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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4월 6일 화요일
한글 현대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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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 일본 동양 협회에서 영국 학사 두만씨가 연설을 하는데 제목은 일본 인종의 근본 두만씨의 말은 일본 종자가 본래 일본 토인 아이누와 얼굴 생긴 것이 비스름 하고 말과 생각 하는 법이 토인과 같은 일이 많이 있는지라 그걸 보거드면 아이누 종자는 본래 인도 북쪽에서 온 종자라 그런 고로 지금 일본 사람들이 인도 북쪽과 아시아 서쪽 아시아 터키 근처에서 온 종자라 그러기에 일본 말 하는 경계와 터키 말 경계가 같은 일이 많이 있다고 말 하더라 일본 있는 영국 공사 남작 사토씨는 두만씨의 생각과 좀 다른 것이 일본 종자가 섞인 종자가 아니요 전국에 있는 인민이 얼굴이 대강 한 모양으로 다 생겼고 생각 하는 것과 말 하는 것이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지라
시방 있는 종자는 본래 토인과 다르고 외국서 온 종자인데 남쪽으로 처음으로 와 차차 토인을 몰아 북쪽으로 쫓아 버리고 토지를 차지 하여 살았는데 혹 어찌하면 그 토인의 계집들을 뺏어 산 연고로 아이누에 종자가 혹 섞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며 이 새로 들어 온 종자들은 싸움 하기를 좋아 하고 또 개화가 조금 되어 농사도 할 줄 알고 물건도 조금 제조 할 줄 아는 고로 토인들을 차차 몰아 북쪽으로 보내고 점점 퍼져 전국을 차지 하고 살게 되었는데 이 새로 들어 온 종자는 어디서 왔는지 자세히는 모르되 일본 말과 조선 말을 가지고 비교 하여 본즉 문법이 또 같은지라 다만 문법만 같을 뿐 아니라 생각 하는 것과 얼굴 생긴 것과 그 외 사는 풍속에도 같은 일이 많이 있으니 이걸 보거드면 일본 종자가 조선 종자와 같은지라
그러 하니 일본으로 들어 온 사람들이 조선서 온 사람들인지 또 조선 사람 본래 온 고장에서 온 사람들인지 조선 사람들도 본래 조선 사람들이 아니라 아시아 북편 만주 서쪽 근처에서 온 종자들인즉 일본 사람들도 어찌하면 그 곳에서 시작 하여 일본으로 건너 온 종자들이라 조선 말과 일본 말에 문법이 똑 같으니 이 두 말이 필경 하 곤대서 시작 한 것이라 또 그 중에 말이 음도 같고 뜻도 같은 글자가 많이 있는데 다만 다른 것은 일본 말은 글자 끝에 매양 모음을 부치고 조선 말에는 글자 끝에 자음을 부치는 글자가 많이 있는지라
그렇기에 일본 말에 구마란 말은 조선 말로는 곰이라 하는지라 하나는 곰이요 또 하나는 구마라 곰 하고 구마 하고 본래 한 말인데 일본 사람은 곰에다가 모음 아 자만 부친즉 구마가 되었는지라 그런 말이 한 두 개가 아닌즉 이것을 보거드면 조선 일본 만주 몽고가 모두 한 종자요 이 종자에들 말은 영어에 툭란 말이라 하는 것이라 그러 하면 본래 일본과 조선 사람들은 만주와 몽고에서 왔다 하고 또 만주와 몽고 종자는 본래 어디서 왔나뇨 인도 남방에 있는 인종들의 하는 말을 가지고 만주 말 하고 비교 해 보면 서로 같은 일이 많이 있으니 이걸 보거드면 만주 종자들이 본래 인도에서 온 종자라
