지만, 이제 내가 바빠지는 시간이다. 그물에서 고기를 따내는 틈틈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그물을 다 뽑고 난 뒤, 일 끝에 먹는 삼치 생살 한 점과 소주 한 잔은 대디댄 노동에 오그라든 육신을 펴게 하는 보약이다.
선원들이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동쪽 하늘은 꼭두서니로 물들고 마지막 남은 어둠은 모도 너머 어디로 사라진다. 낮 동안 어디 한갓진 데서 쉬다가 밤이 되면 지금 꼭두서니가 퍼지는 자리에서부터 어둠은 또 온 세상으로 퍼지리라. 이제 배는 그 꼭두서니를 등에 달고 어제 왔던 길을 되짚는다.
‘하꼬짝(플라스틱 상자)’에 고기가 차면 돌아오는 발길은 가볍다. 어느새 날아와 우리와 함께 가는 갈매기도 그저 함께 밤을 새운 친구처럼만 느껴진다. 하지만 바다에서 하룻밤의 시간을 떠 있었지만, ‘하꼬짝’은 비어 있고, 기름값만 축낸 경우에는 선원들 모두 신경질적이 된다. 그럴 때면 젓꾼(품을 받고 따라다니는 사람)의 맨 막내인 화장인 나는 움츠릴 수밖에 없고, 손끝 하나 발끝 하나 말끝 하나도 조심해야 했다.
도락리 방파제를 돌아 선창에 들어서면 물양장은 먼저 들어온 배들로 흥성거리고 있다. 못잡은 배가 있으면 또 반드시 잘잡은 배도 있는 법이었다. 하꼬짝이 삼치로 그득한 배는 기곗소리도 요란하게 삼바시로 나아가지만, 그렇지못한 배는 시르죽은 품으로 삼바시에도 못 대 보고 남의 배 옆에 슬며시 옆구리를 댄다.
선장은, 갈매기가 파먹은 놈이나 새끼삼치인 ‘고시’ 한두 마리를 반찬하라며 손에 들려주었다. 상품성이 없어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에 실릴 수 없는 등외의 것들이었다. 땟국물이 어룽진 차림에 장화를 신고 덜렁덜렁 삼치를 흔들며 집에 오르는 길은 많이 서글펐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서글픈 건 서글픈 것이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이 마치 나를 바라보는 심사위원처럼 느껴지는 아랫동네를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고, 저 앞에서 동창생이 걸어올 때는 시나브로 걸음이 느려졌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이면 급하게 아무 집에라도 들어가 잠시 몸을 숨기기도 했다.
어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항상 오전이었기에 다행히 애들의 하교시간과는 부딪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에서 ‘공산당을 때려잡으려’는 궐기대회라도 있어 애들이 떼를 지어 중학교에서 내려오기라도 하면, 이리저리 골목골목을 멀리멀리 돌아돌아 어찌어찌 집에 들어가야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고, 엄니는 일을 갔는지 집에 없다. 삼치의 배를 따서 소금을 뿌려 간한 뒤에 독에 넣고는 손발과 얼굴을 대충 씻는다. 솥 안에는 보리밥과 고구마 서너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찬장을 열어 김치를 꺼내 부숙(부뚜막)에 놓고 부엌에서 대충 한 끼를 때운다.
밥을 먹고는 큰방에 들어가 할머니 옆에 앉는다. 병자냄새와 노인냄새가 뒤섞인 방은 코를 애리게 한다. 할머니와 별로 친하지 않는 동생 진필이 녀석이 어찌 견딜까 걱정이다. 나를 돌아보며 할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이제 할머니의 삶도 말의 시간을 지나 숨의 시간들로 넘어가 버린 것 같다. 나는 뼈만 남아 앙상한 할머니의 손을 잡는다.
“함마이, 오늘도 괘이 마이 잡어구마. 딴 배는 멫 마리 못잡었는데 우리 배만 그라고 잡었네. 암만해도 내가 복을 달고 댕긴갑서. 정지에 간해 놨으께 그놈 묵고 언능 일어나게이. 그래야가 장작도 때리고 벡창에 감재도 재고 안 하것는가. 함마이가 노꺼 있으께 엄니가 더 고생 안 한가 안. 그라께 언능 일어나야 쓰네이.”
할머니가 더 이상 말의 시간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떨치고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일었다. 나는 어머니의 배에서 나왔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할머니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누워 있는 할머니의 두 눈에서 짜르르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물의 대부분은, 공들여 낳고 키웠지만 먼저 가버린 아들에 대한 슬픔 때문이리라. 물론, 그 끝자락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서러움과 배를 타고 있는 손자에 대한 짠한 마음도 섞여 있으리라. 나는 할머니의 눈물을 보며 따라 운다. 딱히 슬픔이 오는 곳을 알 수 없었으나, 또 슬픔은 모든 곳에서 솟아나 나를 울게 했다.
나는 ‘나’만의 현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 안 가고 배를 타는 것이나, 얼떨결에 시작했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담배의 동굴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엄니를 둘러싼 것들은 끝내 나를 눈물짓게 했다.
그것들은 도저히 내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겨울밤에 마당에 팽개쳐져 짓밟히는 할머니를 빤히 보면서도 어찌 할 수 없었듯, 아직도 세상에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선창의 여기저기에 버려진 삼치대가리처럼이나 많았다.
그렇게 눈물짓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옆에 눕는다. 처음 방에 들어설 때의 그 지독한 냄새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고, 옛날부터 맡았던 할머니 특유의 냄새만 난다. 그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와 나와의 옛날을 생각한다.
놀러 갔다가 이녁 몫으로 준 것을 안 먹고 손수건에 싸서 가져온 떡, 초상집에 가서 고무줄도 안 풀고 그대로 가져온 나무벤또, 가을에 고구마를 캐서 벽장에 쟁이던 일, 파스를 사와 붙여준 일, 그리고 그것들보다 저 먼 먼, 할머니의 젖가슴을 주무럭이며 잠든 기억, 그런 일들의 끝자락에 느닷없이 그 겨울밤 짐승에게 두드려맞던 장면이 매달리려 바둥거린다. 나는 머리를 털어 시커먼 그 기억을 발로 세게 차버린다.
천장의 대들보를 쳐다본다. 나무를 따라 길게 씌어진 검은 글씨가 보인다. 저 높은 곳에 저렇게 길게 걸쳐진 저 나무에 도대체 어떻게 글씨를 썼을까? 아래서 쳐다보면서 쓰자면 목이 부러지기라도 했을 것인데 말이다. 또, 얼마나 간절한 내용이기에 저 곳에다 저렇게 써놓았을까? 궁금하다.
꼭 읽어보고 싶은데 내 키가 거기까지 닿을 수는 없고, 사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이웃집에 있는 나무 사다리를 어떻게 놓아야 할지 아무리 궁리해도 방법이 생각 안 난다. 대들보의 글씨와 사다리를 놓을 방법을 생각하다 할머니 곁에서 까무륵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