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 10주년을 기념하며.
안녕하십니까,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의 대표 고성일입니다.
7월 1일.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의 창립기념일입니다. 더욱이 2016년 7월 1일 오늘은 불과 얼음이 꼭 1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기념사를 남겨봅니다.
돌이켜봅니다.1999년에 뉴욕대학교 뮤지컬 창작과(Graduate Musical Theatre Writing Program, Tisch School of the Arts, New York University)에 입학하여 뮤지컬 창작에 대해 배우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뮤지컬 창작 교육 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고 2001년 졸업해 2002년에 귀국을 했습니다.
귀국 후 얼마되지 않아 은사님의 부르심으로 2002년 가을학기부터 모교인 중앙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관련 수업 강의를 하면서 대학 내에 뮤지컬 창작 수업을 개설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던 중 수업이나 학과가 개설되기 어려우면 우선은 개인적으로라도 뭔가 시작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뮤지컬 창작에 대한 워크숍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대학로에 있는 공간을 써보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단, 워크숍을 위해 필요한 비용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만해도 아주 드물었던 뉴욕대학교 같은 과 동문인 이희준 작가와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이경재 작곡가 그리고 역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노르웨이 친구 닐스(Nils Olaf Dolven)에게 워크숍 강사로 함께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뮤지컬 창작 교육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가 2004년 1월이었습니다. 온전히 수강생들의 수강비로만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니 그 안에서 미국에서 와야 할 두 명의 강사의 항공권을 해결하고 숙박은 저희 집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워크숍 수강을 하기로 한 사람들 중 여러 사람들이 워크숍 시작 하루 이틀 전에 취소를 하는 바람에 예산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지요. 그래도 워크숍은 진행을 해야했기에 교육 내용 자체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문제는 비어버린 예산이었습니다.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두 강사진들에게는 강사비를 드렸지만 저의 강사비는 커녕 이희준 선생님의 강사비까지 바로 드리지 못했지요. 당시 한 달에 40여만원을 벌던 시간강사인 저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사과의 말씀을 드리면서 시간을 조금 주시면 차후에 갚아드리겠다고 했는데 이희준 선생님은 이해를 해주시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 강사비를 드리는데 거의 1년이 걸린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 거의 1년 뒤 밀린 강사비를 드리면서 뻔뻔한 부탁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올해에도 워크숍 열려고 하는데 속는 셈 치시고 한 번 더 강사를 맡아주시겠어요?” 이희준 작가님은 수락하시더군요. 그래서 또 한 번 미국에 있던 첫 해 강사들까지 다시 뭉쳤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조선아 음악감독이 강사로 합류했습니다. 2005년 1월. 그때가 2회 창작 워크숍이었고 그 후에 2006년 1월에도 워크숍을 열게 돼서 3회까지 진행을 했습니다. 3회때는 사정상 이희준 작가, 닐스, 그리고 저 세 명이 강사진을 구성했지요. 아래는 워크숍에 대한 기록입니다.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뮤지컬 창작 워크숍 1기