이렇게 뒤를 찾아 본즉 도무지 이 인종들이 모두 아시아 서쪽에서 시작 한 종자들인즉 지금 구라파 인종들도 본래 아시아 서쪽에서 시작 한 인종들이라 도무지 이 지구 상에 있는 인종들은 본래 한 곳에서 시작 하여 서로 논하여 각색 기후와 토지에들 서로 상종 없이 몇 천 년을 산 고로 체격 생긴 것도 달라지고 얼굴도 달라지며 살 빛도 달라지고 언어와 풍속과 생각 하는 법들이 다 다른지라 동양 안에는 일본과 조선이 제일 같은 일이 만 한즉 이걸 보거드면 일본 종자는 본래 조선서 온 사람들이요 조선 사람들은 만주 몽고 등지에서 왔고 만주 몽고 등지 사람들은 인도 남방에서 왔고 인도 남방 인종들은 아시아 서편 지금 터키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라 인종 근본을 공부 하기는 말들을 가지고 사실 하는 것이 제일인 고로 외국에서는 인종 학이라 하는 학문이 대단히 큰 학문이요 학사 중에 인종학 학사를 매우 높이들 치더라
관보
○ 사월 삼일 주사 진선사 이재무 영선사 백순기 함경 남도 관찰부 김홍상 임 전선사 주사 임 봉상 영선사 주사 조병욱 함경 남도 관찰부 주사 이국환 중추원 의관 이교하 박제빈 이상규 의원 면 본관 김응현 오태환 서상교 서상응 이상학 신경수 이원정 김규명 신채 원영봉 조중철 윤도성 면 징계 친위 제일연대 제일대대부 참위 이규갑은 주번에 있어 대무에 소홀 하기로 한 주일 경 근신에 처 하고 인천 전보사 주사 백문용은 상관에 대 하여 언사를 불신 하고 거조가 망솔 하며 개성 전보사 주사 박승규는 동관의 환임 일자를 그릇 보 하고 한종익은 수유한 한이 넘도록 진작 환임하지 아니 하였기로 다 견책 하였다더라
○ 사월 오일 법부 민사 국장 김기룡 고등 재판소 판사 겸임 법부 참서관 이희덕 고등 재판소 예비 판사 겸임 김기룡 의원 면 겸임 고등 재판소 예비 판사
외국 통신
○ 미국 정부에서 미국에 들어 오는 명주와 비단을 해관에서 세를 백분지 구십분을 밖에 작정 하고 명주 수건은 원 갑보다 백분지 십 분이 더 하게 세를 받자고 정부에서 의논이 있다니 이렇게 될 지경이면 일본 명주와 비단은 미국으로 수출하기 어렵겠더라
○ 대만서 이상한 전염 병이 생겨 대만 토인들이 날마다 여러 십 명씩이 죽는데 이 병은 흑사병 중에 그중 독한 병일러라
○ 일본서 새로 신문 규칙을 작정 하여 삼월 이십 사일에 반포 하고 시행 하게 하였는데 이 규칙은 정부에서 임의로 신문을 정지 하는 권리를 없앴더라
○ 스페인 정부에서 아메리카와 아시아 안에 있는 속지에 보낼 양으로 군사 일만 이천 명을 새로 불러 내였다더라
○ 스페인 정부에서 여송 난리 까닭에 외채를 내어 기어히 내란을 간정 하려고 영국 서울 런던 부자에게들 주선 하여 달라고 말 하였더라
○ 일본 정부에서 크레테 일을 자세히 살필 양으로 이탈리아에 있는 일본 공사 구리노씨를 크레테로 가서 자세히 유람 하고 희랍과 터키 서울로들 가 거기 사정들을 알아 기별 하라고 하였더라
○ 일본 의회는 수일 간 정지 한다고 말이 있더라
○ 일본 장기서 영국 해군들과 상민들과 기외 각국 사람들이 모하 크게 음악 회를 하였는데 영국 군함 피칵 사관이 조선 노래를 지어 이 야희에서 여러 백명이 노래 하였는데 조선 흉을 대단히 보았기로 우리가 기록 하니 조선 사람들은 이런 걸 보거드면 외국 사람들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 하는 줄을 알고 분히 여겨 아무쪼록 남과 같이 되기를 바랄 듯 하더라
저 바다 건너 나라 하나가 있으니
세상에서 이 나라를 조선이라 하더라
그 나라안에는 사람을 길겁게 하고
정결 하다는 말은 참 뜻을 모르더라
그 나라 사람들과 그 나라 사정을 말 하려면 제일 가는 문장이라도 이루 기록 할 수 없더라 저 멀리 있는 조선 땅을 노래 하려면
