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연혁
- 고사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다압리(多鴨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다압면에 속하였음. 1789년경(호구총수)에는 다압면 고사촌(古士村)이라고 마을이름이 최초로 문헌상 기록된 이래 1912년(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이전까지 다압면 고사리(古士里)라 하였음.
-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관동리(官洞里)∙고사리(古士里)∙항동리(項洞里)∙죽천리(竹川里)가 병합되어 다압면 고사리(高士里)에 속하였으며 1987. 1. 1기준(광양군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광양군 다압면 고사리(법정리)에 속하여 행정리상고사2구 지역이 되어 고사(高士)라 하였고 현재는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법정리)에 속하여 행정리상 고사(高士)라 함.
�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 고사마을은 1500년쯤 함안조씨가 처음 입촌하였고 뒤이어 김해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면 서 한지(韓紙)를 생산하여 부자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함. 따라서 지금도‘지소골(절골)’이란 지명이 남아 있으며 옛날 절이 있었다하여 절골이라고도 부름. 절골(지소골)에 부두거리(부도거리)라는 지명이 있고 현재‘해당암’이라 새겨진 부도가 남아있으며 그 외에 옛날 절과 관계되는 지명이 많이 남아있어 이곳에 옛날 절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음. 특히 불당골에는 미륵불이 있었다고 전함.
- 고사(高士)마을의 본래 이름은 고사(古士)라고 하였는데 전하는 이야기로는 마을 앞에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절터가 있었다 하여 고사(古寺)라고 이름하였다고 하는데 고사(古寺)가 변형되어 고사(古士)로 오기 되었지 않나 생각됨.
-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관동리, 고사리(古士里), 항동리, 죽천리를 병합하면서 4개리 지역을 합하여 고사리(高士里)라 하면서 그 이후 고사(古士)를 고사(高士)로 개칭한 것으로 문헌상 기록되어 전하는데 그 사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음. 전하는 이야기로는 해방이후 이곳에서 많은 선비가 배출 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고사(高士)마을로 고쳤다고 전함.
- 1872년 왕명으로 제작된 광양현지도에 의하면 이 당시에 마을에 사창(社倉)이 있었는데 사창은 조선시대 지방의 촌락에 설치된 일종의 곡물대여기관으로 당시 면(面)에서 경영하였는데 그 내용은 구곡(舊穀)을 대출하고 무이식으로 신곡을 받는 것, 곡물을 대여하여 이자만 받아들이는 것, 춘궁기에 대출하여 가을에 이식과 함께 받아들이는 등 곡식으로 주민들을 구호하는 것이었는데 그곳 흔적으로 마을 창고 부근지역을 지금도 사창거리라 부르고 있음.
� 자생조직
- 조상때부터 위친계가 조직되어 부모 사망시 서로 상부상조하여 장례를 치르며, 부녀회(1961년 조직∙68명)가 조직되어 부녀간의 친목도모와 농번기때 품앗이로 서로 도와 농사일을 꾸려가고 있음.
�주요시설물
- 마을회관(1974년 준공, 1층, 블록슬레이트), 김기두 자선비각 경로당(2004년 준공, 벽돌슬래브)
� 문화유산∙유적
▶ 김기두(�琪斗)의 자선비
- 왜정시대 흉년이 들어 밥을 굶는 사람들이 많자 세금을 대납(代納)하고 각 호구마다 쌀 한말씩을 나워준 김기두(金琪斗)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입구에 유경문(有慶門)이란 제각을 지어 비를 세웠음.
- 마을사람들은 빚을 져서 세워준 집이라 하여‘빚집’이라고 부르고 있음. 현재 이 비(碑)는 마을어귀 산자락으로 옮겨 세웠는데 시의 지원을 받아 비각과 제각을 새로 중수하여 새롭게 단장하였음.
▶ 당산나무
- 고사리 1039번지, 당산또에 위치한 팽나무이며 수령 약 380년, 흉고 3.6m, 수고 12m로서 보호수 지정번호 15-5-7-6번임. 약 50년전부터 당산제를 지내지 않고 있음.
