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것을 좀 번잡스럽게 설명했던 것은
단순히 변증법이 정반합의 논리라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네.
중요한 것은 변증법을 도식적 사유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라네.
물론 이러한 내 입장에 반대하는 연구자들도 없는 건 아니네.
그럼에도 나는 변증법을 특정한 도식적 사유방식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변화에 관한 일반적 사유방식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네.
이렇게 본다면 서양의 변증법은 동양의 음양사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역론(변화론)으로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
일찌기 근대 초기 중국의 사상가인 곽말약 역시 변증법과 음양사상을 비교하여
그 유사성에 주목한 바 있지 않은가.
물론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곽말약은 변증법이 과학적인 데 비해
음양사상은 신비적이라고 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말았지만 말이네.
현대 중국 제일의 헤겔연구자인 장시이잉(장세영)은 다른 의미에서
변증법과 음양사상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네.
그는 음양사상에 기초한 역사상을 틀에 갇힌 변증법을 구해줄 수 있는
풍부한 사상적 원천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네.
아무튼 현대 중국의 이러한 헤겔 연구 경향은
변증법과 음양론이 대립되는 사유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성을 갖는 가족유사 사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서양의 변증법과 동양의 궁즉통이 전혀 다른 사고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나교수의 주장은
이렇게 수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네.
"서양의 변증법과 동양의 음양론은 세계의 변화상을 올바로 파악하고자 하는 동일한 사상적 바탕 위에 있다."
어찌 하다 보니 설명이 너무 장황해지고 말았네 그려.
아는 것 모르는 것 모두 그러모아 아는 채 하기 좋아 하는 내 천품이 그러하니 어쩌겠는가.
좀 지루했더라도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네.
그리고 이 장광설이 자네 학문 연찬에 티끌 만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더 큰 광영이 없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