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사연.. 1. <고향의 첫눈> (남, 70대)
최준봉, 중국 요녕성 대련시
첫눈이 퐁퐁 쏟아져 내린다.
내가 자식을 따라 고향 땅을 떠난 지 오랜간만에
고향의 첫 눈을 보게 되었다.
해마다 첫눈이 내리면 나는 꼭꼭 아내와 함께 첫눈을 감상하였다.
그런데 올해는 아내를 타향으로 떠나보내고
내가 홀로 고향 집 창문에 마주 앉아 첫눈을 바라본다.
고향의 눈은 어느샌가 나의 생각을 46년 전으로 이끌었다.
1975년 봄 내가 부대에서 제대를 하였다.
혹시나 처녀애들을 만나면 그들은 이 구실 저 구실을 대고
나와 같은 구차한 가문에 시집오려 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가 금방 제대 하다 보니 살림집도 없었고
늙으신 어머니마저 모셔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30이 가까운 총각이었다.
그런데 한 처녀와의 우연한 만남에 나의 인생이 결정되었다.
나는 처녀에게 나의 가정형편을 낱낱이 말해주었다.
(처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사람 하나만 맘에 들면 돼요.
인물도 고왔지만 맘씨가 더 고운 처녀였다.
우리는 서둘러 사돈보기를 끝내고 1976년 10월 24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혼례식은 근검하고 소박하였다.
나는 부대에 가져온 군복에다 직장에서 공작복으로 발급한
구두를 신고 혼례식을 치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신부가 너울 쓰고 혼례식을 치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차량 한 대도 없이 우리는 조양천역에서 내려
4-5리 길을 걸어야 했다. 새벽부터 조금씩 내리던 눈이
점차 커다란 함박눈으로 변하여 펑펑 쏟아져 내렸다.
우리가 집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색시의 머리에는
흰 너울이 곱게 씌워져 있었다.
(하객 여) 아이유 곱기도 하여라.
새 각시가 하얀 비단 너울을 썼구만.
(하객 남) 첫눈이 내리는 날에 시집오는 색시는
아들딸 수두룩이 낳구 잘 살 거우다.
축객 손님들의 이구동성으로 찬탄하는 소리에
서럽던 기분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고
진짜 너울을 쓴 기분이었다.
예로부터 잔칫날 눈이 오면
시집 온 색시가 돌아 갈 길이 막혀 맘을 안착하고
살림살이를 잘 한다고 한다.
그 후 우리의 자식들은 무썩무썩 자라나
대학을 졸업하고 장가도 들었다.
지금은 손자손녀 수두룩하게 사람풍년 행복의 풍년이다.
혼례식날 맑고 깨끗한 흰눈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이었다.
고향의 첫눈, 오늘도 타향에 있는 아내가
고향의 흰 눈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을까?!
▶ 편지사연 2. <잔소리쟁이 엄마> (여, 10대)
김지연, 중국 길림성 룡정시북안소학교5학년
우리 엄마는 잔소리 대왕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빨리 일어나라, 지각하겠다.”고 소리치고
저녁이면 학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빨리 밥을 먹고 숙제를 해야지” 하고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휴대폰을 조금 보고 있으면
“야, 빨리 공부를 해야지
언제 휴대폰을 놀새 있니?”하고 다그치신다.
이런 말들은 자동버튼처럼 엄마의 입에서
나의 귀에 들어와 꽂힌다.
나는 정말 엄마의 이런 잔소리가 싫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엄마, 이제 잔소리를 그만 하면 안돼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 돌 것 같아요..”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엄마는 잠시 놀라시는 것 같더니
“내가 타이르는 것이 그렇게 싫니?
네가 내 딸이니 그렇지 남이면 그런 말을 하겠니?
다 네가 잘되라고 하는건데…”하시며
몹시 서운해 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의 표정을 보니 엄마가 더 미웠다.
왜냐하면 엄마의 잔소리가 날 철모르는
세살짜리 아이로 생각하는것 같아 더 기분이 나빴다.
그 후부터 엄마의 잔소리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기뻤지만
왠지 집에 들어서면 노래처럼 들리던
잔소리를 듣지 못하니 뭔가 모자란 느낌도 들고
엄마가 아직도 나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후 엄마와 아빠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지연이 사춘기라서 예민한 건 아닌가 했는데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자기절로 잘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우리가 애의 자유를 너무 간섭한 것 같소..
지켜보면서 애의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인데…”
“알았어요, 정말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쉽지 않네요”
부모님의 말을 들으니
엄마의 잔소리가 사랑임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께서 나의 마음도 헤아려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