� 마을출신 인물
- 김용수(�容洙∙1881년생) : 제3대∙제7대 다압면장. 제11대 광양향교 전교(직원)
- 김용규(�容圭∙1883년생) : 제5대 다압면장
- 고광엽(高光燁∙1909년생) : 제9대 다압면장, 경북영주∙봉화∙영양∙성주∙영천군수전남구례군수
- 김행곤(�行坤∙1918년생) : 제1대 다압면 의회의장
- 박동제(朴東濟∙1930년생) : 제20대 다압면장
- 김치곤(�致坤∙1931년생) : 서울특별시 마포구청 건설과장
- 최종권(崔鍾權∙1931년생) : 전투유공으로 화랑 무공훈장 수상(1952)
- 김종균(�鐘均∙1937년생)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제12대 대통령 선거인(1981)
- 안래호(安來鎬∙1937년생) : 경기도 부천시 우체국장
- 고재규(高在圭∙1938년생) : 한국방송공사 심의실 부장
- 김종실(�鍾實∙1946년생) : 월남전 유공으로 화랑무공훈장 수상(1969)
- 이차규(�次揆∙1947년생) : 제25대 다압면장, 제2대 태인동장. 광양시청 정보통신 과장
- 김성철(�成喆∙1957년생) : 제28대 다압면장. 광양시 과장
- 김명원(�明源∙1965년생) : 대학교 재학중 민주화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름.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음.
- 신상환(申相煥∙1968년생) : 대학교 재학중 민주화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름. 징역3년및 자격정지 2년을 받아 수원, 안양, 대전교도소에서 수감생활. ’91. 8. 4일 석방.
- 김세원(�世原∙1971년생) : 공군소령
� 특정지명과 그 의미
- 가운데땀 : 고사지역에서 가운데 위치한 마을. 중간땀, 중간평으로도 부름.
- 고시내 : 고사마을의 다른 이름. 또는 고사마을 사이로 흐르는 내의 이름
- 냇가땀 : 가운데땀 서쪽에 있는 마을로 냇가에 위치함.
- 농-바구 : 불당골 뒤쪽에 위치한 농처럼 생긴 바구(바위)로 마을사람들이 화전놀이를 하였던 곳
- 당산-들(堂山-) : 당산땀 앞에 있는 들
- 당산땀 : 뻔덕과 마주보는 땀(마을)으로 당산나무가 있음.
- 동청거리 : 구석땀과 중간땀사이에 위치한 동네거리 지명으로 이곳에 있었던 건물(동청)이 지금의 마을회관 역할을 하였음.
- 둠벙배미 : 사창거리 서쪽에 위치한 논. 둠벙이 있었음.
- 뒷골 : 가운데땀 뒤에 위치한 마을
- 땅곡 : 마을 동북쪽에서 항동마을로 가는 고개. 전에 서낭당이 있었다 함.
- 매봉 : 마을뒤에 위치한 제일 높은 산봉우리. 죽천마을에서는 필봉( 鋒)이라 함.
- 문바구 : 마을 남쪽에 있는 바위. 모습이 문(門)같이 생겼음.
- 문박재 : 마을 남쪽에서 상관동으로 가는 산고개. 문(門)같이 생긴 바위가 있음.
- 반섶들 : 마을 동남쪽에 있는 들
- 뻔떡땀 : 가운데 땀 서쪽 뻔덕(버덩)아래쪽에 있는 마을
- 불당골 : 가운데땀 왼쪽에 위치한 마을, 옛날에 불당이 있고 미륵불이 있었다고 전함.
- 사창거리 : 가운데땀 앞에 위치한 지역으로 옛날 사창(社倉)이 있었다고 함. 농협창고 부근지역임.
- 산발등 : 마을 서쪽에 있는 산등성이로 삼밭이 있었음.
- 산짓골 : 감나무골 뒤에 위치한 골짜기로 전에 이곳에서 산제를 지냈음.
- 서기바구 : 고사 서쪽의 서기박골에 있는 바위. 근처에서 석이(石耳)가 났음.
- 세기박골 : 지서골 뒤에 있는 골짜기로 석이(돌이 피는 버섯)가 있음.