2004년 1월 5일(월)-16일(금)
강사진 : 고성일, 이경재, 이희준, Nils Olaf Dolven
수료생 : 강경애, 김연란, 김용호, 성재준, 조민영, 김수연, 박은형, 박문희, 박재형, 윤수정, 정빛나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뮤지컬 창작 워크숍 2기
2005년 1월 10일(월)-21일(금)
강사진 : 고성일, 이경재, 이희준, 조선아, Nils Olaf Dolven
수료생 : 김경육, 김선영, 김수연, 김영희, 노혜영, 박선영, 박현숙, 성종완, 송성애, 이현진, 정정희, 조민영, 조지영, 최유선, 최혜진
- 중앙대학교 공연영상사업단 뮤지컬 창작 워크숍 3기
2006년 1월 4일(수)-17일(화)
강사진 : 고성일, 이희준, Nils Olaf Dolven
수료생 : 권혜진, 김서경, 김승진, 김연수, 김유미, 김지영, 김향미, 박보람, 박세미, 박소연, 박일석, 박재형, 서혜선, 안노경, 오소린, 이보라, 이보미, 이수희, 이윤정, 이응규, 이정화, 전다영, 정정희, 조민영
3년 동안 세 차례의 뮤지컬 창작 워크숍을 열고 이 정도 수요면 한 번 저질러 볼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그 이전의 인연과 워크숍을 통해 만난 사람들 중 저를 포함한 아홉 명이 수개월 논의를 거쳐 2006년 7월 1일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을 개설하게 됩니다. 그 창립 구성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성일, 김경육, 김연수, 김용호, 김지영, 박보람, 성종완, 이보미, 천필재]
그때는 돈 한 푼 없어서 제가 다니고 있던 반포의 한 교회의 청년부실을 사무실로 등록을 했죠. 창립과 함께 뮤지컬 창작 교육프로그램 ‘연필과 지우개’를 개설해서 지금까지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첫 사무실에서 몇 개월 신세를 지고는 그 근처 건물의 반지하를 사무실로 얻어 나갔고 그 이후에 홍수로 인한 침수를 겼었던 방배동, 킵워킹펀드를 받아 워크숍 극장을 마련했었던 합정동, 처음으로 ‘산뜻한’ 사무실 환경이었던 동교동 그리고 지금의 동숭동까지, 유목민의 이동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불과 얼음을 시작할 때 과연 이 여정이 어떤 여정이 될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디에 다다를지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시작 후 2년 정도 되었을 때는 개인적으로 너무 고달파서 접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고 워크숍 극장을 위한 펀드를 받았을 때는 새로운 꿈에 설레었다가 쓰라린 실패와 함께 추락을 경험하면서 또 한 번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번 10년 동안 스스로 경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단막 뮤지컬 페스티발을 세 번 열어 공연을 했습니다. 불과 얼음 단막 뮤지컬 페스티발. 단원들의 단막 뮤지컬들을 공연한 것입니다. 이 단막 뮤지컬 페스티발을 제작한 이유는 신인 뮤지컬 창작인들이 뮤지컬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단 한 줄이라도 경력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창작인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과정에서 얻어야 할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음악을 기존에 녹음을 플레이백하던 뮤지컬계의 관행에 맞서 라이브 연주를 고집하는 실천이기도 했습니다. 제1회 때 바로 서울문화재단의 시민문예지원사업에 선정되었죠. 불과 얼음 단막 뮤지컬 페스티발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회>
기간 : 2007. 7. 2 ~ 2007. 7. 8 (총9회 공연)
장소 : 알과 핵 소극장
작품
1. 모래시계 (극작/작사: 김용호, 작곡/음악감독: 김지영)
2. 그러면 돼지! (극작/작사: 박보람, 작곡/음악감독: 김연수)
3. Mooon Story (극작/작사: Lion (본명: 성종완), 작곡/음악감독: 김경육)
제작/기획PD: 김형준
기획: 문유석
연출: 신유청
안무: 지운선(그러면 돼지!)