조선 생각이 시객의 비위를 역 하더라
조선 갓은 확이 머리 보다 적고
갔 도래는 어깨 보다 더 넓더라
방에 불은 침상 밑에 피우고
굴뚝은 땅에다가 구멍을 뚫었더라
모군 군은 소리를 질러야 일을 하고
쉬는 시간은 일 하는 시간 보다 더 하더라 담배 대는 석 자 길억지를
저 먼 조선 땅에서 먹더라
군함들이 정한 나라에서
혹 며칠 동안씩 거기 가는데
영국 군함 피칵은 무슨 일인지
제물포에 가서 세월을 허비 하더라
다행히 제물포서 도망질 하여
한 번 나 오면 다시 가기는 다 싫어 하더라 아침이면 밝다고 하는 나라에
아무 것도 사람을 길겁게 할 건 없더라
원컨대 우리는 다시 동양에 있을 때에
그 흉악한 나라에는 가지 않게 하여 주오 이 넓은 세계에 사람을 길겁게 할 것은
저 멀고 먼 조선 안에는 없더라
전보
○ 런던 삼월 삼십 일일 발 각국 함대장들이 크레테에서 본국들로 기별 하여 군사를 이백 명씩 더 크레테로 보내어 벌써 각국이 차지 하고 있는 동리들을 보호 하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더라
○ 희랍 왕태자는 터키 접계 라리사에 이르러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큰 대접을 받고 모두 왕태자를 위 하여 만세를 부르더라
○ 런던 사월 초 일일 발 크레테에 성교 하는 백성들이 터키 포대 하나를 스피나롱가에서 뺏었는데 싸움 하기를 사십 팔시 동안을 하였고 터키 화륜선 하나가 병기를 싣고 항구에 들어 오는 것을 크레테 백성들이 깨뜨려 물에 잠기고 항구로 내려다 보는 터키 포대를 뺏으려 할 때에 항구에 있는 각국 군함들이 대포질을 하여 쫓아 버리고 그 포대를 각국에서 차지 하였더라
○ 희랍 왕태자 전하는 터키 접계에 있는 희랍 군사에 사령관 겸 도 지휘관이 되었더라
○ 영국 정부에서 군사를 크레테로 더 보내라고 명령을 나렸더라
○ 런던 사월 이일 발 각국이 작정을 하고 희랍 각 항구를 군함으로 에워 싸 희랍서 다시 동병 하지 못 하게 하자고 하였더라
○ 프랑스에서 군사 육백 명을 크레테로 더 보내었고 영국서는 팔백 명을 보내었다더라
○ 각국 함대장들이 본국들로 전보 하고 포병을 크레테로들 보내 달라고 기별을 하였더라
각 부 신문
○ 내부에서 울릉도 인민에게 고시 하기를 보천하 솔토에 백성이 우리
대군주 폐하의 성덕으로 화휵 하시는 가운데에 자생하지 아님이 없는지라 오호라 본 섬이 바다 가운데 외로이 서 상거가 막연 한 바 이백 칠십여 호에 일천 백여 인구가 알지 못게라 저 속에서 밭을 근 오천 말 지기를 기경 하여 어렵게 생업 하도록 한 번도 묻지 못 하고 털 끝도 화를 입힘이 없으니 슬프다 이 백성이 어찌 나라에 정부가 있어 백성 사탕 하는 무유한 뜻을 알리요
그러나 이왕은 물론 하고 내두에 효험이 있게 하게 일찍 연전에 별로 도감을 베풀고 규칙을 성급 하였으니 이것이 실로 다름이 아니라 비록 하토 인민이라도 규칙을 영준 하고 각각 스스로 안도하여 기어이 치화를 입거하게 함이니 오직 너의 민인은 다 가로되 편의하다 하는지 도감의 하는 일이 어김이 없는지 호구를 조사 하고 전토를 주명 함은 백성에게 해를 끼침을 위 함이 아니라 우리 나라 지방 구역 안에 한 백성과 한 흑이라도 조적에 반포 하여 다 화역에 있게 함이라 조금도 의려 말고 오직 농사를 힘 쓰며 호수를 더 하여 토지를 거칠게 말며 위생에 손상이 없게 함이 실로 우리 정부에 본의이니 다 알라 하였고
