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 43: 소설, 소년이 온다 -
시신을 돌보던 중학생이 광주에서 총살당한 이유.
시신을 담을 관을 구하러 가던 19살 꽃같던 처녀를 머리와 가슴에 총알 7발을 난사하고도
모자라 대검으로 가슴을 찌르고..
소설 『소년이 온다』
출처-<창비>
노벨 문학위원회 위원은 한강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를 가장 주목했다고 한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한국 군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던 학생과 민간인 100여 명을 학살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매우 감동적이고 때로는 끔찍한 이야기”
“이 책은 그 자체로 잔인한 권력의 소음에 대항할 수 있는 매우 부드럽고 정확한 산문이다.”
“한강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여러 세대,
때로는 집단에 남아있는지 보여준다.”
광주, 1980년 5월 18일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탐관오리(貪官汚吏)!
부패한 정치 검사는 사욕을 위해 공권을 쓰고,
권력에 눈이 먼 무능한 장군은 외적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도 자국 국민을 죽이는 쿠데타에는 누구보다 용감하다.
‘박정희의 아들’로 불리던 전두환과 그의 일당들은 박정희의 죽음 이후 신속하게 자신들의 권력욕을 실현해 나갔다.
그들은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자국민들에게 잔인한 살인을 자행했다.
5.18 항쟁 기간 동안,
계엄군은 광주 시민들에게 총 51만 2,626발의 실탄을 발사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만 606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했으며 그중 30%는 10대 소년들이었다.
19살의 ‘손옥례’ 양은 시신 담을
관을 구하러 가던 도중 머리와 가슴 등에 M16 총탄 7발을 맞고 사망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계엄군은 죽은
손 양의 가슴 부위를 다시 대검으로 찔렀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도 끔찍한 것이었다.
5.18 피해자의 자살률은 10.4%로 이는 일반인의 500배가 넘었다.
열여섯 살 동호가 시신들을
돌보는 이유
그것은 조준 사격이었다.
열여섯 살,
만으로는 열다섯 살인 중학교
3학년 동호는 분명히 보았다.
그날 동호는 정대와 함께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요일부터 돌아오지 않는
정대의 누나,
정미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광장은 광주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상에, 옥상이여’ 어떤 아저씨의 숨찬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하더니 총성이 들렸다.
한 발이 아니었다.
귀를 찢는듯한 총소리에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순간 정대는 뒤로 넘어졌고 동호는 정대의 손을 놓쳤다.
용감한 몇몇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들쳐업었다.
옥상에서 그리고 광장 중앙의 군인들 쪽에서 연이어 총성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다시 고꾸라졌다.
동호는 몸이 얼어붙어 골목
담벼락에 들러붙었다.
갑자기 어느 순간 광장이 정적에 쌓였다.
군인들이 2인 1조로 걸어 나와 쓰러진 사람들을 신속하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동호는 그렇게 정대와 영원히 헤어졌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동호는 합동 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가 무서움과 구토를 참아가며 흰 무명천을 들추고 시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대의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무관으로 시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관이 모자랄 정도였다.
소식이 끊긴 가족을 찾아온 사람들이 시체를 덮은 흰 무명천을 들출 때마다 웅성거림과 통곡과 비명들이 들렸다.
시취,
즉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마스크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됐다.
초를 태우면 시취가 줄어든다는
말에 시체들 머리맡마다 초를 켰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너, 시간 있으면 오늘만 우리 도와줄래?
손이 너무 모자라.
어려운 건 아니고......
저기 끊어다놓은 천 잘라서 저쪽에 있는 사람들 덮어주면 돼.
너처럼 누가 가족을 찾으러 오면 하나씩 걷어서 보여 주고.」
그날부터 동호는 자신을 처음
맞이해 준 ‘선주 누나’와 한 조가 되었다.
동호는 열심히 형들,
누나들을 도왔다.
시체가 들어오면 성별,
어림잡은 나이,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 등을 꼼꼼히 장부에 기입했다.
시신을 찾은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시신의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끈으로 묶은 후 애국가를 부르며 짧은 추도식을 치렀다.
동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가 죽인 사람들인데 왜 애국가를 부르는지.
그런 동호에게 ‘은숙 누나’는 군인들은 반란자이지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며 동호를
이해시키려 했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
정대와 정미 누나에 대한 기억
동호네 사랑채에 정대와 정미 누나가 세를 들어왔다.
둘의 아버지는 대전으로 돈 벌러 갔다고 했다.
동호는 초등학생만큼 키가 작았다. 자기도 키가 작은 정미 누나는,
동호 공부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방직 공장을 다니는 정미 누나는,
그 빠듯한 형편에도 동호 키 크라고 우유를 배달시켜 먹였다.
정대는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지만
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착한 친구였다.
야근을 끝내고 돌아온 정미 누나는 가끔 동호를 몰래 깨워 연탄불을 빌려 갔다.
정대 역시 누나에게는 도서관에 다녀온다고 말하지만,
수금 일 때문에 귀가가 늦어져 둘은 자주 연탄불을 꺼뜨렸다.
하루는 퇴근한 정미 누나가 동호에게 혹시 버리지 않았다면 1학년 교과서를 좀 달라고 했다.
야학에 다니게 됐다고 주섬주섬 말하며.
「정대한텐 말하지 마라.
안 그래도 저 때문에 내가 학교 못 다녔다고 눈치 보는데.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할 때까지만 모른는 척해줘.
얼굴에서 무슨 풀꽃 같은 게 연달아 피어나는 것처럼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너는 멍하게 바라보았다.」
책을 건네준 동호는 신이 났다. ‘세상에......
너는 머시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
누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책을 받아 든 누나의 생글거리던 눈, 고단한 미소 같은 것들이 동호를 뿌듯하게 했다.
두 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어찌 정대 몰래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그것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야학, 공장, 가끔 가던 교회, 일곡동 오촌 당숙네.
다음 날 아침부터 정대와 함께 그곳들을 찾아다녔지만 정미
누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요일 밤부터 정미 누나가 사라졌다.
길 가던 누군가가 총에 맞아 죽었고 또 어떤 처녀는 군인들이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광주를 떠돌 때였다.
동호는 울먹이는 정대를 달래 함께 정미 누나를 찾아 나섰지만,
누나를 찾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정대마저 사라졌다.
그들에게 던지는 정대의 질문
그들은 곡물자루를 운반하듯 시체들을 트럭에 던져 넣었다.
정대의 몸 위에 다른 시체들이 겹겹이 쌓였다.
피를 너무 쏟아내 정대의 심장은 멈췄다.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는 쏟아져 나왔기에 정대의 얼굴은 습자지같이 얇고 투명해졌다.
「계속해서 내 몸은 썩어갔어. 벌어진 상처 속에 점점 더 많은 날파리들이 엉겼어.
눈꺼풀과 입술에 내려앉은 쉬파리들이 검고 가느다란 발을 비비며 천천히 움직였어.」
정대의 몸뚱아리는 썩어가고 있었고 심한 악취를 풍겼지만,
정대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