송희진(Moon Story)
분장: 채송화
무대 디자인: 임일환
영상 디자인: 최선경
조명 디자인: 이소민
조명오퍼: 김인선
음향: 이승욱
출연배우: 공인실, 김태문, 박문영, 박민관, 이현진, 조덕현, 주현우, 지창욱, 하준호
밴드
피아노: 장지영
기타: 안지훈
베이스: 김미경
드럼: 송경현
<제2회>
기간 : 2009. 2. 1 ~ 2009. 2. 8 (총11회 공연)
장소 : 중앙대학교 대학로 공연영상예술원 소극장
작품
1. 천국의 초대석 (극작/작사: 신성진, 작곡: 김승진)
2. 자전거 꽃 향기(극작/작사/작곡: 오소린)
3. 제트맨과 엄지공주 조난기 (극작/작사: 정정희, 작곡: 이정화)
기획: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
기획 행정: 김선미
홍보팀장: 김경육
연출: 나인(Nain / 본명: 나정준)
예술감독: 고성일
안무: 김효신
분장 디자인: 채송화
무대감독: 김영택
음향 디자인 및 오퍼 : 신춘수, 최정식
예매: 인터파크
출연배우: 김기현, 김다희, 김명일, 김지원, 이영숙, 조영임
- 밴드
건반: 박보람
기타: 최준우
베이스: 조희철
드럼: 정영수
<제3회>
기간 : 2012. 11. 26 ~ 2012. 12. 23 (총32회 공연)
장소 : 불과 얼음 뮤지컬 워크숍 극장
작품
1. 편지 (극작/작사: 유은혜, 작곡: 정은혜)
2. 좋은 개를 고르는 방법 (극작/작사: 천세은, 작곡: 김치영)
3. 할시온의 노래 (작사/작곡: 김경육)
4. 함께 여행을 떠난 당나귀와 개 (극작/작사: 고성일, 작곡: 천필재)
5. 꽃 시들 적에 (극작/작사: 박일석, 작곡: 이유정)
6. 샘가의 숫사슴과 사자 (극작/작사: 성종완, 작곡: 김승진)
기획/ 제작 :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
예술감독: 고성일
기획/무대감독: 장우성
기획/홍보/마케팅: 추예원
연출: 신유청
조연출: 이나리
음악감독: 유수진
안무: 송희진
오브제 디자인: 김진우
분장 디자인: 채송화, 백미향
출연배우: 고현경, 김현정, 박주형, 이효림, 전승혜, 황재열
- 밴드
건반: 김민선
건반/기타: 권남훈
베이스: 이수홍
드럼: 표나라
위의 단막 뮤지컬 페스티발 중 제3회는 불과 얼음 뮤지컬 워크숍 극장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불과 얼음 뮤지컬 워크숍 극장. 그 극장은 조니워커에서 주최한 킵워킹펀드에 제가 뮤지컬 워크숍 극장 설립에 대한 꿈으로 도전해서 다른 네 명의 최종 우승자분들과 함께 각각 1억원을 받게 되어 설립한 극장이었습니다. 저희 단원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의 클릭수에 힘입어 1,500여명의 지원자 중 스무명 안에 선정되고 또 그 스무명이 또 다시 경쟁을 해서 열 명으로 추려지고 그 열명이 또 경쟁을 해서 최종 다섯 명이 선정되는 수 개월의 과정을 지나 받게 된 꿈을 위한 지원금이었습니다. 그 펀드를 받게 되자 정말 기쁘기는 했지만 1억으로 극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에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시험대였습니다.
극장을 만들 지역 선정부터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힘들게 연남동에 공간을 발견하고 계약을 하고 공사를 막 시작하던 중에 계약 파기가 되어 또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결국 합정동의 한 공간을 발견하고 그곳에 극장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방치되어 있는 듯한 퀴퀴한 지하 공간에 바닥 공사, 방음 공사, 전기 공사, 분장실 공사, 화장실 공사, 음향 설비 공사, 조명 공사, 객석 공사, 악기 구입... 저로서는 정말 세상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운 날들이었습니다. 1억원이라는 돈은 개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극장을 만들기에는 많이도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해야 했습니다. 단원들과 지인들도 시간을 쪼개서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때 극장을 만들고 꾸미는데 직접 일을 하셨던 분들의 명단을 다음과 같습니다.