또 내부에서 울릉 도감에게 훈령 하기를 본 도감의 보고서와 인구 호수 전토 현록한 책자를 본즉 호구의 수효와 토지의 여허를 오히려 주실하지 못 하더니 이제 이 보고가 심히 소상 하니 과연 도감의 종명 하게 일을 함을 가히 알지라 인민을 대 하여 더욱 더 무유 할지요 이 후에 방편하게 하기는 정부에서 별로 우규를 베풀어 써 실시하게 하리니 이렇게 알며 본도가 연내에 풍등하지 못 하여 백성이 주리는 빚이 많은 중에 겸 하여 새와 쥐와 바람 세 재앙이 있어 인민이 지보하기 어렵다 함은 듣기에 심히 긍민 할 뿐더러 구휼 하는 방편이 아직 멀리 믿기 어려우니 오직 위무 하여 기어히 안접하게 하라 하였다더라
○ 영국 사람 브라운씨와 통변관 최영하씨가 삼월 십오 일 경운궁에 들어 가서 궁 안에 지형을 척량 하고 나왔다더라
○ 무감 중에 궁내부 순검 뽑을 차로 성책 닦아 들여 보내었다더라
○ 각종 학교에서 무고히 퇴학한 생도의 거주 성명을 학부에서 낫낫치 적어 경무청으로 훈령 하고 학비를 도로 물려 받아 보내라 한 고로 경무청에서 각 서에 신칙하여 그 학비를 당장에 도로 받아서 학부로 보내었다더라
○ 외부에서 경무청으로 훈령 하기를 경찰 하는 즈음에 법 아닌 노릇 하는 사람을 잡다가 외국 공관에 하인이여던 해 공관에 맡겨 두고 표적을 맡아 보 하여 해 공관에 지조 하여 타판하게 하라 한 고로 경무청에서 각 서로 신칙 하더라
○ 서울 오서 자내에 물 장사의 거주와 성명을 소상히 기록 하여 보내라고 경무청 총무국에서 각 서로 조회 하였다더라
○ 친위 삼대대 병정 십사 명이 삼월 이십 사일 안성군으로 내려 갔다더라
○ 서울 오서 자내에 길을 또 수치 하려는데 길을 범 하고 개천을 건너 지었던 가가와 방옥은 양력 사월 일일 이후로는 일병 다 헐라고 한성부에서 전일 내부 지령대로 각 방곡에 고시 하였는데 종각 밑에서 동대문 까지와 대 정동서 서소문 까지 가 그 중에 더욱 급 하다더라
잡보
○ 서울 각 서에서 사람의 매 때리는 장관을 경무청에서 모두 걷어 들었다더라
○ 감옥서에 증정이 일백 삼십 칠명 한성 재판소 죄인이 일백 두 명 고등 재판소 죄인이 팔명 합 죄인이 이백 삼십 칠명이더라
○ 한성 판윤 이채연씨가 탁지부 고문관 브라운씨와 함께 서소문 안 길을 삼월 이십 구일 척량 하더라
○ 친위 제 사대대 부위 안대형씨가 서울 안동 큰 길에서 말을 몰아 갈 때에 서학 뒷골 사는 서상오의 노처가 미처 피치 못하여 엎더져 왼편 다리가 상 하였다더라
○ 내부 기사 심의석씨와 한성부 주사가 서소문 안과 밖에 길을 척양 하고 길 좌우에 있는 집 간 수를 다 적어 갔다더라
○ 당오전 한 낱을 이전에 오 푼씩으로 쓸 때에는 이십 낱을 한 냥이라 하고 일백 낱을 닷 냥이라 하는 것이 당연 하거니와 지금은 구리 돈 한 낱을 오 푼씩으로 쓰고 당 오전 한 낱은 단 한 푼으로 쓰는데 어찌 하여 지금도 당오전 한 낱을 전과 같이 오 푼으로 칭호 하여 회계 하는 셈이 현란한지 당오전 한 낱을 일향 오 푼으로 부를진대 구리전 한 낱과 등이 같을지라 구리전 한 낱이 당연한 오 푼이니 당오전 한 낱은 엽전과 같이 단 한 푼으로 부르고 셈을 회계 하는 것이 옳다고들 한다더라
○ 풍천군 원 호수가 이천 오십 오호 중에 읍내 호가 팔백 여 호요 원 결수가 일천 오백 팔십 삼결 이부 삼속인데 을미년 결전은 삼십 오 냥 팔돈 이 푼씩 호전은 구냥 오 돈 오 푼씩 병신년 결전은 오십 오 냥 삼돈 육 푼씩 호전은 칠냥 구 돈씩을 물려서 지금 온 고을 백성이 이산 한자 만 하다고 해 군수 안 준씨의 수렴 발기를 그곳 사람이 신문사에 적어 보내었으니 참 그런지 우리는 알 수 없거니와 이런 일은 내부에서 살필 듯 하다더라
○ 강계군 땅에 사는 한창률이가 시방 서울 대묘동 문지사 집에 유숙 하는데 수신도 잘 하고 학문도 있다 하며 우두 시키는 묘방을 배워 누구든지 우두 넣으려 한즉 약값과 수고 값을 아니 받고 성심으로 보아 주는데 그 동안에 우두 넣어 시킨 아이 수효가 구천 구백명이 된다 하더라
