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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체포와 기자윤리 그냥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일 뿐이다. 근래에는 윤리학과 학생들에게 정치철학과 국제관계윤리를 가르친다. 기자가 아니어도 기자윤리에 관해서 한 마디할 자격은 있지 않나 싶다. 마땅히 따라야 할 규범을 다룬다. 기자는 사실을 캐내서 전해 주려는 사람이다. 사실을 캐내서 보도할 때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기자윤리라는 말이 성립하는 지점이 거기에 있다. 사실이 아닌 거짓을 사실인양 보도해서는 안 된다. 이를 근거로 진실보도의 원칙이 성립한다. 기자는 사실을 캐내서 보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혀내서 전달할 뿐이지 사실을 변경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기자는 관찰자지 조작자가 아니다. 이를 근거로 중립성의 원칙이 성립한다. 사실의 변경이 국가안위의 위기나 생명의 위협을 제거할 경우가 그것이다. 흔히 이 사례로 CNN의 앤더슨 쿠퍼기자의 경우가 회자된다. 쿠퍼기자는 아이티지진 현장에서 리포팅하고 있었다. 생중계로 리포트하는 중 그는 흙더미 속에 묻혀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쿠퍼는 리포트를 중단하고 아이를 끌어내 생명을 구했다. 쿠퍼의 이 행동은 많은 논란을 나았다. 기자는 그 장면에서도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다. 아이를 구조하는 일은 구조대에 맡기고 기자는 그 장면을 보도하는 데 머물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은 재반론에 부딛친다. 기자가 사실을 캐내어 보도하는 까닭은 결국 인간의 생명 보존과 앙양에 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기자에게도 관찰해서 보도하는 일보다 우선적이고 우월한 일인 것이다. 살인자가 살인을 하는 현장을 목격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이 경우에도 관찰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살인을 저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을 캐내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오로지 보도 목적에만 이용해야 한다. 이를 유일한 목적의 원칙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로 사익을 취해서는 안 된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활용해서도 안 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취재가 방해받는다면 사실이 왜곡될 위험에 노출된다. 이로부터 공정경쟁의 원칙이 성립한다. 이 외에도 더 많은 기자가 따라야 할 윤리규범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정유라는 덴마크에서 자사 기자의 신고로 붙잡혔다. 그 기자는 정유라의 신분과 위치를 덴마크 당국에 신고하고 체포케 하여 체포현장을 단독보도한 것이다. 이는 명백히 중립성의 원칙과 공정경쟁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유일한 목적의 원칙을 위반했을 소지도 있다. 특검이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정유라의 혐의는 대학부정입학이라든가 학사부정과 같은 경미한 것이다. 인명살상과 같은 중대 범죄자가 아니다. 정유라를 바로 체포하지 않는다 해도 타인의 생명이 위태롭지도 않다. 기자가 신고해서 사태를 변경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 기자는 정유라를 신고해서 체포 당하게 조작함으로써 그 정보에 다른 기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혼자서만 정보를 독점한 것이다. 기자들의 단독보도 욕망은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 정보 상황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신고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해서 그 농단의 한 축인 정유라를 법의 심판에 넘기자는 정의감 때문에 신고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정치적 의도가 설령 바람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기자윤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큰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다. 그 공은 공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편이 된 JTBC가 하는 모든 일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우리 편이어서 오히려 더 엄격하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JTBC 보도부문 사장 손석희는 망설이지 말고 이번 정유라신고 사건이 기자윤리를 어긴 비윤리적 행위였다는 걸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 내규에 따라 그 기자를 징계해야 한다. 진영논리에 사로 잡혀 기자윤리 위반을 덮고 지나가는 것은 또 다른 악의 배태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