[강정인, 고성언, 고성우, 김경육, 김보라 김선미, 김승진, 김연미, 김은지, 박일석, 박진현, 박현숙, 성종완, 신은경, 오소린, 유수진, 이수지, 이수희, 이정화, 이준석, 이훈배, 정정희, 정현정, 천세은, 천필재, 홍서정]
그래도 부족한 돈. 많은 분들이 후원금을 보태주셨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제3회 불과 얼음 단막 뮤지컬 페스티발로 극장 개관 기념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건물 1층에 사무실도 마련했구요. 불과 얼음 설립 이래 처음으로 지하가 가닌 지상에 사무실이 생겼다는 기쁨을 누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이 극장은 1년 남짓 운영하다가 결국 경영의 어려움으로 눈물로 다른 분에게 양도했습니다. 양도하면서 생긴 돈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무실을 얻기 위한 보증금 정도만 남기고 극장을 운영하면서 진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극장을 위해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렸다는 생각에 지금도 그분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를 후원해주신 분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혹시 명단에서 빠지신 분이 계시다면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강정인, 구지원, 고명환, 고성언/김현진, 고성옥, 고성우, 고성진/류향원, 고우영 화실/박인희, 김경육, 김보라, 김상태, 김선미, 김승진, 김연미, 김영재/노희선, 김은지, 김은화, 김재윤, 문성호/김숙진, 박선진, 박유진/이양구, 박일석, 박재천/김은송, 박민선, 박정아, 박진현, 박현숙, 성종완, 심정환, 신은경, 엄동열, 오소린, 유수진, 유은혜, 이보라, 이수지, 이수희, 이승현, 이유정, 이윤택, 이은송, 이정화, 이준석, 이현석/윤소희, 이혜경, 이훈배, 이희준, 임연숙, 임하라/이경숙, 장동현/박순영, 장우성, 정은혜, 정정희, 정현정, 조은아, 진선숙, 진수현, 천세은, 천필재, 킵워킹펀드, 한민규, 한혜신, 홍서정]
불과 얼음 창립과 함께 시작한 뮤지컬 창작교육프로그램 ‘연필과 지우개’는 대한민국 최초의 뮤지컬 창작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자부심의 상징입니다. 초반에는 4개월 정도의 기간이었고 그래서 1년에 두 번씩 수강생을 선발하였습니다. 이 ‘연필과 지우개’의 수료생 중에 불과 얼음 단원을 선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커리큘럼을 10개월 정도로 늘려서 1년에 한 번만 수강생을 선발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예술관련 사설학원이나 아카데미는 수강생을 수시로 받지만 저희는 정말로 전문 뮤지컬 창작인, 나아가 예술인을 양성하고자 한다는 고집으로 1년에 한 번만 선발 했습니다. 수년 간 진행하면서 커리큘럼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하게 위해 매년 수정 보완을 하던 중 ‘연필과 지우개’라는 이름을 과감히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로 변경하였습니다. 저희의 이 뮤지컬 창작 교육프로그램의 출신들 중 여러 명이 뉴욕대학교 뮤지컬 창작과에 진학하였고 한예종, 국민대학교 대학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등 좋은 학교에 뮤지컬 관련 전공으로 진학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뮤지컬계에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연출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이들이 공연계의 많은 상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저희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기록에 나오는 수료생의 이름 외에도 수료하지는 않았지만 뮤지컬계에서 훌륭한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 것은 기억해주십시오.
<뮤지컬 창작 교육 프로그램 ‘연필과 지우개’>
2006년 7월 4일 뮤지컬 창작 교육 프로그램 ‘연필과 지우개’ 초급반, 중급반 개설
- 2006년 하반기 (초급반, 중급반: 워크숍 출신자 및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과 뮤지컬 창작 세미나 수업 수강자)