○ 장흥고 앞 안준철의 집 앞에 길에다 어떤 새로 난 남자를 강보에 싸서 사월 일일 밤에 버렸는 고로 서서 순검이 그 아이를 안준철에게 맡기어 잘 보호 하여 기르라 하였다더라
○ 서소문 안에 최삼보의 부 부가 아편연을 먹고 사월 일일에 스스로 죽었다더라
○ 신수철리 한백만의 십이 세 된 여아가 사월 일일 우물에서 물을 길다가 발이 미끄러저 우물에 빠져 죽었다더라
○ 각 서 관내 각 학교에 교원과 부교사가 누구며 학원이 몇 사람이며 회사와 도가에는 그 도중 인원 액수가 얼마인지 성책을 닦아 보 하라고 경무청에서 각 서에 신칙 하였다더라
○ 김정규와 김노미가 거짓 은 두 쪽을 가지고 김창백의 전당국에 가서 전당 하다가 남서에 현착 되어 경무청으로 보내었다더라
○ 동서 자내에 두신 배송 하는 무녀를 잡아 경무청으로 보내었다더라
광고
새로 내는 신문이라
그리스도 신문은 농사 업과 외방 통신과 외국 통신과 판보와 잡보와 각 부 통신과 사람에게 유익 한 것을 다 이 신문에 올릴 터이니 사다 보기를 바라노라 이 신문국은 대 정동 미국 목사 원두우 집이요
고살기 광고
○ 좋은 금계랍과 좋은 바늘을 많이 파니 제군자는 와서 귀경 하고 사 가시오 값은 매우 싸고 물품은 상등이요 회사 집은 정동 명례궁 앞에요 사(四) 二十七
한성 은행 광고
○ 본 은행을 중서 광통방 전 교환소로 정 하고 자본 금은 사천 고 까지 한 하여 한 고에 은화 오십 원으로 하였사오니 제군자는 입참 하시기를 바라오며 식리 하는 방법은 타인의 금액을 유변으로 임치도 하며 가권이나 답권 외에 금 은과 기타 확실한 물건을 전당 하고 대금도 하며 보증인이 실하면 전당 없이 대금도 하며 가량 상업인이 일만 원에 지 하는 물건을 매매 할 터인데 자본금이 이천 원 뿐이라도 그 물건 적치표를 은행에 전당 하면 팔천 원을 대어 할 터이오니 원근 인원은 일체로 양실 하시옵 건양 이년 삼월 한성 은행 발기인 김종한 민영찬 조재명 한치조 이승업 김영모 이규정 김태진 권석영 四二十四
○ 누구든지 서양목과 서양사를 각색으로 도매 하여 장사 하고 싶은 이가 있거든 독립 신문사로 와서 주문 하면 몇 백동이라도 싸게 사 갈 터이니 이 계제를 타 상무에 유의 하는 이는 즉시 와서 주문 하시오
○ 훈동 이문사 四七
본사에서 서책을 개간 하는데 아국에 고금 문장 명류의 명작 음영을 몇 수씩은 수취 하여 방장 편집 출판 하오니 각기 그 선조의 문화를 천앙하고자 하는 제군자는 그 문집 중 명작률시를 몇 수식 이든지 등초 하여 음력 이월 내로만 보내시면 돈은 아니 받고 출판 하여 사업 되게 하겠사옵
세창(世昌) 양행(洋行) 광고
○ 화륜선 창룡환이 이달 이십삼 일에 진남포와 평양으로 제물포에서 떠날 터이니 선객들과 짐들을 속히 제물포 世昌洋行으로 가서 마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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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1897년 4월 6일 1면
출처: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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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1897년 4월 6일 화요일 - 한글 현대문 (독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