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놀이
송연숙
신이 주사위를 던졌다
신의 입김 같은 안개에 구멍을 뚫고 달리면
흔적도 없이 닫히는 문
그 문에 갇혀서 움직일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한 번 터진 먹구름 솔기에선
감당할 수 없는 안개의 입자들이 쏟아졌다
깨진 접시처럼 증가하는 안개의 엔트로피
갓길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핸들에 머리를 묻고
물음표 같은 눈물로
내 인생을 향한 신의 계획을 따져 묻기도 했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환상선環狀線 같은 시간
깨진 접시 조각들이 조립 되어
다시 식탁 위에 놓일 수 있을까
흔들어 놓은 상자 속의 퍼즐처럼
제멋대로 굴러가는 포켓볼처럼
어지럽게 흩어지는 생각의 입자들
안개비가 되어 내린다
오후가 되면 구름이 되어 떠오르는 안개
거기, 태양의 빛이 있었다
신이 던진 주사위는 놀이였을까
양파의 계절
송연숙
눈물을 겹겹이 싸면 매운맛이 난다
어제는 오전에 결혼식 오후에 장례식
오늘은 오전에 장례식 오후엔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 축하공연으로 링 마술이 펼쳐졌다
두 개의 링이 연결되거나 분리될 때마다
하객들의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쇠로 된 굴렁쇠가 어떻게 쇠를 뚫고 드나들이 하는지
쇠 같은 마음을 뚫고 들어가
서로 닮은 동그라미를 껴안을 때
양파에선 파란 싹이 태어났다
마트료시카처럼 복제된 등고선을 겹겹이 싸안으며
양파는 동그라미를 늘려갈 것이다
귀고리에 목걸이, 여러 개의 반지까지 낀 상주
눈물이 고이던 눈에 반짝 웃음이 비치기도 했다
나를 닮은 동그라미를 심장에서 빼내는 일은
껴안고, 단속하고, 매듭짓던 양파의 계절을
땅에 묻는 일이다
그 양파에선 파란 싹이 다시 태어날 것이다
마트료시카처럼 복제된 그리움을 겹겹이 흘려가며
양파는 동그라미를 늘려갈 것이다
중단되어야 보이는 삶의 패턴은
지문과 파문이 그려놓은
동그라미의 연속무늬다
겹겹이 싸 안은 빗방울에선 달고 매운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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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숙 :2016년 월간 <시와표현> 신인상
201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3년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사람들은 해변에 와서 발자국을 버리고 간다』
『봄의 건축가』 외.
현재 내촌중학교 교장. 강원대학교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사.국민일보신춘문예회 회장