강사진 - 고성일, 이희준, 조선아
12월 3일 제1회 발표회 (서울 명동 청소년 문화 공간 ‘주’)
10명 수료 (김승진, 박일석, 성수미, 신성진, 오소린, 이보라, 이정화, 전다영, 정정희, 최혜진)
- 2007년 상반기 (초급반, 중급반)
강사진 - 고성일, 이희준, 조선아
6월 10일 제2회 발표회 (서울 명동 청소년 문화 공간 ‘주’)
5명 수료 (김보라, 김은지, 박지영, 신은경, 이수희)
- 2007년 하반기 (초급반, 중급반)
강사진 - 고성일, 박윤영, 이희준, 조선아
12월 3일 제3회 발표회 (서울 명동 청소년 문화 공간 ‘주’)
7명 수료 (김보매, 김선미, 김연미, 김은실, 박진숙, 이혜지, 황선민)
- 2008년 상반기 (초급반, 중급반)
강사진 - 고성일, 박윤영, 조선아
5월 26일 제4회 발표회 (ICA)
3명 수료 (박진현, 조혜연, 주소연)
- 2008년 하반기 (초급반, 중급반)
강사진 - 고성일, 김현림, 박윤영
11월 23일 제5회 발표회 (ICA)
3명 수료 (김병화, 이수지, 차윤미)
* 상반기와 하반기로 1년에 두 차례 개설했던 기존의 4개월 과정을 2009년부터 11개월 과정으로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개편하여 1년에 한 번만 개설
- 2009년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신설)
강사진 - 고성일, 김현림, 박윤영
3명 수료 (김유리, 박은영, 이준석)
9월 21일 제6회 발표회 (서울 명동 청소년 문화 공간 ‘주’)
- 2010년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강사진 - 고성일, 김현림, 이나오
9월 13일 제7회 중급 과정 발표회 (복합문화예술공간 ‘살롱 드 마랑’)
6명 수료 (강정인, 고명환, 김고은, 박선영, 박진현, 유수진)
- 2011년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강사진 - 고성일, 이나오, 최종윤
9월 18일 제8회 중급 과정 발표회 (국민대학교 예술관 소극장)
6명 수료 (김치영, 이주이, 조은아, 정현정, 천세은, 홍서정)
- 2012년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강사진 - 고성일, 유수진
9월 9일 제9회 중급 과정 발표회 (KT&G 서대문타워 상상 UNIV)
7명 수료 (유은혜, 이유정, 장우성, 정은혜, 진선숙, 한민규, 한혜신)
* 2013년 뮤지컬 창작 교육 프로그램 '연필과 지우개'를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로 개명
- 2013년 (초급반, 중급반)
강사진 - 고성일, 유수진
9월 1일 제10회 중급 과정 발표회 (불과 얼음 뮤지컬 워크숍 극장)
고급반 수료자 없음
*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이었던 11개월 과정을 2014년부터
초급반을 기초반으로, 중급반과 고급반을 통합하여 심화반으로 변경하고 그 이후의 과정인 프로젝트반을 신설하여 이를 총 10개월 과정으로 개편함.
2014년 (기초반, 심화반, 프로젝트반)
강사진 – 고성일, 이정현
12월 6일 제11회 심화 과정 발표회 (국민대학교 예술관 소극장)
3명 수료 (박경화, 임현정, 임혜진)
- 2015년 (기초반, 심화반, 프로젝트반)
강사진 – 고성일, 유수진, 이정현
10월 19일 제12회 심화반 과정 발표회 ((사)한국뮤지컬협회 대강의실)
8명 수료 (김수희, 김지은, 김하나, 남지혜, 맹지현, 백소영, 원요한, 이형진)
2016년 현재에도 여러명의 수강생들이 저희 아카데미를 통해서 뮤지컬 창작인이 되기 위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지난 10년을 돌이켜봅니다. 처음 불과 얼음을 시작할 때 그곳의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극단인가요?” “제작사인가요?” “작가와 작곡가 매니지먼트 회사인가요?” “뮤지컬 창작 학원인가요?” ....아니요. “수익은 많이 납니까?” ...수강생들의 수업료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 뭐하러 합니까?”
저는 뭐하러 이 일을 벌인 걸까요. 무엇 때문에 뮤지컬 창작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만든 것일까요. 단원 모두가 우리 안에서 돈을 버는 일은 없었고 각자 외부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해서 먹고 사는데 말이지요. 사무실 월세 내는데도 숨이 차는데 말이죠. 막연하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십년, 이십년 뒤를 봅니다.” 그런데 어느덧 십년입니다. 대답을 채 준비하기도 전에 말이지요.