- 서당-들 : 구석땀과 불당골 사이의 들을 말하며 옛날 서당이 있었음.
- 술감정 : 마을입구 현 경로당 자리로 큰 감나무가 2그루 있었으며 주민들의 모임장소로나 휴식처로 이용됨.
- 안산(案山) : 고사 뒤 서북쪽에 위치한 산. 마을의 안대가 됨.
- 안산밭-등 : 안산에 있는 등성이. 밭이 있었음.
- 애기밭골 : 가운데땀과 뻔덕땀 사이 냇가에 큰 바위가 있었으며 옛날 아기(애기)가 죽으면 이곳바위 밑에 시체를 매장한데서 유래된 지명.
- 외배미 : 마을입구에 위치한 논으로 한배미가 아홉마지기라 하여 아홉마지기들이라고도 부름.
- 장구-배미 : 외배미 동쪽에 있는 논. 장구처럼 생겼음.
- 잭별 : 마을 앞 하수정화시설 부근 도로에 위치한 지명. 옛날 마을 깊숙이 안쪽(지서골)에 본래의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을 방문한 손(객)이 오면 이곳 부근도로에까지 나와서 작별(송별)하였다 하여 유래된 지명
- 조기통골 : 고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소(紙所)골 뒤에 위치함.
- 지산등 : 가운데땀 서북쪽에 있는 산등성이. 고사의 주산(主山)이라 일컫음.
- 중간땀 : 가운데 땀이라고도 부르며, 고사마을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자연 마을
- 감나무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등성이로 감나무들이 많이 있었음.
- 써나무정 : 참나무골 뒤에 있으며 큰 써나무가 있어 나뭇군들의 쉼터가 되었음.
- 아래문바구 : 마을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산봉우리로 문(門)같이 생긴 바위가 있음.
- 들가운데 : 당산땀 앞 들 한가운데 위치한 땀(마을)
- 아래성짓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성짓골 아래쪽이 됨.
- 버무골 : 써나무정 뒷산 중턱에 위치하며 큰 바위사이로 동굴이 있으며 옛날 범(호랑이)이 살았다는 골짜기
- 삼새미 : 지서골 좌측 계곡에 위치하며 암자터가 남아있음.
- 비석거리 : 마을 북쪽에 위치한 지방도로변으로 항동마을과 연결되며 이곳에 비석이 있음.
- 사진관 : 반섶 뒤에 위치한 지역으로 옛날 사진관을 운영하던 집이 있었다하여 일컫는 말
- 윗문바구 : 아래 문바구 위에 위치한 산봉우리로 문(門)같이 생긴 바위가 있음.
- 위성짓골 : 아래 성짓골 위에 위치한 골짜기.
- 지소꼴 : 고사마을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처음으로 마을이 형성된 곳이며 절터가 있어 절골이라 부르다 한지 제조공장이 생기고부터 지소골이라 불렀다고 전함.
- 공동산 : 마을 동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고사리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음.
- 공장 : 마을 회관 앞에 위치한 옛날 한지 제조공장이 있었던 지역.
- 구석담 : 당산땀과 불당골 사이에 있는 땀(마을)으로 마을 한구석에 위치함.
- 돌감정 : 냇가땀 뒤에 위치한 들로 똘감(재래종감) 나무가 있었다고 전함.
- 동내터 : 돌감정 서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동네(마을)가 있었다고 전함.
- 동청거리 : 구석땀과 가운데땀 사이에 있는 지명으로 동청(지금 마을회관)이 있던 자리(거리)
- 물골 : 지서골 뒤 큰 계곡으로 고사 냇물의 근원지임.
- 물방아실 : 냇가땀 뒤에 있는 냇물 웅덩이로 옛날 물레방아를 설치하였던 곳.
- 참나무밭골(참나무굼팅이) : 똘감정 뒤에 있으며 큰 옛날 참나무(도토리) 밑에서 나무꾼 들이 쉬어가던 곳.
- 행검징이 : 고사마을 동쪽 공동산 앞에 있는 지역으로 관동마을과 연결되는 지방도 변을 말함
첫댓글 저기 실례하지만 김기두씨 설명하는글 퍼가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