지난 십년 동안 많이 기쁘고 많이 즐거웠지만 그만큼 많이 괴롭고 많이 외롭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저 역시 뮤지컬 작가로서 저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이 가장 큰 욕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작품은 저의 실력이 부족했다거나 그 외의 제작 여건으로 공연이 잘 되지 못했습니다. 창작뮤지컬 불모지에서 나름 뭘 개척해본다고 이런 저런 일을 하는 중에 우리의 뮤지컬계는 빠른 속도로 변했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개인이 아닌 법인이나 기관이 하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창작인을 지원해주는 사업과 공모전은 저보다 젊은 후배들을 위한 기회가 되었고 저는 이제부터 뭔가 좀 쓸 수 있겠다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심사위원 같은 걸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불과 얼음을 시작할 때는 제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이었는데 이제 사십대 중반입니다. 그토록 영원히 젊을 것 같았던 아내도 사십이 넘었고 제 첫째는 중학생이 되었고 불과 얼음을 시작한 해에 태어난 둘째도 벌써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아래는 그동안 저희 불과 얼음의 단원이었던 멋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1기 (9명)
- 고성일 2006년 7월 – 현재
- 김경육 2006년 7월 – 2016년 6월 (10년)
(휴회 2015년 1월 – 2015년 12월)
- 김연수 2006년 7월 – 2010년 12월 (4년 6개월)
- 김용호 2006년 7월 – 2009년 6월 (3년)
- 김지영 2006년 7월 – 2010년 6월 (4년)
- 박보람 2006년 7월 – 2009년 6월 (3년)
- 성종완 (Lion) 2006년 7월 – 2016년 6월 (10년)
(휴회 2015년 7월 – 2015년 12월)
- 이보미 2006년 7월 – 2009년 6월 (3년)
탈퇴 후 재입단
2011년 1월 – 2011년 12월 (1년)
- 천필재 2006년 7월 – 2014년 12월 (8년 6개월)
(휴회 2014년 1월 – 2014년 12월)
2기 (8명)
- 김승진 2007년 1월 – 현재
- 박일석 2007년 1월 – 2014년 12월 (8년)
- 신성진 2007년 1월 – 2010년 12월 (4년)
- 오소린 2007년 1월 – 2014년 12월 (8년)
- 이보라1 2007년 1월 – 2010년 6월 (4년 6개월)
- 이정화 2007년 1월 – 2010년 6월 (4년 6개월)
탈퇴 후 재입단
2012년 1월 – 2014년 12월 (2년)
- 전다영 2007년 1월 – 2007년 12월 (1년)
- 정정희 2007년 1월 - 현재
3기 (4명)
- 김보라 2008년 1월 – 2015년 12월 (8년)
- 김은지 2008년 1월 – 2012년 12월 (5년)
- 박지영 2008년 1월 - 2008년 6월 (6개월)
- 신은경 2008년 1월 – 2014년 12월 (7년)
4기 (2명)
- 김연미 2008년 7월 – 2013년 12월 (5년 5개월)
- 김선미 2008년 7월 - 현재
5기 (2명)
- 김보매 2009년 1월 – 2010년 12월 (2년)
- 조혜연 2009년 1월 – 2010년 6월 (1년 6개월)
6기 (3명)
- 김병화 2009년 1월 – 2011년 12월 (3년)
- 이수지 2009년 1월 – 2014년 12월 (6년)
- 이수희 2009년 1월 – 2010년 6월 (1년 6개월)
7기 (1명)
- 이준석 2010년 1월 – 2013년 12월 (4년)
탈퇴 후 재입단
2015년 1월 – 현재
8기 (7명)
- 강정인 2011년 1월 – 현재
휴회 2014년 1월 - 2014년 12월
- 고명환 2011년 1월 – 2014년 12월 (4년)
- 박진현 2011년 1월 – 2015년 12월 (6년)
- 박현숙 2011년 1월 – 2014년 12월 (4년)
- 유수진 2011년 1월 - 현재
- 이정은 (이나오) 2011년 1월 – 2011년 12월 (1년)4
- 최종윤 2011년 1월 – 2011년 12월 (1년)
9기 (3명)
- 정현정 2012년 1월 - 현재
- 천세은 2012년 1월 - 현재
- 홍서정 2012년 1월 – 현재
10기 (8명)
- 유은혜 2013년 1월 - 현재
- 이보라2 (보라리) 2013년 1월 – 2013년 12월 (1년)
- 이유정 2013년 1월 – 2013년 12월 (1년)
- 장우성 2013년 1월 – 현재
휴회 2015년 1월 – 2015년 12월
- 정은혜 2013년 1월 - 현재
- 진선숙 2013년 1월 - 현재
- 한민규 2013년 1월 - 현재
- 한혜신 2013년 1월 – 2015년 12월 (3년)
휴회 2015년 7월 – 2015년 12월
11기 (1명)
- 이정현 2014년 1월 - 현재
12기 (3명)
- 박경화 2015년 1월 - 현재
- 임현정 2015년 1월 - 현재
- 허지은 2015년 1월 - 현재
13기 (3명)
- 김하나 2016년 1월 - 현재
- 박은송 2016년 1월 - 현재
- 이형진 2016년 1월 – 현재
총 54명
3기는 연필과 지우개 수료 후 6개월 후 포트폴리오를 받아 선발. 9기서부터 심사위원들을 구성하여 선발.
2012년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단 제1대 임원진 취임
(단장: 김승진 / 사무국장: 이준석 / 온라인 카페 운영: 김보라 / 감사: 정정희, 천필재,강정인)
2013년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단 제2대 임원진 취임
(단장: 김경육 / 사무국장: 박일석 / 감사: 강정인, 김선미)
2014년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단 제3대 임원진 취임
(단장: 성종완 / 사무국장: 장우성 / 감사: 유수진, 천세은)
2015년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단 제4대 임원진 취임
(단장: 한민규 / 사무국장: 정현정 / 감사: 한혜신)
2016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단 제5대 임원진 취임
(단장: 유수진 / 사무국장: 정은혜 / 감사: 강정인)
돌이켜보니 그야말로 ‘인큐베이팅’을 한 것 같습니다. 뮤지컬계에 인큐베이팅이라는 말이 오가면서도 그 인큐베이팅은 1년 남짓한 시간들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인큐베이팅해서 성장시킨 결과물을 자신의 실적으로 만들곤 하더군요. 예, 그것이 사실 세상은 그러기 마련이죠. 그런데 사실 인큐베이팅은 아이를 건강하게 돌보고 언젠가는 그 안에서 내보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늘 내보내는 일을 해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사람이 그 꿈을 놓지 못하면서 유소년 축구클럽 지도자로 지내는 것 같았던 느낌. 차라리 월드컵이라도 경험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라면 유소년 축구클럽도 운영하기에 어려움은 덜 하겠지만 그런 경력도 없으면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그 일을 맡은 것 같은 느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일. 하지만 그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면 거의 외면하는 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10년 동안 인큐베이팅을 했구나라고.
시간이 되시면 다시 저 위에 이런 저런 기록에 나오는 명단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봐주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 엄청난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성장을 모두 저희 불과 얼음이 했다고는 말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흘린 피눈물 중 몇 방울은 저희가 양분을 공급해줘서 나온 것이라고 믿어주시고 격려해주십시오.
끝으로 저희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과 얼음. 첫째로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감각을 의미합니다. 둘째로는 작가와 작곡가의 협업을 의미합니다. 셋째로는 불과 얼음이 만나면 그 자체는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의 작업으로 나온 작품이 세상에 들어가면 저희 작가와 작곡가는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넷째는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얻은 삶의 태도에 대한 의지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요한계시록 3:15-16. 개역한글)
저의 능력 부족과 인격적 결함에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상처와 실망을 준 일이 있어서 그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그나마 버틴 것은 이리 저리 재고 간을 보며 기회주의자로 살기보다는 묵묵히 저의 일을 실천한다는, 완전함을 핑계로 어중간하게 살기 보다는 과감히 뜨겁거나 차겁게 실천하겠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십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어떤 곳에 도착할까하는 것이 늘 궁금했는데 아직 도착한 곳은 없이 여정이 지속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또 언제까지 이 여정이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걸어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올 수 있도록 저를 지금까지도 인큐베이팅 해주시는, 11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고우영 화백. 지금도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어머니 박인희 여사. 그리고 나의 누나와 형들. 그리고 아내와 반디와 노을이. 그리고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저의 지인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단원 그리고 현단원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 대표 고성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